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재희 선생 타계. "시대 상식에 따라 행동했다"
언론인 출신 보수 원로. '합리적 보수'로 청빈한 삶
16일 유족에 따르면, 고인은 이날 오전 8시10분께 서울 한 병원에서 노환으로 타계했다.
충북 청주에서 태어난 고인은 청주고, 서울대 법대 졸업후 1958년 한국일보 기자로 언론계에 투신한 뒤 민국일보를 거쳐 1962∼1972년 조선일보 기자와 정치부장, 편집부국장, 1972년 서울신문 편집국장, 1977년 서울신문 주필을 지냈다.
1979년 민주공화당 후보로 서울 강서구에서 제10대 국회의원이 된 것을 시작으로 정계에 입문, 13대까지 강서구에서 4선을 역임했다. 1980년 민주정의당 창당에 참여, 민정당 정책위의장을 두번 역임했고, 1987년 단임제 개헌때도 주도적 역할을 했다. 노태우 정부 인수위(민주화합추진위원회) 시절에는 ‘폭동’으로 불렸던 ‘1980년 광주항쟁’을 ‘민주화운동’으로 규정하기도 했다.
김영삼 정권 시절에는 1993∼1994년 초대 노동부 장관을 지냈고, 재임 기간 그는 김영삼 대통령에게 현대중공업의 파업 현장에 공권력을 투입하지 말라고 건의하기도 했다.
정계 은퇴후에는 자가용은 물론 택시 이용도 마다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청빈한 삶을 보냈다.
장서가와 독서가로 유명했던 고인은 <스튜던트 파우어><모래 위에 쓰는 글><양파와 연꽃:체제내 리버럴의 기록><일하는 사람들과 정책><언론 정치 풍속사><남재희가 만난 통 큰 사람들><아주 사적인 정치 비망록>, <진보 열전><시대의 조정자><내가 뭣을 안다고> 등 자신의 체험에 기초한 다수의 저작을 남겼다.
연초에 펴낸 유작 <시대의 조정자>에서 고인은 “당시의 시대 상식에 맞추어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에 따라 행동했다”고 자신의 삶을 회상했다.
빈소는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3호실, 발인 19일 오전 5시20분, 장지 청주시 미원 선영. ☎ 02-2227-7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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