대법관에 임명된 안대희 전 서울고검장이 10일 퇴임사에서 검찰의 현 인사제도를 강하게 비판했다.

"누구나 승진과 보직경쟁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만드는 구조"

안 전 고검장은 이날 오전 서울고검에서 열린 퇴임식에서 "소수를 제외한 구성원 대다수가 불만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인사구조 하에서는 조직의 일체감과 안정성을 확보할 수 없다"며 "공정하고 일관성있는 인사제도가 확립돼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불안정한 인사시스템은 전근대적인 지연 · 학연 · 혈연 등에 의한 연고주의가 침투하게 만들어 급기야는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을 취약하게 만들게 분명하다"고 지적하고, "자의와 연고주의를 배척하는 보다 공정하고 객관적인 인사시스템을 구축하여 검찰의 진정한 법치주의 실현을 위한 역할을 보장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검사든 직원이든 임관 순간부터 퇴직하는 날까지 승진과 보직경쟁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게 검찰의 인사구조"라며, "검찰 구성원 대부분이 승진과 보직을 둘러싼 무한경쟁에서 벗어나 긍지와 보람을 느끼면서 일하다가 영예롭게 퇴직할 수 있는 '평생검사', '평생직장'이 될 수 있도록 제도개혁과 의식의 전환이 있어야 한다"고 기원했다.

그는 또 "검찰권 행사에 있어서 우리 사회를 짓눌러 온 지연 · 학연 · 혈연 등의 전근대적인 연고주의 정서를 극복하여 법과 원칙만이 통용되는 조직문화를 달성해야 할 것"이라며 특히 "지휘라는 어휘의 의미를 한 단계 더 높여 상호협력속에서의 법률적 의사의 우위라는 개념으로 사법경찰과의 관계를 이해해야 한다"고 말해 주목을 끌었다.

그는 "실체적 진실 발견을 위한 (사법경찰과의) 협력을 강화해야 할 것"이라며, "사법경찰의 형사사법절차에서의 역할과 자율성을 최대한 존중하고, 경찰의 수사업무가 제대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검 · 경간의 상호신뢰를 바탕으로 한 역할 분담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가 남긴 퇴임사의 마지막 구절은 독일 법철학자 라드부르흐의 "달리 어떻게 할 수 없는 사람이 가장 위대한 것을 창조한다"라는 한마디였다.

안 전 고검장은 10일 노 대통령으로부터 대법관 임명장을 받았으며, 11일 대법원에서 취임식을 갖고, 6년의 대법관 임기를 시작한다.

강신욱 대법관 "전관예우 등 사법 불신 여전" 안타까움 토로

강신욱 대법관은 10일 퇴임사를 통해 국민들의 사법에 대한 불신이 여전하다며 사법부의 대오각성을 촉구했다.

이날 함께 퇴임한 이규홍, 이강국, 손지열, 박재윤 대법관을 대표해 퇴임사를 한 강 대법관은 "유전무죄, 무전유죄, 전관예우 등의 말로 상징되는 국민들의 사법에 대한 불신이 안타깝다"며, "대부분의 사법부 구성원들은 이런 말들이 사실과 다르다고 항변하지만, 중요한 것은 사실이든 아니든 국민들이 아직도 이런 말들을 믿고 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법조인 모두가 지혜를 모아 해결해야 할 이시대의 과제"라고 당부했다.

그는 이어 "사회 일각에서 일부 집단이나 개인들이 공정한 재판을 위해(危害)하려는 언동을 서슴없이 하고 있어 참으로 안타깝고 유감스러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며, "이해관계를 가진 일부 집단이나 개인들이 자신들의 입장을 관철하기 위해 온당치 못한 방법으로 재판에 영향을 미치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뿐만 아니라 선고된 판결에 대해 자신들의 생각과 다르다고 하여 보수니 진보니, 걸림돌이니 디딤돌이니 하면서 승복하지 않으려 하고, 나아가 건전한 비판의 정도를 넘는 원색적이고 과격한 언동으로 비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법의 잣대로 재단하기 보다는 정치적으로나 행정적으로 조정 해결되는 것이 바람직한 사안들조차 사법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말도 했다.

강 대법관은 "(이같은 현상은) 한단계 더 높은 민주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진통으로 이해하고 싶지만, 사법권의 독립을 저해하는 우려스러운 현상이라 아니할 수 없다"며, "사법부의 구성원들은 국민 한사람 한사람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지켜주어야 하겠다"고 강조했다.

강 대법관은 "민주사회에서는 소수의 의견도 끝까지 존중되어야 하겠지만, 그렇다고 하여 침묵하고 있는 다수의 합리적이고 정의로운 생각이 시끄러운 소수의 강경한 목소리에 묻혀서는 진정한 사회라고 할 수 없다"며, "사법부 구성원들은 보수의 편도 아니고, 진보의 편도 아니며, 오로지 법과 정의와 양심의 편일뿐"이라고 말을 맺었다.

강 대법관은 경북고와 서울대 법대를 나와 제9회 사법시험에 합격했으며, 검찰의 요직을 두루 거친 후 서울고검 검사장으로 있다가 지난 2000년 대법관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