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렌 버핏'과 '박현주', 하늘과 땅 차이
<뷰스 칼럼> 지난해 10월, 두사람의 명운은 갈렸다
무너진 신화, 박현주
126조원의 주식형펀드 가운데 38%를 독식하고 있는 미래에셋은 그 돈의 절반을 중국과 다른 신흥성장시장에 투자하고 있다. 중국에 55%를 몰빵하고, 나머지 45%를 인사이트펀드 형태로 러시아, 인도, 브라질 등 세계각지의 고도성장 지대 주식에 투자하고 있다. 문제는 지난해 10월까지 잘나가던 해외주식형펀드가 올 들어 초토화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해 10월말 설정한 인사이트 펀드 수익률은 -24%로 펀드중 최악이다. 중국펀드도 초토화되기란 마찬가지.
당연히 미래에셋에 돈을 맡긴 투자자들이 격노하고 있다. 미래에셋에 떼인 3% 수수료까지 합치면 30% 가까이 원금이 박살났기 때문이다. 이에 그동안 '박현주'란 이름을 믿고 참고참던 일부투자자들이 환매에 나서기까지 하는 등 돌아가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한때 '한국의 워렌 버핏'이라고까지 불리던 박현주 회장의 최대위기다.
지난해 10월, 워렌 버핏과 박현주의 차이
박현주 회장을 비롯해 세계 증권맨들이 신앙처럼 떠받는 존재가 미국의 워렌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이다. '투자의 신' '투자의 귀재' 등 그를 지칭하는 명칭은 부지기수다.
워렌 버핏 회장이 중국 주가가 급등하던 지난해 10월말 한국을 찾았다. 그는 "중국 증시가 급등했으며 버블 붕괴가 올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자신이 중국에서 사들인 주식을 모두 팔았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는 "주가가 급등할 때 투자자들은 신중해야 한다"며 "급등하는 주식은 절대 사지 않는다"고 조언하기까지 했다.
절묘한 시점에 절묘한 조언이었다. 박현주 회장은 워렌 버핏 회장의 말을 경청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정반대 선택을 했다. 그해 중국투자에서 엄청난 수익을 올린 그는 도리어 중국에 더 몰빵을 했다. 중국뿐 아니라 러시아, 인도, 브라질 등에 집중투자하는 인사이트 펀드도 신설했다. 국내 투자가들은 워렌 버핏보다 박현주를 믿었다. 엄청난 돈이 박현주의 미래에셋으로 몰려들었다.
하지만 국제투자가들은 워렌 버핏의 판단을 존중했다. 중국을 경계하기 시작했고 중국주가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박현주 회장이 지난해 11월24일 긴급기자회견을 자청했다. 그는 직접적으로 워렌 버핏의 이름을 거명하지 않았으나, 내용적으론 워렌 버핏의 주장을 질타했다.
박 회장은 “미국이나 유럽 전문가들은 아시아에 투자하는 것이 위험하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선진국은 안정적이고 이머징은 위험하다는 도식을 갖고 있어 중국시장이 저렇게 활황인데도 ‘위험하다’, ‘버블이다’ 라고만 하면서 투자수익을 얻지 못했다”며 “서브프라임모기지론 부실여파로 선진국시장 곳곳이 지뢰일 정도로 위험하다”고 꼬집었다. 그는 외국계 펀드매니저들이 국내 자산의 중국 치중 등을 지적하면서 ‘안정적으로 선진국시장에 투자하라’는 식의 조언에 “양심적으로 회의적”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워렌 버핏 류의 주장을 구형차 포드에, 자신의 투자기법을 신형차 렉서스에 비유하기까지 했다.
그는 “중국시장이 고평가됐다고 하지만 H주식의 PER이 25배인데 비해 인도 25배, 나스닥 30배”라며 “중국기업들이 강력한 구조조정으로 경쟁력을 확보하고 실적도 30~50%씩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베이징올림픽이 중국에서는 하나의 이벤트”라며 “베이징올림픽을 통해 서구에서 중국을 다시보고 중국도 마인드와 문화에서 한 단계 올라설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박현주의 '탈(脫)워렌 버핏' '마이웨이 선언'이었다.
'상승장'만 경험한 박현주
중국주가가 폭락하며 박회장이 주력해온 중국펀드와 인사이트펀드 수익률이 폭락하자 미래에셋은 지난 23일 각 신문에 긴급광고를 냈다.
미래에셋은 광고에서 "지난 10여년간 우리는 많은 경험을 했다. IMF, 9.11테러, 유가 폭등, 이라크 전쟁 등 전 세계적으로 언제난 불안요소는 있어 왔다"며 "당장은 세계 주식시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지금 이 위기는 길게 보면 새로운 기회일 수도 있다. 미래에셋은 소수의 관점에서 지금의 상황을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미래에셋이 "소수의 관점"이란 표현을 사용한 것은 박 회장 자신이 얼마나 초조해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반증으로 증시에서 받아들여졌다. 그 무렵 재경부와 금감위, 한은 등은 미래에셋에서의 펀드런(펀드대량환매) 발발을 우려한 긴급대책회의를 열기까지 했다.
왜 이 지경까지 됐나. 전문가들은 박 회장이 '대세 상승장'만 경험했기 때문으로 분석한다. 워렌 버핏처럼 '대세 상승장'과 '대세 하락장'을 모두 체험한 경험, 즉 '쓴맛' '단맛' 모두 겪은 경험이 없다보니 결정적 시점에 치명적 패착을 했다는 지적이다. 이는 박 회장 개인의 한계가 아닌 한국금융의 한계라는 지적도 한다. 다른 펀드들의 사정도 오십보백보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국내 메이저 신문은 박현주 회장이 지난해 수억달러를 벌어들인 것을 격찬하며 이제는 금융도 효자 수출산업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맞는 얘기다. 그러나 한가지 빠졌다. 금융이 한국을 이끌어갈 '뉴리딩 인더스트리'가 되기 위해선 자신의 이해관계에 몰입되지 않는 '차가운 눈'부터 갖춰야 한다는 점이다. 증시에서 흔히 말하는 '어깨에서 빠질 수 있는 냉철한 지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너무 간단한 교훈을 얻기 위해 너무 비싼 대가를 치루고 있는 안타까운 국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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