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대통령, 'YS 지지율 93.6%'의 신화에 도전하길
<뷰스칼럼> YS에겐 '지지율 60%'가 적색 경고등이었다
YS와 그의 참모들은 집권 초기 YS 지지율이 80%대 고공행진을 벌일 때 하나의 가이드라인을 세운 것으로 알려진다. YS 지지율이 '60% 아래'로 떨어지려 할 때마다 '국민적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승부수를 던진다는 것.
실제로 YS는 1993년 초 취임하자마자 정치군인세력인 '하나회'를 가차없이 숙청, 군정 부활의 뿌리를 제거했다. 국민들은 환호했고 YS 지지율은 무려 93.6%까지 수직폭등했다.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전무후무한 지지율이었다. 그리고 지지율이 좀 꺾이자 그해 8월에는 전격적으로 '금융실명제'를 단행했다. 재계 등은 크게 당황했으나 국민들은 기립박수를 보냈다. 금융실명제는 그후 한국 부패를 크게 줄이는 혁명적 결과를 가져왔다.
집권 중반부인 1995년 지지율이 시들해지자, YS는 그해 8.15을 맞아 일제강점기의 상징인 광화문 조선총독부를 전격 해체해 버렸다. YS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곧바로 노태우 비자금을 터트려 그해 11월 16일 노태우 전 대통령을 구속시켰고, 그 여세를 몰아 그해 12월 3일에는 전두환 전 대통령까지 12·12와 5·17 반란 주도 혐의로 감옥에 집어넣었다.
YS는 이처럼 집권후 질풍노도 같은 개혁조치로 중반부까지 높은 지지율을 유지할 수 있었다. 전병민 등 YS의 비선 두뇌들의 '60% 가이드라인'이 시의적절하게 작동한 결과다.
YS는 그후 하루빨리 선진국모임인 OECD에 가입하고 싶어해 원화 강세 정책으로 1인당 국민소득(GNP)을 무리하게 1만달러로 끌어올렸다가 1997년 환란을 자초하는 치명적 자충수로 몰락했지만, 그 이전까지만 해도 정치적으로 완벽한 통치술을 구사하며 그 결과 문민 민주화시대를 정착시키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
이는 "머리는 빌려쓰면 된다"던 YS의 빼어난 용인술에 힘입는 바 크나, 무엇보다 그가 '여론'을 중시하는 철저한 대중정치인 출신이기에 가능했다. 그는 당시엔 요즘같은 인사청문회 제도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각료 후보 등에 대해 언론이 검증을 통해 "무자격"이라는 진단을 내리면 가차없이 낙마시켰다.
여론이라는 역린을 건드렸다간 아무리 무소불위의 대통령일지라도 살아남을 수 없다는 동물적 판단 때문이었다. "정치에 관한 한 나를 따라올 사람은 없다"던 YS조차 이처럼 국민의 눈을 무서워했다.
이처럼 한 시대를 풍미했던 YS가 25일 박근혜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했다. 그의 옆자리에는 자신이 감옥에 보낸 전두환 전 대통령이 나란히 자리를 잡았다. 당연히 두사람 모두의 얼굴엔 불편한 심기가 역력했다.
박근혜 대통령도 YS에 관한 한, 그다지 좋은 기억은 없을듯 싶다. 5년전 이명박 후보와 경선때 YS는 이 후보 편을 들었고, 지난 대선때도 막판까지 온갖 험구를 쏟아냈던 인물이 YS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 대통령과 그의 참모들은 누구보다 YS를 벤치마킹해야 한다. 지금 국민이 무엇을 절실히 원하는가를 동물적으로 읽고 취임초 질풍노도처럼 몰아붙여야 한다는 의미다.
인수위 시절과 취임초 박 대통령이 보여준 행보는 그런 면에서 기대를 크게 밑돈다. 인사가 그러했고 특히 취임 직전 윤창준 인수위 대변인을 청와대 대변인에 임명한 대목에선 일종의 '오기'마저 읽힌다.
인수위가 '경제민주화'라는 단어 자체를 아예 사멸시킨 대목도 거의 정치적 자살에 가까운 행위다. 박 대통령이 지난 총선과 대선때 얼마나 '경제민주화'를 외쳤던가를 국민들은 두 눈으로 목격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그나마 "경제민주화"를 수차례 언급하며 약속을 지키겠다고 했으니 일단 지켜볼 일이나, 주변에서 '경제민주화'를 삭제했던 참모들을 멀리하지 않는 한 국민적 의구심은 수그러들지 않을 것이다.
측근들의 전언에 따르면, "나보다 정치를 잘 아는 사람은 없다"고 할 정도로 박 당선인의 자부심도 대단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탄핵역풍 때부터 위기의 한나라당과 새누리당을 한두번 구한 게 아니다. '선거의 여왕'이라 불릴 정도로 모든 선거에 연전연승했다. 단 한차례 진 적은 있다. 1997년 이명박 후보와의 대선후보 경선때다. 박 대통령은 당시 깨끗하게 선거 결과에 승복했지만, 그의 측근들은 한결같이 "승리를 도둑 맞았다"고 말한다. 상대방의 반칙 때문에 졌을뿐, 사실상 이긴 선거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선거와 통치는 다르다. 선거의 귀재와 통치의 귀재는 다르다. YS는 평생 DJ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했다. 대통령도 3당 야합이라는 편법으로 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집권후 중반부까지는 통치의 귀재라 불릴만 했다. 박 대통령이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지지율이 급락한 박 대통령이 곧바로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국민들이 지난 MB 5년간 무엇때문에 울분을 토로하면서 시간이 빨리 가기만을 기다렸는가를 알면 답은 금방 얻을 수 있다. 국민들이 또 위정자의 어떤 행태에 신물을 느꼈는지만 알아도 답은 나온다.
사실상 박 대통령의 공약에는 이같은 내용이 빼곡히 담겨있다. 문제는 의지다. 단호하게 집행하면 성공할 수 있다. 하지만 대선후 지난 두달여 동안 보여온 모습이 리바이벌된다면 게임 끝이다.
박 대통령 측근 일각에선 MB 초기의 레임덕이 재연되지 않을까, 지난 대선때 표를 주지 않은 반대진영에 민감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얘기가 들린다. '법치 운운'이나 법조계 인사 중용도 같은 맥락에서 나온 것이라 한다. 하지만 이렇게 48% 국민을 적대시했다간 48%의 영원한 지지를 얻지 못하는 건 물론이고, 51.6%마저 실망하게 할 뿐이다. 이미 지지층 이탈 조짐마저 읽히고 있다.
박 대통령의 목표는 MB와 같은 초기 레임덕 방지가 돼선 안된다. YS가 취임 첫해 기록했던 '지지율 93.6%'가 돼야 한다. 국민은 언제든 '93.6%의 지지'를 보낼 준비가 돼 있다는 사실을 새 대통령이 깨닫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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