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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과 미국, 가성협상(假性協商) 벌일 수도"

<기고> 정세현 전 통일장관 “6자회담 개최전 남북관계 복원 시급”

지난 7월5일 미사일 발사, 10월9일 핵실험으로 극한위기로 치닫던 북핵문제가 지난달 31일 북-중-미 3자간 베이징 회동에서 북한의 6자회담 전격 복귀로 극적 돌파구를 찾았다. 그러나 빠르면 이달말, 늦어도 연내 열릴 예정인 6자회담의 전망은 여전히 안개속이다.

'국민의 정부'의 마지막, 그리고 참여정부의 초대 통일부장관을 지낸 정세현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대표상임의장이 7일 본지에 ‘북핵 6자회담 전망과 우리의 대처 방향’이라는 제목의 장문의 기고문을 보내왔다.

정 상임의장은 기고문에서 6자회담에 임하는 북한의 자세와 관련, “북한은 핵보유국으로서 6자회담의 운영속도를 조절하는 한편 정치적 체제안정도가 높아지고 있다고 판단해 동북아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겠다며 6자회담에 임할 것”으로 전망했다. 또한 미국에 대해선 “미국은 비핵화를 요구하는 한편 북한 핵무기의 해외이전과 확산 저지, 유사시 장기간의 봉쇄와 압박을 통한 북한정권 교체를 기도하는 북핵관리를 목표로 할 것"이라며 "따라서 북-미관계는 다시 악순환의 고리에 빠져들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정 상임의장은 “북-미간에 장외 샅바 싸움이 지루하게 이어질 가능성이 크고 미국과 북한 모두 다시 강경해지고, 특정국가나 세력의 비협조도 예견된다”며 “이에 따라 우리는 입지를 확보하고 영향력을 키우기 위해 6자회담이 시작되기 전에 남북관계를 복원해야 한다”고 대북지원 재개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북핵 해법과 관련, "북핵문제를 자칫 국내 정치일정 때문에 정쟁 이슈나 정치공세만 할 경우 부메랑이 될 수도 있다”며 “남북관계 복원과 한미공조 강화에 나서는 한편 9.19공동성명의 규정과 병행해 향후 로드맵을 짜나가야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다음은 정 상임의장의 기고문 전문. <편집자 주>


정세현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대표상임의장 ⓒ 김홍국 기자


'북핵 6자회담 전망과 우리의 대처 방향'

북핵실험 이후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준비가 속도를 내면서 한반도 긴장이 고조되어가는 와중에 10월 31일 베이징에서 북 미 중 3자회동이 비공개리에 전격적으로 이루어졌고, 거기에서 북한의 6자회담 복귀가 합의되었다.

북한의 6자회담 복귀가 확인됨으로써 북핵문제를 둘러싼 위기감은 다소 완화되었지만, 회동 이후 미국과 북한이 각각 강조하는 바는 다르다. 미국은 “6자회담에 복귀하더라도 핵폐기가 진전되지 않으면 대북제재는 계속될 것이다.”, “핵보유국으로는 인정하지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한편 북한은 “금융제재 해제문제를 논의ㆍ해결할 것이라는 전제하에 회담에 나가기로 했다.”, “핵보유 이전과 이후는 상황이 다르다.”고 함으로써 금융제재 해제를 기정사실화 하면서 6자회담의 핵군축회담화 의도를 드러냈다.

이렇게 볼 때 북핵상황이 일시 진정되기는 했지만, 6자회담은 재개되더라도 새로운 씨름의 시작이 될 것 같다. 앞으로의 상황을 전망하고 해법을 모색하기 위해서 북한의 6자회담 복귀 결정 배경을 살펴보고, 그 토대위에서 미국과 북한이 진성협상(眞性協商)을 하려는 것인지 가성협상(假性協商)을 하려는 것인지, 6자회담에서 북핵문제의 해법이 합의될 것인지, 아니면 시간을 더 기다려야 하는 것인지도 가늠해보고자 한다.

“北, 상황 반전 계기 활용 및 中 권고 수용 등 공수양면 결정”

북한의 6자회담 복귀문제는 중국의 중재(仲裁)로 북한이 먼저 복귀 가능성을 시사하고 미국이 이에 호응함으로써 진전을 보게 된 것 같다. 그러면 북한은 왜 먼저 이 시점에 6자회담 복귀 가능성을 시사했는가? 1년 가까이 선금융제재해제(先金融制裁解除)를 6자회담 복귀 조건으로 내걸고 미사일 시험발사, 핵실험 등 벼랑끝전술을 쓰면서 국제사회의 비난과 대북제재를 자초하던 북한이 6자회담 복귀를 결정한 배경은 무엇인가?

북한의 6자회담 복귀 결정에는 공수(攻守)의 양면이 다 있는 것 같다. 첫째, 그동안 국제적 고립과 제재 심화의 위기상황에 몰리기는 했지만, 시간을 활용하여 핵실험을 마침으로써 6자회담에 복귀하더라도 대가를 크게 받아 내면서 협상할 수 있게 되었다고 판단한 것 같다. 아울러 참가국들이 핵실험 성공을 확인한 만큼, 핵보유국 인정 여부와는 관계없이 사실상의 핵보유국으로서 6자회담의 운영속도도 조절할 수 있게 되었다고 보고, 부시 정부가 국내정치적 필요에 의해서 회담재개를 필요로 하는 이 시점에 복귀를 통보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계산했을 것으로 보인다.

둘째, 핵실험 이후 북한에서는 연일 축하 군중집회가 열리면서 김정일 위원장이 ‘통 큰 지도자’로 부각되고 있는바, 경제난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측면에서 체제안정도는 높아졌다고 판단한 것 같다. 반면 유엔안보리 결의안에 입각한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점점 현실화되는 동시에 미국 주도의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도 강화되어 가는 상황이지만, 제2의 핵실험으로 미국을 압박하는 것보다 상황반전의 계기를 잡는 것이 유리하다고 계산했을 것으로 보인다. 최악의 경우 부시 정부가 끝날 때까지 ‘제2의 고난의 행군’을 할 수도 있지만, 중간선거 이후 미국의 국내정치상황에 따라 북한에 불리하지 않는 상황이 전개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었을 수도 있다.

셋째, 대북 최대 경제지원국인 중국의 복귀 권고도 부담이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금년도 수재 피해와 식량부족 상황을 감안, 남한의 대북지원을 재개시킬 수 있는 모멘텀을 조성할 필요도 느꼈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 핵보유국 행세하며 6자회담 주도권 쥐려할 것”

북핵실험 성공을 유관국들이 확인해 준만큼 6자회담에 복귀한 후 북한의 태도는 이전과 달라질 것이다. 한ㆍ미ㆍ일은 물론 중ㆍ러마저도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겠다고 하고 있지만, 공식적인 인정 여부와 관계없이 북한은 사실상의 핵보유국으로 행세하면서 6자회담 의제설정과 운영에 있어 주도권을 잡으려 할 것이다.

북한은 “핵보유 이전과 이후는 상황이 다르다.”고 하면서 6자회담이 핵군축회담으로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하였다. 실제로는 이미 핵실험 이전부터 이러한 의도를 드러내고 있었다. 작년 2월 10일 핵보유를 선언한 이후 6자회담에서 미ㆍ북핵 군축협상을 해야 주장한 바 있고, 지난 10월 3일 외교부대변인 담화에서는 핵실험을 예고하면서 한반도 주변지역의 비핵화를 강조했었다. 북한의 비핵화가 아닌 한반도 주변지역의 비핵화를 강조하는 것은 1차적으로 한반도 해역에 출몰하는 미7함대의 핵무기를 의중에 둔 것이라고 할 수 있지만, 필요시 북한이 협상력을 높이기 위하여 중ㆍ러의 핵무기까지 걸고 들어 들어갈 가능성도 있다.

핵실험을 계기로 6자회담을 보는 북한의 관점이 과거와는 크게 달라질 것이다. 북한은 우선 6자회담의 구조를 실질적으로 바꾸고자할 가능성이 있다. 이제까지는 국제 핵질서를 위반한 피의자로서 심판받는 지위에 있었으나, 이제는 동등한 핵보유국 자격으로 새로운 동북아 질서를 주도적으로 형성해나간다는 자세로 6자회담에 임할 것이다. 이제 북한에게 핵폐기는 부차적인 문제다.

이러한 정세관은 북한이 과거부터 지녀왔지만, 이제부터는 현실에서 실현하고자 할 것이다. 11월 4일 북한이 일본의 6자회담 참가를 반대하는 담화를 낸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의미를 찾아볼 수 있다. 11월 14일부터 열릴 예정인 6자 비공식 예비회담에서 북한이 이러한 관점을 어느 수준에서 표출할 것인지 예견하기는 어렵지만, 북한이 미국을 비롯한 유관국들의 입장을 순순히 받아들일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점에서 앞으로 북핵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 가장 어려운 핵심 이슈가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北 고집 부리면 봉쇄와 압박 통한 北정권 교체 추진할 것"

북한이 핵실험을 계기로 동북아 국제질서 구조까지 재편하려는 구상을 드러낸다면, 이에 대한 미국의 반응은 냉담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은 여전히 선(先)핵폐기, 철저히 검증 가능하고 돌이킬 수 없는 방법(CVID) 등 미국이 납득할 수 있는 방법으로 비핵화를 요구할 것이다. 유엔안보리결의 1718호도 이러한 입장에 서있다. 미국은 북한이 원하는 방법에 의한 비핵화는 용납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견지할 것이다. 잘못된 행동에 대한 보상은 미국의 대북정책 원칙에 반(反)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이 북한식 비핵화를 고집할 경우, 미국은 북핵문제 해결 대신 북핵관리(北核管理)를 목표로 삼을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북한 핵무기의 해외이전과 확산 저지, 그리고 장기간의 봉쇄와 압박을 통한 북한정권 교체를 기도할 것이다. 6자회담이 1년여 만에 재개되기는 하지만, 그 전도가 매우 험난할 것으로 보이는 이유가 이런 데 있다.

미국과 북한 사이의 근본입장 차이뿐만 아니라 6자회담 재개의 초입단계에서 당면할 현안도 매우 어려운 과정을 거칠 가능성이 농후하다.

북한은 금융제재해제를 선결과제로 요구하겠지만, 부시 정부의 대북정책 성향과 지금까지의 조치들로 미루어 볼 때, 역시 쉽게 풀릴 것 같지는 않다. 라이스 장관이 이미 “북핵폐기가 진전될 때까지는 대북제재를 계속하겠다.”고 공언했고, 6자 비공식 예비회담을 앞두고 국무부의 강ㆍ온 성향의 두 국무부 차관들을 동시에 한ㆍ중ㆍ일에 파견하는가 하면 “채찍과 당근도 함께 가지고 있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미국으로서는 금융제재, 유엔차원의 제재, PSI 카드를 상당기간 6자회담 운영의 레버리지로 쓰려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미국이 성의를 보인다는 차원에서 방코델타아시아(BDA) 동결계좌의 일부만 해제 줄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금융제재문제의 논의ㆍ해결을 전제로’ 6자회담에 나가기로 했다는 북한의 입장과는 처음부터 마찰음을 낼 수밖에 없다. 이 경우 북한이 2차 핵실험 카드를 사용할 가능성이 있고, 그 경우 한반도 정세는 다시 악순환의 고리에 빠져들 것이다.

미국과 북한 사이에는 근본적으로 이러한 입장차이가 있는 데다가 서로가 정치적 필요에 의해서 국면전환용으로 이 시점에 6자회담 재개에 합의한 것이라면, 6자회담의 전망은 더더욱 어두울 수밖에 없다. 6자회담이 문제 해결 쪽으로 속도를 내기 위해서는 미국과 북한 사이에 진성협상(眞性協商)이 이루어져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신뢰라도 형성되어야 하는데, 상호불신이 워낙 깊기 때문에 한국과 중국이 거중조정을 하고 러시아가 북한을 설득하더라도 그렇게 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3가지 북핵 해법

북핵문제 해결 유형은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북한의 무조건 항복에 의한 해결, 철저한 상호주의적 교환 방식에 의한 해결, 미국이 아량과 포용으로 북한 요구를 수용해 주는 방식에 의한 해결을 생각할 수 있다. 김정일 체제하에서 첫째 방식은 난망(難望)이다. 부시 정부 하에서 셋째 방식은 난망이다. 결국 철저한 상호주의적 교환 방식밖에 없는데, 부시 정부가 ‘궁극적으로 김정일 정권은 사라져야 한다.’는 입장을 바꾸지 않는다면 상호주의적 교환방식에 의한 북핵문제의 해결도 난망이 된다.

고농축우라늄(HEU) 문제 때문에 시작된 6자회담에서 미국은 2년 여 동안 북한에게 CVID방식의 선핵폐기(先核廢棄)를 요구했고 북한은 선체제보장(先體制保障)을 요구하면서 회담이 속도를 내지 못했다. 그러다가 북한이 핵보유를 선언한 이후 열린 4차회담에서 상호주의적 교환방식에 의한 북핵문제 해결 로드맵인 9.19공동성명이 채택되는 시점에서는 HEU도 CVID도 거론되지 않았다. 대신 국내법적 문제라는 명분으로 위폐문제와 돈세탁문제가 회담장 밖에서 나왔다. 그리고 이후 미국 국내법 차원의 대북제재가 강화되면서 북한의 반발과 벼랑끝전술이 계속되었다. 이 시점에서 미국은 북핵폐기(北核廢棄)가 아니라 북핵관리(北核管理)를 선택 가능한 대안으로 검토하기 시작한 것 같다.

북한이 핵보유국이라고 주장은 하지만 심각한 경제난을 해결하고 체제안정도를 높이기 위해서 미국의 요구를 순순히 이행해 나간다면 한반도 정세는 안정되어 나갈 것이다. 또한 중간선거 결과로 미 국내정치상황이 바뀌어 부시 정부의 대북정책이 유연해진다면 한반도 정세에 소강(小康)이라도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과연 우리에게 이런 경우, 두 가지 중에 한 가지가 일어나거나 두 가지가 다 일어나는 행운이 올 것인가?

"일부의 한국정부 왕따론은 선동일뿐"

북한의 6자회담 복귀를 이끌어 낸 것은 부시 대통령의 말대로 중국이다. 우리 내부에서 한국은 왕따 당했느니, 한국이 북한 편을 들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미국이 일부러 배제했느니 하는 주장들이 나왔지만 그러한 주장이나 견해는 북핵문제의 연원과 본질을 모르거나 일부러 외면한 상황에서 나오는 선동일 뿐이다. 미국의 일간지 <워싱턴포스트(WP)> 10월 15일자도 “북핵문제는 미ㆍ북간에 깊은 뿌리를 가지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지 않는가?

중국은 6자회담 개최국이고 50년 이상의 지원을 통해서 정치적으로 대북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나라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도 북한의 혈맹인 중국에게 대북영향력 행사를 요구하는 것이다. 그리고 중국으로서도 미국의 요구를 충족시켜줌으로써 미ㆍ중관계에서 자국의 국가이익을 챙겨야 하는 부분들이 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나서야만 할 형편이다. 북핵실험 후 남북경협과 대북지원을 중단하라고 하면서 동시에 6자회담 재개 합의과정에서 우리 정부가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공격하는 것은 자가당착(自家撞着)이다.

중국은 앞으로도 북ㆍ미간 통로를 만들고 6자회담을 진전시키기 위해서 노력할 것이다. 중국의 대북영향력은 기본적으로 북한에 대한 지원을 끊지 않으면서 회유와 설득(최악의 경우 지원 중단이나 감소를 예고하는 정도)하는 데서 나온다고 할 수 있다. 중국은 자국의 더 큰 국가이익을 위해서 북한을 끌어안을 수밖에 없다. 예컨대 2008년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르기 위해서도 미ㆍ북관계를 안정시켜야 하기 때문에, 동북아 정세를 안정시키기 위해서 노력할 것이다.

이에 비해 일본의 입장은 다소 어정쩡한 측면이 없지 않다. 북한 때리기 바람을 타고 총리에 취임한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미 북간에 갑자기 6자회담 복귀가 합의되자 다소 불편해진 것 같다. 북한의 6자회담 복귀를 환영한다면서도 일본 차원의 제재는 계속하겠다는 등 일본의 목소리가 가장 크다. 북한이 미사일 시험발사를 했을 때 아베 총리(당시는 관방장관)가 “북한에 고맙다고 해야 한다.”했고, 북핵실험 직후 유엔결의와는 별개로 대북제재조치를 곧 시작했고, “6자회담 복귀에 전제 조건이 있다면 6자회담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한 것으로 보아 앞으로 일본의 행보를 예의주시하고 대책을 세워야 할 것 같다. 납치 문제를 다시 키워 나가면서 북한의 반발을 유도하여 분위기 반전을 시도할 가능성도 있다.

러시아는 북핵실험 후 제일 먼저 핵실험 성공을 확인했다. 한ㆍ미ㆍ일이 북핵실험 성공여부에 대해 신중하게 판단하려 하는 마당에 북핵실험 성공을 기정사실화함으로서 북핵문제 국제정치에서 지분을 찾으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가 하면 러시아는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은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이것은 미국을 의식한 외교조치라고 본다. 또한 러시아로서도 6자회담이 핵군축회담으로 되는 것이 바람직하지는 않을 것이다.

“6자회담 시작전 남북관계 복원해야”

이렇게 볼 때 6자회담이 정식으로 열리기 전에 미 북 간에 장외 샅바싸움이 지루하게 이어질 가능성이 크고, 특정 국가나 세력들의 비협조도 예견된다. 중간선거 직전에 유연했던 부시 정부가 다시 강경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미국도 북한도 진성협상(眞性協商)보다 가성협상(假性協商)에 쏠릴 가능성도 있다. 가까운 시일 내에 해결될 가능성보다는 국제정치 환경이 바뀔 때까지 상황악화 방지 정도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문제해결을 위해서, 그리고 최악의 경우 상황악화 방지 차원에서라도, 우리의 입지를 확보하고 영향력을 키워나가기 위해서는 6자회담이 시작되기 전에 남북관계를 복원하는 것이 필요하다. 제재와 압박만으로 북핵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설득과 회유도 절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번에 중국이 의미 있는 역할을 한 것은 설득과 회유의 힘에 의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대북지원 재개를 통한 남북대화 채널 복원에 대해서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이번 북한의 6자회담 복귀를 제재와 압박의 결과로 규정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실체적 진실이 아니다. 북한체제의 특성상 채찍만으로는 그러한 결과가 나올 수 없다. 미국이 여러 가지를 고려하여 결국 유연한 자세를 보였기 때문에 국면이 전환된 것이다. 백보를 양보해서 채찍이 효과를 냈다고 할지라도 당근이 없었으면 북한은 6자회담에 복귀하지 않았을 것이다.

일부에서는 우리도 북한에 대하여 당근과 채찍을 같이 써야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우리의 채찍은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미국은 채찍이 길고 당근이 짧을 수도 있지만, 우리는 미국처럼 할 수 없는 것이 남북관계의 특수성이라는 것을 외면하면 적실성이 있는 우리의 해법은 나오지 않는다. 대북정책과 관련하여 한ㆍ미간 불협화를 우려하고 비판하는 경향도 있지만, 양국이 처한 상황을 감안하여 북한을 다루는 방법과 수단 차원에서 역할을 분담하는 것이 합리적이고 현실적일 수 있다.

북핵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주변국들이 우리보다 더 적극적으로 나설 가능성은 희박하다. 북핵이 자신들을 크게 위협한다고 생각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정쩡한 상태로 관리하는 방안을 모색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우리 입장은 전혀 달라야 한다.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은 북핵문제에 관한 한 어떤 합의보다도 강력한 규제 내용을 담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북한에 대해서 강력한 규탄과 비난을 할 수 있는 자격과 권한과 책임을 갖고 있다. 정부와 여당은 6자회담장에서는 물론이고 우리의 북핵 불용 입장이 남북합의에 기초한 것임을 공개ㆍ비공개적으로 북한에 각인시키는 일부터 해야 할 것이다. 마치 우리 정부가 북한의 핵실험과 핵보유를 인정하는 것같이 오해받는 일은 절대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 연후에 북핵실험 이후 6자회담 상황과 한반도 정세가 이전보다 어떤 점에서는 더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전후 사정을 국민들에게 잘 이해시켜 나가야 한다. 특히 북핵문제해결 과정에서 우리의 역할을 되찾고 높여 나가기 위해서 남북관계 복원 모멘텀 조성 차원의 대북지원을 재개하고자 한다면, 여당은 물론 야당에게도 진지하고 성실하게 그 취지와 전략방향을 설명하면서 초당적 협조를 이끌어 내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북핵문제, 정쟁 이슈 삼거나 정치공세 나설 경우 부메랑 될 수도”

북핵실험 이후 상황은 크게 바뀌었으며, 앞으로도 여러 가지 정세 변화 가능성이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큰 위기가 닥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야당도 정파적 입장을 떠나 국민을 존중하고 국가의 장래를 걱정하는 차원에서 북핵문제의 연원과 본질에 대한 심층 연구와 북핵문제를 둘러싼 국제정치에 대한 냉철한 분석을 토대로 문제 해결을 위해 국민적ㆍ국가적 지혜를 모아 나가야 할 것이다.

해결에 시간이 많이 걸릴 수밖에 없고 변수가 많은 북핵문제를 목전의 국내정치 일정 때문에 정쟁의 이슈로 삼거나 정치공세만 하는 경우 상황에 따라 부메랑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북핵문제 해결과 남북관계 개선을 목표로 한다는 전제하에, 중장기적 관점에서 전략적 이해득실을 저울질해보면 인도적 차원의 대북지원 중단 지속보다는 재개가 바람직하다. 우선 미ㆍ북간의 접점을 만들고, 타협 여지를 키우는 일을 중국에게만 맡길 수 없기 때문이다. 행여 미ㆍ북간에 타협여지가 커져 협상이 고비를 넘으려 할 때에는 우리가 막판 힘을 보태서 문제가 해결되도록 하기 위해서도 우리는 빨리 남북관계 복원을 위해 적극적인 선택을 해야 한다. 우리는 상황을 지켜보다가 뒤따라 나가도 되는 방관자가 아니라 사활적 이해관계(死活的 利害關係)를 가지고 있는 당사자다.

지난 9월 한ㆍ미정상회담에서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 ‘공동의 포괄적 접근방안’을 마련하기로 했고, 후속조치를 협의하는 과정에서 북핵실험이 감행됨으로써 협의가 추동력을 잃었다. 그러나 이제 다시 협의를 시작할 때가 되었다. 이러한 협의를 통해 한ㆍ미 공조를 보다 강화하고 북핵폐기의 방향으로 목표를 일치시키고 수단 차원의 역할분담을 해나가야 할 것이다.

미ㆍ북간 합의로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하는 만큼, ‘공동의 포괄적 접근방안’을 6자회담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이전부터 잘 구성해서 북한이 회담장 밖에서 조건타령을 하지 않도록 할 필요가 있다. 지난 8월 26일 북한은 9.19공동성명이 자기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에도 6자회담에 빨리 돌아가고 싶다고 한 적이 있다.

‘공동의 포괄적 접근방안’에는 다른 요소들도 포함이 되겠지만, 9.19공동성명의 1항에서 규정한 핵문제 해결 과정과 2항에서 규정한 미ㆍ일의 대북관계 개선과정을 병행하여 로드맵을 짜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2항의 당사자인 미국과 일본이 1항의 진전 상황을 보아가면서 2항의 이행을 검토하려 한다면 북핵문제는 다시 쳇바퀴를 돌게 될 것이다.

북한의 최종목표는 체제보장과 경제난 해결이며, 이를 달성하기 위해 15~6년 전부터 자멸을 초래할지도 모르는 핵카드를 들고 위험한 길을 걸어왔기 때문이다. 미ㆍ북수교, 일ㆍ북수교의 전망이 서는 조건에서 북한은 1항의 핵문제 해결과정에서 ‘행동 대 행동 원칙’에 충실해질 것이다.

필자

정세현 민화협 상임의장은 77년부터 국토통일원에서 남북관계 업무를 담당하기 시작, 94년 김영삼 정부시절 북핵문제가 터진 뒤 청와대 통일비서관으로 3년 8개월간 근무했으며 당시 '북경 쌀회담'에서 협상능력을 발휘해 주목을 받았다. 김대중 정부 시절인 98년 3월부터 99년 5월까지 통일부 차관을 지냈으며 98년 비료 지원과 이산가족 문제를 연계한 차관급 회담 수석대표로도 활약했다. 2001년 5월 초 국정원장 통일특보를 거쳐 2002년 1월부터 2004년 6월까지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에서 통일부 장관을 역임했다.

남북 당국간 회담만도 1백여 차례 넘게 참석한 대표적인 대북전문가로 꼽히는 정 상임의장은 친화력이 뛰어나고 호방한 성격으로 업무에서도 추진력과 조직 장악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최근에는 민화협 상임의장을 맡아 민간 대북교류를 진두지휘하고 이화여대 석좌교수로서 후학 양성에도 나서고 있다. 저서로는 <한반도의 통일전망> <남북한 통일정책 비교>등이 있다.
정세현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대표상임의장

댓글이 1 개 있습니다.

  • 3 3
    박총통

    미군철수 운운하면 핵개발위협해야지
    그럼 미군이 한국에서 못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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