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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비정규직, “이제 더 흘릴 눈물도 없다”

긴급협의체 구성 등 정부의 적극 대처 시급

“한국이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발전했다는데 여성노동자의 노동환경은 70~80년대 수준에 머물고 있다. 단지 노동조합을 만들었고 이를 지키겠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두들겨 맞고 성추행 당하고 끌려가고 감금되고 짓밟히는 이 현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김지희 민주노총 부위원장)

과장된 주장일까? 아니다. 불행하게도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현재 겪고있는 인권유린 실태다.

끌려가고...얻어맞고...내쫓기는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

병원측의 일방적인 단체협약 중단 통보에 항의해 3개월 넘게 병원로비에서 파업을 벌이고 있는 부천 세종병원 노조. 대다수가 여성 조합원들로 구성된 노조는 병원측에서 고용한 용역깡패들에 의해 몇 차례에 걸쳐 폭행, 성희롱을 당했다. 용역깡패들은 소화기와 물대포를 번갈아 쏘았고 심지어 염화칼슘을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뿌리기도 했다.

20년 넘게 르네상스호텔 청소부로 근무하다 쫓겨난 한 여성노동자가 KTX여승무원들의 노동탄압 증언을 듣고 "딸이 겪는 설움같다"며 채 말을 잇지 못했다 ⓒ뷰스앤뉴스


1988년 서울 르네상스호텔 개장때부터 20년간 호텔 객실 청소부(일명 룸메이드)로 일해왔던 여성 노동자들은 지난 2001년 사측의 경영악화를 이유로 전원 구조조정 대상에 올랐다. 이후 사측은 청소업무를 아웃소싱 형태로 전환해 청소부들을 정규직에서 비정규직 파견노동자로 전환시켰다. 이에 항의해 여성 노동자들은 노조를 결성, 2002년 6월 전국여성노동조합 서울지부에 가입했다.

그러나 사측은 끊임없이 노조 탈퇴를 회유하는 등 노조 탄압에 나섰다. 결국 노동부는 지난 2004년 5월, 르네상스 호텔에 대해 불법파견 사업장 판정을 내리고, 사측에 직접고용 시정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사측은 이를 거부하고 2005년 12월 노조에 가입한 청소용역원들을 계약만료 해고 조치했다. 이에 대해 13명의 청소용역 여성 노동자들은 올 1월부터 청와대, 호텔 앞 등에서 1인시위를 이어나가고 있다. 대부분이 50대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다.

이밖에도 KTX 여성 비정규직노동자, 노동자성 자체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특수고용자로 분류되는 방문학습지 종사자들, 전북 익산에 위치한 익산CC(성원개발주식회사)의 골프장 경기보조원, 서울 구로공단 내 기륭전자 조합원 등 여성 비정규직들의 처참한 현실은 채 열거하기에도 모자라다.

이들이 최근 들어 더욱 거센 노동탄압을 받는 배경에는 비정규직이라는 단순한 이유이외에 ‘여성’이라는 약점이 존재한다. 노조를 설립해도 조직화가 어렵고 또 용역깡패들에 맞서기는 더더욱 어려운 실정이다.

특히 KTX여승무원들의 경우, 용역깡패가 아닌 공권력이 동원돼 이들의 목소리를 봉쇄하고있다. 사태가 이렇다 보니 노동현장에서는 “일반기업은 용역깡패가 노조를 탄압하고 공기업은 공권력이 노조를 때려 부순다”는 말이 거의 등식화 되어있는 지경에 이르렀다.

지난 27일 이철 한국철도공사 사장과의 면담을 요구하다 전경에 머리를 밟혀 뇌진탕 증세를 보인 강모 KTX여승무원이 끝내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뷰스앤뉴스


“우리보다 더한 사람들 많겠지만 너무 힘들어요”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 및 각 분규사업장 소속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31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여성노동자 노동탄압 및 인권유린 해결 촉구기자회견>을 갖고 정부의 적극적인 사태해결과 대처를 촉구했다.

이 날 기자회견에는 ▲세종병원 여성노동자 ▲KTX여승무원 ▲기륭전자 여성노동자 ▲르네상스호텔 여성노동자 ▲익산CC 여성노동자 등 최근 논란이 되고있는 분규사업장 소속 노동자들이 참가해 그들이 직면하고 있는 현실을 고발했다.

특히 지난 27일 이철 한국철도공사 사장과 면담을 요구하다 전의경에게 밟혀 뇌진탕 증세를 보인 KTX여승무원 강모씨는 “여기 계신 여성노동자들 중에 우리보다 더 힘들고 탄압받는 분들이 많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있지만... 너무 억울하고 너무 분해서 말을 안할 수 없어 나왔다”고 흐느꼈다.

이를 듣고있던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연신 눈물을 훔쳤다. 르네상스호텔에서 지난 20년 넘게 청소일을 하다 쫓겨난 50대의 한 여성노동자 역시 “딸 같은 애가 저렇게 눈물을 보이니 내가 더 이을 말이 없다”면서 안쓰러운 마음에 눈물을 닦았다.

여성문제, 여성가족부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어...

한편 이 날 기자회견 직후 박인숙 민주노동당 최고위원과 김지희 민주노총 부위원장을 비롯한 여성노동자 대표단은 장하진 여성가족부 장관과 면담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장 장관은 “현재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 노동, 인권의 문제이기에 부처간 업무협의가 되지 않는 상황에 대해서는 독자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며 노동부 장관이 아닌 여성가족부 수장으로서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다만 장 장관은 “성폭력, 성추행과 관련한 사항은 여성가족부 소관이라 대책을 준비할 것”이라며 “조만간 공식적으로 답변을 준비해 처리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박 최고위원은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사안의 심각성을 고려하여 긴급협의체를 구성하거나, 직권조사에 나설 것"을 요구하는 등 여성가족부의 적극적인 대처를 요구했다. 장 장관은 “경찰청장, 노동부장관 등에게 사안의 심각함을 알리고 직권조사를 검토해서 알려주겠다” 고 답했다.

한편 김향수 민노당 여성위원회 부장은 "다음달 4일 각종 인권탄압과 노동탄압에 시달리는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증언고발대회를 갖겠다"며 여론의 관심을 촉구했다.
김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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