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판도라 상자'의 참 교훈 아는가
[뷰스 칼럼] 현대차 압수자료 전면수사-공개해야
검찰이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의 기습적 출국에 단단히 화가 난 모양새다.
채동욱 대검 수사기획관은 정회장 출국 다음날인 3일 “(정회장 출국이) 수사장애를 초래할 경우 제반조치를 강구하겠다”고 현대에 대해 직격탄을 날렸다. 채기획관은 “압수수색에서 비자금 이외의 추가단서가 포착됐다. 비자금을 중심으로 진행돼온 현대차 수사 기조에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도 밝혔다. ‘비자금과 별도로 포착된 단서가 정의선 사장과 연관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그는 “관련 의혹들도 살펴보겠다는 취지”라고 부인하지 않았다.
실제로 검찰은 곧바로 정의선 기아차 사장에 대해 출국금지 조치를 했다. 언론들은 당연히 <정몽구 내주 귀국 안하면 검찰 "전면전"> <전면전 신호탄(?)...정의선 출국금지> 같은 자극적 제목의 기사를 쏟아냈다.
그러나 이같은 사태 진전 과정을 지켜보는 국민들의 시선은 싸늘하다. '전면전'이란 용어 자체가 '힘'과 '힘'의 대결, 즉 권력간 파워게임의 냄새를 물씬 풍기기 때문이다. 검찰 자신이 이번 사건을 조사하면서 '권력의 시각'에서 접근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낳는 대목이다.
정몽구 회장 출국의 근원은 검찰의 미온적 태도
검찰은 지난달 26일 현대-기아차 본사와 글로비스 등의 기습적 압수수색을 통해 자신의 표현을 빌면 "SK비자금 이상의 대어를 낚는 데 성공"했다. 그도 그럴 것이 SK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내부고발자의 제보로, 재벌의 비밀금고와 장부를 압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SK때는 후계상속 과정의 내분이, 이번에는 정몽구 회장의 고압적 인사스타일이 근원이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문제는 대어를 낚는 데 성공한 후 검찰이 보인 미온적 태도다.
지난달 29일 채동욱 대검 수사기획관은 "지금까지 수사가 김재록씨 관련 로비 의혹을 중심으로 이뤄진 `원트랙(One-track)' 수사였다면 이제 현대차 비자금 조성까지 포함한 `투트랙' 수사로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차 비자금 수사를 별도로 비중감있게 하겠다는 메시지였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현대차그룹 전체 비자금을 추적하기에는 엄청난 인력과 장시간이 필요한 만큼 현대차 전체 비자금을 들여다보지는 않겠다"며 "이는 글로비스에만 국한시켜 보겠다는 의미"라고 비자금 수사 범위를 축소했다. '전체'가 아닌 '일부'만 문제 삼겠다는 메시지였다.
검찰의 초기 수사대상에는 당연히 압수수색 과정에 확보된 '편법 상속' 문제도 포함되지 않았다.
검찰의 초기 태도는 분명 "압수한 '판도라 상자' 중 일부만 열겠다"는 식이었다.
검찰의 이런 미온적 태도가 정몽구 회장의 기습적 출국의 근원을 제공했다. '검찰이 글로비스 비자금만 문제 삼는다면 잠시 몸을 피해 있으면 되지 않겠냐'는 판단을 정회장측이 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자존심 센 재벌총수들이 가장 질색하는 일은 검찰에 소환돼 카메라 플래쉬 세례를 받는 것이다.
그러나 정회장 출국이 '도피성 외유'로 비쳐지면서 "재벌에 유달리 약한 검찰이 또 재벌총수의 도피를 방조한 게 아니냐"는 여론과 시민단체의 비난이 쏟아지자, 검찰 기류가 "정회장이 빨리 귀국하지 않으면 편법 상속을 문제 삼을 수도 있다"는 강성 쪽으로 바뀌었다.
아직도 검찰 발언에서 '협상적 냄새'가 물씬 풍겨, 검찰이 실제로 편법 상속을 수사할 지는 여전히 미지수이지만 말이다.
판도라 상자의 진정한 교훈
연전의 X파일 사건 때도 그랬지만, '판도라 상자'는 언제나 검찰의 골치거리였다. 상자 완전공개시 파괴력이 예측을 불허하기 때문이다.
혹자는 말한다. "검찰이 아는 모든 것을 공개하면 현대차가 망할 지도 모른다. 가뜩이나 위태로운 경제가 치명상을 입을 수도 있다"고. 실제로 현대차 일각에서는 "현대차가 치열한 세계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현재 계획중인 투자가 7조원 규모인데, 경영권에 문제가 생기면 현대차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할 것"이라는 주장도 흘러나오고 있다.
그러나 판도라 상자의 진정한 교훈은 "상자를 열 때는 완전히 열어야 한다"는 것이다. 도중에 어정쩡하게 뚜껑을 덮으면 '희망'이라는, 판도라 상자의 진짜 선물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를 접한 <비즈니스위크> <파이낸셜타임스> 등 외신들은 신이 나 비아냥대고 있다. "봐라, 한국재벌이 무슨 반성을 하고 뭐가 바뀌었냐. 껍질만 바뀌었을 뿐 본질은 수십년 전 그대로 아닌가." 이른바 '한국재벌 불변론(不變論)'이다.
X파일 때는 완전공개를 못한 검찰 사정도 이해간다. 불법도청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에 현대차에서 압수한 자료는 법원에서 영장을 발부받아 합법적으로 취득한 증거물이다. 공개 못할 하등의 이유도 없다. 비자금은 곧 한국정치 부패-경제 낙후의 근원이며, 편법 증여는 곧 자본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국민세금 절취 행위이기 때문이다.
지금 재벌 일가에 대한 국민적 실망이 대단히 크다. 실망 차원을 넘어서 절망 단계다.
세간에서는 흔히 재벌 2,3세를 "태어나는 순간에 로또복권에 당첨된 이"들에 비유한다. 이렇게 복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복을 당연시하기보다는, 로또복권이 화가 되는 일이 없도록 자중자애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현대차 사태가 보여주고, 또한 재벌2세들의 3천억대 주가조작 의혹이 보여주듯, 그들은 화를 자초하고 있다.
검찰은 이제 '권력의 시각'이 아닌 '국민의 시각'에서 일련의 재벌 사태를 다뤄야 한다. 그것이 이 나라와 국민을 살리는 길이기 때문이다. 과연 검찰이 '국민의 시각'에서 일로매진할 지 예의주시할 일이다.
채동욱 대검 수사기획관은 정회장 출국 다음날인 3일 “(정회장 출국이) 수사장애를 초래할 경우 제반조치를 강구하겠다”고 현대에 대해 직격탄을 날렸다. 채기획관은 “압수수색에서 비자금 이외의 추가단서가 포착됐다. 비자금을 중심으로 진행돼온 현대차 수사 기조에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도 밝혔다. ‘비자금과 별도로 포착된 단서가 정의선 사장과 연관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그는 “관련 의혹들도 살펴보겠다는 취지”라고 부인하지 않았다.
실제로 검찰은 곧바로 정의선 기아차 사장에 대해 출국금지 조치를 했다. 언론들은 당연히 <정몽구 내주 귀국 안하면 검찰 "전면전"> <전면전 신호탄(?)...정의선 출국금지> 같은 자극적 제목의 기사를 쏟아냈다.
그러나 이같은 사태 진전 과정을 지켜보는 국민들의 시선은 싸늘하다. '전면전'이란 용어 자체가 '힘'과 '힘'의 대결, 즉 권력간 파워게임의 냄새를 물씬 풍기기 때문이다. 검찰 자신이 이번 사건을 조사하면서 '권력의 시각'에서 접근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낳는 대목이다.
정몽구 회장 출국의 근원은 검찰의 미온적 태도
검찰은 지난달 26일 현대-기아차 본사와 글로비스 등의 기습적 압수수색을 통해 자신의 표현을 빌면 "SK비자금 이상의 대어를 낚는 데 성공"했다. 그도 그럴 것이 SK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내부고발자의 제보로, 재벌의 비밀금고와 장부를 압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SK때는 후계상속 과정의 내분이, 이번에는 정몽구 회장의 고압적 인사스타일이 근원이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문제는 대어를 낚는 데 성공한 후 검찰이 보인 미온적 태도다.
지난달 29일 채동욱 대검 수사기획관은 "지금까지 수사가 김재록씨 관련 로비 의혹을 중심으로 이뤄진 `원트랙(One-track)' 수사였다면 이제 현대차 비자금 조성까지 포함한 `투트랙' 수사로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차 비자금 수사를 별도로 비중감있게 하겠다는 메시지였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현대차그룹 전체 비자금을 추적하기에는 엄청난 인력과 장시간이 필요한 만큼 현대차 전체 비자금을 들여다보지는 않겠다"며 "이는 글로비스에만 국한시켜 보겠다는 의미"라고 비자금 수사 범위를 축소했다. '전체'가 아닌 '일부'만 문제 삼겠다는 메시지였다.
검찰의 초기 수사대상에는 당연히 압수수색 과정에 확보된 '편법 상속' 문제도 포함되지 않았다.
검찰의 초기 태도는 분명 "압수한 '판도라 상자' 중 일부만 열겠다"는 식이었다.
검찰의 이런 미온적 태도가 정몽구 회장의 기습적 출국의 근원을 제공했다. '검찰이 글로비스 비자금만 문제 삼는다면 잠시 몸을 피해 있으면 되지 않겠냐'는 판단을 정회장측이 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자존심 센 재벌총수들이 가장 질색하는 일은 검찰에 소환돼 카메라 플래쉬 세례를 받는 것이다.
그러나 정회장 출국이 '도피성 외유'로 비쳐지면서 "재벌에 유달리 약한 검찰이 또 재벌총수의 도피를 방조한 게 아니냐"는 여론과 시민단체의 비난이 쏟아지자, 검찰 기류가 "정회장이 빨리 귀국하지 않으면 편법 상속을 문제 삼을 수도 있다"는 강성 쪽으로 바뀌었다.
아직도 검찰 발언에서 '협상적 냄새'가 물씬 풍겨, 검찰이 실제로 편법 상속을 수사할 지는 여전히 미지수이지만 말이다.
판도라 상자의 진정한 교훈
연전의 X파일 사건 때도 그랬지만, '판도라 상자'는 언제나 검찰의 골치거리였다. 상자 완전공개시 파괴력이 예측을 불허하기 때문이다.
혹자는 말한다. "검찰이 아는 모든 것을 공개하면 현대차가 망할 지도 모른다. 가뜩이나 위태로운 경제가 치명상을 입을 수도 있다"고. 실제로 현대차 일각에서는 "현대차가 치열한 세계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현재 계획중인 투자가 7조원 규모인데, 경영권에 문제가 생기면 현대차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할 것"이라는 주장도 흘러나오고 있다.
그러나 판도라 상자의 진정한 교훈은 "상자를 열 때는 완전히 열어야 한다"는 것이다. 도중에 어정쩡하게 뚜껑을 덮으면 '희망'이라는, 판도라 상자의 진짜 선물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를 접한 <비즈니스위크> <파이낸셜타임스> 등 외신들은 신이 나 비아냥대고 있다. "봐라, 한국재벌이 무슨 반성을 하고 뭐가 바뀌었냐. 껍질만 바뀌었을 뿐 본질은 수십년 전 그대로 아닌가." 이른바 '한국재벌 불변론(不變論)'이다.
X파일 때는 완전공개를 못한 검찰 사정도 이해간다. 불법도청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에 현대차에서 압수한 자료는 법원에서 영장을 발부받아 합법적으로 취득한 증거물이다. 공개 못할 하등의 이유도 없다. 비자금은 곧 한국정치 부패-경제 낙후의 근원이며, 편법 증여는 곧 자본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국민세금 절취 행위이기 때문이다.
지금 재벌 일가에 대한 국민적 실망이 대단히 크다. 실망 차원을 넘어서 절망 단계다.
세간에서는 흔히 재벌 2,3세를 "태어나는 순간에 로또복권에 당첨된 이"들에 비유한다. 이렇게 복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복을 당연시하기보다는, 로또복권이 화가 되는 일이 없도록 자중자애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현대차 사태가 보여주고, 또한 재벌2세들의 3천억대 주가조작 의혹이 보여주듯, 그들은 화를 자초하고 있다.
검찰은 이제 '권력의 시각'이 아닌 '국민의 시각'에서 일련의 재벌 사태를 다뤄야 한다. 그것이 이 나라와 국민을 살리는 길이기 때문이다. 과연 검찰이 '국민의 시각'에서 일로매진할 지 예의주시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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