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산층이 30%대로 붕괴됐다니..."
<뷰스칼럼> '절망하는 민심', 그리고 '당황하는 정부여당'
"요즘 들어선 버스 손님까지 줄어들었다. 정말 지독한 불황이다."
버스업계 관계자의 말이다. 지난해 유가가 폭등하고 금융위기가 시작됐을 때엔 버스 승객이 늘었다. 자가용들을 집에 두고 버스 등 대중교통을 이용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것이 요즘 들어선 버스 승객까지 줄어들었다. 주부 등이 버스비조차 아껴 움직이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요즘은 누런 거면 다 들고 나온다."
금 유통업계 관계자의 말이다. 요즘 금값이 말 그대로 금값이다. 앞으로 더 오를 것이란 게 지배적 관측이다. 지금보다 2~3배 오를 것이란 외국계 전망도 많다. 그런데도 집안에 있는 아이 돌반지 등 금붙이란 금붙이는 모두 들고 나온다 했다. 당장 살기 어려워서다. "한국에서 얼마나 금이 쏟아져 나오는지, 홍콩 금값이 떨어질 정도"라고 하기도 했다. 한국 금이 홍콩으로 흘러가면서 국제적 금값 상승을 막고 있다는 얘기다.
"요즘은 폭탄도 세 종류다. 폭탄, 원폭, 수폭...매출이 20~30% 줄면 폭탄 맞았다 하고, 반토막 나면 원폭 맞았다 하고, 거의 끊기면 수폭 맞았다 한다. 원폭, 수폭 맞은 사람들 수두룩하다."
한 중소기업인의 말이다. 주위에서 중소기업들이 얼마나 줄줄이 쓰러져가고 있는가를 비유해 한 말이다. "맞다 보면 맷집이 생기지도 않겠나"라며 쓴미소를 짓기도 했다.
최근 접해본 '민생'이다.
10명중 6명 "나는 빈곤층"
"정말 걱정이다. 국민들 삶이 너무 어려워지고 있다. 일자리가 없어 젊은이들이 자살하고...그렇다고 세계가 다 이 모양이니 당장 뾰족한 해법도 없고..."
한 한나라당 의원의 탄식이다. 그의 말에서 읽을 수 있듯 요즘 청와대도, 한나라당도 최대 관심사는 '경제'다. 경제가 무너져 내리면서 물밑 민심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는 게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여당은 요즘 비공개 여론조사 등을 통해 민심읽기에 주력하고 있다. 조사결과는 충격적이라 한다. 최근 여권에 가장 충격을 준 조사결과는 국민 10명중 6명 이상이 자신이 '빈곤층'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이들은 '돈 때문에 힘들다'고 했고 '우리 사회에선 능력이 있어도 성공하지 못한다'고 했다 한다.
우려했던 '중산층 붕괴'가 시작된 것이다. 자신을 '빈곤층'이라 생각하는 이들 중 상당수의 소득 등 경제지표는 아직 빈곤층이 아니다. 그러나 앞날에 대한 불안, 공포로 이들의 심리적 상태는 이미 빈곤층이다. 여권은 이를 '주관적 빈곤층'이라 명명했다 한다. 하지만 불황이 계속되면 '객관적 빈곤층'이 되는 것도 시간문제다.
IMF사태때 한번 중산층이 크게 부서졌다. IMF 발발 전만 해도 '주관적 중산층'이 70~80%에 달했었다. 그러던 것이 IMF사태를 겪으면서 50% 전후로 무너졌다. 그러다가 지금은 60%이상이 자신을 '빈곤층'이라 생각하고 있다. 뒤집으면 중산층이 30%대로 무너졌다는 의미다.
정부여당이 "투자할 데가 없다는 건 알지만 그래도 투자하라"고 연일 대기업을 닦달하고, 설탕값을 올리겠다고 발표한 기업이 급작스레 인상을 백지화하는 것도 다 이런 이유에서다. 그만큼 정부여당이 초조하고 있는 것이다.
"내년 선거만 생각하면 머리가 지끈"
"내년 선거만 생각하면 머리가 지끈거린다."
수도권의 한 지자체장 말이다.
그의 지역은 아파트가 80% 정도다. 지난번 선거때는 한나라당이 거의 싹쓸이했다. 그도 몰표를 받아 압승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파트 민심'이 그게 아니다. 싸늘하다. 그도 그럴 것이 우선 아파트값이 30%이상 뚝 떨어졌다. 경제가 급랭하면서 주민들 소득도 크게 줄어들고 있다. 불만들이 대단하다. 내년 선거 생각만 하면 두통이 날만하다.
물밑 민심이 이렇다 보니, 정부여당은 속으로 끙끙대고 있다. 올해 두차례 재보선은 그렇다 치더라도, 내년엔 중간평가인 지방선거가 기다리고 있다. 지방선거에서 참패하면 남은 3년은 고통의 나날일 게 불 보듯 훤하다.
그러다 보니 요즘 정부여당이 원망을 분출하는 빈도가 부쩍 잦아지고 있다. 돈을 쌓아놓고 있는 대기업들도 원망스럽고, 제품값을 인상하려는 기업도, 사람을 자르려는 기업도 괘씸해 보이는 듯 싶다. 요즘 들어선 까놓고 "재계, 당신들이 해달라는 것 다해 줬는데 이러기냐"는 불만까지 서슴치 않는다.
하지만 이럴수록 문제는 더 꼬여갈 뿐이다. 기업도 다 같은 기업이 아니다. 많지는 않지만 요즘 환율 특수를 보는 V자형 기업들도 있다. LCD 등이 그렇다. 반면에 수주조차 할 수 없어 환율 특수가 제로인 U자형 기업들도 있다. 조선소가 대표적 예다. 아예 경쟁력을 상실해 도태가 불가피한 L자형 기업들도 많다. 다수의 건설사들이 그런 예다.
이처럼 상황이 각기 다른데 닦달만 한다고 문제가 풀릴 리 만무다. 그보다는 V자 기업은 더 잘하라고 격려하고, U자형은 어떻게 살려낼까 고민하고, L자형은 과감히 정리해야 한다. 그것이 '한정된 재원'을 갖고 중장기가 될지도 모를 대불황에 살아남을 수 있는 지혜일 거다.
물론, 앞으로 선거 등 정치일정을 생각하면 다급할 것이다. 표를 잃고 싶지 않을 거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정치논리의 덫에서 벗어나야 한다. 민생만 생각하고, 경제만 생각해야 한다.
미국 매사추세츠 기술연구소의 피터 테민은 "경제가 정책당국자들의 대응보다 빠르게 무너지고 있다"고 했다. 공황적 상황 전개에 쩔쩔매는 나라는 우리 정부뿐이 아니다. 다 그렇다. 누가 먼저 빠져나올지가 관건이다. 그러기 위해선 정치논리에서 벗어나 국민과 소통해야 한다. 진인사대천명의 '비운 마음', 이게 절망하고 있는 다수 국민과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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