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생존전쟁', 그 참담한 현주소
<뷰스칼럼> "신문의 방송 진출? 탈출구 아닌 무덤될 수도"
영남의 한 유력 지방신문사는 시쳇말로 단단히 뿔이 났다. 정부여당이 <조중동>을 위해 경품과 무가지를 규제해온 신문고시를 폐지하려 했기 때문이다.
신문고시를 폐지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한마디로 말해 문을 닫아야 할 판이다. 이 신문은 한때 40만부의 유가부수를 자랑했었다. 그러던 것이 요즘 들어 부수가 격감했다. 줄어도 보통 준 게 아니라 반토막 이상 났다. 극한 불황이 몰아닥치면서 당장 먹고살기 힘든 시민들이 신문부터 끊었다. 부수가 급감하니 비례해 광고도 초토화됐다.
이처럼 울고 싶은 판에 정부여당이 뺨을 때려주니, 그대로 폭발할 수밖에. 신문에 기사, 사설을 통해 정부여당을 융단폭격했다. "정부여당 눈에는 <조중동> 밖에 안보이냐"고 일갈했다. 벼랑끝에 몰리기란 오십보백보인 다른 지방신문들도 가세했다.
뒤늦게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은 정부여당은 지방신문사들에게 싹싹 빌었다. 신문고시를 없애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하지만 지방신문들의 분은 좀처럼 풀리지 않는 분위기다.
제2 금융권의 석연찮은 '대출 불가' 통고
중앙의 한 마이너신문사는 요즘 자금사정이 대단히 어렵다. 정부와 날카롭게 대립각을 세우고 재계와도 사이가 좋지 않으니, 광고상황이 최악이다.
더이상 잡힐 담보도 없다. 건물 등의 담보가 이미 꽉 찼기 때문이다. 더이상 은행 추가대출은 불가능한 까닭에 최근 제2 금융권을 찾았다. 비싼 이자를 물더라도 일단 돈이 돌아야 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잘 풀리는가 싶었다. 대출을 해주겠다고 했다. 신문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급한 발등의 불은 끌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갑작스레 '불가 통고'가 왔다. 이유도 석연치 않았다. 왜 그런지 추정은 가나, 속으로 부글부글 댈 뿐이다.
이제, 어디서 돈을 구해야 하나. 신문사 경영진은 불면의 밤을 보내고 있다.
한 신문사 지국장의 자살
한달여 전, 부산에서 한 신문사 지국장이 자살을 했다. 메이저 보수신문 중 한곳의 지국장이었다. 너무 힘들어서 목을 맸다.
이 지국장이 돌리는 신문 부수가 정권이 바뀐 뒤 격감했다. 신문논조 때문이었다. 정권만 감싸고 정권에 비판적인 한나라당 안팎의 모든 세력을 깔아뭉개는 기사를 양산하다 보니, 간단치 않은 부산 민심이 신문에 등을 돌린 것이다.
게다가 이 신문 본사는 다른 메이저보다 자금여력도 넉넉치 않아 총알 지원도 거의 하지 않았다. 본디 신문은 1년에 독자 30%가 떨어져 나간다. 그러면 부지런히 경품과 무가지로 독자수를 채우곤 했다. 하지만 중앙에서 총알이 안내려오니, 부수가 급감할 수밖에.
이 지국장은 최악의 조건하에서도 살아보기 위해 동분서주했으나 결국 최후의 선택을 해야 했다.
"신문의 방송 진출? 탈출구 아닌 무덤 될 수도"
여의도는 지금 신문-방송 겸영을 허용하자는 한나라당 미디어법 개정안을 놓고 말 그대로 전쟁중이다.
신방 겸영은 메이저신문들의 숙원이었다. 신문만 갖고선 앞으로 먹고살고 힘들다는 결론에 도달한지 이미 오래이기 때문이다.
우선 젊은 세대가 신문을 안본다. 한 대학의 신방과 교수는 "우리과 조교 녀석조차 신문을 안보더라"며 "학생 모두가 방송사에 취직할 생각만 할뿐, 신문에는 거의 관심조차 없다"고 전했다. 한 법대교수는 "한번은 신문을 주제로 토론을 할까 했는데 강의 듣는 학생 이십여명중 신문을 본다는 학생이 한명도 없어 토론을 포기했다"고 말했다.
이러다보니 신문부수는 계속 하향곡선을 긋고 광고수입도 격감하고 있다. 광고주들도 신문보다는 방송광고를 압도적으로 선호한다. 방송진출이야말로 메이저신문들의 마지막 탈출구인 셈이다.
하지만, 과연 탈출구일까. 한 미디어전문가는 "탈출구가 아닌 무덤이 될 수도 있다"고 한다. 그는 "방송광고 시장 규모가 뻔한데 앞다퉈 방송에 진출해봤자 쪼개먹기밖에 더 되겠냐"고 반문했다. 그는 "또 젊은세대에 비호감인 보수신문들이 방송을 한다고 할 때, 과연 젊은세대가 그 방송을 얼마나 볼지도 미지수"라고 덧붙였다.
신문 생존전쟁의 끝은...
이렇듯, 신문은 지금 생존전쟁중이다. 모두 위기를 맞고 있다. 단지 위기의 전도가 절박한 눈앞 위기냐, 장래의 위기냐는 차이가 있을뿐이다.
위기의 원인은 무엇일까. 하나는 생산력이다. 인터넷, UCC 등 각종 새로운 미디어산업이 급속발전하는 데 따른 한계다. 가공스런 속도의 뉴미디어 출현과 미디어융합이 전통산업을 위기로 몰아넣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더 큰 원인이 있다. 여론독점의 파괴다. 예전엔 몇몇 거대매체만 장악하면 여론 장악이 가능했다. 하지만 이제는 전자민주주의 시대다. 많은 부작용도 낳지만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풀뿌리 전자민주주의가 극복해나가고 있다. 일방적으로 주입하고 가르치던 시대는 지나갔다는 의미다. 물론, 아직도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권력들이 많지만.
두가지 원인은 동전의 앞뒷면 관계에 있다. 미디어 생산력이 발전하면서 종전의 미디어 소비형태, 즉 언론과 독자의 관계도 근원적으로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신문 생존전쟁의 끝이 어떻게 될지는 미지수다. 힘없는 쪽부터 쓰러질 수도 있다. 특히 적자생존의 시장원리를 강조하는 현정부 하에선 그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살아남은 공룡이 시장을 독식하리라 생각하는 것도 큰 착각이다. 과거와는 전혀 다른 시대가 열리고 있기 때문이다.
"월급은 '사장'이 주는 게 아니라 '시장'이 주는 것이다."
경영학 교과서에 나오는 ABC다. 결국 최종생존자는 '시장', 즉 '소비자'가 정할 것이란 의미다. 신문전쟁, 더 넓게 보면 언론전쟁의 결말도 그러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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