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오는 '달러 윤전기의 저주'
<뷰스칼럼> 환율전쟁은 이제 시작, "쿼바디스 한국?"
"환율전쟁은 끝났다"는 이명박 정부의 호언과는 달리 '2차 환율전쟁'이 시작됐다. 이명박 대통령의 바람과 달리 서울 G20정상회의는 치열한 환율전쟁터가 될 분위기다.
1차 환율전쟁과 2차 환율전쟁의 가장 큰 차이는 1차때는 중국이 주범으로 지목돼 집중포화를 받은 반면, 2차때는 미국이 집중포화를 당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연준이 장기침체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국경제를 위해 6천억달러를 또다시 풀기로 한 것이 발단이 됐다.
기다렸다는 중국이 미국을 맹비난하고 나섰고, 유럽 최대경제강국 독일도 미국 성토에 가세했다. 일본은 "우리도 엔화를 풀겠다"며 미국에 맞불을 놓고 나섰고, 브릭스 대표주자인 브라질까지 미국 비판대열에 동참했다. 모두가 "서울에서 한판 붙자"는 식이다.
이들의 미국 성토 공감대는 "미국 때문에 세계경제가 함께 폭삭 무너지는 게 아니냐"는 위기감이다. 하긴 21세기 들어 세계경제의 최대 골치거리는 미국이었다. 2001년 IT거품이 터진 곳도 미국이었고, 2008년 부동산거품이 터진 곳도 미국이었다. 미국이 사고를 칠 때마다 세계경제가 요동을 쳤다.
그런 미국이 지금 또 '초대형 사고'를 치려 한다는 게 세계가 느끼는 공포다. 이번에 치기 시작한 사고의 이름은 세칭 "달러 윤전기의 저주"다.
'달러 윤전기의 저주'
미국은 부시 정권 말기부터 윤전기를 돌려 얼마나 달러화를 새로 찍어내는가를 슬그머니 공개하지 않기 시작했다. 오바마 정권 들어서도 마찬가지다. 이제는 이것이 미국정부의 '특1급 국가기밀'이다.
미국이 이처럼 달러화 발행량을 숨기기 시작한 것은 세계 각국이 더이상 미 국채를 사지 않으려 하면서부터다. 미국은 세계최대 외환보유고를 갖고 있는 중국 등 동아시아국가들에게 국채를 사달라고 읍소하나, 반응은 차가웠다. 쇠락해가는 미국의 국채를 더이상 사들일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그러자 미국이 택한 길이 윤전기를 돌려 달러화를 찍어내는 것이었다. 엄청나게 많은 달러화를 찍어내고 있다는 것만 추정될뿐, 얼마나 찍어내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중국정부는 미국이 최근 수년간 해마다 2조달러 정도씩 찍어내는 것 같다고 추정하고 있다. 일본경제지 <닛케이>는 8일 세계 달러 유통량은 지난 10월 말 현재 약 4조5천억달러로 2008년 리먼 브러더스 파산 이전의 2배로 팽창했다고 보도했다.
미국은 앞으로도 계속 윤전기를 돌려 달러화를 찍어낼 것이다. 향후 10년간 해마다 1조달러의 재정적자가 불가피할 전망이니 용 빼는 재주가 없기 때문이다. 그럴수록 '달러 윤전기의 저주'는 눈앞 현실로 다가올 것이다.
미국에 대한 비판이 쇄도하자, 미국은 당초 중국을 겨냥해 내걸었던 '경상흑자 목표치'를 없던 일로 하려 하고 있다. 서울 G20에서 융단폭격을 받는 걸 피하기 위한 중국에의 휴전협정 제안인 셈이다. 미국이 꼬리를 내리면서 서울 G20에서의 2차 환율전쟁은 찻잔속 태풍으로 끝날지도 모른다. 또한 언제 불안감을 느꼈냐는듯, 세계주가는 급등행진을 계속하고 세계원자재 값도 급등하고 어쩌면 부동산도 다시 꿈틀대는 등 현란한 '유동성 장세'가 재연될 수도 있다.
하지만 앞서 거품 파열때마다 경험했듯, 영원한 파티는 없는 법이다. 더욱이 미국의 '달러 윤전기'가 멈추지 않고 계속 돌아가는 한, 이번에 도래할 재앙은 앞의 리먼 브러더스 사태보다 더 심각할 것이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새로 도래할 위기는 '세계 기축통화'인 달러에 대한 불신이 초래할, 몇 세기에 한번씩 오는 초대형 위기일 것이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이런 과도기마다 세계적 규모의 전쟁까지 발발했다.
한국과 호주의 차이
전세계를 뒤덮을 초대형 위기를 피할 길은 없다. 특히 우리나라 경제처럼 대외의존도가 살인적으로 높고 금융시장이 완전개방된 나라일수록 그렇다. 외국자금이 밀물처럼 몰려들 때에는 용암처럼 들끓다가 썰물처럼 빠져나가면 순식간에 빙하시대에 접어드는 위기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해서 요즘처럼 '우물안 개구리'식 대응으로 일관했다가 정말 큰일이 날 수도 있다. 한 나라를 보자. MB정부는 "우리가 세계에서 가장 위기를 잘 극복하고 있다"고 자랑하나, 국제사회에선 우리보다 모범적 대응을 하고 있는 나라로 호주를 꼽는다. 호주는 올 들어 이미 기준금리를 6차례나 인상했다. 금리를 빨리 올릴수록 단기적으론 환율이 절상되나 중장기적으론 환차익 기대가 줄어들면서 외국자금 유입 압력이 그만큼 줄어든다. 호주 정부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내년 예산도 올해보다 11조원을 줄여 재정 흑자를 달성하기로 했다. 최근에는 중국, 인도 등도 발 빠르게 호주의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부동산거품 파열과 경기회복세 둔화를 우려해 금리를 사상최저 수준에 꽁꽁 묶어두고 있다. 올해 성장률을 6%, 내년도 성장률을 5%로 예상하면서도 기준금리가 2.25%로 묶어두고 있으니, 향후 금리인상과 원화강세를 예상한 외국 자금이 밀물처럼 계속 몰려들 수밖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당국은 말로만 '과도한 외환 유입'을 걱정할뿐, 금리인상에는 신경질적인 이중 행태를 보이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잘 나가는 호주는 재정건전성을 위해 내년 예산을 대폭 줄이는 긴축을 취하려 하나, 재정적자 증가속도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우리나라는 계속 확대팽창 적자예산을 짜고 있다.
앞으로 머지않아 '달러 윤전기의 저주'가 도래할 때, 과연 우리나라와 호주 가운데 누가 상대적으로 더 안전할까.
13년 전 IMF 사태가 발생했을 때, 대통령이던 YS를 비롯해 경제수장이던 강경식 부총리, 강만수 재정차관, 윤증현 금융정책실장 등은 한 목소리로 "세계가 이렇게 바뀐 줄 몰랐다"고 변명했다. 앞으로 IMF사태보다 더 큰 위기가 도래할 때 과연 위정자들은 또 뭐라 말할 건가. 또 "바뀐 줄 몰랐다"고 발뺌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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