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전뽑기' 월드컵 방송 너무 심하다"
<인터뷰> 정희준 교수 "사회적 공기로서의 방송은 죽었다"
월드컵 열풍이 4년만에 다시 뜨겁게 불고 있다. 하지만 이번 월드컵은 지난 2002년의 자발적 응원문화와는 달리 상업주의에 물든 응원문화로 점철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월드컵을 사회학적으로 분석하는 정희준 동아대 스포츠과학대 교수는 13일 <뷰스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지금은 국민의 응원이 아닌 자본의 응원이고, 국민의 애국이 아닌 자본의 애국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질타했다.
정 교수는 월드컵의 가장 문제점으로 방송을 꼽았다. 그는 "방송은 완전히 미쳐 돌아가고 있다"고 격하게 비난한 뒤 "오늘로서 사회적 공기로서의 방송은 죽었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그는 이어 "특히 방송이 그런 식으로 안면몰수하고 장사하러 나서는 것은 정말 문제가 크고 그들도 어떻게 수습할 지 궁금한 상황"이라며 "제자리로 돌아와야 한다"고 충고했다.
정 교수는 그러나 "월드컵을 계기로 시위도 축제의 성격으로 바뀐 것과, 신세대나 여성에 대한 인식과 그들에 대한 태도가 긍정적으로 바뀐 측면도 있다"고 월드컵 열풍의 긍정적 측면도 평가했다.
다음은 정희준 동아대 교수와의 인터뷰 전문.
뷰스앤뉴스 : 2002년과 비교해볼 때 당시는 자발적 응원문화가 있었던 반면, 현재는 응원문화 역시 상업화에 싸여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당시와 비교할 때 달라진 점은 무엇일까.
정희준 교수 : 2002년에는 사실 폴란드가 첫 경기였는데 당시 거리응원에 나선 사람이 50만명이었다. 그런데 경기가 진행되면서 이 숫자가 7백만명까지 갔다. 열풍이 대회기간동안 증폭된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새해벽두부터 월드컵의 해가 밝았다고 호들갑을 떨고 방송은 완전히 미쳤다. 이는 본전을 미리 뽑으려는 것이다. SBS의 경우 13일에 21시간을 월드컵 방송에 할애하고 MBC는 공영방송임에도 18시간 30분을 도배한다. KBS는 조금 덜하지만 다를 바 없다.
그들이 지불한 중계권에 대한 본전을 찾아야 하고, 엄청난 광고수익 때문에 그렇다고 볼 수 있다. MBC의 경우는 뉴스부터 헤매고 있는데 이는 뒤처지는 시청률을 역전시키려는 욕심이 있기 때문이다.
언론은 이렇게 미쳐돌아가는 것 같고, 기업들은 이 기회를 통해 물건을 팔아야 하는 것이다. TV가 엄청나게 팔리고 있다. 가전업체들은 히딩크, 아드보가트 감독, 박지성 선수 등을 모델로 써 LCD TV는 날개 돋친듯 팔린다고 한다. 전년도 대비 2~3배의 판매를 보인다고 한다. 많은 업계들도 월드컵을 돈벌이의 기회로 삼고 있다.
"민족-애국주의, 과거엔 국민국가 버팀목이었지만 이젠 상업자본 버팀목"
뷰스 : 과거 전두환 정권 때 3S 정책으로 정치가 스포츠를 이용한 적이 있다. 현재 월드컵의 열풍을 정치적으로 해석할 수도 있을까.
정희준 : 5공 때의 3S 정책 중 프로야구 시작 등은 정권을 가진 사람의 머릿속에서 나온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경우는 청와대에서 그런 계획을 했을 리는 없다. 저절로 된 것이다. 민족주의는 근대국가가 형성되면서 국민국가의 버팀목 역할을 했다. 그런데 지금은 민족주의와 애국주의가 상업 자본주의의 버팀목이 된 듯한 모습이다.
민족-애국주의가 과거에는 국민국가의 버팀목이었다면 이제는 상업자본의 버팀목이 된 것 같다. 지금은 국민의 응원이 아니고 자본의 응원이고, 국민의 애국이 아니고 자본의 애국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애국도 상업주의에 이용당하는 것이다.
뷰스 : 월드컵 열풍에 힘입어 스포츠의 사회학도 아닌 축구의 사회학이란 책이 나올 정도이다. '축구의 사회학'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 달라.
정희준 : <축구 그 열정의 사회학>이란 책을 소개한 적이 있는데 이는 방송통신대학교의 한 교수가 번역한 책이다. 자료도 꽤 되고 내용 전개도 괜찮다. 축구에 관련된 책들은 유럽 중심으로 많이 있다. 생성된 역사도 오래됐고 사람들이 좋아하기 때문이다. 축구는 계급도 연결돼 있고 훌리건 문제도 있어 사회학적으로 들여다볼 만한 구석이 많다.
뷰스 : 이 같은 분석의 틀을 한국적 상황에 적용시켜 본다면.
정희준 : 적용할 수는 있겠지만 책으로 쓰기에는 역사나 규모가 부족한 부분이 없지 않아 책으로까지 쓰신 분은 없는 것 같다. 정윤수 평론가가 축구로 책을 하나 썼다. 사회학적이라고 보기는 좀 어렵지만 책을 쓴 사람도 있긴 하다. 예를 들면 2002년 월드컵을 전후로 해서 잡지에서 그런 얘기가 많이 있었다. 월드컵은 '전복적인 체험의 공간'이라는 분도 있고, 여성에게 공공적인 장소에서 그들의 욕망을 분출시킨 계기가 됐다는 분석도 있다. 또 붉은악마에 대한 글을 쓴 분들이 많이 있다. 그 사람들의 태생적 배경이나 어떻게 전개됐는지에 대한 분석도 있고, 우리나라에서 축구가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말한 경우도 있다.
박정희 정권 때부터 복싱처럼 국가가 이용한 종목이 있다. 국가주도의 스포츠인데 이는 대중들에게 스트레스 해소 차원에서 전사됐던 스포츠 이벤트라고 볼 수 있다. 어떤 이는 이순신 장군(현충일) 등의 기념사업과 축구를 비슷하게 놓고 보며 비판하기도 한다. 태권도도 그런 측면이 있다. 국가주의에 동원된 스포츠라는 분석인데 상당 부분 동의한다.
"파시즘적 요소 있지만 정치적 목소리 없어 파시즘으로 설명하기 어려워"
뷰스 : 정 교수는 한 세미나에서 월드컵과 애국주의가 결합된 것을 파시즘적 병리적 현상이라고 비판한 적이 있는데. 구체적 예를 들어 밝혀 달라.
정희준 : 그 부분은 4년 전에 쓴 말인데 내 말이 아니라 인권단체인 인권운동사랑방의 논평을 인용한 것이다. 로버트 팩스턴은 그의 저서 <파시즘>에서 "파시즘은 국민들로 하여금 거대한 집단적 창조행위에 동참하고 있다는 육감적 흥분을 경험하게 해 준다"는 말을 했다. 그 사람은 또 "파시즘은 헌법상의 시민권을 어떤 기념행사나 축제에 참여하는 것으로 바꿔버렸다"고도 한다.
전 국민의 붉은악마화는 그런 설명에는 해당이 된다. 대중들을 탈정치화시킨다거나 이런 설명들도 그 때와 지금의 현상에 접목이 되기도 하는데 이 때문에 어떻게 보면 파시즘의 징후가 아니냐는 말이 있다. 그러나 파시즘이 되려면 모인 집단이 정치적 목소리를 내야 하는데 그런 목소리는 아니다. 그래서 엄밀한 얘기로는 축구를 응원하러 온 사람들을 파시즘에 빗대 설명하기는 어렵다.
물론 몇몇 부분은 파시즘의 특성에 들어맞는 것도 있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정치적 목소리를 내지는 않지만 자본의 파시즘으로 볼 수도 있지 않나라고 본다. 최근에는 섣부르게 파시즘이라고 말하는 분들은 없는 것 같다. 다만 그런 징후가 보인다는 말은 많이 했다.
뷰스 : 영국 에버딘 대학의 사회학자 리처드 줄리아노티는 더 심층적 분석을 내놓았다. 그는 <축구의 사회학>이란 저서에서 유럽과 남미의 클럽축구팀이 계급과 인종,경제적 관계도 반영하고 있다고 풀이했다.
한 예로 올림픽이 열리고 있는 그리스의 AEK아테네는 터키 난민이 만든 좌파 성향의 클럽이라는 설명이다. 반면 파나티나이코스는 재정이 풍부해 '장군들의 클럽'으로 불린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 클럽축구보다는 국가대항전에서 이 같은 모습이 보이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유는 뭘까.
정희준 : 축구 자체는 원래 계급적이었다. 과거 축구팀을 만든 사람은 그 지역의 공장주였다. 공장주가 축구팀을 만든 이유는 지역사회에 뭔가를 돌려주기 위해서였다. 노동자를 배려한 것이다. 훌리건도 90년대 중반부터 대대적인 단속을 당하고 있지만 그 전까진 좀 봐주는 경향이 있었다. 그런 이유도 축구가 계급적 스포츠였기 때문이다.
또 과거에는 유명한 선수들이나 클럽들도 경기가 있을 때 정치적 시위를 하기도 했다. 아시아는 축구를 나중에 받아들인 면도 있고, 프로구단의 역사가 짧다. 그런데 국가가 애용하는 스포츠가 되면서 민족적, 국가적으로 바뀐 것이다.
"시위를 축제로 바꾼 긍정적 측면도 있다"
뷰스 : 긍정적인 얘기를 해보자. 우리나라의 경우, 월드컵이 과거 민주화운동시절 타도의 대상으로 보던 국가를 승리의 대상으로 형질변환시켰다는 긍정적인 면도 있지 않을까.
정희준 : 그렇다. 2002년에 군중이 모이는 것은 한풀이의 성격도 있었던 것 같다. 하다못해 데모도 분위기가 바뀌었다. 시작은 '효순이 미선이 추모 촛불시위'였지만 이를 이끌어낸 것은 월드컵이었다. 월드컵을 계기로 시위도 축제의 성격으로 바뀐 것이다. 군중현상의 다른 모습을 가져왔다고 볼 수 있다.
또 젊은이나 여성들의 변화를 가져왔다. 축구도 좋아하긴 했지만 여성들은 과거 칠거지악을 강요당했듯이 이제까지 공적인 장소에선 욕심이나 욕망을 드러내면 안 됐다. 그러나 2002년을 보면 같이 뛰쳐나왔다. 대담하게 성적인 분위기를 내는 표현까지 하는 분들도 있었다.
시청 앞 응원 때 어떤 여자는 '남일아 불꺼라'란 글이 써진 피켓을 들고 있기도 했다. 이런 것을 예로 들면서 여성들도 바뀌었다는 분석도 하고 있다. 신세대를 못마땅하게만 바라보던 어른들에게 젊은이들도 자율적이고 어른들의 간섭이 없어도 스스로 행동하고 책임질 수 있는 모습을 보였다는 말도 나왔다.
그래서 신세대나 여성에 대한 인식이나 그들에 대한 태도가 긍정적으로 바뀐 측면도 있고, 신세대에게는 국가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됐다는 말도 나왔다.
"방송은 완전히 미쳐, 사회적 공기로서 방송은 죽었다"
뷰스 : 월드컵을 지금까지의 비판이 아닌 진정한 지구촌의 축제로 즐기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국가의 역할, 기업의 역할, 국민의 역할로 구분해서 설명해 달라.
정희준 : 국가보다는 축구협회의 역할이 크다고 본다. 일단은 유소년리그, 학생들 축구 같은 곳에 좀더 많은 투자를 하고 K-리그에도 투자를 해야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축구는 기본적으로 가분수 구조라고 볼 수 있다. 오직 A 매치만 있는 축구다. 축협이 행정을 제대로 하고 미래의 청사진을 제대로 보여주면 지금처럼 4년에 한번씩 호들갑 떨지 않아도 더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본다.
기업에 대해서 말하자면 사실 어떤 분은 "자본주의를 거부할 게 아니라면 상업주의라고 떠드는 것이 웃기지 않냐"는 말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외국기업도 큰 돈을 들이지만 국민들을 응원에 동원하는 곳은 없다. 기업들도 갑자기 축구를 사랑하는 것처럼 나타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또 하나의 문제점 중 하나는 응원문화도 완전히 서울판이라는 것이다. 지방에 가면 이런 모습이 없다. 나라 구석구석에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축구를 즐길 수 있고, 축구 동호회도 많은데 운동장도 못 구하는 곳 많은 실정이다. 이에 대한 해결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방송이 문제라고 본다. 방송은 완전히 미쳤다. 월드컵을 도구로 삼아 돈도 벌고 시청률도 올리겠다는 건데 KBS가 조금 덜한 편으로 13일의 경우 축구관련 편성이 50~60퍼센트 정도다. 그러나 이것도 KBS의 생각이 올바르기 때문이 아니고 타 방송사처럼 움직일 돈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국감 등이 있기 때문에 전용할 예산이 별로 없다. 어떤 사람은 KBS는 원래 기획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라는 말도 한다. 공영방송인 MBC의 경우는 말도 안 되는 것이다.
스포츠 기자들은 다 독일에 보내고 사회, 문화부 등에서 국내 취재를 하게 한다. 오늘로 해서 사회적 공기로서의 방송은 죽었다. 특히 방송이 그런 식으로 안면몰수하고 장사하러 나서는 것은 정말 문제가 크고 그들도 어떻게 수습할 지 궁금한 상황이다. 제자리로 돌아와야 한다.
국민 여러분께 드리고 싶은 말은 원래 축구는 맥주 한 잔 마시면서 보는 것이었다. 친구, 가족들과 맛있는 것 드시면서 시청하고 응원하는 축구라면 즐거움을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그렇게 되면 응원장소로 어디에 갈 지 고민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월드컵을 사회학적으로 분석하는 정희준 동아대 스포츠과학대 교수는 13일 <뷰스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지금은 국민의 응원이 아닌 자본의 응원이고, 국민의 애국이 아닌 자본의 애국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질타했다.
정 교수는 월드컵의 가장 문제점으로 방송을 꼽았다. 그는 "방송은 완전히 미쳐 돌아가고 있다"고 격하게 비난한 뒤 "오늘로서 사회적 공기로서의 방송은 죽었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그는 이어 "특히 방송이 그런 식으로 안면몰수하고 장사하러 나서는 것은 정말 문제가 크고 그들도 어떻게 수습할 지 궁금한 상황"이라며 "제자리로 돌아와야 한다"고 충고했다.
정 교수는 그러나 "월드컵을 계기로 시위도 축제의 성격으로 바뀐 것과, 신세대나 여성에 대한 인식과 그들에 대한 태도가 긍정적으로 바뀐 측면도 있다"고 월드컵 열풍의 긍정적 측면도 평가했다.
다음은 정희준 동아대 교수와의 인터뷰 전문.
뷰스앤뉴스 : 2002년과 비교해볼 때 당시는 자발적 응원문화가 있었던 반면, 현재는 응원문화 역시 상업화에 싸여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당시와 비교할 때 달라진 점은 무엇일까.
정희준 교수 : 2002년에는 사실 폴란드가 첫 경기였는데 당시 거리응원에 나선 사람이 50만명이었다. 그런데 경기가 진행되면서 이 숫자가 7백만명까지 갔다. 열풍이 대회기간동안 증폭된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새해벽두부터 월드컵의 해가 밝았다고 호들갑을 떨고 방송은 완전히 미쳤다. 이는 본전을 미리 뽑으려는 것이다. SBS의 경우 13일에 21시간을 월드컵 방송에 할애하고 MBC는 공영방송임에도 18시간 30분을 도배한다. KBS는 조금 덜하지만 다를 바 없다.
그들이 지불한 중계권에 대한 본전을 찾아야 하고, 엄청난 광고수익 때문에 그렇다고 볼 수 있다. MBC의 경우는 뉴스부터 헤매고 있는데 이는 뒤처지는 시청률을 역전시키려는 욕심이 있기 때문이다.
언론은 이렇게 미쳐돌아가는 것 같고, 기업들은 이 기회를 통해 물건을 팔아야 하는 것이다. TV가 엄청나게 팔리고 있다. 가전업체들은 히딩크, 아드보가트 감독, 박지성 선수 등을 모델로 써 LCD TV는 날개 돋친듯 팔린다고 한다. 전년도 대비 2~3배의 판매를 보인다고 한다. 많은 업계들도 월드컵을 돈벌이의 기회로 삼고 있다.
"민족-애국주의, 과거엔 국민국가 버팀목이었지만 이젠 상업자본 버팀목"
뷰스 : 과거 전두환 정권 때 3S 정책으로 정치가 스포츠를 이용한 적이 있다. 현재 월드컵의 열풍을 정치적으로 해석할 수도 있을까.
정희준 : 5공 때의 3S 정책 중 프로야구 시작 등은 정권을 가진 사람의 머릿속에서 나온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경우는 청와대에서 그런 계획을 했을 리는 없다. 저절로 된 것이다. 민족주의는 근대국가가 형성되면서 국민국가의 버팀목 역할을 했다. 그런데 지금은 민족주의와 애국주의가 상업 자본주의의 버팀목이 된 듯한 모습이다.
민족-애국주의가 과거에는 국민국가의 버팀목이었다면 이제는 상업자본의 버팀목이 된 것 같다. 지금은 국민의 응원이 아니고 자본의 응원이고, 국민의 애국이 아니고 자본의 애국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애국도 상업주의에 이용당하는 것이다.
뷰스 : 월드컵 열풍에 힘입어 스포츠의 사회학도 아닌 축구의 사회학이란 책이 나올 정도이다. '축구의 사회학'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 달라.
정희준 : <축구 그 열정의 사회학>이란 책을 소개한 적이 있는데 이는 방송통신대학교의 한 교수가 번역한 책이다. 자료도 꽤 되고 내용 전개도 괜찮다. 축구에 관련된 책들은 유럽 중심으로 많이 있다. 생성된 역사도 오래됐고 사람들이 좋아하기 때문이다. 축구는 계급도 연결돼 있고 훌리건 문제도 있어 사회학적으로 들여다볼 만한 구석이 많다.
뷰스 : 이 같은 분석의 틀을 한국적 상황에 적용시켜 본다면.
정희준 : 적용할 수는 있겠지만 책으로 쓰기에는 역사나 규모가 부족한 부분이 없지 않아 책으로까지 쓰신 분은 없는 것 같다. 정윤수 평론가가 축구로 책을 하나 썼다. 사회학적이라고 보기는 좀 어렵지만 책을 쓴 사람도 있긴 하다. 예를 들면 2002년 월드컵을 전후로 해서 잡지에서 그런 얘기가 많이 있었다. 월드컵은 '전복적인 체험의 공간'이라는 분도 있고, 여성에게 공공적인 장소에서 그들의 욕망을 분출시킨 계기가 됐다는 분석도 있다. 또 붉은악마에 대한 글을 쓴 분들이 많이 있다. 그 사람들의 태생적 배경이나 어떻게 전개됐는지에 대한 분석도 있고, 우리나라에서 축구가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말한 경우도 있다.
박정희 정권 때부터 복싱처럼 국가가 이용한 종목이 있다. 국가주도의 스포츠인데 이는 대중들에게 스트레스 해소 차원에서 전사됐던 스포츠 이벤트라고 볼 수 있다. 어떤 이는 이순신 장군(현충일) 등의 기념사업과 축구를 비슷하게 놓고 보며 비판하기도 한다. 태권도도 그런 측면이 있다. 국가주의에 동원된 스포츠라는 분석인데 상당 부분 동의한다.
"파시즘적 요소 있지만 정치적 목소리 없어 파시즘으로 설명하기 어려워"
뷰스 : 정 교수는 한 세미나에서 월드컵과 애국주의가 결합된 것을 파시즘적 병리적 현상이라고 비판한 적이 있는데. 구체적 예를 들어 밝혀 달라.
정희준 : 그 부분은 4년 전에 쓴 말인데 내 말이 아니라 인권단체인 인권운동사랑방의 논평을 인용한 것이다. 로버트 팩스턴은 그의 저서 <파시즘>에서 "파시즘은 국민들로 하여금 거대한 집단적 창조행위에 동참하고 있다는 육감적 흥분을 경험하게 해 준다"는 말을 했다. 그 사람은 또 "파시즘은 헌법상의 시민권을 어떤 기념행사나 축제에 참여하는 것으로 바꿔버렸다"고도 한다.
전 국민의 붉은악마화는 그런 설명에는 해당이 된다. 대중들을 탈정치화시킨다거나 이런 설명들도 그 때와 지금의 현상에 접목이 되기도 하는데 이 때문에 어떻게 보면 파시즘의 징후가 아니냐는 말이 있다. 그러나 파시즘이 되려면 모인 집단이 정치적 목소리를 내야 하는데 그런 목소리는 아니다. 그래서 엄밀한 얘기로는 축구를 응원하러 온 사람들을 파시즘에 빗대 설명하기는 어렵다.
물론 몇몇 부분은 파시즘의 특성에 들어맞는 것도 있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정치적 목소리를 내지는 않지만 자본의 파시즘으로 볼 수도 있지 않나라고 본다. 최근에는 섣부르게 파시즘이라고 말하는 분들은 없는 것 같다. 다만 그런 징후가 보인다는 말은 많이 했다.
뷰스 : 영국 에버딘 대학의 사회학자 리처드 줄리아노티는 더 심층적 분석을 내놓았다. 그는 <축구의 사회학>이란 저서에서 유럽과 남미의 클럽축구팀이 계급과 인종,경제적 관계도 반영하고 있다고 풀이했다.
한 예로 올림픽이 열리고 있는 그리스의 AEK아테네는 터키 난민이 만든 좌파 성향의 클럽이라는 설명이다. 반면 파나티나이코스는 재정이 풍부해 '장군들의 클럽'으로 불린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 클럽축구보다는 국가대항전에서 이 같은 모습이 보이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유는 뭘까.
정희준 : 축구 자체는 원래 계급적이었다. 과거 축구팀을 만든 사람은 그 지역의 공장주였다. 공장주가 축구팀을 만든 이유는 지역사회에 뭔가를 돌려주기 위해서였다. 노동자를 배려한 것이다. 훌리건도 90년대 중반부터 대대적인 단속을 당하고 있지만 그 전까진 좀 봐주는 경향이 있었다. 그런 이유도 축구가 계급적 스포츠였기 때문이다.
또 과거에는 유명한 선수들이나 클럽들도 경기가 있을 때 정치적 시위를 하기도 했다. 아시아는 축구를 나중에 받아들인 면도 있고, 프로구단의 역사가 짧다. 그런데 국가가 애용하는 스포츠가 되면서 민족적, 국가적으로 바뀐 것이다.
"시위를 축제로 바꾼 긍정적 측면도 있다"
뷰스 : 긍정적인 얘기를 해보자. 우리나라의 경우, 월드컵이 과거 민주화운동시절 타도의 대상으로 보던 국가를 승리의 대상으로 형질변환시켰다는 긍정적인 면도 있지 않을까.
정희준 : 그렇다. 2002년에 군중이 모이는 것은 한풀이의 성격도 있었던 것 같다. 하다못해 데모도 분위기가 바뀌었다. 시작은 '효순이 미선이 추모 촛불시위'였지만 이를 이끌어낸 것은 월드컵이었다. 월드컵을 계기로 시위도 축제의 성격으로 바뀐 것이다. 군중현상의 다른 모습을 가져왔다고 볼 수 있다.
또 젊은이나 여성들의 변화를 가져왔다. 축구도 좋아하긴 했지만 여성들은 과거 칠거지악을 강요당했듯이 이제까지 공적인 장소에선 욕심이나 욕망을 드러내면 안 됐다. 그러나 2002년을 보면 같이 뛰쳐나왔다. 대담하게 성적인 분위기를 내는 표현까지 하는 분들도 있었다.
시청 앞 응원 때 어떤 여자는 '남일아 불꺼라'란 글이 써진 피켓을 들고 있기도 했다. 이런 것을 예로 들면서 여성들도 바뀌었다는 분석도 하고 있다. 신세대를 못마땅하게만 바라보던 어른들에게 젊은이들도 자율적이고 어른들의 간섭이 없어도 스스로 행동하고 책임질 수 있는 모습을 보였다는 말도 나왔다.
그래서 신세대나 여성에 대한 인식이나 그들에 대한 태도가 긍정적으로 바뀐 측면도 있고, 신세대에게는 국가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됐다는 말도 나왔다.
"방송은 완전히 미쳐, 사회적 공기로서 방송은 죽었다"
뷰스 : 월드컵을 지금까지의 비판이 아닌 진정한 지구촌의 축제로 즐기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국가의 역할, 기업의 역할, 국민의 역할로 구분해서 설명해 달라.
정희준 : 국가보다는 축구협회의 역할이 크다고 본다. 일단은 유소년리그, 학생들 축구 같은 곳에 좀더 많은 투자를 하고 K-리그에도 투자를 해야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축구는 기본적으로 가분수 구조라고 볼 수 있다. 오직 A 매치만 있는 축구다. 축협이 행정을 제대로 하고 미래의 청사진을 제대로 보여주면 지금처럼 4년에 한번씩 호들갑 떨지 않아도 더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본다.
기업에 대해서 말하자면 사실 어떤 분은 "자본주의를 거부할 게 아니라면 상업주의라고 떠드는 것이 웃기지 않냐"는 말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외국기업도 큰 돈을 들이지만 국민들을 응원에 동원하는 곳은 없다. 기업들도 갑자기 축구를 사랑하는 것처럼 나타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또 하나의 문제점 중 하나는 응원문화도 완전히 서울판이라는 것이다. 지방에 가면 이런 모습이 없다. 나라 구석구석에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축구를 즐길 수 있고, 축구 동호회도 많은데 운동장도 못 구하는 곳 많은 실정이다. 이에 대한 해결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방송이 문제라고 본다. 방송은 완전히 미쳤다. 월드컵을 도구로 삼아 돈도 벌고 시청률도 올리겠다는 건데 KBS가 조금 덜한 편으로 13일의 경우 축구관련 편성이 50~60퍼센트 정도다. 그러나 이것도 KBS의 생각이 올바르기 때문이 아니고 타 방송사처럼 움직일 돈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국감 등이 있기 때문에 전용할 예산이 별로 없다. 어떤 사람은 KBS는 원래 기획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라는 말도 한다. 공영방송인 MBC의 경우는 말도 안 되는 것이다.
스포츠 기자들은 다 독일에 보내고 사회, 문화부 등에서 국내 취재를 하게 한다. 오늘로 해서 사회적 공기로서의 방송은 죽었다. 특히 방송이 그런 식으로 안면몰수하고 장사하러 나서는 것은 정말 문제가 크고 그들도 어떻게 수습할 지 궁금한 상황이다. 제자리로 돌아와야 한다.
국민 여러분께 드리고 싶은 말은 원래 축구는 맥주 한 잔 마시면서 보는 것이었다. 친구, 가족들과 맛있는 것 드시면서 시청하고 응원하는 축구라면 즐거움을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그렇게 되면 응원장소로 어디에 갈 지 고민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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