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금융, 무식해서 덜 깨졌다"
<뷰스 칼럼> 금융-언론의 무식이 나라를 위협하기도
정 사장은 이날 코엑스 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열린 한국무역협회 조찬 강연회에서 "한국 금융업체들은 이번 미 금융 위기에서 참으로 용하다고 할 정도로 비켜서 있다"며 "이는 한국이 파생상품을 잘 몰라서다. 금융 기관들이 파생상품에 무지한 덕분에 이런 상품의 거래가 거의 없어 미 금융 사태로 피해를 입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말해 파생금융상품이 뭔지를 몰라 덜 깨진 거지, 실력이 좋아 위기를 피해간 게 아니라는 쓴소리다.
금융업계 종사자들이 들으면 기분 좋을 리 없는 얘기나, 정 사장의 말은 객관적 진실이다.
"한국 금융, 무식해서 덜 깨졌다"
지난해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터졌을 때 일이다. 세계 금융기관들이 막대한 손실을 입었을 때 우리나라에서는 우리은행 한군데만 손실을 봤다. 4천억원대의 큰 손실이었다. 한국은행이 즉각 진상 조사에 들어갔다.
원인은 우리은행이 너무 '똑똑했기' 때문이었다. 황영기씨가 행장으로 부임하면서 S증권 출신 엘리트를 데리고 온 게 화근이었다. 국제금융에 밝은 그는 수익률이 높은 서브프라임 관련 파생상품에 투자를 했다. 당연히 높은 수익이 났다. 그러다가 서브프라임 사태가 터지면서 역으로 큰 손실을 보게 된 것이다.
당시 진상조사를 나갔던 한은의 관계자는 "다른 은행들이 피해를 안 본 것은 그런 상품이 있는지조차 몰랐기 때문일 것이다. 국내에서 주택담보대출이나 하다보니 피해를 안 본 거지, 실력이 있어 피한 건 절대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정태영 사장과 동일한 진단을 한 것이다.
산은, 무식해서 나라 절딴낼 뻔하기도
하지만 무식이 자랑은 아니다. 최근에는 무식 때문에 국가적 낭패를 볼 뻔했다. 산업은행의 리먼브러더스 인수 시도가 그것이다.
민유성 신임 산업은행장이 리먼 인수에 나서자, 일부 보수신문과 경제신문은 연일 바람잡이 역할을 했다. "지금이 월가 공룡을 인수할 절호의 기회"라고 연일 부추겼다. 왜 서방과 일본, 중국 등의 내로라하는 큰 손들이 왜 리먼을 싸늘하게 외면, 한국에까지 기회(?)가 돌아왔는지에 대해선 고민조차 하지 않았다. 숨겨진 부실이 얼마나 큰지도 거론하지 않았다.
불행중 다행으로 협상이 깨진 뒤 민유성 산업은행장이 한 말도 가관이다. 그는 "우리가 부른 값에 넘겼다면 리먼은 부도가 나지 않았을 것"이라 했다.
산은의 협상결렬후 미정부는 세계적 금융기관들에게 제발 리먼을 인수해달라고 호소했다. 이때 한결같이 나온 답은 리먼의 추가부실을 정부가 책임지라는 것이었다. 1997년 외환위기후 제일은행을 인수할 때와 했던 것과 같은 '풋백옵션' 요구였다. 미 정부는 그러나 천문학적 추가부실을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 결국 리먼을 파산시킨 것이다.
민유성 행장은 그러나 미국정부에 기초상식에 속하는 이런 요구를 하지 않았다. 민행장이 과연 똑똑한 사람인가. '겉 똑똑' 때문에 나라가 거덜날 뻔 한 거다. 산은의 리먼 인수를 연일 부추긴 언론도 무식하기란 마찬가지다.
한심한 것은 국가를 절딴낼 뻔 했음에도 일부 경제신문과 산은이 "산은이란 이름을 국제무대에 알리는 큰 성과를 거뒀다"고 자화자찬하고 있는 꼴이다. 하지만 국내외 금융전문가들은 "산은의 이름을 알린 게 아니라, 한국금융이 얼마나 낙후한가를 전세계에 떠들고 다닌 꼴"이라고 눈총을 보내고 있다.
첨언하면, 산은의 리먼 인수를 부채질한 일부 보수언론과 경제지를 뒤늦게 물어뜯고 있는 일부 언론들도 '무지'라는 측면에선 오십보백보다. 왜 산은이 리먼 인수협상을 시작했을 때부터 문제점을 지적하지 못하고 인수협상이 깨져 리먼이 쓰러진 뒤에야 벌떼처럼 공격하나. 그 또한 무지했기 때문일 것이다.
박현주 "내가 투자하면 구미자금 뒤쫓아와 투자할 것"
무식해서 또 크게 깨진 사례는 박현주 미래에셋회장의 '중국 몰빵 투자'다. 그는 워런 버핏 등 서방의 구렁이 투자가들이 중국에서 재미를 보고 손을 털 때, "미국과 중국은 다르다"는 탈동조화론을 펴며 무지막지한 몰빵 투자를 단행, 지금 투자가들에게 천문학적 피해를 입히고 있다.
박 회장의 어록을 보는 것으로, 우리 금융과 언론이 얼마나 무지한가를 자성하는 '무식론'을 끝내자. 1월1일 신년호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중 일부다.
“우리가 중국으로 가야 한다고 말할 때, 선진국의 숱한 투자전문가들은 미국·유럽으로 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구미의 투자가들은 중국의 잠재력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죠. 이렇듯 우리와 구미 사이에는 보는 눈의 차이가 있습니다.”
"요즘 들어서는 구미 사람들도 자신들의 투자관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사실 아시아·태평양은 구미보다 우리가 문화적으로 잘 통하고, 시장을 더 잘 알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아마 앞으로는 우리가 아시아 신흥시장에 먼저 나가 투자를 하면, 구미 자금이 뒤쫓아와서 주가를 올리고 결국 한국의 부가 증가하는 일이 생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눈’으로 투자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금융과 자본수출을 통해서 돈을 벌어야 하는 세상이 왔습니다. 이것은 일본 금융기관도 못하는 일입니다. (금융이) 한쪽에만 있는 것이 도리어 위험합니다. 밖으로 나가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 제조기업들이 어떻게 세계적인 기업으로 컸습니까. 나가서 수출했기 때문입니다. 금융도 마찬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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