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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때도 가족에겐 부검결과 안숨겼다"

하중근 대책위, 경찰청 앞 부검자료 공개 촉구 기자회견

경찰이 유족들에게조차 사인 규명의 열쇠를 쥐고 있는 부검 결과를 공개하지 않아 시민단체들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포항남부경찰서는 지난 7월 16일 경찰과의 충돌과정에서 쓰러진 후 이달 1일 사망한 포항건설노동자 하중근씨에 대한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부검 감정서 원본을 뚜렷한 이유 없이 공개하지 않고 있다.

“내 동생 살려내든지 진상규명해 책임자 처벌하라”

하중근 대책위와 유족들은 22일 오전 서울 서대문 경찰청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고 하중근씨의 부검감정서 공개를 거듭 촉구하고 폭력진압자의 처벌을 요구했다.

특히 포항에서 올라온 고 하중근씨의 둘째 형 하철근씨는 “눈물이 앞을 가린다. 이렇게 억울할 수가 없다. 공개하면 다 드러날 일을 왜 공개 안하냐”며 “내 동생을 살려 내든지 확실히 진상규명을 해서 책임자를 처벌하라”고 울먹이며 말했다.

그는 “동생의 죽음 이후 온 집안이 쑥대밭이 됐고 가족들의 삶도 모두 엉망이 됐다”며 “내 동생인데 어떻게 장례식도 마음대로 못하게 만드느냐”며 탄식했다.

그는 대책위 관계자들이 경찰청장 면담을 요청하며 연좌농성을 벌이는 뒷편에 앉아 연신 담배를 피워대며 “도저히 사람이 살 수 없는 세상 아니냐”며 씁쓸하게 되뇌었다.

고 하중근씨의 둘째 형 하철근씨. 하씨는 "동생의 죽음 이후 집안이 쑥대밭이 됐다"며 "억울한 동생의 죽음을 꼭 밝혀달라"고 호소했다.ⓒ뷰스앤뉴스


"군사독재시대에도 부검결과 가족에게 숨기지 않았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대책위 산하 노동사회단체 관계자들도 유족에게조차 부검 결과를 공개하지 않는 경찰 측의 행태에 날선 비판을 가했다.

박석운 대책위 집행위원장은 “군사독재시절에도 부검 결과를 가족에게 숨기는 일은 없었는데 심지어 지난 10일 경북경찰청에서는 사인을 공개하는 기자회견에 유족들이 들어가는 것을 막는 일까지 벌어졌다”며 “도대체 무슨 짓들을 하고 있는 것인가”라고 비판했다.

경찰이 고 하중근씨에 대한 부검결과를 공개하지 않자 유족과 시민단체들이 "경찰이 사인을 은폐하고 조작하려는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뷰스앤뉴스


오창익 인권실천시민연대 사무국장은 “모든 사망사고에서 사체는 죽음의 원인과 과정을 가장 잘 알게 해준다”며 “그렇기 때문에 유족의 아픔을 무릅쓰고 부검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이 죽음은 경찰폭력에 의한 것이라는 정황과 증언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는 매우 비상하고 중요한 죽음”이라며 “오히려 누구보다 앞장 서 투명하게 죽음의 진실을 밝혀야 하는 경찰이 부검 결과를 공개하지 않는 행태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광열 인권단체연석회의 사무국장은 “포항에서 죽은 사람은 하중근씨 뿐만이 아니다. 이미 노동자 1명이 사망했고 나머지 1명은 사경을 헤매고 있다. 임산부의 아이가 유산됐다”며 “노무현 정권은 지금 연쇄살인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대책위는 기자회견을 마치고 이택순 경찰청장에게 항의서한을 전달하기 위해 경찰청 진입을 시도했지만 경찰 측에 봉쇄당해 1시간동안 연좌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대책위는 이날 오후 7시 30분 서울 광화문 동아일보사 앞에서 하중근씨 진상규명 촉구 촛불집회를 열고 이 자리에는 포항건설노동자 80여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경찰 “수사 중에는 공개 못한다”

앞서 유족들은 지난 11일 포항남부경찰서에 국과수가가 8월 2일 부검과정에서 기록.촬영.작성한 ▲부검감정서 ▲부검사진 ▲부검기록지의 공개를 청구했다.

유족들이 정보공개를 청구한 이유는 바로 하루 전인 10일 경북지방경찰청이 국과수의 부검 요약본을 바탕으로 “하중근 씨 사망원인은 두부손상이며 대측 충격손상으로, 직접적인 가격보다는 전도(움직이는 머리가 고정된 물체에 부딪힐 경우)에 의한 가능성을 우선적으로 고려할 수 있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국과수의 부검발표대로라면 하중근씨의 사망이 당일 경찰과의 충돌 과정에서 방패, 곤봉 등의 물리적 타격에 의한 것이라는 대책위 진상조사단의 발표 결과를 뒤집을 개연성이 높아진다. 지난 해 고 전용철 농민의 사망과 관련해 경찰이 ‘집에서 쓰러져서 사망했다’고 밝힌 것과 흡사한 대목이다. 당시 국과수 또한 전용철씨가 넘어지면서 머리 뒤쪽에 손상을 입고 뇌출혈로 사망했다“며 ‘전도에 의한 사망’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날 유족과 대책위는 기자회견 이후 경찰청에 항의서한을 접수하려했지만 경찰의 봉쇄에 막혀 1시간동안 실랑이를 벌였다.ⓒ뷰스앤뉴스


항의서한을 들고 격렬히 항의하는 남궁현 민주노총 건설연맹 위원장.ⓒ뷰스앤뉴스


유족들과 공대위는 이에 경찰 발표를 “공권력의 살인적인 폭력진압을 무마하기 위한 전형적인 물타기”라고 비판하며 부검 결과의 전 과정에 대한 정보 공개를 청구하게 된 것.

하지만 포항남부경찰서는 유족들의 공개서를 접수한 후 열흘 동안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다가 21일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 제9조 제1항 제4호에 의거 진행 중인 재판에 관련된 정보 및 범죄예방과 수사 직무수행을 현저히 곤란하게 할 사항에 해당한다”며 비공개 결정 통지서를 유족 측에 보냈다.

이와 관련 유족들과 공대위는 “도대체 유족들에게 부검 결과를 공개하는 것이 어떤 직무수행을 곤란하게 하는가”라고 반문하며 “결국 이번 사태와 관련해 시간을 벌어 사인을 은폐하고 축소.왜곡하려는 시도로 밖에 볼 수 없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들은 또한 “지난 전용철 농민 사망 때도 수사가 진행 중 이었지만 국과수가 직접 기자회견을 자청해 부검 결과를 공개한 적이 있다”며 “도대체 무슨 기준으로 공개와 비공개를 나누는 것이냐”며 거듭 부검감정서 공개를 촉구했다.

한편 민주노동당도 이날 오전 10시 30분 단병호, 노회찬, 이영순 의원이 국과수를 방문해 이원태 소장과 서중석 법의학 부장에게 부검 소견을 청취하고 자료 공개를 요청했다. 의원들은 이 자리에서 “부검결과 발표는 국과수가 스스로 판단하면 할 수 있는 문제”라며 “국과수가 부검결과를 공개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의혹이 커지고 있는 것”이라고 항의했다.
최병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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