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주의자'들은 지금 어디에..."
<뷰스칼럼> '메뚜기 대리투표'에도 계속 침묵할 것인가
한 원로언론인이 내린 정의다. 하도 요즘 여기저기서 "원칙", "원칙"하니까 한 말이다. 집이나 사회의 기둥뿌리가 바로 원칙이라는 의미다.
기왓장 몇개는 깨트릴 수도 있다. 그 부분만 바꾸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둥뿌리는 다르다. 기둥뿌리가 부러지거나 휘면 그 집은 모두 부수고 다시 지어야 한다. 숭례문 화재때도 온 국민은 견디고 견디던 기둥들이 끝내 꺾이면서 한순간에 숭례문 전체가 와르르 무너지는 걸 목격한 바 있다. 이렇듯 '원칙'이란 중요한 거다.
미디어법 처리를 놓고 재투표-대리투표 논란이 뜨겁다. 미디어법 강행처리 당시 아수라장 하에서 온갖 일이 벌어졌다. 민주당은 한나라당 의원들이 메뚜기처럼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대리투표'를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민주당과 민노당 의원 등이 한나라당 의원석에 앉아 반대 표를 누르는 등 '역(逆)대리투표'를 했으니 피장파장 아니냐고 반박하고 있다.
그러다가 민주당이 전자투표 로그 기록을 바탕으로 34건의 '비정상적인 투표기록' 가운데 한나라당끼리의 반복적인 찬성 로그기록이 17건 발견됐다며 '메뚜기 대리투표' 의혹을 제기하고 나서자, 상황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빼도 박도 못할 로그기록이 나오자 한나라당은 크게 당혹해하며 "헌재 판결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자"는 군색한 주장을 펴다가, 급기야는 "최종 투표가 본인에 의한 것이라면 법적으로도 의미가 없는 주장"이라는 반론까지 펴기에 이르렀다. 같은 당의 다른 의원들이 대리투표를 했다손 치더라도, 막판에 당사자가 직접 투표를 했다면 문제될 게 없다는 논리다.
이런 논리대로라면, 앞으로 모든 선거는 치루나마나다. 선관위도 없애야 한다.
이런 상황을 상정해보자. 돈 많은 유지가 총선에 출마했다. 중병이 든 환자나 노환으로 걷지 못해 투표장에 못나올 노인 등의 명단을 꼽은 뒤 선거꾼을 동원해 그들의 이름으로 대리투표를 신나게 하다가 적발됐다. 그러자 즉각 투표권 소유자들에게 돈다발을 안겨준 뒤 투표장까지 자동차로 귀하게 모셔다가 자신에게 투표를 하게 했다. 그러고선 "최종 투표를 본인이 했으니 문제될 게 없다"고 큰소리 치면 만사형통이다.
총선뿐인가. 대선도 이렇게 치루면 된다. 산더미처럼 쌓아놓은 돈만 있다면 아무리 대리투표를 하다가 걸려도 문제될 게 없다는 얘기가 된다. 권력자도 마찬가지다. 권력으로 찍어 누르고 금품으로 매수하면 누구든 정권 재창출이 가능해진다.
이처럼 한나라 주장은 당연히 말도 안되는 얘기들이며, 설득력 제로(0)의 궤변이다.
이래서 "원칙에는 하나의 예외도 없어야 한다"고들 하는 것이다. 한가지 예외를 인정하면 삽시간에 수백 수천가지 예외를 인정해야 하고, 그러면 원칙 자체가 와르르 무너지기 때문이다.
여당은 "야당이 헌법재판소에 고소했으니 조용히 판결을 기다리자"고 말한다. 과거 3선 개헌 때처럼 사법부가 "정치권 일은 정치권에서 해결하라"며 돌려보내고, 그러면 며칠 지지고 볶고 하다가 유야무야 끝날 수 있다고 기대하는 분위기다.
궁색하기 짝이 없다. 집권당이 취할 자세가 아니고, 법을 만드는 입법부의 태도가 아니다. 대리투표라는 잘못을 했으면 깨끗하게 고개 숙이고 잘못을 시인해야 마땅하다. 그것이 국민에 대한 예의고, 제대로 된 원칙 수호다.
아울러 정치권을 비롯한 언론계, 법조계 등 각계의 내로라 하는 '원칙주의자'들도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 이런 '기본 원칙'에 대한 입장 표명도 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그들의 원칙은 '그들만의 원칙'으로 받아들여질 것이기 때문이다. 세칭 '법치주의자'들도 함께 입장을 밝혀야 함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저작권자ⓒ뷰스앤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