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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을 닮아가는 사람, 손학규

<현장> "'우리는 대한민국에서 방치된 국민' 푸념에 짠하더라"

1. 예고하지 말라 방문하는 곳은 그곳이 농촌마을이건, 공장이건 해당 지역민들에게 절대 사전 고지하지 않는다. 주변 사람을 불편하게 하면 안 하느니만 못하다. 비서나 비서와 연고가 있는 분들에게 사발통문을 돌려 방문지를 찾고 정한다.

"마을 이장을 찾아 도움을 청하면 아무리 부탁을 해도 지사가 온다는 사실이 읍, 면은 물론이고 도지사에게까지 보고가 되어 행사처럼 되어 버린다. 양복 쫙 빼 입고 모내기 하는 현장으로, 수해복구 현장으로 달려와 인사하고 악수를 청하는데 말릴 도리가 없다. 조용조용 다니는 게 상책이다."

2. 일이 없으면 만들지 말라 방문한 곳에 거들 일이 있으면 같이 하지만, 마을에 일이 없으면 마을 주민 간담회 시간을 더 갖고, 그도 아니면 일정을 줄이는 한이 있더라도 작위적으로 일을 만들지 않는다.

"일 없는 날은 횡재한 기분이겠다고 묻는 분이 있는데 그렇지 않다. 솔직히 일은 육체 노동이라 참으면 되는데 말씀을 나눈다는 것은 정신노동이 아닌가. 그게 더 힘들 수 있다."

3. 자신이 해야 할 일은 비서에게도 시키지 말라 누군가와 하루 24시간, 1백일 동안 같이 생활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자신의 일은 자신이 알아서 하는 것이 팀내 단합을 도모하는 제 1원칙이다.

"도저히 세 사람이 함께 잘 수 없을 때 빼고는 지사님과 나, 그리고 기록하는 분 셋이 한 방에서 자는데 지금까지 단 한번도 이부자리를 우리가 깔아드리거나 개어드린 일이 없다. 어느새 당신이 해버린다."

4. 일이 무서우면 나서지 말라 민심 대장정이라고 해서 꼭 삽을 들고, 괭이를 들고 땀을 흘려야 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누구나 다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형편에 맞게 하는 것이 지치지 않고 오래하는 법이다.

"노동에 대한 겁이 정말 없는 것 같다. 마을 사람들이 '저런 사람 처음 봤다'고 혀를 내두를 정도다. 수해복구현장에서 일하는 지사님을 돕겠다고 온 젊은 모 의원은 '나는 도저히 못 하겠다'고 나자빠지는데 지사님은 끄덖없이 일을 더 했다. 젊었을 때 노동을 해보셨기 때문에 일에 대한 두려움이 육체적으로도 그렇고 정서적으로도 없는 것 같다."

5. 메모는 묵히면 사장된다. 묵히지 말라 농부, 노동자, 상인, 택시기사, 주부 누구를 만나 이야기 하든 내용은 반드시 본인이 직접 메모를 하고, 기록 비서도 내용을 기록한다. 그날 그날의 소회는 일기를 통해 남긴다.

"지사님은 새벽 5시에 일어나서 7시까지 전날 메모를 기초로 당신이 직접 홈페이지에 일기를 쓰고, 기록 비서는 간담회가 끝나는 즉시 바로 서울의 정책팀으로 메모를 송고한다. 메모란 하루이틀 묵히면 사장된다는 생각에서다. 달리는 사무실인 차 안에 복사기, 팩스 등이 다 있다. 메모 내용이 학자들 제안보다 훨신 현실성 있다고들 한다."


이상은 민심대장정 중인 손학규 전 경기지사를 수행하는 비서들의 전언이다. 시쳇말로 '민심대장정 매뉴얼'인 셈이다.

청양의 상징 청양고추밭을 둘러보고 있다. ⓒ뷰스앤뉴스


듣고 메모하고...

손 전 지사는 민심대장정 16일째를 맞은 16일 충남 청양과 홍성을 찾았다.

한국의 매운 맛을 상징하는 '청양고추'로 유명한 충남 청양. 이 곳에선 손 전지사는 전날 수해복구 현장에서 하루종일 땀을 흘려야 했던 것과는 달리 다소 여유를 찾을 수 있었다. 고추밭은 아직 수확기가 아니기에 별로 일거리가 없었고, 비도 별로 내리지 않았기 때문.

그렇다고 손을 놓고 있지 않았다. 손 전 지사는 지역 농민들이 모인 자리에 농촌의 어려움을 직접 듣기 위해 참가했다.

윤종흠(51)씨는 "청양 지역에는 식당 등 겸업을 하는 사람이 많아 젊은 사람이 꽤 있는 편"이라며 "저도 직거래장터와 구기자 등을 겸업하고 있다"고 말했다. 농사 하나만 해갖고선 먹고 살 수 없는 게 요즘 농촌 현실이라는 것이다. 명노길(63)씨는 "농촌지역에 공공근로를 통해 일손을 도와주는데 이들은 시간만 때우고 어영부영 일을 해 오히려 힘들다"고 면피성 농촌돕기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이들은 한결같이 한미 FTA, WTO 협상 등에 대한 분노와 위기감이 대단했다. "농촌을 완전히 죽이려는 게 아니냐"고 분노했다. 협상이 진행될 때 여의도 국회 앞에서 벌어진 시위에도 여러차례 참석했다고 말했다.

손 전 지사는 이들의 얘기를 묵묵히 듣고 메모하는 데 열중했다. 그는 "농업의 전반적으로 축소되고 있고 동네에 어린애들 울음소리가 사라지고 있다"며 "농촌은 나라의 기본환경이기 때문에 살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나름의 대안 제시 대신에 메모만 열심히 하는 이유와 관련, "현장에서 현실적인 말을 들으면서 농촌-농업정책을 하나하나 만들려고 한다"고 말했다. 대책마련을 위해서라도 현장의 목소리를 듣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손학규 전 지사가 충남 청양 명노길씨 집에서 주민들에게 농촌의 고충을 듣고 있다. ⓒ뷰스앤뉴스


이동은 항상 대중교통 이용

손 전 지사는 오후엔 홍성지역으로 향했다. 그가 이동하는 방식은 항상 대중교통이다. 버스 등을 이용하는 이유는 역시 주민들의 생활현장과 부딪히고 그들의 목소리를 하나라도 더 듣기 위함이었다. 지사를 따라다니는 수행비서, 기록비서, 홈페이지 관리자, 비디오 담당, 일정 비서 등 나머지 5명은 승합차 한 대를 갖고 왔다갔다 한다.

숙박 역시 방문지역에서 민박 형식으로 해결한다. 빨래는 비서들의 경우 그때 그때 각자 알아서 하고 지사도 마찬가지이나, 빨래는 민박하는 곳 안주인들이 "세상에나~" 하면서 빼앗아가 대신 해주는 경우가 많다.

하나에서 열까지 철저히 민심을 듣기 위한 방식이 채택된 것이다. 그는 청양 지역 주민들과의 점심식사 후 홍성으로 향하는 중간에도 주변에서 만나는 주민들에게 "손학규입니다"라며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손 전 지사가 도착한 곳은 홍성의 돼지농장인 '결성농장'. 도착지인 결성농장에 도착하기 전 그는 농장의 집판장에 잠시 들렀다. 취재진은 미리 결성농장에 도착했으나 기다려도 오지 않는 손 전 지사. 농장사장의 부인이 와서 "손 전 지사가 곤히 잠들어서 깨울 수가 없네요"라고 늦는 이유를 말했다. 이동하는 차 속에서 꾸벅꾸벅 졸 정도로 피곤한 기색이 역력하더니 결국 잠시 눈을 붙인 것. 하지만 잠시후 나타난 손 전 지사는 겸연쩍은 듯 "잔 게 아니야. 누가 찾아와서..."라고 해명(?)했다.

이동은 항상 대중교통 이용이다. 버스를 타고 홍성으로 향하는 과정에 꾸벅꾸벅 졸고 있는 손학규 전 지사 ⓒ뷰스앤뉴스


기자들, 손학규 전 지사와 함께 샤워하다

결성농장은 생각보다 규모도 훨씬 크고 자동화돼 있었다. 박성호 사장과 아들 홍신씨가 운영하는 결성농장에는 1만2천5백여두의 어미, 새끼 돼지들이 있었다. 이 곳은 생산농장이기 때문에 생후 75일이 된 돼지들은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농장에는 교배실부터 임신실, 분만실, 분뇨처리시설 등이 따로 잘 갖춰져 있었다. 교배부터 임신, 분반, 성장, 분뇨처리까지 확실하게 관리되고 있는 것이었다.

농장을 방문하기 위한 절차는 매우 까다로웠다. 농장 안에 들어설 때부터 차 소독이 이뤄지더니 농장 안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샤워를 한 후 준비된 작업복으로 갈아입어야 했다. 이 과정에 예기치 못한 경험을 하게됐다. 손 전 지사와 기자들이 한꺼번에 샤워를 하게 된 것. 손 전 지사는 전혀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결국 기자들은 손 전 지사의 모든 것(?)을 보고야 말았다. 민심대장정 하에서만 가능한 에피소드였다.

농장을 둘러본 후 손 전 지사는 "대단하다"란 감탄사를 연발했다. 그는 "우리 영농이 과학화되고 경영합리화가 되면서 경쟁력을 키우는 것은 바람직하다"며 "앞으로 우리 농업이 살 길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결성농장의 박성호 사장은 고충도 털어놨다. 박 사장은 "악취방지법이란 게 제정됐는데 아직 기술적으로 따라오지 못한 상태에서 기준치를 너무 엄격히 적용해 어려움이 크다"고 애로를 털어놨다. 박 사장은 이어 "시장원리에 맞게 경쟁력이 있는 곳은 잘 할 수 있게 해야지 인위적으로 농업-축산업을 줄이려고 규제하면 안 된다"며 "우리의 느낌은 정부가 축산업 자체를 인위적으로 줄이려고 하는 것 같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손 전지사는 또 부지런히 박사장 얘기를 '메모'했다.

양돈농장에서 설명을 듣고 있다. ⓒ뷰스앤뉴스


손 전지사의 바쁜 일정을 파고 들어가 잠시 몇마디를 물어볼 수 있었다.

문) 대학 졸업 후 민주화운동 하면서 제철소 용접공 등 노동 꽤나 했다. 젊은 시절의 노동과 지금의 노동 다를 것 같은데.
손 전지사) 절실함이 더 하다. 지금의 노동은 농민들이 삶이고 현실이니까 어려움이 공장에서 일할 때 때보다 훨씬 더 절절하게 다가온다.

문) 젊은 시절 노동은 철학이나 신념에 의한 것이었다면 지금은 체험으로써 생활로써 노동인 것 같은데.
손 전지사) 그렇다. 젊은 시절에는 '내가 사회를 변화시키겠다'는 차원이었는데 지금은 주어진 현실을 어떻게 바꿔가면서 농민을, 농촌을, 농업을 더 잘 살게 할 수 있을까. 다시 살릴 수 있을까가 화두다. 그 대상은 농업만이 아니다. 공장도 그렇고 기업도 그렇고. 노동자들뿐만 아니라 기업인들까지 포함된다. 어떻게 하면 기업을 잘 하게 할 수 있을까. 우리 사회 각 분야와 우리 국민들의 생활을 어떻게 하면 개선하고 잘 살게 할 수 있을까에 대한 힌트를 길을 찾기 위한 과정이다. 젊은 시절에는 '뒤집어 엎어서' 바꾸려 했다면 지금은 그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바람직한 방법이 아니기 때문에 현실 개선을 통해 더 잘 사는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문) '뒤집어 엎는 것'이 방법이 아니라고 언제부터 생각하기 시작했나.
손 전지사) 80년 서울의 봄 때 '투쟁으로만 살아온 터라 머리 좀 채우고 싶어 기독교계 도움으로 민주주의를 제대로 공부하고픈 마음에 영국 유학을 떠났는데 이때 세계 속의 한국을 처음 보았다. 이후 러시아의 패망과 동유럽 사회주의의 몰락, 중국의 변화과정, 사회주의와 폴퓰리즘을 지향했던 남미 제국가의 침몰을 보면서 주어진 우리 현실에서는 시장경제체제가 훨씬 효율적이란 것을 알았다. 그것이 국가 경제를 살리고 국민 개개인의 복지를 실현하는 데 필요한 제도라는 것을 차츰차츰 인식하고 확고한 신념으로 갖게 되었다.

문) 민심대장정 16일째인데 이 기간을 통해 변화된 생각이 있다면.
손 전지사) 농업의 중요성 농촌의 중요성을 확실하게 재인식하게 되었다. 말로는 '농자 천하지대본'이라고 다들 이야기하면서 정말 말뿐이었다는 것 절감했다. 아무리 농업생산력이 약하고 농업경쟁력이 약해도 농업은 반드시 살려야 하고, 살릴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때문에 기사분들, 특히 택시기사들과 이야기 나눌 기회가 많은데 이구동성으로 "우리는 대한민국에서 방치된 국민"이라고 하더라. 가슴이 짠했다. 사회 곳곳에 방치되어 있는 우리 국민 하나하나를 전부 찾아서 살리는 것이 나라를 살리는 길이란 생각이 들었다.

문) 그 방법이 무엇인가.
손 전지사) 지금은 방법이 뭐다 결론을 내리기 위해 다니는 것이 아니다. 국민의 소리를 차근차근 듣는 시간이다.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방법을 찾는 것은 장정이 끝난 뒤 할 일이다. 지금은 듣는 것이 중요하다. 실사구시 정치의 필요성을 재확인하고 있다.

문) 이런 말도 있다. 손 전 지사가 민심대장정을 너무 힘겹게 하고 있기 때문에 향후 민심행보에 나설 정치인들이 긴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손 전지사) 언론이 잘못 오해하고 있는 것이 있는데 민심대장정은 뭘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배우러 다니는 것이다. 장기적인 발전계획을 세우는 것인데 그것을 아주 구체적인 것에서 찾는 것이다. 양돈이나 일반 농민들에게 배우는 것이다.

문)앉아서 배우는 것과 일하며 배우는 것에 어떤 차이가 있나.
손 전지사) 실제 어려움을 보는 것과 함께 하는 것은 다르다. 농촌을 다니며 새롭게 본 것이 연세 드신 분들은 배를 내밀고 걷는데 허리가 아파서 그런다는 것이다. 같이 일을 해보니 왜 그렇게 걷는지 이해가더라.
정경희, 이영섭 기자

댓글이 2 개 있습니다.

  • 5 1
    대학생

    뷰스앤뉴스는 정론으로 보인다
    정론은 치우치지 않음이다
    손학규의 동정이 실린 점은 다행이다
    어느 후보고 미래의 한국을 짊어질 사람이기에 더욱 그렇다.
    발가벗기고 파헤치고 후보들의 면면을 가감없이 실어야 한다.
    과장이거나 과시용이어서는 안되지만
    그런 면에서 뷰스앤뉴스가 어느 것에도 치우치지 않은 면을 보여주는 것 같다.
    다른 매체들과 다른 면이 있어서 좋다.

  • 2 5
    주민

    욕본다
    뷰스앤뉴스...
    손학규에 올인했나?
    띄워주느라 욕본다...ㅉㅉㅉ
    명색이 언론이란 것들이 하는 꼬라지 하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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