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일의 '反선진화 5적' 청산전쟁
[전문] '역사인식-대북-교육-수도권-경제정책' 대전환 촉구
본디 같은 색채의 진영내 정권교체도 수많은 변화를 가져오게 마련이다. 그런만큼 다른 색채 진영간 정권교체는 상상을 초월하는 허리케인을 몰고올 것으로 봐야 한다. 이번 곳곳에서 그런 조짐이 읽힌다. 그러나 변화는 상상 이상일 것이다. 과연 어떤 변화가 올 것인가.
이와 관련, 박세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59)의 주장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가 단지 인수위원장 유력후보중 한명이기 때문이 아니다. 그는 인수위원장이 안될 가능성도 상당히 높은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그는 이명박 당선자의 '이데올로그'다. 그의 생각과 이 당선자 생각은 큰 틀에서 궤를 같이 한다. 그의 평소 지론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박 교수는 대선운동이 한창이던 지난 10월18일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선진화국민회의 정책대회에서 정부조직 개편의 큰 틀을 제시한 바 있다. 그는 이날 대회에서 발표한 방대한 분량의 제언서 제목은 '선진화를 막는 5적(反선진화 5적)과 선진화를 위한 10대 국가과제'.
박 교수는 여기서 김대중-노무현 정권 10년을 "선진화를 막은 반선진화 10년"으로 규정한 뒤, 이른바 '반선진화 5적'을 열거했다. 좌파적 역사관과 반법치주의, 투항적 대북정책과 배타적 민족주의, 평등주의적 관료주의적 교육정책, 선심성 국토균형정책과 수도권규제강화, 포퓰리즘적 편가르기식 경제사회정책이 그것이다.
박 교수는 우선 첫번째 '좌파적 역사관'과 관련, "지난 10년의 모든 사고의 혼란과 국가비전의 표류, 그리고 국가정책의 혼선의 밑바닥에는 바로 이 좌파적 역사관, 아니 이 '반대한민국적 역사관'이 자리잡고 있다"며 "반선진화의 움직임은 '역사부정'에서 시작하여 '헌법경시와 법치무시'로 이어지고, 나아가 '가진 자와 못 가진자', '수도권과 비수도권', '20 대 80' 식의 '편 가르기식' 포퓰리즘으로 연결되어 나갔다"며 집권시 역사교과서 수정 등을 요구했다.
그는 두번째 '투항적 대북정책'과 관련해선 "햇볕정책에서 '북의 변화'라는 목표를 없애버리면 햇볕정책은 더이상 '포용정책'이 아니라 그대로 '투항정책'이 된다"며 "도대체 '우리민족끼리'라는 '폐쇄적 민족주의' 가지고 어떻게 21세기 세계화시대에 대응할 수 있는가"라고 반문하면 대북정책의 전면 수정을 주장했다.
그는 세번째 '평등주의적 관료주의적 교육정책'과 관련해선 "민간의 자발적 교육혁신의 노력을 사사건건 제한하고 억압하는 관치교육이 횡횡하게 되었다. 최근의 3불 정책도 그러한 예의 하나"라며 "지난 기간 '평등교육' '관치교육'을 강요함으로서 국민 한사람 한사람이 세계경쟁을 할 수 없도록 만드는 데 국가가 앞장선 셈이 되었다"며 교육현장으로의 대대적 권력 이양을 주장했다.
그는 네번째 '선심성 국토균형정책과 수도권규제강화'와 관련해선 "수도의 발전이 지방발전을 저해한다는 생각은 낡고 틀린 생각"이라며 "수도 등 대도시가 발전할 때 인근의 중소도시가 뒤따라 발전하고, 그 뒤를 농촌이 이으며 발전하는 법"이라며 수도권 규제 전면 해제를 주장했다.
그는 마지막 다섯번째 '포퓰리즘적 편가르기식 경제사회정책'과 관련해선 "양극화 해소를 부르짖으면서 양극화의 원인이 부자들이 세금을 안내서 생기는 것처럼 호도하는 것도, 우리나라의 공교육이 실패하는 원인이 서울대학 등 소위 일류대학이 우수한 학생들만 뽑으려 해서 발생하는 것처럼 오도하는 것도, 전국의 부동산가격이 안 잡히는 원인도 서울 강남의 부자들 때문인 것처럼 매도하는 것도 모두가 '편 가르기식' 인기영합의 포퓰리즘이었다"며 기존 세금정책, 교육정책, 부동산정책, 노동정책의 전면적 방향전환을 주장했다.
하나같이 노무현 정부의 정책과 180도 궤를 달리하는 정책방향이어서, 이대로 추진할 경우 향후 치열한 일대 논쟁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다음은 박 교수의 발표 논문중 '반선진화 5적' 관련 부문 전문.
박세일의 반(反)선진화 5적
서문
우리는 대한민국의 역사는 해방 후의 건국, 그리고 60~70년대의 산업화, 80~90년대의 민주화의 단계를 지나 이제는 21세기 선진화의 단계로 진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명실 공히 세계 상등(上等)국가인 선진국의 일원이 되는 선진화가 우리의 21세기 국가비전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지난 10년간 선진화의 길로 나아간 것이 아니라 反선진화의 길로 뒷걸음쳤다. 역사발전의 역주행이 많았다.
그 결과로 지난 4년간 대한민국의 경제성장(년 평균 4.3%)이 세계경제성장의 평균치(4.9%)를 밑돌게 되었다. 60년대초 경제발전을 시작한 이래 45년의 발전의 역사 속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 현상적으로는 투자율의 하락으로부터 시작되었다. 1990년대 전반부 투자증가율이 매년10%하던 대한민국이 1990년대 후반부에 연 5%로 하락하더니 지난 5년간에는 1.1%의 수준을 보이고 있다. 정치가 불안하고 정책 환경이 예측할 수 없고 정부주도의 편 가르기와 反시장 反기업정서가 팽배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투자가 한국을 떠나기 때문이다. 저성장의 원인은 해외환경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국정운영의 실패 때문이었다. 그동안의 국정운영세력이 철저히 책임져야 할 문제이다. 한마디로 역사의 뒷걸음질이었다.
또한 단순한 성장률의 하락뿐 아니라 장기실업의 누증, 비정규직의 증가, 新빈곤층의 대두, 그리고 분배의 악화가 격심하여 졌다. 그 결과로 자살률, 가족해체, 반인륜적 범죄의 증가 등 사회적 아노미(anomie)가 심화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지역균형성장을 한다고 수도분할을 강행하고 혁신도시, 기업도시 등등의 명분으로 전국의 토지를 약 1억 5천만 평(여의도의 60배)을 파헤치고 있다. 그리고 토지보상비로 지난 5년간 약 67조 5천억 원이 풀었고 그 결과 전국이 땅값이 지난 4년간 88.3%증가하였다. 전국 땅값의 상승률이 김영삼 정부 때는 14.4% 김대중 정부 때는 16.0% 상승하였던 것에 비하면 노무현정부에서 과거 정부보다 5-6배 이상 오른 셈이다(이것이 사실 지난 5년간의 분배악화의 주범이다). 그리고 이러한 토지보상비 등으로 국민 부담이 될 국가부채는 지난 4년 간 133조에서 300조로 급증하여 매년 국민의 이자부담만도 12조가 되고 있다.
새로운 역사에 대한 설계는 과거역사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성찰 위에서만 가능하다. 지난 10년간의 우리 역사에 무엇이 잘못되어 우리는 오늘날과 같은 反선진의 국정실패와 그로 인한 국민고통을 겪어야 하는가? 이 점을 먼저 확실하게 밝혀야 한다. 그래야 그에 기초하여 앞으로의 바람직한 비전과 정책대안을 찾을 수 있다. 왜냐하면 과거에 대한 철저한 반성 없이 올바른 미래설계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민이든 정치권이든 앞으로의 10년에 대한 올바른 희망의 비전을 찾으려면 반드시 지난 10년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성찰에서 출발하여야 한다.
지난 10년은 왜 '反선진화의 시대'였나? : 反선진화 5적
그러면 짧게는 지난 5년 길게는 지난 10년 우리는 무엇을 잘못하여 오늘날과 같은 反선진의 국정실패를 결과하게 되었는가? 많은 이유가 있지만 가장 근본적이고 중요한 이유는 다음과 같이 5가지 때문이다.
1. 좌파적 역사관과 反법치주의
지난 10년의 국정표류와 실패의 가장 근본적 원인은 잘못된 역사관과 법치주의의 무시에서 온다. 대한민국은 '친일파와 민족분열주의자가 만든 나라이다', '정의가 실패하고 기회주의가 성공한 나라이다', '있어서는 안 될 나라이다'라고 주장하면서 대한민국의 역사적 정통성과 정당성을 전면 부정하는 좌파적 역사관이 우리사회에 등장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좌파적 역사관에 기초하여 대한민국의 헌법과 법치주의를 무시하는 잘못된 의식과 행동이 우리사회에 등장하였다. 이들이 그동안 대한민국의 선진화를 막아왔다. 이들은 대한민국의 역사의 공(功)과 과(過)를 가려서 과를 반성하고 공을 발전적으로 계승할 생각을 하지 않고, 오로지 모든 역사를 청산과 전복의 대상으로 보아 우리의 역사를 무차별적으로 공격하였다. 그리고 나아가 대한민국의 헌법을 욕하고 공격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잘못된 좌파적 역사관과 反법치주적 이념을 젊은 학생들에게 지속적으로 퍼트려 왔다.
이들은 역사적 사실과는 정반대로 조국의 분단은 친일파와 민족분열주의자 때문이라고 거짓 선동을 하고 있다. 1945년 9월 20일 스탈린 특별지령에 의하여 한반도의 분단이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감추고 있다. 또한 이들은 6.25의 민족상잔의 비극도 처음에는 북침이라고 하더니 냉전 후에 역사적 사실이 남침임이 밝혀지니 이제는 민족해방전쟁이기 때문에 누가 일으켰냐는 중요하지 않다고 강변하고 있다. 1960년 이후의 산업화의 성과도 외국자본과 결탁한 매판세력의 노동착취의 결과일 뿐이라고 폄하하고 있다. 바로 이 좌파적 역사관이 국민의 애국심을 약화시키고 자기역사에 대한 자긍심을 파괴하고 차세대들에게 자신들의 역사적 정체성에 대한 혼란과 방황을 심화시켜 왔다.
사실 지난 10년의 모든 사고의 혼란과 국가비전의 표류, 그리고 국가정책의 혼선의 밑바닥에는 바로 이 좌파적 역사관, 아니 이 '반대한민국적 역사관'이 자리잡고 있다. 反선진화의 움직임은 '역사부정'에서 시작하여 '헌법경시와 법치무시'로 이어지고, 나아가 '가진 자와 못 가진자', '수도권과 비수도권', '20 대 80' 식의 '편 가르기식' 포퓰리즘으로 연결되어 나갔다. 그 연장선상에서 다음에는 국가 주류세력을 교체하겠다며, 수도이전을 강행하는 망국적 정책까지 서슴없이 추진해 왔던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사회에는 단순한 '국정실패'를 넘어 '국가실패'의 조짐까지 나타나게 되는 셈이다.
요약하면 지난 10년간 바로 집권세력과 사회일각에서 '대한민국의 역사와 헌법에 대한 반역'이 일어났고 이를 선동하는 '反대한민국세력' '反선진화세력'이 우리사회에 등장했던 것이다.
2. 투항적 대북정책과 배타적 민족주의
지난 10년간 잘못된 '사이비 평화통일론'과 '반미자주'라고 하는 시대착오적 배타적 외교노선이 대한민국의 선진화를 막아 왔다. 이러한 사이비 평화통일론과 시대착오적 외교노선은 햇볕정책과 2000년의 남북정상회담에서 시작되었다.
본래 통일의 목적은 북한 동포의 삶의 조건을 개선하는 데 있어야 한다. 북한동포의 빈곤과 기아 그리고 탄압과 공포로 부터의 해방이 통일의 목적이어야 한다. 따라서 (1)북핵 폐기, (2)경제개혁과 개방, (3)인권탄압의 중지, (4)국제규범의 존중, 등을 향한 남북한의 공동노력이 있어야 통일이 달성될 수 있다. 즉 북의 정상국가(正常國家)화 내지 근대국가화(산업화와 민주화)를 향한 남북공동노력이 통일론의 핵심이어야 한다. 또한 북핵을 머리에 이고 북한동포의 고통(경제적 기아와 정치적 공포)위에 서서 진정한 한반도 평화를 논할 수 없다. 그것은 무덤과 감옥의 평화이고 따라서 지속가능한 평화가 아니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평화는 말로 되는 것이 아니다. 평화선언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행동과 실천이 있어야 하고 상호신뢰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북은 7.4공동성명(1972)이후 북은 땅굴을 팠고 남북기본합의서와 비핵화선언(1991)을 한 후 핵을 개발했고 공비도 침투(1996)시켰으며 제1차 남북정상회담(2000) 이후 서해안교전(2002)을 일으켰다. 그런데 우리는 제2차 정상회담(2007)에서도 과거 약속에 왜 지켜지지 아니했는가에 대한 비판과 반성 없이, 서로가 지킬 것을 진정으로 믿지 않으면서, 또 한
바탕 새로운 사이비 평화선언을 하고 말았다.
지난 10년간 좌파진보정권은 이러한 간단한 몇 가지 상식적 진리를 애써 외면하여 왔다. 원칙 없이 북한 당국에 아부하고 그들이 원하는 것을 퍼주고 그 대가로 그들과 만나 사진 찍는 것을 대북정책의 핵심으로 생각하여 왔다. 북녘 동포의 고통의 문제도 외면하고 오랜 동맹국가의 걱정도 무시하여 왔다. 북이 핵을 개발하여도 북녘 동포의 인권을 짓밟아도 대낮에 남한의 어부들을 납치하여 가도, 우리 좌파진보정부는 온갖 견강부회로 북한 당국의 행동을 합리화해주며 더 퍼주지 못하여 안달해 왔다. 그러면서 국내정치에 정파적으로 대북정책을 이용하려만 하였다. 북의 대표를 만나 사진을 찍고 삼페인을 마시면서 대단한 민족통일의 지도자연 하는데 급급했다. 명백히 이것은 북한의 정상국가화를 도와주는 길이 되지 못한다. 아니 오히려 북의 정상국가화와 근대국가화를 막고 지연시키는 일이 되고 결국 북녘 동포의 고통을 장기화시키는 일이 된다.
특히 최근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대통령이 나서서 햇볕정책에서 개혁개방의 목표를 없애 버렸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2007년 9월 뉴욕에서의 발언을 통하여 "햇볕정책은 북의 변화를 목표로 하는 정책이 아니다"라고 언명하고 있다. 노 대통령도 북이 개혁개방을 싫어하니 앞으로 그러한 이야기를 하지 말자고 하고 있다. 햇볕정책에서 '북의 변화'라는 목표를 없애버리면 햇볕정책은 더이상 '포용정책'이 아니라 그대로 '투항정책'이 된다.
이렇게 잘못된 친북적 투항적 대북정책이 국민을 분열시키고 올바른 통일관과 올바른 평화관을 왜곡하여 왔다. 우방국들과의 신뢰를 파괴하였고 국민들을 불안하게 하여 왔다. 특히 자주(自主)라는 21세기 세계화시대에 전혀 맞지 않는 시대착오적 외교관을 가지고 오랜 우방과의 동맹관계와 신뢰관계를 약화시켜 왔다. 한마디로 그동안 국가이익을 방기하는 자해적(自害的) 외교가 많았다. 21세기 대한민국에 요구되는 것은 선진적 협력관계로의 한미동맹의 성숙(21세기 한미동맹의 신 비전)위에 다면적 다자주의(多者主義 : multilateralism)를 기본으로 하여야 하는데 우리는 이러한 역사의 흐름에 정반대의 길을 걸어왔다. 도대체 '우리민족끼리'라는 '폐쇄적 민족주의' 가지고 어떻게 21세기 세계화시대에 대응할 수 있는가? 그러니 국정실패를 넘어 국가실패의 조짐까지 보이게 되는 것이다.
3. 평등주의적 관료주의적 교육정책
평등주의적 교육철학과 관료주의적 교육정책이 대한민국의 선진화를 적극적으로 막아 왔다. 세계화시대에 모든 나라들이 자국의 교육수준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높이려고 치열하게 '교육개혁 경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 오늘의 세계이다. 그런데 우리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후진하여 왔다.
세계최고의 교육수준을 만들려면 당연 '자유와 경쟁과 평가'를 존중하여야 하고 '수월성과 투명성과 책무성'을 중시하여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정부가 앞장서 학생들의 학교선택을 못하게 했고, 학교의 학생선택도 못하게 했으며 학교를 줄 세우면 안 된다고 학업성과(성적)도 발표하지 못하게 하고, 대학입시에도 학교별 학업성과의 차이를 반영하지 못하게 해 왔다. 더 나아가 학교와 교사의 교육성과에 대한 객관적 평가를 막아 경쟁의 유인을 막아 왔다. 한마디로 교육의 수월성과 책무성은 무시하고 평등성과 무책임만을 추구하였다. 이러한 평등주의적 교육철학에 전근대적이고 관료주의적인 교육정책이 가세하였다. 민간의 자발적 교육혁신의 노력을 사사건건 제한하고 억압하는 관치교육이 횡횡하게 되었다. 최근의 3불 정책도 그러한 예의 하나이다.그리하여 학교와 교사와 학생의 자율성과 창의성은 과도한 규제와 간섭 앞에서 무력하게 파괴되었다.
그러니 그 결과는 하향평준화이고 교실의 붕괴이고 교육탈출(교육이민)의 증가이다. 1998년 1천 500명 수준이던 초중고 조기유학생이 2006년 3만 명에 이르고 있다. 또한 대학이상의 성인유학생이 2007년 현재 21만 8천명에 이르는데 이 중 어학연수가 9만 여명이다. 즉 성인유학생 10명중 4명이 어학연수를 위하여 유학을 간다면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하는 우리나라의 외국어 교육은 한 마디로 크나큰 실패가 아닌가?
세계화시대는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세계경쟁을 하는 시대이다. 따라서 한 사람 한 사람의 지식과 기술수준을 크게 높이여 세계경쟁에서 이길 수 있도록 해주는 일은 국가가 해야 할 가장 시급한 제일의 의무이다. 그 일을 제대로 못하면 세계의 무한경쟁 속에 준비 안 된 국민을 내다 버리는 것과 같은 기민(棄民)정책이 된다. 그런데 우리는 지난 기간 '평등교육' '관치교육'을 강요함으로서 국민 한사람 한사람이 세계경쟁을 할 수 없도록 만드는 데 국가가 앞장선 셈이 되었다.
전국석차가 중요할 때 학급석차는 전혀 의미가 없듯이 이제는 세계석차가 중요해지는 시대이기 때문에 국내에서 몇 등하는 가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서울대학이 국내에서 1등을 하다고 하지만 세계에서는 현재 63등을 하고 있다. 북경대가 14등 동경대와 싱가포르 국립대가 19등을 하고, 홍콩대학도 33등을 하는데 우리나라 서울대는 63등이다. 물론 이 순위가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현재의 우리나라 고등교육의 수준을 가지고는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국제경쟁력을 세계수준으로 높일 수 없고, 기업도 국가도 국제경쟁을 할 수 없게 된다는 사실이다. 그러면서 이 세계화 시대에 어떻게 우리경제가 살아나고 우리사회가 선진화될 것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4. 선심성 국토균형정책과 수도권규제강화
인류의 역사를 보면 균형을 목표로 하여 발전한 예는 없다. 각 지역이 나름의 장점을 살리어 발전하고 그 결과로 균형과 조화가 이루어지는 법이다. 그래서 지역발전을 위해 각 지역이 자신의 장점을 살려 나가도록 분권화(돈과 권한의 지방이전)를 먼저 하여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중앙이 돈과 권력을 틀어쥐고 실질적 분권화는 아니 하면서, 정부부처 몇 개 공공단체 몇 개를 지방에 나누어 주는 것으로 균형발전이라고 주장하여 왔다. 그래선 자발적 지방발전은 전혀 불가능하다. 세계는 연방제에 가까운 분권화를 추구하는데 우리는 여전히 중앙이 모든 권력과 돈을 가지고 모든 결정을 다 하면서 균형발전을 노래하니 균형도 발전도 제대로 될 리가 없다.
또한 우리는 수도의 발전이 지방발전을 저해한다는 생각으로 수도권의 발전을 막아 왔다. 이 생각은 낡고 틀린 생각이다. 이제는 수도가 발전하고 대도시가 발전하여야 지방이 발전하는 시대이다. 세계화시대 대도시의 발전 즉 서울의 발전은 지방에서 인재와 돈을 빼와서 발전하는 시대가 아니다. 해외에서 돈과 인재와 기술과 기업을 끌고 와야 서울이 발전하는 그러한 시대이다. 그리고 이렇게 수도 등 대도시가 발전할 때 인근의 중소도시가 뒤따라 발전하고, 그 뒤를 농촌이 이으며 발전하는 법이
다. 대도시발전이 중소도시와 지방 그리고 농촌의 발전을 견인하는 법이다. 그래서 기러기가 편대를 이루며 날아가듯이 발전하는 것이 세계화시대의 도시 및 지역발전의 원리이고 과정이다. 소위 국내형 안행(雁行) 발전모델(flying geese model)이 그것이다. 따라서 수도 등 대도시가 해외로부터 돈과 인재와 기술을 유인하여 와서 발전하지 못하면 중소도시도 지방도 발전할 수 없게 되는 세상이다.
해외에서 돈과 인재와 기술을 가져 오려면 수도 등 대도시가 높은 국제경쟁력을 가져야 한다. 그런데 대도시의 경쟁력은 집중화(인적 자원과 물적 자원 정보적 자원의 집중 : agglomeration benefit)의 이익과 광역화(도시 외연의 확대 : economy of size))의 이익에서 온다. 그런데 우리는 그동안 서울이 너무 과밀하다고 그리고 너무 커진다고 행정수도와 공공단체의 지방이전을 추진하고, 동시에 각종 수도권규제를 강화하여 왔다. 서울의 국제경쟁력을 낮추기 위해, 세계적 대도시로의 도약을 막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해온 셈이다. 그 노력의 결과 서울은 세계의 3류 도시가 되었고(OECD 보고서 2006), 당연 이웃 상해나 동경과 대비할 때, 세계적 대자본과 대기업은 서울에 별 관심을 갖지 않게 되고 있다.
그러니 투자도 성장도 부진하고 고용도 늘지 않고 지방의 발전도 지지부진하게 된다. 이렇게 정부가 앞장서서 서울도 지방도 발전하지 못하게 하면서 어떻게 세계 일류국가로의 선진화를 꿈꿀 수 있겠는가?
5. 포퓰리즘적 편가르기식 경제사회 정책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 : populism))이란 단기적 정파이익을 위하여 장기적 국가이익을 버리고 국민의 일시적 정서에 영합하고 인기를 조작하고 선동하는 정책과 정치를 의미한다. 이러한 포퓰리즘적 정책과 정치는 당연 전문가나 학자의 객관적 합리적 의견보다는 다중(多衆)의 감성적 의견이나 비전문가들의 속론(俗論)에 기초하여 정책과 정치를 구상하고 추진한다. 그러니 그 정책과 정치가 성공할 수 없다. 이러한 포퓰리즘이 성하면 시장경제도 자유민주주의도 모두 실패하고 결국은 선진국 진입의 문턱에서 주저앉게 된다. 많은 중진국이 선진국진입에 실패한 이유가 바로 이 포퓰리즘의 발효에 있었다.
지난 10년간 포퓰리즘이 특히 극성을 부렸다. 햇볕정책도, 교육평준화정책도, 수도이전 정책도 모두가 사실은 '큰 포퓰리즘'이었다. 그러나 '작은 포퓰리즘'도 수없이 많았다. 부동산가격을 세금폭탄으로 잡겠다는 발상도 지극히 포퓰리즘적인 발상이다. 실업과 빈곤을 줄이기 위하여 기업투자와 경제활성화는 생각하지 않고, 또한 복지전달체계의 질적 개선노력도 없이, 무조건 복지예산의 양적증대만 주장하는 것도 지극히 포퓰리즘적 발상이다. 진보연(然) 하는 정치인들이 "경제가 살아나야 가난이 준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대중 앞에서는 反기업정서 反부자정서를 자극하는 언술을 함부로 하는 것도 자기기만이고 인기영합이다.
양극화 해소를 부르짖으면서 양극화의 원인이 부자들이 세금을 안내서 생기는 것처럼 호도하는 것도, 우리나라의 공교육이 실패하는 원인이 서울대학 등 소위 일류대학이 우수한 학생들만 뽑으려 해서 발생하는 것처럼 오도하는 것도, 전국의 부동산가격이 안 잡히는 원인도 서울 강남의 부자들 때문인 것처럼 매도하는 것도 모두가 '편 가르기식' 인기영합의 포퓰리즘이었다.
악성의 포퓰리즘은 노사관계정책에서 극명하게 들어났다. 노사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노사관계의 규범화이다. 즉 공정하고 효율적인 노사관계가 하나의 관행과 의식으로 정착되어야 선진적 노사관계이다.
그렇게 되려면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노사관계를 규율하는 법치를 바로 세우고 정부가 일관성 있게 이를 집행하여 나가야 한다. 그런데 정부가 나서서 노사당사자들에게 법을 지킬 것을 요구하기보다, 노사의 타협만을 강조하면서 탈법과 위법은 눈감아 주는 경우가 많아지지 노사관계의 규범화가 진행될 수 없었다. 노사 모두는 타협과정에서 서로 유리한 고지들 점령하려고 온갖 탈법과 불법을 자행하는 데 진력하게 되고 정부는 이를 묵인내지 외면하는 모습이 되었다.
결국 정부가 노동법을 엄정히 집행하면 노사모두에게 비판을 받기 쉽지만, 노사타협만을 강조하면서 탈법과 불법을 묵인하면 노사모두에게 인기 영합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노사관계가 발전하지 못하고 안정되지 못하고 예측가능하지 못하고, 따라서 기업이 이 나라를 탈출하고 외국자본이 이 나라를 피하는 양상이 일어나고 있다. 참 한심한 일이다.
본래 국가정책에 기초가 되는 이론 내지 견해에는 두 가지가 있다. 공론(公論)과 중론(衆論)이 그것이다. 전문가 학자들이 깊이 연구하고 토론한 결과인 공론(public judgement)이 국가정책을 이끌어 가면 그 나라는 발전한다. 반면에 다중의 일시적 견해인 중론(majority opinion)이나 혹은 아무 근거 없이 시중에 돌아다니는 속설이나 부론(浮論)이 국가정책을 끌고 가면 그 나라는 망한다. 그래서 이율곡선생은 공론이 국가의 원기(元氣)이고 공론이 서지 아니하면 그 나라는 망한다고 하셨다.
한마디로 선동가들이 나와 국민의 정서를 자극하여 국민을 오도하고 그 결과 포퓰리즘이 기승을 부리게 되면 그 나라는 망한다는 말씀이다. 따라서 우리는 모든 정치적 선동을 막고 모든 포퓰리즘 정책을 확실히 추방하여 국정운영을 중론이나 속설이 아니라 철저히 공론에 기초하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대한민국의 선진화가 가능하다.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지난 10년의 국정파행과 국가후퇴의 원인은 5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좌파적 역사관과 反법치주의, 둘째는 투항적 대북정책과 배타적 민족주의, 셋째는 평등주의적 관료주의적 교육정책, 넷째는 선심성 국토발전론과 수도권규제강화 그리고 다섯째는 공론을 파괴하는 포퓰리즘적 '편가르기식' 경제사회정책이다. 이 5가지가 지난 10년 대한민국의 선진화를 가로 막아 온 5대 도적들이다. 한마디로 '反선진화 5적'이다. 이 5적을 물리쳐야 우리는 앞으로 10년 안에 선진강국에 들어갈 수 있다. 따라서 선진화를 위한 비전과 정책운동은 그 동안 선진화를 막아온 이상의 5가지 도적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극복에서 출발하여야 한다.
<저작권자ⓒ뷰스앤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