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 안된 대통령' 계속 나와선 안돼"
<인터뷰> 박원순 희망제작소 이사 "내가 대권후보? 말도 안되는 작문"
여의도연구소(한나라당 싱크탱크)가 지금 국가를 위해 뭘 준비하고 있나? 또 열린사회정책연구소(열린우리당 싱크탱크)는 뭘 준비하고 있나? 매년 적게는 7백억원, 선거가 있는 해는 1천3백억원까지 국고 보조금을 받고있지 않나? 그 중 2%는 반드시 정책연구에 써도록 돼 있음에도 하는 일이 없다.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한나라당이 우리나라의 미래를 디자인하는 그런 정책을 내놓고 있기나 하나? 열린우리당 역시 무엇을 내놓고 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렇게 싸우다가 또 둘 중 누군가는 정권을 넘겨받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대통령 인수위에서 취임 몇 달을 앞두고 또 부랴부랴 정책 만드느라 바쁠 것이다. 정책이란 게 몇 달만에 다듬어질 수 있는 것인가?"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가 진단한 우리 정치권의 현주소다.
박 이사는 18일 <뷰스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진단하며 향후 우리 사회에서의 대안 창출의 중차대성을 거듭 강조했다.
박 이사는 "정책에 기초한 정책중심의 경쟁 정치가 되지 않으면 대한민국에서 이러한 시행착오는 끝없이 반복될 것"이라며 "'준비되지 않은 대통령'이 계속해서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경고했다.
대권후보론에 "대권 꿈꾼다면 왜 이런 운동 하겠나"
박 이사는 뉴라이트 진영의 제성호 중앙대 교수가 제기한 "노무현대통령의 히든카드는 박원순"이라는 자신의 '대권 후보론'과 관련, "일을 열심히 하고 있는 사람을 괜히 트집잡는다"고 강한 불쾌감을 드러냈다.
박 이사는 "사람들은 제 교수가 몸담고 있는 곳을 소위 '뉴라이트'라고 한다. 뉴라이트가 무엇인가? 과거의 보수주의자들이 부정적인 요소들이 많았기 때문에 그것을 새롭게 혁신해 우리사회 미래를 만들어보겠다는게 뉴라이트의 취지 아닌가? 그런데도 멀쩡하게 일언반구도 안하는 사람을 불러다가 ‘저쪽 후보다, 그래서 경계해야 된다’ 그런 식의 논법 아닌가? 그것이 새로운 시대를 준비한다는 우파의 정당한 자세라고 보는가?"라며 제 교수를 비판했다
박 이사는 제 교수 주장후 계속되고 있는 대권 도전설과 관련, "대권을 꿈꾼다면 굳이 이런 시민운동을 왜 하고 있겠나. 대형강단에나 서서 되도록 많은 사람들 하고 악수나 하고 그러지 이런 바보같은 짓을 할 필요가 없잖은가"라고 재차 일축했다.
"대안없는 성장우선론자들과는 백번 싸워 백번 이길 자신있다"
박 이사는 우리경제 침체기가 길어지면서 성장우선론이 고개를 들고 있는 것과 관련, "성장의 동력은 ‘우리가 성장하자, 성장하자’ 그렇게 해서 될 일이 아니다. 나는 그 사람들과 백번 싸워 백번 이길 자신이 있다. 왜냐면 그 사람들은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말로는 뭘 못하나? 말로는 돌맹이 하나도 움직일 수 없다"고 비판했다.
박 이사는 "과거로 돌아가자는 것은 후퇴라고 생각한다"며 "역사는 전진해야지 뒷걸음질 칠 수는 없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그는 "박정희 시대의 효율성이 장점이 있지만 그 방식이 지금 통할 수 없지 않은가. 훨씬 민주적인 방식으로 국민의 동의를 얻어가면서 해야지 옛날 박정희나 전두환 식으로 억압이나 폭력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지도자들이 훨씬 민주적이고 양보해 가면서 해야한다"고 지적했다.
지난 3월 희망제작소 출범 이후 꾸준히 지역 민심 탐방을 하고 있는 박 이사는 "내가 많이 배우고 있다. 그러면서 자연히 우리사회 현안이라고나 할까, 큰 비전, 미래를 생각하고 얻게 되더라. 한 사람의 생각과 비전과 상상력이 소중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한 사람의 생각을 듣는 게 매우 중요하다"며 민심 탐방에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차기 대권주자들에게도 "대선에 나가려는 사람들도 전부 이런 식으로 다니라고 해야겠다"며 "(앞으로 대선운동기간까지 남은) 10개월을 다들 그렇게 민심투어, 지역 투어를 해보면 좋겠다고 권하고 싶다"고 의미 있는 조언을 하기도 했다.
다음은 18일 서울 종로구 수송동 희망제작소에서 행한 박 상임이사와의 인터뷰 전문.
박원순 상임이사 인터뷰 전문
뷰스앤뉴스(이하 뷰스) 희망제작소 출범 의의를 찾는다면?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이하 박원순) 희망제작소는 싱크탱크다. 보통의 연구소라는 개념은, 이론적인 작업을 하는 곳을 말한다. 그러나 우리들은 굉장히 실사구시적인 관점에서 접근한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접근, 즉 다른 상상력을 갖고 우리사회 어젠다를 바라보자는 그같은 고민을 해오고 있다.
그런 차원에서 무엇보다 문제의식을 가지는 것이 바로 지역(지방)이 상대적으로 홀대받아왔다는 것이다. 물론 지역에 대해 지금까지 고민해 온 사람들도 많지만 우리 사회 전체로 볼 때는 미약하다. 심지어 시민운동조차도 중앙적 관점이라고 할까, 그런 접근을 많이 해왔기 때문에 지역적 관점으로 우리사회를 보는게 어떨까 해서 지역을 다니면서 계속 얘기를 듣는 '인터뷰 기행'을 하고 있다. 지금까지 5백여명을 지역에서 만났다. 광주, 전남, 전북, 충남 이렇게 다녀왔다. 이를 자료집 책으로도 내볼까 생각 중이다.
내가 많이 배우고 있다. 그러면서 자연히 우리사회 현안이라고나 할까, 큰 비전, 미래를 생각하고 얻게 되더라. 한 사람의 생각과 비전과 상상력이 소중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한 사람의 생각을 듣는 게 매우 중요하다.
뷰스 지역시민과의 소통에 대한 어려움은 없나?
박원순 우리들이 일반 시민단체처럼 당장 길거리에 나가 플랭카드를 드는... 그런 일을 하고자 하는게 아니다. 지금 우리사회는 좋은 어젠다들만 있으면 정부든 우리사회 어느 기관이든 받을 거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좋은 어젠다들을 생산하는가가 문제이지 판매마케팅은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내 경험상 참여연대 당시 15대 국회 때 78개 법안을 청원했는데 절반 가까이가 반영돼 입법화로 이어졌다. 그 중에서도 부패방지법, 국민기초생활보장법 등은 우리사회 의 큰 변화를 몰고온 의미있는 법률이다.
초기 부패방지법에 대해 얘기할 때만 해도 나조차도 '과연 될까' 그런 의구심을 갖었는데, 6년이 흐르니까 입법안으로 현실화됐다. 사회적으로 꾸준히 누군가가 주장하면 되는 게 우리 사회다. 확실히 우리 사회는 그만큼 다이나믹한 사회라는 의미다. 참여연대가 했던 소액주주운동도 지금에 와서 지배구조 측면에서 많은 개혁이 뒤따르고 있고 자금의 투명성, 분식회계 문제에서도 많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본다.
물론 그런 부패상이 완전히 없어졌다고 보기는 힘들겠지만 적어도 우리 사회의 큰 방향을 제시하는 데는 많은 도움이 됐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가 나아갈 길이 멀다. 우리 사회가 지금보다 더 전진하기 위해서는 현재보다 훨씬 더 치밀한 계획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웬만한 시대적 통찰력을 갖고 있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것이 바로 현재 시민운동이 직면한 어려움이라고 본다. 언론 역시 마찬가지다. 언론과 정당, 지식사회 전반이 좋은 아젠다를 발굴하기 위한 경쟁을 해 나가야 한다.
뷰스 그러나 최근 시민단체, 시민운동에 대한 기대감이 많이 줄어든 것 도 사실이다. 그러한 문제제기 차원에서 우파 시민단체가 대항마로 전면에 나서고 있다. 시민들이 과거와 같이 시민운동에 대해 신선함을 못 느끼고 있다고도 해석되는 대목이다.
박원순방금 말한대로 그같은 현상이 있긴 하다. 우리 사회에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시대가 가장 요구하는 어젠다를 누가 선점하고 그것을 추진하는가의 문제라고 본다. 그런데 정치인들이 그런 일을 하고 있지 못하다. 그같은 전문성, 열정, 사회적 헌신성도 정치권에게 기대할 수 없는 상태다. 지금까지는 시민단체들이 상대적으로 그 역할을 해 왔다.
시민단체의 위기의 요인은 여러 가지가 존재하겠지만 가장 근본적인 요인은 바로 시민단체가 이제껏 제기해왔던 어젠다가 사회적으로 수용되면서 스스로 그만큼 새롭고 파괴적인 어젠다가 더 이상 생산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를 좋게 해석하면 우리사회가 그만큼 진전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내가 참여연대 활동할 당시, 사법개혁에 관한 책을 발간했는데 얼마전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에 들어가보니 거의 대부분이 절충선에서 받아들여진 것을 확인했다. 그만큼 우리가 추구하고 주장했던 어젠다가 현실화의 길에 접어들었다는 얘기다.
그렇다고해서 시민운동이 할 역할이 이제 없어졌느냐? 그건 아니다. 이제는 시민운동이 좀 더 미시적으로 파고들고, 좀 더 현장 속으로, 삶 속으로 가야 한다. 이것이 바로 시민운동의 전환기라는 것이다. 이 전환기를 잘 대처하지 못한다면 시민운동도 위기로 접어들 가능성이 크다.
뷰스 현재 우리사회 노동, 사회, 문화 전반에서 갈등을 빚고있다. 이른바 사회적 조정력이 부재한 시대에 살고 있다. 과거에 비해 통합적 조정력, 갈등 해소 능력이 떨어진다고 보여진다.
박원순 맞는 얘기다. 그러나 그런 사회적 갈등이나 대립의 문제를 우선 풀어내야하는 쪽은 다름아닌 정치권의 몫이다. 정치권이 바로 그것을 못하고 있다. 못하고 있는데 그치지 않고 오히려 그쪽에서 갈등의 생산자로 활약하고 있다.
시민단체들은 사회적 화합자의 역할을 한다기보다 문제 제기자로서의 역할이 더 크다. 그런 것까지 시민단체에 요구하는 것은 무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민단체들이 보다 합리적이고 균형잡힌 목소리로 이 사회를 논할 수 있어야 한다.
어떤 측면에서는 언론도 그런 갈등을 양산해 내는 진원지라고 보여진다. 사회의 어떤 진실적이고 객관적 진실보도를 하기보다 한 편이 돼서 보도하고 논평하는 그런 경향을 띠고있다.
최근의 언론보도를 바라보고 있으면 '너무 일방적이다'라는 생각을 자주하게 된다. 왜 그런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안갈 지경이다. 언론사 사장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기자들이 그렇게 확 바뀔 수 있나?
이념은 누구나 가질 수 있다. 문제는 팩트(사실)다. 특히 언론의 경우 최소한의 팩트위에서 바라보는 관점을 제기해야하는데, 아예 팩트 자체를 다르게 보도하는 작금의 이 상황은 너무나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대권후보론은 말도 안되는 얘기"
뷰스 다른 이야기를 해보자. 일각에서 소위 박 이사를 겨냥해 '대권후보' 중 한 사람으로 지목하고 있다. 오늘(18일) 아침에도 모 언론에서 박원순의 희망제작소를 대권을 꿈꾸는 ‘대망 제작소’라고 지목한 보도도 있었다.
박원순 어떤 기자가 나에게 그런 말을 묻길래 분명 '말도 안되는 이야기'라고 그랬다. 그러면 기자는 쓰지 말아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런데도 아무런 근거없이 또 그렇게 썼더라. 이것도 일종의 팩트 왜곡 아닌가. 팩트 자체도 제대로 안 보고 쓴 것 아닌가 말이다.
뷰스 비단 언론에서만 떠드는 이야기는 아닌 듯하다. 얼마 전 뉴라이트 전국연합의 제성호 중앙대 교수도 ‘박원순 대권론’을 제기한 바 있는데.
박원순 그렇다면 그건 오히려 그쪽(제 교수)에 물어보라. 나는 우리사회에 추상적인 문제를 놓고 연신 설만 제기하는 풍토에 문제제기를 하고 싶다. 희망제작소는 굉장히 구체적인 문제를 가지고 이제껏 고민해 오고 있는데 사람들은 자꾸만 이런 것은 안 보고 큰 틀에서만 바라보려 한다.
사람들은 제 교수가 몸담고 있는 곳을 소위 '뉴라이트'라고 한다. 뉴라이트가 무엇인가? 과거의 보수주의자들이 부정적인 요소들이 많았기 때문에 그것을 새롭게 혁신해 우리사회 미래를 만들어보겠다는 게 뉴라이트의 취지아닌가? 그런데도 멀쩡하게 일언반구도 안하는 사람을 불러다가 ‘저쪽 후보다, 그래서 경계해야 된다’ 그런 식의 논법 아닌가? 그것이 새로운 시대를 준비한다는 우파의 정당한 자세라고 보는가?
좌파도 마찬가지다. 좌파 지식인 중에서도 현 정부에 들어가 있는 사람들이 있다. 혹은 국회로 달려간 사람들도 있다. 과연 그 사람들이 우리 시대의 대안을 가지고 있는가? 나는 이런 측면에서 뉴라이트나 그 사람들이나 크게 다를 바 없다고 본다.
나는 우리 시대는 굉장히 미시적이고 구체적인 것을 가지고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본다. 현장 속으로 달려가 구체적으로 시민들이, 국민들이 무엇에 힘들어 하는지 그 고민들을 들어봐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야만 객관적 진실에 다가갈 수 있다고 본다. 그래야만 대안이 나온다. 그런데 계속 큰 틀에서만 겉도니까 현장하고 전혀 관계없는 얘기만 나오고, 아무리 얘기해도 객관적 진실은 못 보는 것이다. 조금은 더 아래로 가서, 현장속으로 가서 사람들의 얘기를 듣는 것이 필요하다.
뷰스 우파진영 뿐만은 아닌 것 같다. 정치권에서도 ‘박원순 대권 후보론’이 공공연하게 흘러나오고 있는 듯하다.
박원순 과거 예를 들어보자. 예전에 '한글과컴퓨터' 이찬진 사장을 정치권이 기를 쓰고 모셔가려 했다. 결과는 어땠나? 이 사장은 자신의 회사도 망하고 개인도 상처입지 않았나? 그런 일이 어디 한 두 번인가?
모르겠다. 물론 나는 지금까지 내가 해 온 일이 우리 사회 공동체의 삶의 질과 직결된 일이었기 때문에 정치권에서 자꾸만 그런 말을 주고 받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지금까지 해 왔던 일을 누군가가 대신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면, 나도 한번 내 효용성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정치라는 것도 어차피 우리 사회 공동체를 위한 일이기 때문에 내가 지금껏 해 온 일과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하지만 정치권에서 힘을 더 발휘할 수 있는 사람들은 따로 있다. 이 일을 열심히 하고 있는 사람을 괜히 트집 잡고 있다.
"국회의원 할 때마다 아이큐 10씩 떨어진다더라"
뷰스 만약 정치권에서 제의가 온다면 어떻게 대처하겠나?
박원순 사실 나는 그같은 제의를 그 전에도 많이 받아왔다. 어떤 이유로든 나는 내가 가는 길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있고 지금까지 그 노선을 수정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뷰스 필요성은 못 느꼈지만 그럼에도 자꾸만 제안이 온다면 곤란한 일 아닌가? 최근 사회적 혼란이 심한 것도 우리 사회가 새로운 대안세력, 대안인물을 바라고 있다는 반증 아닌가 싶다. 그같은 갈등을 조정해 줄 새로운 사회적 리더를 필요하다는 측면도 있다.
박원순 그러나 나는 그런 생각을 해 본다. 우리사회가 정치 지도자들에서부터 시작해 저 아래 평범한 국민들에게까지 공부하는 민족이 돼야한다고 생각한다.
독일, 일본 등 선진국들을 몇 달씩 다니다보면 그쪽 시민들이 '공부를 엄청나게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된다. 시민의식에서부터 정치의식에 이르기까지 시민들의 인식 수준이 엄청나게 높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 리더부터가 그런 인식을 지니고 있지 못하다. 속된 말로 자신이 곤란한 상황이 오면 몇 달씩, 몇 년씩 연수한답시고 스탠포드 대학이나 '후드 연구소' 같은 곳에 연수를 다녀온다. 그건 아니다.
선진국들의 시민 수준, 리더 수준이 얼마나 높은지 가령 통일문제에서 따져 보자. 내가 독일을 3개월 동안 여행할 기회가 있었다. 그 때 내가 만난 독일 정치인, 동.서독 통일에 관여했던 사람들, 동독지역 내 민주화 인사들, 일반 시민들, 기업가들은 정말 달랐다. 수 십명을 만나보니 우리가 통일에 대비해야 할 문제점들을 고스란히 알 수 있었다. 우리 정치인들은 그런 인터뷰 기행이라도 해 볼 필요가 있다.
특히 정책 결정과정에 있는 사람들, 주요 정책 참여자들에게 그런 것이 절실하다고 본다. 자꾸 남의 것을 보지 않고 자신이 하던대로만 생각하고 행동하면 나이가 들수록 자기고집만 강화될 뿐이다. 공자가 말씀한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 )’이 굉장히 중요한 말임을 느끼고 있다.
최열 환경재단 대표가 사석에서 ‘국회의원들은 국회의원 할 때마다 아이큐 10씩은 떨어진다’고 우스개 소리를 하더라. 정말 국회의원들은 선거에 떨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아이큐가 떨어지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여러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줄 알아야 한다.
"박정희 방식이 지금 통할 순 없다"
뷰스 최근 워렌 버핏 해서웨이 회장과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의 ‘아름다운 기부’가 세간에 회자되고 있다. 아름다운재단의 활동이 꾸준하지만, 그들에 비하면 우리 기업에서는 그런 목소리가 적은 것 같다. 우리 나라에서도 이런 기부 문화가 속히 자리잡아야 하지 않겠나.
박원순 우리나라 기부문화는 ‘할머니 기부 미담’이다. 평생 콩나물 장사를 하며 모은 자신의 전 재산을 대학에 쾌척한 한 할머니 이야기, 또 다른 국밥집 할머니 이야기, 한복 할머니 이야기, 김밥 할머니 이야기 등 할머니들의 기부 미담만 언론에 넘쳐나고있다. 물론 최근에 들어서는 조금 달라진 측면도 있지만 아직도 기부문화에 대해서만큼은 우리사회가 진화돼야 할 길이 너무나 멀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우리사회는 ‘탐욕의 시대’라 생각한다. ‘과잉 기대와 과잉불만의 시대, 과잉욕구의 시대’라고 생각한다. 인생의 진정한 의미가 뭔가? 우리가 얼마나 자기 성찰의 삶을 살고 그러면서 우리사회가 풍요로워지고 평화로운 사회로 갈 수 있느냐를 고민하는 것 아닌가? 지금 우리 사회는 그런 것을 고민하는 ‘전환기에 놓인 시대’라고 생각한다. 검소하고 검약한 선진국으로 도약해야 할, 업그레이드의 전환기 시대라고 생각된다.
뷰스그러나 지금 사회분위기를 짚어보면 특히 경제, 사회 문제의 경우 분배의 중요성이 이야기되다가 갑자기 성장쪽으로 무게가 실려가는 느낌이다.
박원순 공감한다. 그러나 바로 그같은 성장을 이뤄내기 위해서라도 이같은 기부문화가 더욱 필요하다는 얘기다. 독일을 한번 가 보라. 독일을 한 달만 여행해 봐도 우리 사회가 어떻게 가야 할 지를 알 수 있다. 정치인들이, 사회인사들이 현장의 목소리, 바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란 소리다. 어떤 정치인들이 어떻게 그 나라를 이끌고 있는지 보기만 해도 답이 절로 나온다.
대한민국에 분명 성장모델이 있다고 본다. 삼성이나 현대자동차가 잘 되도록 국가적으로 밀어줘야 된다고도 생각한다. 동시에 수천 수만의 소기업들이 개미떼처럼 일어나 그들중에 중기업이 나오고, 또 그같은 중기업들 중에 대기업이 나오는 그런 것을 꿈꿔야 한다.
가령 마이크로소프트사와 같은 대기업들은 어떻게 출연했나? 어느 날 대학 주차장에서 생겨난 게 아닌가. 그런 꿈들이 실현될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 창의적인 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
편부 슬하에서 그 껄렁껄렁했던 스티브 잡스가 어떻게 애플 컴퓨터를 만들었나? 대학이 있었기 때문 아닌가. 그리고 그 대학에 어떻게 그가 들어갔나? 바로 기부의 힘이다. 기부를 통해 만들었던 스탠포드 대학이 스티브 잡스와 같은 인물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성장의 문제는 바로 이런 측면에서 바라봐야 한다. 성장의 동력은 ‘우리가 성장하자, 성장하자’ 그렇게 해서 될 일이 아니다. 나는 그 사람들(성장우선론자들)과 백번 싸워 백번 이길 자신이 있다. 왜냐면 그 사람들은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말로는 뭘 못하나? 말로는 돌맹이 하나도 움직일 수 없다.
뷰스 그럼에도 최근 우리사회에는 과거 지향적인 목소리가 상당히 힘을 얻고 있는 느낌이다.
박원순 우리사회의 과거사 문제, 특히 박정희 향수와 같은 문제에 있어 상당부분 좌우 이념 대결로 몰고가는 측면이 크다고 본다. 나는 좌파도 우파도 아니다. 나는 실사구시적 실증주의자라고 생각한다. 우리한테 유익하고 지금 의미있는 정책이라면 지옥 끝까지라도 찾아가서 가져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좌든 우든, 무엇이든가리면 안된다고 본다. 물론 정책의 거시적인 측면에서는 그런면을 따지지 않을 수 없지만 그래도 실사구시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던 과거로 돌아가자는 것은 후퇴라고 생각한다. 역사는 전진해야지 뒷걸음질 칠 수는 없는 것이다. 물론 과거 요소 중에서 계승해야 할 부분들이 있다고 본다. 구태여 본다면 박정희 시대의 효율성이 장점이 있지만 그 방식이 지금 통할 수 없지 않은가? 훨씬 민주적이고 국민의 동의를 얻어가면서 해야지 옛날 박정희나 전두환 식으로 억압이나 폭력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리더들이 훨씬 민주적이고 양보해 가면서 해야한다. 그런데 지금 정치인들은 자신은 하나도 양보하지 않으면서 상대에게만 양보를 강요한다.
그건 기업도 마찬가지다. 정말 위대한 기업인이라면 이렇게 하지는 않을 거라 본다. 종업원들은 자기 식구가 아닌가? 자기 형제와 동료애로 종업원들을 대한다면 지금처럼 이렇게 노사분규가 심각하게 전개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회창 정권이 출범했어도 마찬가지였을 것. 정책 부재가 문제"
뷰스 참여정부 출범 초기, 기대가 많았다. 그러나 최근 참여정부 지지도가 바닥이다. 사실상 정권 실패로 판정나고 있다. 그간의 참여정부를 평가해 달라.
박원순 나는 참여정부에 대해 사실 비교적 처음부터 비판적 입장에 서 있었다. 그럼에도 노 대통령의 개인적 훌륭함이라는 것은 있다고 본다. 지역감정의 문제라든지, 탈권위주의 문제, 또 내가 자세히 말할 수는 없으나 정경유착의 문제에서도 이 정권이 이권 개입과 같은 이런 문제가 과거정권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이 없어졌다고 본다. 행정 혁신에 있어서도 굉장히 노력하고 있다고 본다.
다만 상대적으로 이런 부분들이 언론이나, 사회적으로 부각이 안된 측면이 많다고 본다. 이런 부분들은 노 대통령 퇴임이후 긍정적 면으로 평가받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문제는 노 정권의 잘못된 부분이다. 원인은 역시 준비되지 않은 정권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 그것은 노 대통령에 결코 한정되는 문제도 아니다. ‘이회창 정권’이 탄생했다 하더라도 마찬가지였다고 본다. 왜냐하면 열린우리당이나 한나라당 양당이 지금 하는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여의도연구소가 지금 국가를 위해 뭘 준비하고 있나? 또 열린사회정책연구소는 뭘 준비하고 있나? 매년 적게는 7백억원, 선거가 있는 해는 1천3백억원까지 국고 보조금을 받고있지 않나? 그 중 2%는 반드시 정책연구에 써도록 돼 있음에도 하는 일이 없다.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한나라당이 우리나라의 미래를 디자인하는 그런 정책을 내놓고 있기나 하나? 열린우리당 역시 무엇을 내놓고 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렇게 싸우다가 또 둘 중 누군가는 정권을 넘겨받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대통령 인수위에서 취임 몇 달을 앞두고 또 부랴부랴 정책 만드느라 바쁠 것이다. 정책이란 게 몇 달만에 다듬어질 수 있는 것인가?
정책에 기초한 정책중심의 경쟁 정치가 되지 않으면 대한민국에서 이러한 시행착오는 끝없이 반복될 것이다. 그래서 정책연구소를 굉장히 소중하고 깊이있게 다루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준비되지 않은 대통령'이 계속해서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뷰스 그런 측면에서 정책에 주안점을 두고 이제껏 활동해온 박 변호사에게 정치권이 러브콜을 해 오는 것이 아닌가?
박원순 다시 한번 말하지만 참여연대 때 우리가 주장했던 부패방지법이 입법화됐을 때 ‘아 우리가 뭔가를 계속해서 주장하고 있으면 되는구나' 그런 생각을 했다. '우리가 열심히 공동체를 위한 아젠다를 열심히 만들면 되겠구나'하는 그런 생각을 하게됐다. 내가 주장하는 것이 공론(空論)뿐이라면 한번 (대권을) 생각해 보겠다. 좌절을 많이 겪어 본다면 모르겠다. 그러나 아직은 모르겠다. 내가 좌초된다면 (대권을) 생각해 보겠다.
뷰스 좌초될 일은 없어 보이는데...
박원순 그렇다면 이 일을 계속 해야하지 않겠나? 세상에 어떤 일도, 성과 열을 다해서 열정을 다 바쳐서 하면 안되는 일은 없다고 본다. 대권을 꿈꾼다면 굳이 이런 시민운동을 왜 하고 있겠나. 대형강단에나 서서 되도록 많은 사람들 하고 악수나 하고 그러지 이런 바보같은 짓을 할 필요가 없잖은가?
나는 몇 달전부터 지역을 돌아다녔는데 상당히 많은 것을 깨닫고 얻게되더라. 그래서 대선에 나가려는 사람들도 전부 이런 식으로 다니라고 해야겠다. 10개월을 다들 그렇게 민심투어, 지역 투어를 해보면 좋겠다고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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