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권 "윤석열 X파일, 열어보지 않고 지워버렸다"
"유권자들을 자신의 뜻대로 조종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착각"
진중권 전 교수는 28일자 <매일신문> 칼럼에서 "이른바 '윤석열 X파일'이 항간에 떠도는 모양이다. 한 세 가지 버전이 있다고 들었다. 그중 하나를 누군가 익명으로 내게 보내 줬다. 현실 정치권과 거리가 먼 내 손에까지 들어왔으니, 아마도 읽을 만한 사람은 다 읽었을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러면서 "정치, 꼭 이렇게 해야 하나?"라고 반문한 뒤, "'X파일'을 옹호하는 이들은 그것도 검증에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누가, 무슨 의도로, 무슨 근거로 만들었는지도 모를 괴문서가 공직 후보자에 대한 윤리적 검증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그것은 정치 커뮤니케이션을 뒷골목 '지라시' 통신 수준으로 떨어뜨려 정상적인 검증 절차를 왜곡하고 방해할 뿐"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한심한 것은 유력 정치인들까지 나서서 이를 부추긴다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의 송영길 대표는 '윤석열의 수많은 사건에 대한 파일을 차곡차곡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집권 여당의 대표가 재보선 참패로 당이 위기를 맞은 상황에서 고작 한다는 짓이 아직 출마도 하지 않은 이의 X파일을 만드는 짓이란다"라고 힐난했다.
또한 "같은 당 정청래 의원의 말은 매우 인상적이다. 그는 '실체보다 상상의 속도가 더 빠르다'며 '실존 유무를 떠나 윤석열의 X파일이라는 말이 더 중독성이 있는 것'이라 말했다. 한마디로 그 파일이 '실체' 없는 '상상'의 산물이더라도 전파력과 중독성은 높다는 얘기"라며 "이게 그들이 정치를 하는 수준"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아직 후보가 결정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지라시가 난무하는 것을 보면, 이번 대선의 분위기는 매우 혼탁할 것 같다"며 "한쪽에서는 중독성 높은 헛소문으로 대중의 상상력에 재료를 제공하고, 다른 쪽에선 입에 담기 힘든 욕설이 담긴 녹음 파일을 뿌리고 다닐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왜들 그럴까? 그 바탕에는 일종의 음모론적 사유가 깔려 있다. 즉 소수의 사람들이 '이야기'를 지어내 그것으로 유권자들을 자신들 뜻대로 조종할 수 있다는 믿음"이라며 "김대업 사건을 비롯한 몇 가지 사례들은 그 믿음이 정당하다고 말해 주는 듯하다"고 분석했다.
이어 "하지만 착각"이라며 "김대업이 없었어도 16대 대선은 노무현이 이겼을 것이다. 그때는 그가 시대정신이었다. 설사 다스가 이명박의 소유로 밝혀졌더라도 17대 대선은 어차피 그의 것. 그때는 그가 시대정신이었다. 선거 기간 내내 '생태탕'을 떠들었지만 어디 선거에 이기던가. 이번엔 오세훈이 시대정신이었다"고 단언했다.
그는 "대선은 지나간 5년을 평가하고 다가올 5년을 준비하는 절차다. 어느 후보도 아직 자신이 왜 대통령이 되어야 하는지 말하지 못하고 있다"며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평등주의에서 갑자기 '성장'과 '공정'으로 노선을 갈아탔고, 윤석열 전 검찰총장 역시 공정과 법치 외에 나라를 어떻게 바꿀지 아직 메시지를 못 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결정적인 것은 누가 시대의 물결을 타느냐 하는 것이다. 국민들은 지금 답답해하고 있다. 헝클어진 실타래처럼 모든 것이 복잡하게 꼬인 상황에서 우리가 당하는 고통의 원인이 무엇이며, 그 문제를 해결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누군가 말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며 "대권은 그것을 하는 이가 쥐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X파일 좋아하는 이들은 상대의 바둑돌이 지저분하다는 험담으로 대국에서 이긴다고 믿는 사람들과 같다. 검증은 중요하다. 그래서 지라시로 대신해서는 안 되는 것"이라며 "아울러 그보다 중요한 것은 다가올 5년의 비전. 대권을 쥐려면 무엇보다 캄캄한 어둠 속으로 내뿜는 한 줄기 전조등이 되어야 한다"고 쐐기를 박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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