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야권 단체장들이 잘할 것 같다"
<뷰스칼럼> '토목세력과의 전쟁' 시작한 뉴스메이커들
지난달 말, 한 야권 인사가 수도권의 민주당 지방자치단체장 당선자들을 두루 만나고 와서 한 말이다.
신임 야권 단체장들의 '무거운 어깨'
6.2 승리는 야권이 잘해서가 아니라 정부여권이 못해서 얻은 반사이익이라는 점을 야권도 시인하고 있다. 민주당이 잘해서 표를 줬다는 응답이 2.4%밖에 안된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인용하며 스스로 "우리는 2.4% 정당"이라고 자조하기도 한다.
그런 만큼 신임 야권 지자체장들의 어깨는 무겁다. 앞으로 2년 뒤에는 총선과 대선이 기다리고 있다. 이번엔 지방권력의 상당수를 되찾았으니, 다음 총선에선 의회권력, 그리고 대선에선 중앙권력을 되찾겠다는 것이 야당의 정권 재탈환 구상이다.
이런 야심찬 그림이 현실화하기 위해선 민주당 등 야당들도 잘해야 하나, 무엇보다 일선에서 유권자들과 호흡을 같이하는 지자체장들과 지방의회가 잘해줘야 한다는 게 일반적 지적이다. 야권 단체장들이 얼마 뒤 유권자들로부터 "여든 야든 똑같다"는 욕을 먹으면, 가뜩이나 여권에 필적할 대중정치인을 아직 확보하지 못한 야권에 정권 재탈환은 물 건너간다는 게 공통된 인식이다.
전국을 흔드는 '뉴스메이커들'
그래서인가, 요즘 야권 신임 자치단체장들이 '뉴스 메이커'로 급부상하고 있다.
당선 직후 가장 먼저 언론의 관심을 모은 인물은 김두관 경남지사 당선자다. 그는 절대다수 국민이 반대하는 4대강사업이 가장 많이 진행중인 경남의 단체장답게 당선직후 4대강사업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특히 김 당선자의 인수위는 "보 설치를 위해 이미 설치한 교각은 폭파를 통해 철거해야 하며, 교각 철거시 폭약을 넣어 발파하면 비용도 얼마 들지 않을 뿐 아니라 공정도 10일이면 충분할 것"이라고 말해 네티즌들의 폭발적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최근 들어선 이재명 성남시장이 '모라토리엄(지불유예) 선언'으로 전국을 뒤흔들었다. 이재명 시장은 당선직후 전임 이대엽 시장이 시민들의 비난을 일축하고 세운 '초호화 청사'를 매각해 서민복지 등에 사용하겠다고 발표해 신선한 충격을 던진 바 있다. 그런 그가 한걸음 더나아가 초호화 청사 때문에 성남시 재정이 파탄지경에 이르렀음을 밝히면서, 성남보다 더 심각한 상태인 대다수 전국 지자체들의 부실재정이 수면위로 급부상했다.
당황한 중앙정부나 보수지 등은 "이재명 시장이 부풀리기 정치공세를 하고 있다"며 반격에 나섰으나, 인천 등 전국 대다수 지자체들의 심각한 재정부실이 연일 보도를 통해 밝혀지면서 방만한 재정운영을 해온 한나라당 전임 단체장들에 대한 비난여론이 비등하고 있다.
수도권 곳곳에서 불붙은 전쟁
이재명 시장 만이 이런 싸움을 하고 있는 게 아니다. 언론의 큰 주목을 받지 못해서 그렇지, 수도권의 많은 야권 신임 지자체장들이 같은 싸움을 시작했다.
김학규 용인시장이 대표적 예다. 용인은 호화청사, 경전철, 영어마을 등 숱한 선심성 행정으로 말도 많고 탈도 많던 곳이다. 이런 용인의 시장이 한나라당에서 민주당으로 바뀌었다.
김 시장이 가장 먼저 손을 댄 것은 경전철이다. 구갈과 전대리를 잇는 용인 경전철은 외국계가 9천298억원을 투입해 공사를 완료, 당초 이달중 개통할 예정이다. 김 시장은 그러나 제동을 걸었다. 그대로 개통을 했다간 용인시 재정이 망가질 것이란 판단에서다. 문제가 된 것은 지난 2001년 용인시가 민자사업을 벌일 때 하루 이용승객을 14만6천명으로 예측했으나, 공사를 해놓고 보니 하루 이용객이 4만~5만명밖에 안될 것으로 추산된다는 점이다. 이럴 경우 예측보다 이용객이 적을 경우 시가 차액을 보전해줘야 한다는 조항에 따라 용인시는 해마다 180억원을 업체에 보조해야 할 판이다.
앞서 인천공항철도가 당초 예상 승객의 7%밖에 이용을 안하면서 천문학적 적자가 쌓여 결국 코레일에게 부담을 전가했던 것과 같은 동일한 실수를 되풀이할 수 없다는 게 김 시장의 판단이다.
경전철은 용인에서만 문제가 되는 게 아니다. 의정부 경전철, 광명 경전철, 김포 경전철 등이 예외없이 '돈 먹는 하마'가 될 게 분명해, 신임 단체장들이 앞다퉈 제동을 걸고 나섰다.
용인의 김 시장은 이밖에 외대와 공동으로 추진해온 영어마을 조성사업에도 급제동을 걸었다. 앞서 경기도에 세워진 많은 영어마을들이 지방재정을 갉아먹고 있는 마당에 동일한 실수를 되풀이할 수 없다는 것.
이밖에 유영록 김포시장도 앞에서 언급한 경전철 사업을 취소하고 지하철 9호선 연장을 추진하기로 했고, 김철민 안산시장은 막대한 예산이 들어갈 안산 돔구장에 대한 재검토를, 김만수 부천시장은 추모공원 조성 재검토 및 부천무형문화엑스포의 중단 의사를 밝혔다. 최대호 안양시장도 예산낭비 등을 이유로 전임 시장이 계획한 100층 호화청사 건립계획을 백지화했다.
토목세력과의 전쟁
이들 단체장의 싸움은 한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다. '토목세력과의 전쟁'이라는 점이다.
사실상 지방재정의 최대 적은 토목이다. 토목은 전시행정 효과가 가장 높다. 떡고물도 많이 떨어진다. 그대신 지방재정은 골병이 든다. 부동산거품이 꺼지기 시작한 요즘 같은 때는 더욱 그러하다. 빚내서 폼 잡고 광낼 때가 결코 아니다. 그러다간 앞서 떼초상이 난 일본이나 미국 지자체의 뒤를 밟기 십상이다.
하지만 토목세력과의 싸움은 결코 쉬운 싸움이 아니다. 앞으로 무수한 손길이 유혹할 것이고, 거기에 한둘이라도 넘어가면 곧 엄청난 반격이 뒤따를 것이다. 마피아 부패세력과 싸우던 이탈리아의 마니폴리테(깨끗한 손) 검사들이 훗날 한결같이 부패세력으로 철창에 갇히며 이탈리아 정치가 퇴행을 거듭한 것과 유사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야권 당선자들이 생각보다 일을 잘할 것 같다"는 기대가 '역시나'가 되지 않길 기대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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