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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개인의 얼굴은 역사이고 기억이다

[박영택 교수의 '화가의 얼굴에서 내 얼굴을 보다']

꿈틀거리는 물감들이 라면발처럼 어지럽다. 마치 고흐나 뭉크의 붓 자국이 떠오른다. 피부조직이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들이 요란한 움직임으로 부산하다. 이 물감, 붓질은 단지 한 개인의 얼굴을 재현하거나 기록하는데 동원되기 보다는 그 내면의 감정과 상처들을 가시화하기 위한 흔적들 같다.

권순철은 오랫동안 일관되게 인간의 얼굴과 산만을 그려온 이다. 그는 얼굴과 산(그가 살았던 동네에서 늘 마주 보던 용마산)을 통해 이른바 한국인의 넋 같은 것을 표상화 하려고 애써왔다. 넋이란 보이지 낳은 정신이기에 그것을 시각화 한다는 것은 사실 어려운 일이자 무모한 일이기도 하다. 그림이란 이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것, 보일 수 없는 것을 악착스레 시각화하고자 애쓰는 일, 업보이고 화가들은 그런 일로 덤비는 이들이다.

한 개인의 얼굴은 그대로 역사이고 기억이다. 그가 살아온, 살아낸 자취들로 자욱하다. 따라서 얼굴은 거대한 책이다. 그것은 그대로 자신의 묘비와 같다. 얼굴을 본다는 것은 그가 살아온 생의 이력을 읽는 일이다. 얼굴은 너무 많은 사연을 함축하고 있다. 침묵으로 절여놓고 있다. 눈 밝은 이들이 그 얼굴에서 어떤 사연을 읽는다. 본다. 얼굴은 그래서 그의 내면으로 들어가는 통로다. 작가는 거울을 통해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자기 내면을 성찰한다. 동시에 그 피부가 증거 하는 그간의 굴곡심한 생의 여정을 헤아려 본다. 아찔하다.

캔버스 화면에 물감들이 짓이겨져 있고 용솟음친다. 캔버스에 유화 물감을 짓이겨 바르고 암시적인 붓질을 통해 그려진 그의 얼굴은 다소 창백하다. 무표정하다. 다만 자신을 응시한다. 그것은 물감덩어리와 얼굴 사이에서 진동한다. 이미지이자 물감의 질료 사이에서 흔들린다.

권순철은 자신의 얼굴, 표정이 아니라 넋을 그리고자 한다. 그는 오랜 시간 수많은 시련과 세파와 삶의 고통 그리고 그 모든 어려움을 겪어낸 신산한 표정을 그려왔다. 이 자화상 역시 동일하다. 그에게 얼굴이란 한 개인이 살아낸 모든 것의 총화이자 결과이다. 그는 얼굴을 통해 그것을 읽는다.


어둡고 눅눅해 보이는 이 얼굴은 자신의 실존의 초상이자 역사적 얼굴이기도 하다. 화면의 내부에서 진동하면서 화면 밖으로 표출되어 나오는 얼굴은 그 어느 사이엔가 멈춰있다. 화면 밖으로 돌출되지도 않고 화면 안으로 잠기지도 않으면서 그 경계에서 계속 떨어대고 있다. 그는 지쳐 보이고 심난해 보이며 우울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는 자신의 삶을 다 소진한 상태에서 비로소 걸러져내는 낙관 같은 혹은 체념 같은 표정을 슬쩍 남긴다.

권순철은 한국전쟁으로 타계한 그의 부친 및 삼촌, 그리고 일본과의 투쟁에서 피흘린 조상들을 추모하는 얼굴을 그려왔었다. 자신의 이 얼굴은 그런 넋을 바라본, 찾는 이의 얼굴이다. 한 많은 넋을 표현하고자 했던 자신의 얼굴이다.

“내 세대는 영혼이 평정과 융화될 수 없는 역사적 사건을 겪었다. 식민지, 전쟁, 서구화..이렇게 얼굴 그리는 작업은 나를 해방시키고 위로한다...아직도 한국인은 전쟁 중에 있으므로 우리나라에서는‘넋’이 아주 고통스럽다.”(작가노트)

그는 덧칠과 강렬한 필체로 균형과 생동감을 구현한다. 온갖 풍상을 겪으며 살아온 한국인의 얼굴, 자신의 얼굴이 거기에 있다. 삶의 진지함과 엄숙함이 있고 비애가 있고 서러움과 넋이 있다. 그는 그런 얼굴, 자기 얼굴을 그리고자 한다. 표상하고자 한다.

얼굴 모습의 뚜렷한 윤곽선이나 세부적 묘사까지도 무시한 채 작가는 한 인간의 전생애를 두꺼운 질감으로서 상징적으로 체계화시켜 집약시켰다. 두터운 마티엘 효과와 더불어 무채색에 가까운 채색효과다. 마치 이끼 낀 바윗덩어리처럼 인간이 표정이 강인하게 형상화되어 있다. 삶의 인고와 체념이 얼룩진 기념비적인 얼굴이자 서글픈 얼굴, 결국 그의 얼굴이다.
박영택

필자 소개

성균관대대학원미술사전공, 전 금호미술관큐레이터, 현재 경기대학교예술대학 교수, 미술평론가.
저서로는 <예술가로 산다는 것>, <식물성의 사유>, <미술전시장 가는 날>, <나는 붓을 던져도 그림이 된다>, <가족을 그리다> 등이 있다.
박영택 경기대 교수

댓글이 3 개 있습니다.

  • 0 0
    sprite1001

    좋은 글 고맙습니다.
    그리고 이 글을 보시는 님께 호소합니다!!
    요즘 수도권 시내 버스에서도 광고하고 있는 유투브 컨텐츠에요.  
    부디 짬을 내셔서 확인하시고 바른 판단하시길 간절히 원합니다(눅17:26~30). 
    https://youtu.be/2QjJS1CnrT8

  • 1 0
    미술 사랑

    평론가와 예술가들이 학연, 지연으로 묶인 영포회 나와바리...정치 뿐만이 아니지요.

  • 1 1
    궁금증

    고호의 '우채부'와 너무 닮앗다고 느껴지는 건 나 뿐일까? 드로잉도 그렇고,,물론 컨탬퍼러리 포트레이트에서 올드마스터의 완벽한 아나토미는 마이너이지만 고호를 스타디 했다는 것 빼면 개인적으론 별 인상에 안 남는데, 저 평론가의 관심은 무엇일까? 난 그게 더 궁금해.영포회 나와바리적인 엽전미술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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