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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당, 절망감에 '선상반란' 조짐

"우리당 간판 갖고는 힘든 것 아니냐" "수도권 호남표도 이탈중"

7.26 재보선에서 또다시 참패한 27일 하루, 열린우리당 지도부의 모습은 밀려오는 해일에 맞서 중심을 잡고자 애쓰는 애처로운 선장과 같았다.

김근태 의장은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고위당정협의에 앞서 모두발언을 통해 “국민의 마음을 애타게 두드렸지만 그 이전에 국민에게 드렸던 실망이 더 컸기 때문에 문을 열지 못했다”며 “실망도 원망도 하지 않겠다”고 애써 의연한 모습을 보였다.

김한길 원내대표 또한 “선거결과가 미리 예상했던 대로라고 해서 우리가 아파하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내일은 있을 수 없다”면서도 “국민이 변화를 확인하고 체감할 수 있도록 당정이 함께 노력할 수 있기를 바란다”며 당정 혼연일체를 통한 위기극복을 강조했다.

7.26 참패후 당내 위기감이 확산되면서 열린우리당 지도부의 고민도 점점 깊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호남-수도권 의원들 "절망적"

그러나 선로에서 이탈하지 않기 위해 배의 핸들을 움켜쥐고 있는 지도부와 달리 선실에 머물고 있는 의원들의 생각은 달랐다. 재보선에서 참패했다는 사실 때문이라기보다 향후 전개될 여권의 진로와 대선 전망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다.

한 초선의원은 “국민들이 오죽했으면 탄핵하신 분을 살려줬겠느냐”고 장탄식했고, 또다른 초선의원은 “이제 우리당 간판으로는 어찌해볼 도리가 없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절망감을 토로했다.

가장 동요가 심한 곳은 호남권과 수도권 의원들이 머물고 있는 선실. 겉으로는 “25% 투표율의 보궐선거가 큰 의미가 있느냐”며 개의치 않는듯 말하면서도, 속으로는 전통적 지지기반인 호남층과 중도성향 표심이 민주당으로 이탈하고 있는 데 대한 위기의식을 감추지 못했다.

이들 사이에서는 "조순형 후보가 막판 역전에 성공한 것은 탄탄한 조직력을 갖고 있는 호남향우회가 조 후보의 당선을 위해 노력했기 때문"이라는 증언들도 흘러나오고 있다.

한 중진의원 측근은 “성북을에서 호남 조직에게 지지를 부탁하자 ‘어차피 합칠 텐데 당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하더라”고 전하며 “유권자들이 향후 정계개편까지 염두에 두고 전략적 선택을 한 것 같다”며 씁쓸해 했다.

수도권의 한 초선의원 또한 “성북을의 호남표가 우리당이 아닌 민주당 후보 쪽으로 결집됐다”며 “민주당 후보가 우리당 후보보다 당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기는 하지만 이러다가는 ‘집토끼’가 돌아오지 않을까 걱정스런 면도 있다”고 불안감을 드러냈다.

전남의 호남표에 이어 수도권의 호남표까지 이탈할 경우 열린우리당이 설땅은 없다는 위기감의 표출이다.

정대철-김혁규 행보에 예민 반응, 이목희 "정대철, 주제넘은 얘기"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계개편을 주장하고 나선 정대철 상임고문과 김혁규 전 최고위원 등의 행보에 대해서도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히 선거패배후 다음날인 27일 김혁규 전최고위원이 "발상의 전환을 통해 우리 정치와 사회구조 등에서 혁신적 중도 통합주의로 나아가야 한다"며 "각각의 입장이나, 유불리를 떠나 큰 틀에서 획기적 변화를 꾀해야 한다는 전제하에 낯가림을 없어야 한다"고 주장한 배경에 대해 관심이 컸다.

고건 전 총리 등과 광범위한 연대를 도모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해석가능하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김 전최고위원과 정동영 전의장이 절친했다는 대목을 놓고 '정동영계'의 꿈틀거림이 시작된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지도부는 당연히 이런 움직임이 반가울 리 없다.

이목희 전략기획위원장은 이날 오전 MBC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과의 인터뷰에서 정대철 상임고문이 최근 한화갑 민주당대표와의 만남에서 ‘노 대통령이 탈당하지 않으면 역으로 우리가 노 대통령에게 탈당을 요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고 전해진 것과 관련, “만약 그 말이 사실이라면 어리석고 주제넘은 얘기"라고 원색적 비난을 하기도 했다. 평소라면 감히 상임고문에게 할 수 없는 원색적 비난이다.

당 중진들의 잇따른 간단치 않은 움직임에 현 지도부가 얼마나 예민해하고 있는가를 극명히 보여주는 증거다.

소장파들 "대통령과 정부, 국민의 질책 더이상 외면 말라"

5.31지방선거 참패에도 불구하고 국민과 대립각을 계속 세워, 결과적으로 열린우리당의 침몰을 가속화시킨 노무현대통령에 대한 불만도 분출되기 시작했다. 특히 친노를 제외한 비노-반노 계열 소장파들의 불만이 봇물 터졌다.

김선미 민병두 양형일 장경수 의원 등 ‘처음처럼’ ‘국민의 길’ ‘희망포럼21’ 등 다양한 당내 모임 소속의 우리당 초선의원 39명은 27일 오후 국회기자실에서 성명서를 내고 “대통령과 정부는 국민의 질책과 요구를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된다”며 “(대통령과 정부는) 국민과 함께하는 방안들에 대해 더 깊은 성찰과 고뇌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김근태 의장을 중심으로 한 당 지도부에 대해서도 “국민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정책과 실천전략을 신속히 강구해야 하며, ‘비상체제’답게 결단하고 추진할 것을 주문한다”고 요구했다.

그러면서도 이들은 정계개편 움직임과 관련해선 “정계개편 논의가 앞당겨지거나, 활성화될 것이라는 분석에 동의하기 어렵다”며 “정계개편 논의는 정파적 이해를 떠나 역사와 정치 발전이라는 큰 틀 속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또 서울 성북을에서 민주당 조순형 후보의 당선으로 탄핵에 대한 국민적 재평가가 시작됐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이는 자칫 민주당 등이 주도하는 정계개편에 휘말려들 경우 자신들이 설땅이 없어질 것이라는 위기감의 표출이기도 하다.

국민참여경선 도입 통한 '제3인물' 영입 여부 주목

당 지도부도 당내 동요의 심각성을 잘 알고 있다.

김근태 의장은 이날 저녁 정례 간담회 형식을 빌어 비상대책위원들과 향후 대응방향을 논의할 예정이다.

우상호 대변인은 이와 관련, “그동안 미뤄두었던 당의 혁신 프로그램들을 이제 본격적으로 가동하기 시작할 것”이라며 “기간당원제도의 개선 및 당의 운영과 관련된 그간의 문제점으로 드러났던 산적한 현안들을 해결해가면서 국민의 신뢰와 믿음을 회복하기 위한 개전의 노력을 기울여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비대위 회동에서 기간당원제 완화 및 오픈 프라이머리(국민참여경선) 도입, 그리고 김혁규 전최고위원이 제기한 정계개편 등이 심도깊게 논의될 것임을 시사하는 설명이다.

특히 관심을 모으는 것은 친노세력이 강력 반발하고 있는 기간당원제 완화와, '제3의 외부인물' 영입을 위한 오픈 프라이머리 도입 여부다. 비대위가 잠정 합의한대로 이를 밀어부치기 시작할 경우 친노진영과의 일대 격돌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그러나 열린우리당 안팎에 "현재의 대권주자들 갖고는 국면 전환이 불가능하다. 대권주자들의 백의종군 자세가 시급하다"는 소리가 커짐에 따라 비대위의 발걸음도 빨라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올 여름은 열린우리당에게 더없이 '지글거리는 내부투쟁의 계절'이 될 전망이다.
정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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