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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는 해' 라이스, '지는 해' 럼스펠드

"라이스와 대화하는 건 곧 부시와 대화하는 것"

최근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의 사퇴요구가 다시 힘을 얻으면서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의 입지가 강화되는 모양새다.

라이스장관은 부시대통령의 절대적 신임을 받으며 전 세계에 부시의 외교정책을 설명하느라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는 반면 럼스펠드 장관은 빗발치는 사퇴요구에 언제까지 자리를 지킬 수 있을지 하루하루가 불안한 모습이다.

미 언론들은 라이스 장관을 '실세중의 실세'라며 그의 위상을 부각시키는 사이, 럼스펠드 장관은 부하들로부터도 사퇴 압력을 받는 '지는 실세'로 전락했다.

아버지 부시 전 대통령이 '라이스에게 외교 감각 배우라'며 소개

라이스 장관은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아버지인 부시 전 대통령이 소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버지 부시 전 대통령은 현 부시 대통령이 텍사스 주지사 시절 라이스를 소개시켜주고 그로부터 국제문제에 대한 안목을 배우라고 지시했다.

두 사람의 명암이 극명하게 엇갈리는 시발점은 3년 전 이라크 침공이다. 그러나 이라크에 대한 무력 사용이 논의되던 당시 라이스 국부장관은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으로 그의 백악관내 입지는 지금과 비교해 보면 보잘 것 없었다.

하지만 그는 콜린 파월 국무장관의 후임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전후 이라크 문제 해결을 주도하고 있다. 이외에도 라이스장관은 북핵문제와 이란핵문제등과 관련 미국 외교정책을 전 세계에 알리는 전도사 역할에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2005년 <타임>지, '영향력 있는 인물 1백인에 선정'

일부 미국 언론들은 라이스 국무장관이 부시 대통령의 확고한 신임을 등에 업고 이제 딕 체니 부통령과 럼스펠드 장관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나 미국외교정책을 대변하고 있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부시 대통령의 두터운 신임을 얻고 있는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 ⓒ연합뉴스


지난해 4월 <타임>지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백 명을 선정하면서 여성으로는 유일하게 라이스 국무장관을 포함시키고 "그와 대화하는 것은 부시대통령과 대화하는 것"이라는 미국 관리의 말을 빌려 그의 영향력을 묘사했다.

라이스 '실세중의 실세', 파월 전 국무장관 보다 위상 막강

언론들은 라이스 국무장관과 파월 전 국무장관을 비교해 라이스장관의 위상이 파월 전 장관에 비해 월등히 높다는 평가를 내린다. 부시 1기 행정부 시절 파월 장관은 국민적인 지지를 받았지만 행정부 내에서 영향력은 미미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북핵문제를 포함한 여러 외교문제에서도 럼스펠드 장관과 체니 부통령과 마찰을 빚었다.

반면 라이스 장관은 취임직후 국무부를 장악하고 럼스펠드 장관과 체니 부통령과 같이 군사력을 바탕으로 강경 외교정책을 추구하는 한편 부시대통령과 외교문제를 직접 논의 할 만큼의 신뢰를 받았다.

<워싱턴포스트>의 편집국장을 지낸 밥 우드워드는 라이스 장관을 '실세중의 실세'라며 '공격의 명령'이란 그의 책에서 "라이스는 부시대통령의 눈과 귀를 장악했다"고 표현해 라이스의 위상을 극단적으로 설명했다.

부시 행정부 외교 정책 좌지우지, 대선 후보로도 거론돼

외교전문 기자인 제임스 만은 지난해 <불칸집단(Vulcanus)의 패권형성사>라는 책을 통해 부시 대통령의 외교정책이 라이스 국무장관을 비롯한 6명의 실세로부터 나온다는 주장을 폈다.

'불카누스(Vulcanus)'란 부시 대통령의 외교팀을 지칭하는 말로 미국이 군사력을 앞세워 다른 국가에 압력을 행사하는 외교정책을 묘사한 것이다. 이 불카누스란 말은 1998년 콘돌리자 라이스가 백악관에 입성하면서 외교팀을 자신이 태어난 앨라배마주 철강도시인 버밍햄의 산 이름인 '불칸'의 이름을 붙이면서부터 유래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만큼 현 부시 행정부 내에서 라이스 장관의 독보적 입지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뉴스위크>는 "라이스 장관이 부시 대통령의 대변자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독자적 입지를 확대해 가고 있다"고 전했다. 라이스 장관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일부에선 네오콘(신보수주의자)이 2008년 대선에서 라이스장관의 대통령 만들기에 나서는 것이 아니냐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원조 강경파' 럼스펠드 국방장관

럼스펠드는 부시 1기 행정부에서 국방장관으로 재임하면서 최고 실세라는 평가를 받아 왔다. 그는 한때 '전쟁대통령'으로 불리며 이라크 전을 직접 챙긴 것으로 유명한 부시 행정부 강경파이다. 특히 이라크 침공을 강행 바그다드를 함락시켜 더 강한 부시 대통령의 신뢰를 얻은 것으로 평가 받았다.

부시 행정부에서 군사력을 바탕으로 한 강경노선을 편 사람은 바로 럼스펠드 국방장관과 체니 부통령이다. 이들은 1970년대 미국이 공산권포용정책이라 불리는 데탕트정책을 반대하는 보고서를 작성, 강경노선의 핵심인물로 알려져 왔다.

이라크 사태 대응 미흡, 예비역 장성들조차 사퇴 압박

럼스펠드 국방장관은 그러나 이라크 내전사태의 모든 비판을 받고 끊임없는 사퇴압력에 시달리고 있다. 특히 럼스펠드의 확고한 지지자인 체니 부통령조차 리크게이트 등으로 사퇴설이 나오고 있어 그의 입지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최근 잇단 사퇴 요구로 곤혹을 치루는 도날드 럼스펠드 국방장관. ⓒ연합뉴스


최근 예비역 군 장성들의 잇단 럼스펠드 장관의 사임요구는 럼스펠드뿐만 아니라 부시 대통령까지 당황하게 만들고 있다.

이라크 보안군 훈련을 맡았던 폴 이튼 예비역 소장과 앤서니 지니 예비역 장군은 "럼스펠드의 이라크 전에 대한 대응이 적절치 못하다"며 상퇴를 요구했고 존 바스티스 예비역 소장 또한 국방부 쇄신을 위해 럼스펠드는 사임해야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지금까지 그의 사임을 요구한 장성들은 6명에 이르고 있을 정도로 군 내부의 반발은 만만치 않다. 이미 워싱턴 정가에서는 후임 국방장관의 이름이 공공연하게 거론되고 있는 상황이다.

미 언론들은 16일(현지시간) "럼스펠드 장관이 아브 그라이브 수용소 포로 학대 사건이 제기됐을 당시 이미 수차례 사의를 표명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부시 대통령은 부활절 휴가 중임에도 불구하고 이례적으로 "럼스펠드 장관의 리더십을 신뢰하고 있다"며 장관 교체설을 일축하고 나섰다. <뉴욕타임스>도 "럼스펠드가 외부 압력에 의해 사퇴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16일 보도했다.

굴러온 라이스, 박힌 럼스펠드 빼내나

부시 1기 행정부 때 럼스펠드는 이라크 전과 관련 파월 전 국무장관을 강하게 압박하며 자신의 위상을 강화하기도 했다. 그러나 라이스 장관 취임 후 그의 행정부 내 발언권이 힘을 얻으면서 오히려 럼스펠드 장관과 체니 부통령은 상대적으로 입지가 좁아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당초 럼스펠드는 라이스 장관이 자신과 체니 부통령의 정책에 동조, 강경한 입장을 고수할 것으로 예상했었다. 그러나 국무장관에 취임한 라이스는 예상과 달리 강경책과 온건 정책을 적절하게 사용한다는 평가와 함께 외교력을 인정받고 있어 말 그대로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는 형국이 되고 있다.

이라크 상황악화로 지지도가 추락하고 있는 상황에서 부시대통령이 언제까지 럼스펠드의 국방장관 자리를 보장해 줄지는 예측할 수 없다. 언론들 또한 부시대통령이 앤드류 카드 비서실장을 전격 교체한 것처럼 럼스펠드를 대신할 인물을 찾을지도 모른다는 전망을 하고 있다.

부시 대통령의 지지율이 하락할수록 '뜨는 실세' 라이스장관과 '지는 실세' 럼스펠드 장관의 명암이 극명하게 엇갈릴 것으로 보이는 이유이다.
임지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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