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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겸 "국민은 우리를 '개망나니' 보듯 했다"

"우리당 살길은 정계개편 아닌 경제살리기" 주장

김부겸 열린우리당 의원이 5.31 지방선거 지원유세 과정에 느낀 무서운 민심을 토로하며, 경제살리기에 주력하는 것만이 열린우리당이 살 길이라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2일 열린우리당 홈페이지에 올린 '문제는 새 판짜기가 아니라 경제살리기다'라는 글을 통해 유세기간에 만난 사람들이 '경멸어린 눈초리'를 던졌다며 "맨 밑바닥에 깔린 속내는 ‘어찌 된 게 너희들은 하나같이 싸가지가 없냐?’였다"고 토로했다.

대구 출신인 김 의원은 자신의 15년전 DJ 지원유세 시절을 예로 들며 "15년 전 경상도 사투리를 쓰던 이 'DJ 민주당' 당원을 그래도 ‘독립군’ 보듯 했다"며 "그러나 이번 지방선거에선 열린우리당 국회의원을 무슨 ‘개망나니’ 쳐다보듯 했다"고 전했다.

김 의원은 선거참패후 당내에서 거론되고 있는 '민주당과의 합당', '반(反)한나라당 연합' 구상 등 정계개편 논란과 관련, "나는 둘 다 별로 중요하게 보지 않는다"며 "어느 쪽이든 결국은 지역주의의 패러다임 위에서 영남이냐, 호남이냐의 차이일 뿐이지 다를 게 없다. 아무리 머리 좋고 말 잘하는 누가 논리를 세워도, 이미 국민들은 그게 선거 공학에 불과함을 한 눈에 꿰뚫어 보고 있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김 의원은 "이제 새로운 어젠다를 내놓아야 한다"며 "그것은 사회 양극화 해소와 복지국가, 세계화에 대응하는 신통상국가의 건설이다. 한 마디로 말하면 새로운 대한민국 ‘성장 동력 찾기’"라고 주장했다. 그는 "우리는 여기에 집중해야 한다"며 "지금 우리당이 삼삼오오 몰려다니면서 누구와 연합하고 누구와 갈라서고 뭐 그런 일에 몰두했다간 다 죽는다"고 경고했다.

그는 "지금부터라도 신자유주의화에서 비롯된 사회 양극화 문제를 해결할 대안을 내놓고 성실하게 실천하면 된다. 청와대와 머리를 맞대고 어떻게 경제를 살릴 것인지, 한미 FTA를 풀어나갈 것인지, 증세문제, 부동산 대책은 또 어떻게 접근할 것인지 논의해야 한다"며 "이 일을 정부에만 맡겨놔서도 안 되고 청와대만 쳐다보고 있어서도 안 된다. 당이 나서서 밀고 나가야 국민들을 설득할 수 있다. 정부는 언제나 거기 그 자리에 있는 것이고 정권은 5년마다 바뀌지만, 우리당은 정당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다음은 김 의원의 글 전문.

문제는 ‘새 판짜기’가 아니라 ‘경제 살리기’다- 5.31 지방선거 후감-

선거가 열린우리당의 참패로 끝났습니다. 올 것이 왔다는 느낌입니다. ‘겸허히 민심을 받아들여 뼈를 깎는 반성’ 운운하는 소리도 입에 발린 말 같아 하지 않겠습니다. 아무리 해봤자 국민들이 믿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지난 한 달 동안 대구 경북과 지역구인 군포를 오르내리며 지원 유세를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마이크를 잡고 연설을 해 보면 안 그럴 것 같지만 이상할 정도로 듣는 사람들의 표정이 아주 또렷이 잘 보입니다.

저는 15년 전 김대중 총재 당시 민주당에 있을 때도 대구 경북에서 유세를 해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때와 지금을 비교해보면 완전히 다릅니다. 그 땐 사람들의 표정이 전라도 사투리로 뭔가 ‘짠한’ 것이었습니다. ‘저 친구가 그래도 민주주의를 하자고 저렇게 가시밭길을 가는구나.’ 했던 겁니다. 그러나 지금은 경멸어린 눈초리를 던지고 있습니다.

조금 더 이야길 해 보면 맨 밑바닥에 깔린 속내는 이런 겁니다. ‘어찌 된 게 너희들은 하나같이 싸가지가 없냐?’ 그 순간부터 저는 할 말을 잃어버립니다. 그 다음부턴 부동산이다, 교육이다, 일자리다, 세금이다. 빈부격차다... 분노에 찬 목소리로 왜 제대로 못 하거나, 오히려 거꾸로 서민만 더 힘들게 하느냐고 퍼부어 대는데, 제가 설명할 것도 없이 이미 다 알면서도 욕을 합니다. 그동안 우리가 한 말이 하나도 안 먹혔다는 거지요.

지금도 당 내외에 떠도는 말들을 들어보면 한 마디로 걱정스럽습니다. 그들은 선거의 승패 요인을 이리 저리 분석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분석한 패인을 놓고 그에 따른 대책이란 걸 가지고 갑론을박할 태세입니다.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호남표가 떨어져 나가지 않았다면 물론 지금보단 덜 졌을 겁니다. 그러니 민주당과의 합당, 아니면 헤쳐모여 식의 반한나라당 연합을 생각해볼 수도 있겠지요.

반대로 ‘도로 민주당’은 지역주의에의 투항이라는 입장이 있습니다. 이들은 그동안 우리가 선명한 개혁을 못 했기 때문에 선거에 졌다고 분석합니다. 그래서 개혁의 깃발을 더 높이 들고 정치는 대의(大義)이기 때문에 대의명분만 틀어쥐고 있으면 언젠가는 대박을 터뜨릴 날이 온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저는 둘 다 별로 중요하게 보지 않습니다. 어느 쪽이든 결국은 지역주의의 패러다임 위에서 영남이냐, 호남이냐의 차이일 뿐이지 다를 게 없습니다. 아무리 머리 좋고 말 잘하는 누가 논리를 세워도, 이미 국민들은 그게 선거 공학에 불과함을 한 눈에 꿰뚫어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호남 고정표가 있어야 그나마 안심이 되겠다는 국회의원들과 영남후보론으로 다시 한 번 대권을 바라보겠다는 야심가들의 제 논에 물대기라는 겁니다.

오히려 바로 그런 식의 행태가 국민들이 싫어하는 것입니다. 그저 눈만 뜨면 지들끼리 서로 잘 났다고 치고받는 것 외에 집권 여당이 그동안 한 일이 뭐가 있느냐는 겁니다.

그게 아니라 지금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당의 총노선을 재검토하는 일입니다. 그동안 당이 추진해온 개혁정책의 기본 축은 천정배 대표 당시의 4대 법안이었습니다. 창당 2년 동안 해 왔고 사실상 마무리되었습니다. 이제 새로운 어젠다를 내놓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사회 양극화 해소와 복지국가, 세계화에 대응하는 신통상국가의 건설입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새로운 대한민국 ‘성장 동력 찾기’입니다.

우리는 여기에 집중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당이 삼삼오오 몰려다니면서 누구와 연합하고 누구와 갈라서고 뭐 그런 일에 몰두했다간 다 죽습니다. 정계개편은 불가피할 때 그렇게 되어지는 것이지, 억지로 만들어서 할 일이 아닙니다.

시험 칠 학생이 제 공부를 열심히 해야지, 자기는 공부 안 하면서 좋다는 학원에 등록하고, 잘 나간다는 선생 집으로 모셔온다고 저절로 성적 올라가는 거 아닙니다.

더욱이 열린우리당이 어떻게 만들어진 당인데 쉽게 포기합니까? 한국 정당사에 여야에서 각자 자기 당을 박차고 나와서 만든 이런 당은 없었습니다. 탈지역주의와 정치개혁이라는 한국 정치의 두 가지 핵심 과제를 자기 목표로 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국민들이 불과 창당 다섯 달 만에 제1당을 만들어 주신 겁니다.

문제는 집권여당의 무능과 무대안(無代案)입니다.

지금부터라도 신자유주의화에서 비롯된 사회 양극화 문제를 해결할 대안을 내놓고 성실하게 실천하면 됩니다. 당정청간 소통이 다시 시작되어야 합니다. 청와대와 머리를 맞대고 어떻게 경제를 살릴 것인지, 한미 FTA를 풀어나갈 것인지, 증세문제, 부동산 대책은 또 어떻게 접근할 것인지 논의해야 합니다. 이 일을 정부에만 맡겨놔서도 안 되고 청와대만 쳐다보고 있어서도 안 됩니다. 당이 나서서 밀고 나가야 국민들을 설득할 수 있습니다. 정부는 언제나 거기 그 자리에 있는 것이고 정권은 5년마다 바뀌지만, 우리당은 정당이고 정당이야말로 민주주의를 떠 받치는 기둥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 게 중요하지, 기껏 새 판짜기나 골몰하고 앉아 있다간 정말 ‘얼치기 좌파 정권의 몰락’이라고 역사에 기록될 각오를 해야 할 것입니다.

개혁과 진보가 그 자체로 도덕적 우위를 점하던 시대는 지났습니다. 15년 전 경상도 사투리를 쓰던 이 'DJ 민주당' 당원을 그래도 ‘독립군’ 보듯 했습니다. 그러나 이번 지방선거에선 열린우리당 국회의원을 무슨 ‘개망나니’ 쳐다보듯 했습니다. 내년 겨울엔 대구 경북에 가서 다시는 그런 시선을 받고 싶지 않습니다. 아니 거꾸로 ‘역시 그래도 운동권들이 마음 한 번 잡으니까 일도 잘 하더라...’는 소릴 꼭 듣고야 말겠습니다.

그 때까지 쓸개를 씹고 장작더미 위의 잠자리를 마다하지 않겠습니다.

2006년 6월 2일
김부겸
이영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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