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만수의 섬뜩한 '환율 주권론'
<뷰스 칼럼> IMF사태에도 반성 전무, '제2 위기' 걱정
"뉴욕 재무관 시절(1985년) '프라자 합의'가 이뤄지고 있었기 때문에 환율이 경제를 방어하는 수단이라는 점을 실감했다. 프라자 합의가 시장에서 이뤄진 것이냐. 환율은 시장에 맡기고 그런 상황이 아니라는 점을 그 당시 느끼게 됐다."
"재경원 국장 재임 시절 IMF 회의에 들어가면 이들은 나에게 환율 시장 맡기겠느냐는 질문을 했고, 그때마다 환율을 시장에 맡기는 나라 있으면 나에게 말해달라고 오히려 그들에게 되물었다. IMF의 어떤 사람도 이에 대해 대답하지 못했다."
이명박 정부의 초대 기획재정부장관에 임명된 강만수 장관이 29일 취임 기자회견에서 했다는 말이다. 한마디로 섬뜩하다. 1997년 IMF사태의 악몽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솔직히 이번 인사청문회는 재산, 학력, 국적 등 각료 후보들의 '하자'가 하도 많기 때문에 정책 검증에 소홀했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어렵게 인준을 통과한 강만수 장관이 밝힌 '환율 주권론'은 너무나도 섬뜩하다. 그의 환율 주권론은 IMF사태를 몰고온 핵심요인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YS 정치욕 채우려다 발생한 IMF사태
재무부에서 잔뼈가 굵은 강 장관은 IMF사태 발발 직전인 1997년 3월까지 재경원 차관을 지냈다. 당연히 IMF사태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는 그러나 인사청문회에서 책임론이 제기되자 "IMF사태는 복합적 상황의 산물"이라며 책임을 강력 부인했다. 맞다. IMF사태는 비효율적 관치경제, 기업들의 중복과잉투자, 과인부채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한 국난이었다. 그러나 '환율 조작'도 결정적 요인이었다.
김영삼 당시 대통령은 '선진국 대통령'이란 소리를 듣고 싶었다. 때문에 하루빨리 선진국모임인 OECD에 가입하고 싶어했다. 그러기 위해선 무엇보다 먼저 1인당 소득 '1만달러'를 빨리 달성해야 했다. 그 미션이 경제관료들에게 떨어졌다.
이때부터 환율 조작이 시작됐다. 우리나라 원화가 미국 달러에 비해 '강세'를 보이면 1만달러를 쉽게 달성할 수 있다. 이때부터 원화를 700원대에 묶는 작업이 시작됐다. 하지만 당시 경제상황은 그게 아니었다. 경상수지 적자가 급증하더니 1996년에는 230억달러를 넘어섰다. 원화 가치가 크게 떨어져야 마땅했고 그래야만 수출의 숨통이 트여 경상수지 적자를 줄일 수 있었다. 하지만 당시 경제관료들은 원화 700원대를 고집했다. 단 하나, YS를 경제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러다가 최악의 국가부도사태인 IMF사태를 맞았다.
그 중심부에 강만수 당시 재경차관이 있었고, 그후 그는 10년간 세간의 차가운 시선속에 야인생활을 해야 했다. 그러다가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화려하게 부활, 과천 땅을 다시 밟았다. 그리고 나온 그의 일성이 '환율 주권론'인 것이다.
IMF사태에 대한 반성 전무
섬뜩하다. 왜냐하면 그의 발언은 정부가 환율에 개입하겠다는 발언에 다름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뉴욕 재무관 시절 얘기를 무용담처럼 말한다. 하지만 그때는 1985년도다. 미국이 절대패권으로 세계경제를 쥐락펴락하던 시기다. 그러나 그이후 세계경제는 근본적으로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미국의 힘도 크게 약화됐고, 특히 '금융자본주의'가 도래하면서 금융이 실물을 갖고노는 시대가 됐다.
1992년 영국의 중앙은행인 영란은행은 파산위기를 맞았다. 이유는 파운드화 강세를 고집했기 때문이다. 당시 조지 소로스는 가공스런 외환공세를 펼쳐 영란은행의 금고를 텅텅 비게 만들며 천문학적 거액을 챙기고, 영란은행의 백기항복을 받았다. 그후 프랑스 등도 소로스의 공격을 받았다.
하지만 당시 국제금융에 맹목(盲目)이던 국내 경제관료들은 영란은행의 쓰라린 교훈을 백안시하다가 1997년 IMF사태를 자초했다.
누구나 한번 실수는 할 수 있다. 그러나 두번 같은 실수를 하면 바보이고, 공직자는 역신(逆臣)이 된다.
강만수 발언에 외국계 환호할 듯
관료의 '환율 조작'을 가장 환영하는 곳은 외국 금융세력이다. 외국 금융세력은 한국 관료들이 환율을 통제했을 때 가장 황금기를 구가했다. "환율이 얼마 선 아래로 가는 것을 용납 못하겠다"고 관료가 말하면 그때부터 신나게 돈을 벌 수 있다. 정부가 절대 방어선을 제시한만큼 '안심하고' 무차별 공격을 하면 떼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환율 운용권이 재경부 관료에게서 한국은행으로 넘어오면서 '시장 중심'의 운용을 하자, 한은에 대한 외국계의 불만은 대단했다. 갑자기 적잖은 손실을 보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에 이들은 한국정부와 언론들을 만나 한은을 욕하는 일이 많았고, 과거 황금시대를 그리워했다.
이런 마당에 나온 강만수 장관의 '환율' 발언은 외국계 금융자본에게 낭보 중 낭보일듯 싶다. 또다시 '황금기'가 도래할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올 들어 우리나라 경제는 1월에 26억달러라는 11년만에 최대 경상수지적자를 기록하는 등 심상치 않다. 한은이 올해 예상한 경상적자는 30억달러다. 이보다 몇배나 커질 수 있고 환율도 요동칠 게 분명하다. 이런 마당에 '1980년대 뉴욕 경험'을 절대시하는 강만수 장관이 시장에 개입한다면 또다시 위기가 도래할 수도 있다.
물론 한은 금고에는 2천600억달러의 외환보유고가 있어 금방 거덜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2천600억달러도 깨지기 시작하면 한순간이다. 지금 전세계 헤지펀드의 규모가 얼마인지 강 장관이 아는지 모르겠다. 3조5천억달러다. 이들이 잘못된 환율정책의 메시지를 읽고 한국을 공격하기 시작한다면, 제2의 외환위기도 딴나라 얘기가 아닐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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