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는 부자이나 국민은 거지꼴"
<뷰스칼럼> '3각 파도'로 총제적 위기 몰린 한국 가계
최근 우리나라 저축률이 OECD 최하위로 곤두박질 쳤다는 한국은행 발표를 접하고 김종인 전 경제수석이 한 말이다. 실제로 일본은 경제대국이나 국민은 가난하다. 자식들을 분가시키고 은퇴한 노부부가 손에 쥔 현금은 500만엔밖에 안된다는 조사결과까지 있을 정도다.
가계 구매력이 붕괴되고 있다
김 전 수석의 지적대로 최근의 저축률 발표는 충격적이다. 80년대 말(1986~1990년) 16.9%였던 가계저축률이 참여정부 말-이명박 정권 초(2006~2008)에는 4.8%로 급감했다. 이는 종전에 세계에서 가장 저축을 안하고 펑펑 쓴다던 미국의 최근 수치보다도 낮은 수치다. 정부저축률도 재정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9.4%로 낮아졌고 앞으론 더 급락할 전망이다.
반면에 기업저축률만 16.0%로 높아졌다. 법인세 인하와 투자 기피 등이 맞물린 결과다.
우리나라 가계저축률은 10여년전 환란, 그리고 지난해 말 미국발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급락했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미국처럼 국민이 흥청망청 과소비를 한 결과가 아니라,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급락했다는 것. 이는 직장을 잃거나 소득이 줄어들면서 저축할 여력이 급감하거나, 더 심한 경우엔 저축했던 돈을 까먹으면서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는 의미다.
한은은 "개인 저축의 부족분을 기업들이 메워주면서, 우리나라의 총저축률은 선진국에 비해 높은 수준"이라며 크게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표피적 접근이다. 가계저축률 급락은 구매력 감소를 의미한다. 아무리 기업들이 많은 현금을 쥐고 있어도 물건을 사줄 소비자가 사라지면 기업들도 궁지에 몰릴 수밖에 없다.
혹자는 "수출 더 많이 해서 벌면 되지"라고 말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수출도 내수 감소 충격을 견딜 수 있는 기업은 몇몇 수출대기업밖에 없다. 내수 의존도가 절대적인 대다수 중소기업이나 내수 대기업, 자영업자들은 구매력이 줄면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다. 수출의존도가 높은 대기업들도 정도 차가 있을 뿐, 마찬가지다. 한 IT전문가의 말을 들어보자.
"삼성전자가 세계시장에서 발군의 제품경쟁력을 갖게 된 것도 국내에 '테스팅 마켓'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국내에 시제품을 내놓아 반응이 좋은 것만 골라 수출하다 보니 국제무대에서 경쟁력을 갖게 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일본 소니도 시제품을 한국에 먼저 내놓을 정도로, 한국 소비자들은 IT산업 발전에 있어 보이지 않는 손 역할을 해왔다. 그런데 한국 소비자들의 구매력이 낮아지면 삼성전자는 테스팅 마켓을 잃게 되면서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다른 수출대기업들도 마찬가지다. 구매력 소멸은 수출대기업들에게도 치명적 위기다."
'3각 파도' 위기에 직면한 한국 가계
가계저축률 급락과 더불어 또 하나의 심각한 문제는 한국 가계자산이 위험에 크게 노출돼 있다는 점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은 며칠 전 "국내 가계자산의 87%가 시장가격 변화에 민감한 자산"이라는 경고성 보고서를 냈다. 즉 전체 가계자산의 81%가 부동산이며, 나머지 현금자산도 위험성이 높은 직접투자이거나 변액보험 등으로 구성돼 있어, 집값이 다시 하락하거나 주가가 하락할 경우 가계자산이 급감할 위기에 직면해 있다는 것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주택담보대출, 가계저축률 급감, 가계자산 위험 노출 등, 지금 한국 가계는 총체적 '3각 파도' 위기에 노출돼 있는 셈이다.
범칙금 차등화로 풀릴 문제 아니다
최근 유동성 장세로 자산시장이 활황세를 보이자, 고소득층 일각에선 '소비 활황'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문제는 그 소비가 해외명품 소비로 집중되고 있다는 점이다. 7월 백화점 매출만 봐도, 롯데의 경우 해외명품 소비가 50%나 폭증했고 신세계-현대도 20%대 급증세를 보였다. 반면에 같은 달 대형마트 소비는 감소세를 보였다.
돈이 한 곳으로 쏠리면서 경제 시스템이 뒤틀리고 있다는 의미이자, "부자가 돈을 써야 경제가 살아난다"는 속설이 깨지고 있다는 의미다.
이명박 대통령은 요즘 '서민 걱정'이 많은듯 싶다. 교통범칙금까지 "부자는 더 내고, 서민은 덜 내게 하라"고 지시할 정도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 한국사회가 직면한 양극화 위기는 교통범칙금 몇 푼을 더 걷거나 깎는다고 풀릴 문제가 아니다. 각종 규제완화가 초래한 부동산거품은 가공스런 행태로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있으며, 98조9천억원의 감세는 대다수 국민에게 증세 압박이란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다.
"나라는 부자이나, 국민은 거지꼴"인 나라의 미래는 없다. "국민이 부자인 나라"를 만들어야 국민도 살고 나라도 산다. 이 대통령은 지금 집권 2기를 책임질 각료들을 뽑느라고 부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제대로 뽑아야 한다. 특히 고통스럽겠지만 'MB노믹스'를 전면적으로 손볼 팀을 짜야 한다. 삼고초려의 자세로 영입해야 한다. 어쩌면 지금이 이 대통령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일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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