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어가는 <조선일보>의 고뇌
광고 격감에 '광고끊기 운동', '미래독자들' 안티조선세력화...
촛불집회가 시작된 지난 5월2일이래 <조선일보>는 수난(?)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매일같이 <조선일보> 사옥 앞에서 연일 촛불의 바다가 출렁이며 <조선일보>를 향한 비난이 빗발치고 있기 때문이다.
촛불의 바다가 주는 충격은 생각보다 대단한 것으로 보인다. <조선일보>의 한 관계자는 "위에서 내려다보니 촛불 행렬의 끝이 안보이더라"고 충격을 숨기지 못했다.
끝이 안보이는 장엄한 '100만 촛불대행진'이 있었던 10일 밤, <조선일보>는 평생 잊지 못할 수난을 당했다. 신문사 입구에 <조중동 불매>를 촉구하는 스티커가 덕지덕지 붙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닌만큼 그리 큰 충격이라 할 것도 없다. 그러나 입구에 시민들이 갖다 쌓아온 쓰레기더미는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길 건너편 <동아일보>의 사정도 마찬가지였지만 <조선일보>가 받은 충격은 클 수밖에 없었다. 쓰레기더미가 전하는 메시지는 너무나 분명했기 때문이다.
<조선일보>에게 요즘 또하나의 충격은 광고기업들중 상당수가 "다시는 <조선일보>에 광고를 안하겠다"는 공지문을 홈페이지 등에 팝업 형태로 띄우고 있다는 사실이다. 시민들의 '광고끊기' 공세에 기업들이 하나둘 백기를 들기 시작한 것이다. 10일만 해도 송파청솔학원과 보스톤 허브치과 등이 <조선일보>에 광고를 실은 데 대해 공식 사과했다.
언론 광고는 두가지 의미를 내포한다. 하나는 말 그대로 자사 제품을 소비자에게 알리기 위한 '광고'이고, 다른 하나는 언론사에 대한 '보험'이다. 문제가 생겼을 때 살살 다뤄달라는 의미다. 그런데 기업들이 잇따라 "다시는 <조선일보>에 광고를 하지않겠다"고 선언하고 나서고 있다. 기업들이 더이상 한가롭게 '보험' 운운할 때가 아니라는 절박한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는 얘기다.
이는 <조선일보>보다 국민들이 무섭다는 기업들의 자기고백이다. <조선일보>로서는 충격중 충격이 아닐 수 없는 현상이다. 김대중 <조선일보> 고문이 "시민권력에 의한 언론탄압"이라고 강변하고 나선 것도 <조선일보>가 지금 느끼는 위기감이 얼마나 큰가를 보여주는 반증이다.
<조선일보>는 올 들어 지난해보다 광고가 10% 정도 줄어든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물론 <조선일보>만의 상황은 아니다. 내수경기 침체가 본격화하는 데다가, 가장 큰 광고주였던 삼성그룹이 '김용철 사태'로 광고물량을 줄인 영향이 컸다. 때문에 방상훈 사장이 광고물량 확보를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이런 마당에 시민들의 '광고 끊기' 운동이 전개되면서 하나둘 광고가 떨어져나가기 시작하니, <조선일보>에겐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물질적 충격보다 <조선일보>를 내심 더 고뇌케 하는 것은 '미래 독자'들의 '안티조선화'다. <조선일보>는 처음부터 촛불사태를 오판했다. 나어린 학생들이 '인터넷 괴담'에 현혹되고 '친북좌파 배후'의 선동에 놀아나는 것으로 몰아갔다. 예전에는 이러면 먹혔다. 정부도 "역시 <조선일보>"라고 고마워했다. 하지만 이번엔 그게 아니었다. 도리어 불에 기름을 붓는 역작용을 일으키며, 정부와 <조선일보> 스스로를 묶는 밧줄이 됐다.
나이 어린 학생들은 '미래 독자'다. <조선일보> 경영진은 그동안 '독자의 노령화'를 크게 우려해왔다. 인터넷 등 미디어환경 다변화에 따른 필연이기도 하나, 특히 <조선일보> 독자층이 노령화돼 있다는 사실은 신문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 분명한 경고음이었다. 이에 <조선일보>는 그동안 미래 독자들의 호감을 사기 위한 다각적 노력을 펴왔디 그 노력이 촛불사태가 터지며 한순간에 물거품이 된 것이다. 물거품이 된 정도가 아니라, 미래 독자들을 모두 '안티조선 세력'으로 만드는 결정적 패착을 뒀다.
한 언론계 원로는 "<조선일보>가 요즘 연일 정부여당을 질타하며 대폭적 인적 쇄신 등을 요구하고 있으나, 정작 자성과 쇄신이 필요한 곳은 <조선일보>로 보인다"며 "언제까지 김대중 고문 등 구시대 인물들을 앞세워 과거처럼 세상을 끌어가겠다고 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일침을 가했다.
지난 2002년 대선, 인터넷매체 쇼크때도 비슷한 지적이 나왔었다. 그때 <조선일보> 관계자가 한 해명은 "김대중, 류근일, 조갑제의 문제점을 우리도 알고 있으나 그들이 확보하고 있는 보수독자층이 있어 당장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난 지금, <조선일보>는 당시보다 몇배 심각한 위기에 직면했다.
하지만 과연 <조선일보>가 제대로 된 처방으로 위기 해법을 찾을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11일자 신문만 봐도 1면 톱으로 대문짝만하게 광화문 촛불대행진 사진을 싣고도 4면에는 <중학생이 경찰에게 "야 이 거지놈아">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시위현장에서 시달리는 전.의경의 애환을 전하겠다는 기사로 볼 수도 있으나, 또다시 '미래 독자'들에겐 열불 받는 기사와 편집이 아닐 수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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