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대연합', 또하나의 위험한 착각
<뷰스 칼럼> '민생대란' 쓰나미 몰려오는데 웬 이념 타령
보수언론 등 보수진영의 주문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이명박 정권의 위기 원인중 하나로 이명박-박근혜 갈등 등을 꼽으며 관계 복원의 시급성을 강조했었다. 보수 지도자간 갈등이 해소돼야 이명박 정권에 등을 돌린 보수표가 다시 돌아올 것이란 주장이었다.
보수 대연합? 반응 썰렁
하지만 '이-박 갈등' 해소는 실패했다. 양자간 불신의 벽이 너무 두텁기 때문이다. 그러자 '꿩 대신 닭' 식으로 나온 게 심대평, 강현욱 총리설이다. 심대평 의원은 충청권, 강현욱 전 지사는 호남권 출신이다. '지역 보수표'라도 건지자는 게 아니냐는 해석을 낳는 대목이다.
이 과정에 청와대가 '합리적 보수'로 평가하는 정운찬 전 서울대총장도 물망에 올랐다. 비정치권에서 새 얼굴을 내세워야 민심 수습이 클 것이란 판단에서였다. 거시경제전문가를 내세워 경제위기에 적극 대처한다는 메시지도 포함됐다. 하지만 이 또한 없던 일이 된 것으로 전해진다. 청와대 관계자는 "사람 구하기 정말 힘들다"고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이렇듯 진통을 거듭하며 '보수 대연합'은 진행중이다. 문제는 반응이 영 썰렁하다는 거다. 박근혜 전대표측은 말할 것도 없고, 이회창 자유선진당총재도 냉랭하다. 통합민주당은 "국민과 소통해야지, 몇몇 보수정치인과 소통해서 뭐 하겠냐"며 개의치 않는다는 분위기다.
네티즌들 분위기도 냉담하기란 마찬가지다. 대다수 네티즌은 지금 거론되는 차기 총리 후보들을 보고 "기껏 생각해낸 게 야합이냐"는 냉소를 보내고 있다. 총리를 포함해 아무리 대폭 개각을 해도 민심이 움직일 것 같지 않다는 관측을 낳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는 얘기가 된다. 한 중견 언론인은 "대통령이 이렇게 방향을 못잡고 헤매면 재임기간 내내 10%대 지지율에 머물며 국정혼란이 계속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반년전 진보인사 "MB가 부르조아 개혁이야 완성하지 않겠나"
지난해말 이 대통령 당선직후 만난 민주노동당의 한 고위인사(현재는 진보신당 소속)는 좌절감에 빠져 이런 얘기를 했었다.
"이명박 시대가 열렸으니 부르조아 개혁이야 완성하지 않겠나. 그러면 보수 장기집권 시대가 열릴 게다."
그가 말한 '부르조아 개혁'은 이런 내용들이었다. 우리나라 자본주의는 아직 천민자본주적 요소가 많다. 한 예로 가진자들이 세금내기를 싫어한다. 의사, 법조인, 종교인 등이 요리조리 법망을 빠져나가 세금을 안낸다. 미국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세금 낼 것 제대로 내고, 떳떳이 돈을 쓴다. 대선과정에 혹독한 도덕성 검증을 받은만큼 이명박 새 대통령이 권위 확보 차원에서라도 도리어 더 적극적으로 이런 개혁을 하지 않겠냐는 게 그의 전망이었다.
'시장주의 개혁'도 확실하게 하지 않겠냐고 내다봤다. 지금 경제는 과거와는 비교도 안될만큼 민간경제의 규모가 커졌음에도 박정희시대때 관치경제 그림자가 곳곳에 드리워져 있다. 민간 금융계 등에 관료들의 낙하산 투하가 계속되고, 감 놓아라 배 놓아라 식의 간섭이 계속되고 있다. 관료들의 횡포를 톡톡히 경험한 CEO 출신이 대통령이 됐으니, 이런 적폐가 상당부분 해소될 거란 게 그의 전망이었다.
그러나 최소한 현재까지는 그의 전망이 틀렸다. '부르조아 개혁'은커녕 박정희시대로 '회귀'하는 것 같다는 게 세간의 지배적 평가다. 국민과의 소통을 무시한 쇠고기 졸속협상이나 대운하 추진이 그렇고, 강만수 경제팀의 환율 정책이나 전형적 탁상행정인 'MB물가 관리'가 그렇다. 특히 환율로는 물가를 올리면서 자장면 값은 잡겠다고 난리를 치는 대목은 말 그대로 '생쇼'의 압권이었다. 대선때 이 대통령에게 몰표를 주었던 보수층마저 대거 등을 돌리고 있는 이유중 하나다.
'민생대란' 앞에는 보수, 진보 없거늘...아직도 이념
부르조아 개혁은 지금이라도 이 대통령이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을 듯 싶다. 최근 '보수 대연합' 추진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 일단 이탈한 보수층부터 돌아오게 해야 한다는 게 청와대의 절박한 심정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지금 상황이 한가로이 부르조아 개혁만 갖고 넘어갈 수 있는 간단한 상황이 아니라는 데 있다.
최근 <내일신문> 여론조사에서 이 대통령 지지율이 12.1%라는 충격적 숫자가 나왔듯, 대통령은 총체적 불신 상태에 빠져있다. 더 주목해야 할 대목은 '경제대통령'이란 이미지가 급속히 붕괴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앞으로 경제가 더 나빠질 것이란 전망이 65.9%, 이 대통령이 경제를 잘 풀어가지 못할 것이란 전망은 58.3%로 나왔다. 이 대통령의 마지막 버팀목인 '경제대통령' 신뢰도마저 급속히 무너지고 있다는 얘기다. 마지막 버팀목인 이것마저 무너진다면 더이상 대통령이 설 땅은 없어 보인다.
지금 우리 눈앞에 몰려오고 있는 거대한 쓰나미는 '민생대란'이다. 지금 경제를 마비시키고 있는 화물연대 파업도 생존 위기에 몰린 화물노동자들의 절박한 '생계 파업'이다. 과거처럼 '경제비상사태' 등을 선포하고 공권력을 투입해 해산시키면 끝나는 성질의 파업이 아니란 얘기다. 이런 생계 파업은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택시가 멈출 수도 있고, 음식점 주인들이 솥뚜껑을 들고 길거리로 나설 수도 있다. 이 모두가 '민생대란'의 다른 얼굴들이다.
지금 대통령이 고민해야 하는 건 보수 대연합이 아니다. 보수 대연합은 애당초 잘못된 접근법이다. 절대 다수 국민이 극한고통을 겪는 '민생대란' 앞에는 보수, 진보가 따로 없다. 그럼에도 보수, 진보 식의 이념적 접근을 했다간 촛불시위 때처럼 또다시 패착을 두게 될 게 불을 보듯 훤하다. 모든 초점이 '민생'으로 모아져야 할 때다. 공황이 발발했다는 긴장감으로 상황을 인식해야 할 때다.
한번 실수는 할 수 있다. 그러나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면 바보 소리를 듣는다. 무능하다고 찍힌다. 만약 '민생대란'이란 공감대로 촛불이 다시 켜진다면 그 뒷상황은 예측불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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