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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 부재'가 자초한 김근태의 침몰

재계 "김근태 때문에 될 것도 안됐다", '8.15 특사 쇼크'로 절대위기

"공식발표가 나야 입장을 발표하겠지만 잘 아시는 것처럼 당은 경제회생과 국민통합을 위해서 경제인 사면을 건의한 바 있고, 그 건의가 받아들여져서 지금 사면이 구체적으로 결정되어 나가는 것 같다."(오전 10시10분)

"대통령의 사면권은 고유권한이기 때문에 존중한다. 향후에 좋은 기회가 있다면 경제활성화와 회생을 위해서 경제인들에게 관용을 베풀어주시길 당부한 것으로 이해해주시길 바란다."(오전 11시40분)

우상호 열린우리당 대변인이 11일 8.15 특별사면복권 발표가 있기 전후에 한 말이다. 사면복권 발표가 있었던 것은 이날 오전 11시30분.

우 대변인의 서로 다른 두 발언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 열린우리당은 노무현 대통령에게 세게 한방 먹었다. 특히 김근태 당의장의 타격이 크다. 그가 '뉴딜'을 주장하며 재계에게 여러 차례 약속했고, 노대통령에게 건의했던 재벌총수 사면이 완전 묵살당했기 때문이다.

재계 "김근태 때문에 될 것도 안됐다"

이번 조치로 김근태 당의장이 받은 타격은 거의 치명적이다. 한 예로 8.15 특사 내용을 접한 재계 반응은 한마디로 "김근태 때문에 될 것도 안됐다"는 것이다. 재벌총수들의 사면복권에 대한 재계의 바람이 컸던 만큼 김 의장에게 쏠리는 비난의 목소리도 그만큼 크다.

A그룹의 임원은 "노대통령과 정면 격돌하면서 노대통령에게 재벌총수 사면을 요구하는 모순된 행동을 하니 대통령이 이를 들어줄 리 있겠냐"며 김 의장의 '전략 부재'를 질타했다. 그는 "재벌총수 사면복권은 대통령이 재계에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자 재계와의 화해책"이라며 "그런데 김 의장 말대로 사면복권을 해주면 그 공이 고스란히 김 의장에게 돌아갈 텐데 노대통령이 그런 바보짓을 할 리 있겠냐"고 덧붙였다.

그는 "김 의장이 물러난 뒤면 몰라도 김 의장이 당을 맡고 있는 한 재벌총수 사면복권을 물 건너간 것 같다"고 김 의장에게 원망을 쏟아냈다.

B그룹 구조본의 한 임원은 "김 의장이 연일 재계를 찾아다니며 재계와의 빅딜 등을 얘기했으나, 솔직히 말해 여간 부담스러웠던 게 아니었다"고 밝혔다. 그는 "대통령은 퇴임 전날까지 기업들에겐 치명상을 안겨줄 수 있을 만큼 절대권력의 소유자"라며 "이런 절대권력과 정면 대립하고 있는 김 의장과 만나 그를 돕겠다는 약속을 할 수 있겠는지 어디 한번 생각해 보라"고 말했다.

그는 "여태까지는 경제단체장들을 만나자 했으니 할 수 없이 만났지만 김 의장이 다음으로 만나고 싶어하는 재계 총수들이 이에 응할 가능성은 거의 전무하다"며 "총수들 사이에 당분간 외유라도 떠나야 하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돌 정도"라고 전했다.

노무현대통령의 8.15 특사로 절체절명의 위기에 몰린 김근태 의장과 김한길 원내대표. ⓒ연합뉴스


'전략 부재'가 초래한 김근태 도박의 침몰

재계 반응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 김 의장이 야심적으로 추진해온 이른바 '뉴딜'은 노 대통령의 8.15 특사를 통해 사실상 무력화됐다. 재계가 이렇듯 냉소적 반응을 보이는 마당에 김 의장이 다음번으로 만날 노동계도 김 의장이 주장하는 '노-사-정 대타협'에 응할 가능성이 전무하기 때문이다.

김 의장은 주변의 '정체성' 비난에도 불구하고 서민경제 살리기를 명분으로 큰 배팅을 도모했다. 하지만 노대통령의 반격으로, 김 의장은 결과적으로 그동안 그의 자산이었던 '개혁' 이미지마저 손상 당한 채 뒷전으로 밀려날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게 됐다.

열린우리당 안팎에선 이번 사태와 관련, 김 의장의 '전략 부재'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많다. '우향우' 노선을 택한 것 자체가 치명적 자충수라는 지적이다. 노 대통령과 싸울려 했으면 중산층-서민경제를 붕괴위기에 몰아넣은 노무현 정부의 정책실패를 집중 공격하며 대안을 제시하는 방식을 택했어야지, 노대통령에게 절대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 '우향우' 노선을 택해선 안됐었다는 지적이다.

당의 한 관계자는 "김의장은 지난 2004년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 논란때 노대통령에게 '계급장 떼고 붙자'고 했을 때 장관직에서 잘리는 한이 있더라도 붙었어야 했다"며 "당시도 측근들의 반대로 중도후퇴해 대중적 정치인이 될 수 있는 호기를 놓치더니 이번에도 엉성한 전술로 접근하다가 치명적 상처를 입게 됐다"고 김근태 캠프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명분도 실리도 잃은 김 의장이 과연 그 어떤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게 당안팎의 지배적 평가다.
박태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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