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들이 도통 낚이질 않고 있다"
<뷰스 칼럼> 최근의 자산 활황이 '반짝 활황'인 이유들
"한국경제와 자산시장의 기나긴 침체는 지나갔지만 개인자금 유입이 꼭지를 찍었고, 시장 밸류에이션도 덜 매력적으로 변했기 때문에 경기하강 국면에서 나타나는 베어마켓 랠리의 일부인 이번 랠리를 추격하는 데는 신중해야 한다."(모건스탠리 박찬익 전무)
최근 단기간에 급등한 부동산과 주식 등 자산가치 상승을 바라보는 외부의 시각이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한국에서 거품이 채 꺼지기도 전에 다시 확대재생산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쓴소리다.
과거와는 다른 활황장세...낚이질 않고 있다
지난 3월부터 증시와 부동산시장이 뜨겁다. 주가는 말그대로 거침없이 1,400선까지 수직상승했고, 강남 등 버블세븐 부동산도 꿈틀대는 기미가 역력하다.
한국만 그런 게 아니다. 뉴욕을 비롯해 세계증시판이 연일 뻘겋다. 사상최대 규모의 유동성 공급과 초저금리, 그리고 '설마 더 나빠지겠냐'는 기대감이 만들어낸 합작품이다.
일단 '패닉' 심리가 사라졌다는 점에서는 유의미하다. 하지만 이것이 곧바로 '탐욕'으로 발전하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특히 한국은 그 정도가 더 심해 걱정이라는 지적이 많다.
그러나 한걸음 떨어져서 보면, 이번 장세는 종전의 활황장세와는 확연히 다름을 발견하게 된다.
우선 부동산만 해도 그렇다. 호가 기준으론 강남 등의 아파트값은 지난해 9월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전으로 회복됐다. 특히 재건축 등이 주도적 역할을 했다. 놀라운 회복력이다. 그러나 호가뿐이다. 거래량도 일부 회복됐다 하나 아직 한겨울이다.
우리나라 최고 부유층이 살고 있는 주상복합아파트는 9개월 연속 하락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대목이다. <리얼미터>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서울 주상복합은 리먼브러더스 사태 발발직후인 지난해 10월이래 올 4월까지 9개월 연속 하락했고, 4월 들어선 더 낙폭이 커졌다. 최고 부유층이 부동산을 외면하고 있다는 얘기다. 타워팰리스의 한 거주자는 "이번 불황이 최소한 5년은 갈 것으로 본다"고 끊어 말했다.
대형건설사와 은행들이 꿈쩍도 안하고 있는 것도 주목할 대목이다. 한 예로 삼성물산은 한국사상 최대 아파트 프로젝트인 28조원 규모의 용산역사 재개발을 중단한 상태다. 코레일이 펄쩍 뛰며 패널티를 매기겠다고 하나 마이동풍이다. 은행들도 돈 꿔줄 생각을 도통 안하고 있다. 건설사나 은행들이 부동산에 봄이 오려면 아직 한창 멀었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얘기다.
강남 주상복합거주자, 대형건설사, 은행은 세칭 '부동산 귀재들'이다. 그들이 안 움직이고 있다. 최근의 아파트 활황세가 반짝 현상일 뿐이라는 주요 반증들이다.
증시도 마찬가지다. 앞에서 박찬익 모건스탠리 전무가 "개인자금 유입이 꼭지를 찍었다"고 지적했듯, 개미들이 증시에 모여들지 않고 있다. 도리어 최근의 증시 활황을 틈타 부지런히 펀드환매를 한 뒤 증시에서 빠져나가고 있다.
부동산이든 증시든, 활황세가 지속되려면 한가지 필요충분조건이 있다. 시쳇말로 "개미들이 낚여야 한다"는 것이다. 개미들이 두 눈이 벌겋게 탐욕에 젖어 빚을 내면서까지 부동산과 증시에 미친듯 몰려들어야 비로소 큰 장이 선다는 의미다. 그럴 때만 장을 세운 쪽이 크게 한 몫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낚이질 않고 있다. 이래서 최근의 활황세는 시한부 반짝 활황이라고 말들 한다.
더 큰 거품은 더 큰 재앙을 초래할뿐
1995~2000년 미국 주도로 세계적으로 큰 거품이 만들어졌었다. 'IT거품'이 그것이다. 그러다가 2000년 3월 미국에서 IT거품이 터지면서 세계경제는 일순간에 주저앉았다.
오래 전에 제조업이 망가져 금융에 의존해온 미국에겐 '다른 거품'이 절실히 필요했다. 모든 개미가 탐욕에 젖을만한 새 거품을 찾고 있던 미국 뉴욕의 중심부를 2001년 9월11일 빈 라덴이 강타했다. 미국정부와 월가는 "바로 이거"라고 무릎을 쳤다.
그후 미연준은 미친듯이 기준금리를 1%까지 끌어내렸다. 명분은 9.11테러 충격으로부터의 미국 및 세계경제 보호. 하지만 거짓말이었다. 9.11 테러는 경제외적 사건에 불과했다. 하지만 미정부와 월가는 이를 철저히 이용, 금리를 바닥까지 끌어내림으로써 세계적인 주식-부동산거품을 양산해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거품은 끝이 있는 법. 거품의 끝은 '구매력 상실'이다. 미국집값은 개미 소비자들이 더이상 월급을 받아 갚을 수 있는 수준 이상으로 폭등했다. 이처럼 구매력이 한계점에 도달했음을 인식하면서부터 거품은 무서운 속도로 파열하기 시작했고, 미국 및 세계경제는 2000년 IT거품 파열 당시와는 비교도 안되는 괴멸적 붕괴 국면을 맞기에 이르렀다.
'IT거품' 파열의 충격을 '자산거품' 생산을 통해 회피하려 한 미정부와 월가가 제 무덤을 판 꼴이다. 본디 더 큰 거품은 더 큰 재앙을 가져올 뿐이다.
정부도 "걱정된다"는 요즘 거품
지금, 미친듯 질주해온 자산시장이 멈칫하는 기미를 보이고 있다. 너무 올랐다는 판단에서다. 그토록 자산시장 활황을 염원하며 각종 규제를 풀어온 정부 스스로가 "걱정된다"는 얘기를 할 정도다.
거품 예찬론자들은 "거품이 있어야 경제가 돌아간다"고 한다. 적절한 거품이야말로 경제발전의 윤활유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거품 파열이 얼마나 경제에 치명적인 재앙을 가져오는가를 알면 감히 이런 소리를 해선 안된다.
한국은 구조적으로 더이상 거품 확대 재생산이 불가능한 임계점에 도달해 있다. 극단적 양극화로, 더이상 낚일 개미들이 없다는 의미다. 보다 정확히 표현하면 개미들의 '낚일 여력'이 소진됐다는 얘기다. 이는 거품으로 경제를 되살릴 생각을 말아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 같은 경우 "앞으른 거품없는 저성장을 해야 세계경제가 산다"고 조언하고 있다. 거품이 아닌 건전한 기업활동과 노동을 통해 '지속가능한 성장'을 하면서 양극화를 완화해 나가야 한다는 의미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지난 수년간 부동산거품이란 불로소득으로 양극화가 치유불능 수준으로까지 벌어진 사회일수록 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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