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자 수하르토 사망, '국장'에 국민들 반발
철권통치.부패.인권탄압으로 '20세기 가장 부패한 정치인'
32년 간 인도네시아를 철권통치해온 수하르토(86) 전 대통령이 27일(현지시간) 사망한 가운데, 인도네시아 정부는 사망한 수하르토 전 대통령을 애도하기 위해 이날부터 일주일간 전국에 조기를 게양한다고 발표, 일부 국민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28일 AP.AFP통신에 따르면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대통령은 수하르토 전 대통령의 사망에 대해 "개인적으로, 그리고 국가수반으로서 수하르토 전 대통령의 죽음에 깊은 애도를 표한다"며 국민에게 "그를 위한 마지막 기도를 올리자고 요청했다"고 전했다.
지난 1월4일부터 신장, 심장, 폐 기능 이상으로 인한 저혈압 증상으로 입원해 있다 일시적인 회복으로 퇴원했던 수하르토 전 대통령은 26일 밤 급격한 혈압 저하로 건강이 악화돼 의식불명 상태에 빠지면서 다시 병원으로 긴급 이송됐으나 27일 끝내 숨졌다. 입원 기간 동안 인도네시아 내 유명 의사들이 혈액 투석 등 가능한 치료법을 총동원했지만 끝내 그를 살려내진 못했다. 수하르토 전 대통령은 최근 몇 년간 뇌 손상과 실어증으로 시달려온 것으로 알려졌다.
86세의 나이로 사망한 수하르토 인도네시아 전 대통령은 가장 잔인한 통치자 중 한 명으로 악명을 떨치다가 민중봉기로 권좌에서 밀려난 뒤 심각한 건강 상태와 계속되는 몰락으로 불운한 말년을 보냈다.
1921년 6월8일 중부 자바의 고디안 마을에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1949년 인도가 네덜란드로부터 해방되던 해 군인으로서 빠른 출세의 길을 걷기 시작해 1965년 권력의 정상부에 도달했었다. 1967년 인도네시아 초대 대통령이던 수카르노를 축출, 권력을 잡은 후 7번이나 대통령을 연임하기도 했다. 그는 재임 기간 풍부한 석유와 가스 산업을 이용, 연평균 7%의 경제성장률을 이룩하면서 '개발의 아버지'라 칭송받기도 했지만, 계속되는 철권 통치와 부패 등으로 인한 대규모 반정부시위로 결국 정권에서 물러났다.
특히 인권 탄압과 부정 부패를 일삼은 '독재자'라는 비난을 받았던 수하르토에 대해 그의 집권 시절 고통을 겪었던 피해자들은 죽음만으로 죗값을 치를 수 없다며 퇴진 이후 인도네시아 국민들의 비판이 이어졌다.
최근 수하르토 정부 시절 정치범과 가족 1백여명은 수하르토 가족의 선산이 있는 솔로시(市)에서 "죽기 전에 법정에 세워라"라고 쓰인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인도네시아 시민단체들은 "수하르토가 집권 시절 수 십만명의 정적을 재판 없이 처형하거나 투옥한 혐의를 받고 있으며 '국제투명성기구'는 수하르토의 일가가 3백50억달러에 이르는 재산을 축적한 그를 '20세기 가장 부패한 정치인'으로 꼽았다"며 "그의 죽음을 사필귀정"이라 평가했다. 이들은 수하르토 장례를 국장으로 치루는 인도네시아 정부에도 강력 반발하고 있다.
28일 AP.AFP통신에 따르면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대통령은 수하르토 전 대통령의 사망에 대해 "개인적으로, 그리고 국가수반으로서 수하르토 전 대통령의 죽음에 깊은 애도를 표한다"며 국민에게 "그를 위한 마지막 기도를 올리자고 요청했다"고 전했다.
지난 1월4일부터 신장, 심장, 폐 기능 이상으로 인한 저혈압 증상으로 입원해 있다 일시적인 회복으로 퇴원했던 수하르토 전 대통령은 26일 밤 급격한 혈압 저하로 건강이 악화돼 의식불명 상태에 빠지면서 다시 병원으로 긴급 이송됐으나 27일 끝내 숨졌다. 입원 기간 동안 인도네시아 내 유명 의사들이 혈액 투석 등 가능한 치료법을 총동원했지만 끝내 그를 살려내진 못했다. 수하르토 전 대통령은 최근 몇 년간 뇌 손상과 실어증으로 시달려온 것으로 알려졌다.
86세의 나이로 사망한 수하르토 인도네시아 전 대통령은 가장 잔인한 통치자 중 한 명으로 악명을 떨치다가 민중봉기로 권좌에서 밀려난 뒤 심각한 건강 상태와 계속되는 몰락으로 불운한 말년을 보냈다.
1921년 6월8일 중부 자바의 고디안 마을에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1949년 인도가 네덜란드로부터 해방되던 해 군인으로서 빠른 출세의 길을 걷기 시작해 1965년 권력의 정상부에 도달했었다. 1967년 인도네시아 초대 대통령이던 수카르노를 축출, 권력을 잡은 후 7번이나 대통령을 연임하기도 했다. 그는 재임 기간 풍부한 석유와 가스 산업을 이용, 연평균 7%의 경제성장률을 이룩하면서 '개발의 아버지'라 칭송받기도 했지만, 계속되는 철권 통치와 부패 등으로 인한 대규모 반정부시위로 결국 정권에서 물러났다.
특히 인권 탄압과 부정 부패를 일삼은 '독재자'라는 비난을 받았던 수하르토에 대해 그의 집권 시절 고통을 겪었던 피해자들은 죽음만으로 죗값을 치를 수 없다며 퇴진 이후 인도네시아 국민들의 비판이 이어졌다.
최근 수하르토 정부 시절 정치범과 가족 1백여명은 수하르토 가족의 선산이 있는 솔로시(市)에서 "죽기 전에 법정에 세워라"라고 쓰인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인도네시아 시민단체들은 "수하르토가 집권 시절 수 십만명의 정적을 재판 없이 처형하거나 투옥한 혐의를 받고 있으며 '국제투명성기구'는 수하르토의 일가가 3백50억달러에 이르는 재산을 축적한 그를 '20세기 가장 부패한 정치인'으로 꼽았다"며 "그의 죽음을 사필귀정"이라 평가했다. 이들은 수하르토 장례를 국장으로 치루는 인도네시아 정부에도 강력 반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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