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메뉴 바로가기 검색 바로가기

시각장애인의 분노, 국회로 향하다

<현장> 농성 25일째, 지도부 무기한 단식농성 돌입

시각장애인들의 분노가 집회와 시위 현장에서 이제는 국회로 방향을 바꿨다. 헌법재판소의 안마사 독점 위헌 판결 이후 25일째 마포대교 교각농성과 한강 둔치 집회를 벌여온 시각장애인 3백여명은 20일 오후부터 농성장을 서울 여의도 국회 앞 국민은행 인도변으로 옮겼다.

위헌 판결 이후 생존권을 위협받는 시각장애인들의 절규는 한달 가까이 계속되고 있지만 정부와 국회, 모두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안마사 협회 시각장애인 3백여명은 이날 오전 11시 마포대교 아래 한강 둔치에 집결해 항의집회를 열고 오후 3시부터 국회의사당 앞까지 가두집회를 벌였다.

하지만 이내 경찰의 제지에 가로막혀 실랑이를 벌이다가 여의도 국민은행 앞으로 방향을 틀어 오후 10시가 넘도록 ‘시각장애인의 생존권을 보장하는 대체입법’ 마련을 호소했다.

생존권이 흔들리고 있는 시각장애인들의 분노가 국회로 향했다. 국회의사당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는 한 시각장애인.ⓒ최병성


대한안마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 지도 13명은 20일 오후부터 2주간의 단식농성에 돌입했다.ⓒ최병성


이 자리에서 송근수 경기도안마사협회 지부장과 유명구 경기도 안마사협회 시도 위원장 등 13명의 지도부 위원들이 삭발과 함께 2주간의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지도위원들은 “헌재의 위헌 판결을 되돌릴 수 없다면 그에 대한 대책이 이미 마련되었어야한다”며 “이제 와서 안마업에서의 장애인 할당제를 운운하는 것은 정부가 책임져야 할 복지의무를 저버리고 불법인 스포츠 안마를 방치한 데 따른 것”이라고 비판했다.

집회가 계속되던 오후 7시경에는 시각장애인들의 국회의원 면담을 요구하며 국회의사당으로 행진을 시도하면서 경찰과 충돌, 2명의 시각장애인이 영등포서 연행되는 등 1시간 가까이 격렬한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여의도 국민은행 앞에서 설치된 천막농성장.ⓒ최병성


오후 7시경 시각장애인들이 국회로 향하면서 경찰과 충돌이 벌어지기도 했다.ⓒ최병성


정치권, 뒤늦게 대체입법 마련 나서

한편, 시각장애인들의 분노가 두 명의 투신자살로 이어지는 등 이들의 불안감이 확산되자 정치권은 뒤늦게 대체입법을 마련하느라 분주한 모습이다.

가장 발 빠르게 대체입법 발의에 나선 것은 한나라당이다. 시각장애인인 정화원 한나라당 의원은 지난 15일 안마사의 자격기준을 ‘시각장애인’으로 명문화하고 ‘안마사(按摩士)’라는 용어를 ‘수기사(手技士)’로 바꾸는 것을 골자로 하는 의료법 일부개정안을 이달 안에 발의할 예정이다.

이는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결의 결정적인 이유였던 ‘법률유보의 원칙’에 따라 보건복지부 시행령에서 규정하던 안마사 자격기준을 상위법인 의료법에 명시하는 것.

헌재는 지난 5월 25일 보건복지부의 시행령에서 안마사를 시각장애인에게만 제한하는 것에 대해 법률이 아닌 시행규칙에서 규정하는 것은 행정처분을 법률에 근거하게 하는 ‘법률유보의 원칙’에서 벗어난다며 위헌 판결을 내렸다.

열린우리당도 의료법 개정을 통해 시각장애인의 생계를 보장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다. 장향숙 의원이 마련 중인 의료법 개정안은 안마사 면허를 시각장애인 면허와 비시각장애인 면허로 구분하고 업소 개설권은 시각장애인에게만 허용하도록 했다.

또 한나라당과 마찬가지로 안마사의 명칭을 수기사로 바꾸는 내용을 포함시켰다. 김근태 의장과 장향숙 의원은 이날 대한안마사협회 비상대책위원들과 면담을 갖고 빠르면 8월 임시국회 또는 정기국회에서 개정안 통과를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치권이 뒤늦게 대체입법 마련에 나서는 반면 헌재 판결 이후 이미 대책을 마련했다고 호언했던 보건복지부의 행보는 더딘 편이다.

판결 이후 시각장애인들의 마포대교 교각농성이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자 농성 9일만에 현장을 찾았던 유시민 복지부 장관은 실무협의회 구성을 통해 조속한 대책 마련을 약속했지만 한 달 동안 실무협의회는 두 번 열렸을 뿐이다.

이마저도 복지부가 내놓은 안들은 안마사의 자격을 시각장애인에서 국가자격시험에 합격한 비시각장애인으로 확대하고 안마업소의 종류에 마사지업소를 추가하는 등 보호대책이라고 보기 어려운 내용들이어서 시각장애인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특히 복지부가 내놓은 안 중 마사지업소는 안마사 4명 중 1명을 시각장애인으로 고용해야한다는 이른바 ‘할당제’는 '사태의 조기종결만을 바라는 안일한 임기응변식 자세'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실무협의회에 참석했던 정의화 의원은 “복지부는 겸허한 자세로 지금까지의 안일한 임기응변식 자세에서 벗어나 시각장애인의 생존권을 보장할 근본적이고 구체적인 대체 입법 마련에 최선을 다하라”며 “복지부의 입장 변화가 이뤄지지 않으면 실무협의회 참여 여부를 고민할 수 밖에 없다”고 밝혔다.

임시국회 통과는 불가능, 빨라야 11월 정기국회

이처럼 복지부가 내놓은 대안의 방향이 대체입법보다는 헌재의 판결을 중심으로 한 정책적 대안에 머물면서 시각장애인들의 관심은 국회로 쏠리고 있다.

25일째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항의농성을 계속하고 있는 시각장애인들은 대체입법이 국회를 통과할 때까지 농성을 이어간다는 방침이지만 국회 일정상 빨라야 8월 임시국회나 9월 정기국회에서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

개정안의 통과는 어렵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헌법재판소가 위헌 판결의 주요 근거로 내세웠던 '과잉금지의 원칙(직업선택의 자유 침해)' 조항이 다시금 비시각장애인들의 위헌 소송으로 번질 소지를 남겨두고 있어 이에 대한 사회적 합의과정이 우선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최병성 기자

댓글이 0 개 있습니다.

↑ 맨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