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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증장애인들 ‘43일 투쟁’이 맺은 작은 결실

<현장> 서울시, ‘활동보조인서비스 제도화’ 요구 수용

<장면1> 39명 중증장애인들, 눈물의 삭발식

지난 4월17일 서울시청 앞 광장. 29일째 노숙농성을 하던 39명 중증장애인들의 머리카락이 속절없이 잘려나갔다. 한달 가까이 이명박 시장과의 면담을 요구했지만 차갑게 거절당한 그들은 장애인의 날을 사흘 앞두고 장애인의 인권에 무지한 사회와 정부를 향해 자신들의 머리카락을 39개 분골함에 나눠담았다.

그들은 39개의 분골함을 서울시장에게 전달하려했지만 이를 지켜보던 경찰병력에 의해 저지당하고 다시 시청 앞 광장으로 떠밀려 내려왔다. 삭발을 결행한 장애인들도 그들을 돕는 비장애인 활동가와 가족들도 모두 울었다.

끝내 그들은 머리카락을 서울시에 전달하지 못하고 사흘 뒤인 20일 장애인차별철폐 공동투쟁의 날, 행진을 멈춘 남대문 사거리에서 그것들을 모두 태워버렸다.

<장면2> 6시간의 한강대교 행진, 느린 걸음으로 알리다

지난 4월27일 한강대교 노량진 방면 4차 편도는 교통의 흐름을 멈췄다. 자활서비스 제도화를 요구하는 중증장애인들이 휠체어에 내려 그 길을 걸었기 때문이다.

이날 중증장애인들은 자신들의 수족과도 같은 휠체어대신 무릎과 팔꿈치, 손바닥에 보호대를 착용하고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행진 도중 4명이 탈진해 실려갔고 그들의 느린 걸음을 이해 못하는 비장애인들은 지나가면서 욕지거리로 그들의 가슴을 후벼팠다.

하지만 그들은 ‘7천억원의 예산을 들여 노들섬에 오페라하우스’를 짓겠다는 서울시가 정작 자활보조인서비스 제도 도입을 위해서는 ‘5천만원의 예산도 없다’고 손사래 치는 기만을 폭로하기 위해 기어코 한강대교를 건넜다. 정확히 330m길이를 걸어가는 데 걸린 시간은 330분이었다.

지난 4월 27일 오후. 중증장애인 30여명이 휠체어에서 내려 한강대교를 건넜다.ⓒ최병성


삭발...행진...농성, 서울시 활동보조인 제도화 조례제정 약속

활동보조인 서비스의 제도화를 요구하며 서울시청 앞에서 43일간 노숙농성을 벌여온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소속 장애인들의 긴 싸움이 결국 결실을 맺었다. 40일 넘게 모르쇠로 일관하던 서울시가 장애단체의 요구를 전격적으로 수용하고 전향적인 향후 대안 마련에 나선 것이다.

서울시는 지난 4월29일 새벽에 열린 전장연 대표자와의 협상에서 그동안 이들이 요구했던 ▲활동보조인 서비스 제도화 ▲활동보조 서비스를 위한 실태조사 ▲조례제정, 실태조사 위한 민관 공동협의기구 마련 등 3개 요구사항에 전격적으로 합의했다.

특히 서울시는 국회와 보건복지부가 관계법을 논의 중이라는 이유로 난색을 표명했던 조례제정에 합의, 국회의 논의가 미흡할 경우 독자적인 시 조례를 2007년까지 제정해 활동보조 서비스 제도화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약속했다.

서울시는 또 관련 법 제.개정이나 조례 제정 전이라도 시급히 지원이 필요한 사항에 대해서는 실질적 활동보조가 가능하도록 예산을 추가 지원하고 향후 실태조사 및 조례제정 과정에서 장애인단체와 센터를 포함한 민관 협의기구를 마련하기로 합의했다.

서울시는 1일 이같은 합의사항을 담은 정식공문을 전장연에게 발송했다.

중증장애인들이 골방과 시설에 더 이상 갖혀살 수 없다며 시청 앞 광장으로 나와 43일간 노숙농성을 견디고 한강대교를 건너고 이명박 시장이 가는 곳마다 따라다니며 ‘장애인의 정당한 권리를 인정하라’고 외친 결과였다.

5월 1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승리 보고결의대회.ⓒ최병성


“농성은 멈추지만 전국 모든 중증장애인들을 위한 싸움은 이제 시작”

5월 1일 오후 1시, 노동절 집회로 분주한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중증장애인들은 43일간의 노숙농성을 마무리 짓는 작은 승리 보고대회를 가졌다.

그동안 두 차례에 걸쳐 농성장의 물품들을 빼앗기고 집회차량을 견인당하면서도 농성장을 떠나지 않았던 50여명의 중증장애인을 비롯한 100여명의 소속 회원들은 기쁨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향후 제도화의 전국확대를 위한 지속적인 투쟁의지를 다졌다.

이들은 이번 투쟁결과에 대해 “이제 겨우 중증장애인들의 이동권이 기본권으로 인정받았을 뿐”이라며 “향후 전국적인 자활서비스 보조인 제도화를 위한 투쟁의 고삐를 늦추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최용기 활동보조인서비스제도화 투쟁위원회(활보투위) 공동대표는 “이번 합의는 그동안 예산이 없다며, 국회논의 중인 사안이라며 책임을 회피해오던 서울시가 제도화를 통해 중증장애인의 권리를 공식적으로 인정한 데 의미가 있다”면서도 “서울시 뿐만 아니라 이 땅의 모든 중증장애인들의 보편적 권리로 인정받기 위해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나서야한다”고 말했다.

이원교 공동대표는 집회 도중 도착한 서울시의 공문을 들어보이며 “시설과 골방에서 방치된 장애인들의 인권을 보장하라는 이 문구하나 넣기 위해 43일을 싸웠다”며 “이제 중앙정부, 지자체가 보장에 나서 장애인의 인권을 시혜가 아닌 의무로 만들어내야한다”고 밝혔다.

지난 4월 17일 삭발집회에 참가했던 관악자활보조센터의 이양심씨는 “다음세대 중증장애인들이 우리처럼 힘든 자립생활을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이번 투쟁의 성과는 중요하다”며 “되물림되는 차별을 막기위해 더 많은 권리를 요구하고 보장받아야한다”고 말하며 눈시울을 적셨다.

서울시가 장애단체에 보낸 확약서. 이명박 시장의 직인이 찍힌 이 공문은 승리 결의대회 중간에 사회자에게 건네졌다.ⓒ최병성


전장연 “선언적 합의, 구체화 위한 세부계획 세울 터”

이처럼 서울시가 중증장애인들의 요구를 전격적으로 수용함에 따라 전장연은 향후 시의 합의사항 이행여부와 제도화를 위한 공동협의체 구성을 서두를 계획이다.

국회 관계법이 표류하는 상황에서 서울시가 제정할 조례가 타 지자체에 영향을 끼칠 수 있도록 구체적인 세부계획을 충실하게 다듬는 작업을 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전장연은 서울시와의 합의사항 중 공동협의기구 구성을 서두르고 이를 토대로 공동실태조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남병준 활보투위 투쟁위원은 “이번 서울시의 합의는 선언적으로 중증장애인의 권리를 인정했을 뿐 내용적으로는 아무것도 정해진 것이 없다”며 “조례의 제정, 구체적인 제도 적용대상을 위한 실태조사를 통해 실질적으로 장애인권을 보장할 수 있는 제도화 작업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남 위원은 또 “궁극적으로는 서울시를 시작으로 중앙정부와 모든 지자체가 수용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드는 것이 목표”라며 “중증장애인뿐 아니라 전체 장애인의 삶을 개선하는 투쟁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병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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