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제발 더 이상 죽이지 마라!"
<기고>고 한경선 선생의 영전에 부치는 글
지난 2월 27일 미국 오스틴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비정규직 시간강사 한경선씨는 당시 남긴 3장의 유서에서 대학의 부당한 차별과 열악한 시간강사의 현실을 토로한 바 있으며 벼랑끝에 몰린 시간강사들의 자살이 잇따르고 있다.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은 현재 국회에서 낮잠중인 조속한 개정안 통과를 촉구하며 국회 앞에서 200일째 천막농성을 하고 있다. <뷰스앤뉴스>는 시간강사들이 처한 부당한 현실을 고발하고 제도적 대안을 제시하는 비정규교수노조의 글 3편을 릴레이로 게재한다. <편집자주>
더 이상 죽이지 마라! 이젠 제발 더 이상 죽이지 마라!
대학생들을 선생에게 배우게 하라. 시간강사를, 그리고 강의전담교수를 비롯 수많은 비정규교수들을 겉으로만 선생인 척 보이게 하는 사기 행각을 때려치워라.
대부분의 학생들은 시간강사가 선생인 걸로 알고 있다. 시간강사를 교원으로 인정하지 않으려거든 학생들에게 진실을 밝혀라. 너희들은 선생에게 배우고 있는 게 아니라고. 너희들은 누구를 가르칠 수 있는 그 어떤 자격도 없는 자들에게 배우고 있노라고.
너희들은 지금껏 속고 있었노라고. 우리나라 대학은 현재 교양강좌의 64.3%, 전공강좌의 43.2%, 대학원 전공강좌의 26.7%(<교양 64% 짊어진 교육 중추. 그래도 삶은 핍진하다>, 교수신문 2008년 3월17일자)를 이런 무자격자들에게 배정하고 있노라고. 그러므로 시간강사의 강의를 한 번도 듣지 않고 대학을 졸업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그러므로 너희들의 졸업장은 진품이 아니라 가짜라고. 학점을 줄 자격이 없는 그런 무자격자들에게 학점을 땄기 때문에.
학생들이 왜냐고, 왜 그런 자들에게 강의를 주냐고 묻거든 숨김없이 말하라. 싸기 때문이라고. 자격과 학식, 교수법에서 전임교수들과 다를 바 없는 그들의 노동을 전임의 1/5이하의 헐값으로 착취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뿐만 아니라 그 어떤 법적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라고. 강의가 없는 방학 땐 한 푼 안줘도 괜찮기 때문이라고. 말하라! “그들은 싸게 쓰고 버리면 되는 소모품이다”라고.
너희들에게 살인적으로 비싼 등록금을 받지만 그들에게 쓰는 건 아까워 죽겠다고. 다시 말해 너희들에게 비싼 등록금을 받지만 너희들의 교육에 투자하는 것은 아까워 죽겠다고. 대학 강의란 게 아무나 하면 되는 그런 게 아니냐고. 거기서 아낀 돈으로 건물도 짓고 적립금도 쌓고 그런다고.
고 한경선 교수를 비롯하여 6건의 알려진 비정규교수의 죽음은 그저 드러난 죽음일 뿐이다. 그 중 서울대에서 일어난 두 건은 학교와 가족이 쉬쉬하며 알려지길 꺼리는 것을 여러 통로로 알게 되어 밝혀낸 죽음이다. 이처럼 그 원인이 시간강사제도에 있으면서도 개인적인 문제로 축소되었거나 아예 묻힌 죽음이 얼마나 많을지 모를 일이다.
또 생물학적인 죽음만 죽음이라고 할 수도 없다. 사실 지금 대학 강단에 서 있는 수많은 강사들은 살아있으되 죽은 것이나 진배없다. 왜냐하면 현재의 제도 하에서 시간강사란 명칭은 천형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 어디에도 떳떳이 드러내놓을 수 없는 낙인이다. 죄는 아니지만 죄처럼 생각되는 낙인.
지금 교수임용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온갖 추태와 비리는 시간강사와 전임교수의 차이가 너무 크다는 데 있다. 한경선 교수도 이 아수라장의 희생자다.
그는 유서에서 “제가 삶을 마감하면서 이 글을 쓰는 것은, 더 이상은 이와 같은 비극이 일어나길 원하지 않기 때문이며, 또한 그럴듯한 구호나 정책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진정한 반성과 성찰 없이는 결코 극복할 수 없는 사항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라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틀렸다. 지금과 같은 제도와 정책이 유지되는 한 그가 죽음으로 원했던 대학구성원들의 “진정한 반성과 성찰”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그들 역시 욕망을 가진 인간이고 시간강사에서 전임교수가 된다는 것은 바로 계급 상승을 뜻하기 때문이다. 노예에서 귀족으로의 상승, 그 어떤 것도 가지지 못한 자에서 모든 것을 가지고 향유하는 자로의 상승, 이무기에서 용으로의 승천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현재의 제도는 반드시 고쳐져야 한다. 자격이 있는 자들에겐 그 자격을 부여해야 한다. 비정규직은 그 일이 비정규적이라는 뜻이다.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일은 결코 비정규적일 수 없다. 언제까지 돈을 이유로 능력 있는 학자들을 죽음으로 내몰 수는 없다. 돈이 문제라면 국가가 나서야 한다. 그들의 자존심을 죽이면서 대학교육개혁을 외치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대학교육의 반을 맡긴 자들을 선생으로 인정하지 않고 사지로 몰면서 무엇을 어떻게 개혁하겠다는 것인가.
더 이상 죽이지 마라! 춘래불사춘. 봄은 왔으되 비정규교수들의 몸과 마음은 아직 동토에 있다. 옆에서 어제까지 같이 숨 쉬던 동료 교수가 피를 토하며 죽었다. 그는 자살한 게 아니라 제도에 의해, 국가에 의해 피살되었다. 이젠 더 이상 죽이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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