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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내 대화파, 백남순 외무상 사망

<조선중앙통신> “김정일 위원장 조화 보내 애도”

그동안 북-미 외교를 총괄해온 북한내 대표적 대화파이자 대남 전문가인 백남순(77) 외무상이 사망해 지난해말 본격화된 북-미 대화에 미칠 영향이 주목된다.

10년째 외무상 지낸 북한내 대표적 대화파

3일 <AP통신>은 <조선중앙통신>을 인용,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고 백남순 외무상에게 조화를 보내 애도를 표했다"며 통신은 사망원인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공개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백 외무상은 수년전부터 신부전증 등 지병으로 고생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작년 7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참석을 위해 쿠알라룸푸르를 방문한 것이 공식석상에서의 마지막 모습이었으며, 반기문 당시 외교통상부 장관과 여러 차례 회담을 갖고 남북관계를 조율해왔다.

그는 1998년 외무상 임명 이후 국제 외교무대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면서도 상대적으로 대화를 중시하는 비둘기파에 속해 경직된 이미지였던 북한의 대외 이미지를 호전시키는 등 국제외교가에서 호평을 받았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으로부터도 각별한 신임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외무상 임명전까지 백남준이라는 가명을 써왔으며 부인과 슬하에 4남1녀를 두고 있다. 특히 그의 장남인 백낙천의 결혼식에는 김정일 위원장이 참석하는 등 특별한 신임을 받았다.

백 외무상은 군부 등 북한내 강경파가 실력행사를 주장할 때도 미국과의 대화 중요성을 강조해온 대표적 대화파로 알려져, 그의 사망으로 북한의 외교정책에 어떤 변화가 올지가 주목되고 있다.

백남순 누구인가

정통 외교관으로 북한을 대표해 세계 무대에서 활약해온 백남순 외무상은 1929년 3월13일 양강도에서 태어났으며 김일성 종합대학을 졸업했다. 1960년대 노당당 국제부에서 활동하다 1972년 대외문화연락위원회 부위원장, 평화옹호전국민족위원회 상무위원 등을 역임하면서 대남 전문가로 활동했다.

적십자회중앙위 자문위원으로 남북적십자 회담 당시 북측 자문위원으로 7회에 걸쳐 모든 회담에 참석했다. 1974년부터 1976년까지는 폴란드 대사로 일했으며 귀국 후 다시 대남사업에 뛰어들어 적십자회 중앙위 상무위원이자 적십자대표로 우리측이 지원한 수재물자 인수를 위해 판문점을 방문하기도 했다. 89년에는 정무원 참사 자격으로 남북고위급회담 예비회담 북측단장을 맡았고, 1990년 9월 정무원 참사실장으로 남북고위급회담 북측대표로 서울을 방문(1·3·5·7차)했다.

이후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장, 범민련 북측본부 부의장(91.1), 남북고위급회담 정치분과위원회 위원장(92.3) 등을 역임했고 1994년 6월에는 정무원 책임참사로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위한 부총리급 예비접촉을 가졌다. 그는 1998년 9월 외무상에 임명될 때까지 계속 대남부문에서 활동해 왔으며, 1970년대 남북 대화에 자주 모습을 드러낸 이후 합리적인 인사라는 평가를 받았다.
김홍국 기자

댓글이 1 개 있습니다.

  • 3 3
    홍총각

    선상님덕에 오래 살았네
    퍼주기 아니었으면 인민들 손에 벌써 죽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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