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복현 '호통'에 은행들 앞다퉈 가계대출 차단
호통에 앞서 정부의 '오락가락 정책'도 반성해야
이복현 원장은 지난 25일 아침 KBS '일요진단 라이브'에 출연해 "연초 은행들이 설정한 스케줄보다 가계대출이 늘었는데, 이에 대한 대응으로 금리를 올리면 돈도 많이 벌고 수요를 누르는 측면이 있어서 쉽다"며 "은행이 물량 관리나 적절한 미시 관리를 하는 대신 금액(금리)을 올리는 건 잘못된 것"이라고 은행들을 질타했다.
그러면서 "은행 자율성 측면에서 개입을 적게 했지만, 앞으로는 부동산 시장 상황 등에 비춰 개입을 더 세게 해야 할 것 같다"고 강력 경고했다.
은행들이 서울 등 수도권 아파트값이 급등하면서 가계대출이 크게 늘자 지난 7월 이후 약 두 달 동안 5차례나 주택담보 대출금리를 올려왔지만, 가계대출 폭증을 막는 데 실패했다. 오히려 주담대 금리가 제2 금융권보다 높아지면서 그렇지 않아도 상반기에 29조8천억원이라는 역대 최대 이자수익을 챙긴 은행들의 곳간만 부풀려주는 게 아니냐는 비판여론이 확산됐다. 이 원장이 이 대목을 짚고 나선 것.
금감원은 은행들 사이에서 '저승사자'로 불린다. 금감원이 작심하고 개입해 탁탁 털면 멀쩡할 은행들이 거의 없다. 특히 5대 시중은행은 예외없이 연말에 현 행장의 임기가 끝나는 까닭에 더욱 그러하다.
은행들은 즉각 이 원장이 언급한 '물량 관리'와 '미시 관리'에 나섰다.
리딩뱅크인 KB국민은행은 26일 내부 회의를 거쳐 오는 29일부터 전방위로 주택담보대출을 통제하기로 했다.
우선 현재 최장 50년(만 34세 이하)인 주택담보대출 대출 기간이 수도권 소재 주택에 대해서는 30년으로 일괄 축소하는 방식으로 대출한도를 5천만원 가량 줄이기로 했다. 아울러 주택을 담보로 빌리는 생활안정자금 대출의 한도도 기존의 무한대에서 물건별 1억원으로 제한하기로 했다.
또한 현재 신규 주택구입 대출 시 1년 이내, 생활안정자금 대출 시 3년 이내로 운영 중인 주택담보대출 거치기간도 당분간 없애기로 했다. 대출을 받으면 다음달부터 이자와 함께 원금도 상환해야 한다는 의미다.
신규 주택담보대출의 모기지보험(MCI, MCG) 적용도 막기로 했다. MCI·MCG는 주택담보대출과 동시에 가입하는 보험으로, 이 보험이 없으면 소액 임차보증금을 뺀 금액만 대출이 가능해 지역별로 ▲ 서울 5천500만원 ▲ 경기도 4천800만원 ▲ 나머지 광역시 2천800만원 ▲ 기타 지역 2천500만원씩 대출 한도가 줄어든다.
통장자동대출(마이너스통장) 한도 역시 현재 1억원∼1억5천만원에서 5천만원으로 대폭 감액된다.
신한은행도 지금까지 허용했던 조건부 전세자금대출을 이날부터 당분간 취급하지 않는 방식으로 갭투자를 차단하기로 했다. 아울러 플러스모기지론(MCI·MCG)도 중단했다.
다른 시중은행들도 이들의 뒤를 이어 곧 유사한 대출억제 조치를 취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일각에선 수도권 아파트값 폭등은 정부의 오락가락 정책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연초 부동산경기 경착륙이 우려되자 정부는 저금리 부동산 정책자금을 대거 방출하고 스트레스 DSR 돌연 연기하는가 하면 그린벨트 등 부동산규제도 완화했다. 최근엔 수도권 아파트값 급등에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동결하자 대통령실은 공개적으로 "아쉽다"고 한은을 비판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 22일 기준금리를 동결하며 "경기가 나빠지면 부동산 경기를 올리고 하는 이런 상황이 반복되는 것이 한국 경제에 좋은 일이냐"고 반문한 뒤, "이런 고리를 한 번 끊어줄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부나 금융, 가계 등 모든 경제주체들이 곱씹어볼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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