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가 정권 초기 재벌개혁을 위한 5대 핵심과제 중 하나로 내세웠던 출자총액제한제도를 폐지하는 쪽으로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출총제 폐지 논란이 다시 불붙고 있다.

정부는 지난 13일 노무현 대통령이 주관한 경제상황 점검회의에서 출총제를 단계적으로 폐지하는 대신 재벌들의 부당내부거래 등 순환출자 방식을 규제하는 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테스크포스팀 구성에 나섰다.

자산 6조원 이상의 기업에 한해 다른 기업에 대한 출자금액을 순자산의 25%로 제한하는 출총제가 ‘경제력 집중 억제’와 ‘소액주주 권익 보호’라는 본래 취지를 넘어서 대기업의 투자 촉진을 저해하고 있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다.

민주노동당 "출총제 오히려 강화필요, 구렁이 담 넘어가듯 하지말라"

이에 대해 민주노동당 경제민주화운동본부와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등 재벌감시에 힘을 쏟아온 단체들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민주노동당 경제민주화 운동본부는 부당한 내부주식거래로 사주일가의 경영권 승계가 이뤄지고 있는 최근의 현대자동차 사태를 예를 들며 정부의 출총제 폐지방침을 강하게 비판했다.

운동본부는 “비자금 조성과, 로비, 부채 세탁, 분식회계, 총수가 일가가 대주주인 계열사에 물량 몰아주기 등 재벌체제는 종업원과 전체 주주의 이익을 무시한 채 오너 일가의 지배권 강화에 몰두했다”며 “오히려 출총제를 강화하고 추가로 기형적 소유지배개선 구조를 개선할 제도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 운동본부는 “외환위기도 재벌이 적은 지분율로 기업을 총수의 사기업인양 죄지우지하고 문어발식 확장경영을 일삼다가 터진 것”이라며 “이를 감안하면 출총제는 소유지배구조의 개선을 위한 최소한의 안전판”이라고 강조했다.

운동본부는 “출총제 폐지는 기형적 소유지배구조의 확산을 최소한 규제하려는 제도마저 구렁이 담 넘어가듯이 물타기 하는 것”이라며 거듭 출총제 강화를 촉구했다.

참여연대 "출총제는 대기업 견제할 유일 수단"

참여연대도 이날 논평을 내고 “출총제 폐지에 앞서 기업집단과 지배주주에 대한 사후적 규율장치가 정비되어야 한다”며 현 시점의 폐지방안은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밝혔다.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는 “참여정부의 정체성을 대변한다는 ‘시장개혁 3개년 로드맵’이 종결되기도 전에, 더구나 재벌 총수일가의 과도한 지배력 남용을 견제할 장치가 없는 상황에서 출총제 폐지에 한 목소리를 내는 정부를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특히 참여연대는 ‘출총제는 더 이상 경제력 집중 억제와 소액주주 권익침해 방지의 유일한 대안이 아니다’는 일부 언론과 재계의 주장에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참여연대는 “출총제가 각종 적용제외와 예외인정으로 규제의 실효성을 상당 부분 상실했다”면서도 “기업집단과 그 지배주주에 대한 사후적 규율장치가 정비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대기업의 지배력 집중을 견제할 유일한 정책적 수단”이라고 반박했다.

이어 참여연대는 “특히 경제정책의 책임을 지고 있는 이들 부처들이 성급하게 제기하고 있는 출총제 폐지 논의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며 규제공백이 초래할 수 있는 위험은 결국 그들의 책임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부당이득 챙기는 재벌사주 여전, 출총제 폐지는 시기상조"

출자총액제한제도는 경제력 집중 억제와 소액주주의 권익침해 방지 차원에서 지난 1987년 도입됐다가 외환위기 이후 규제가 적용되지 않는 외국기업들의 기업사냥이 잇따르던 98년 폐지된 바 있다.

하지만 재벌들의 분식회계가 연달아 터지고 내부지분율이 높아지면서 2001년 4월 다시 시행됐었다.

이후 대기업에 대한 지나친 규제가 투자 저하의 원인으로 작용한다는 재계와 보수언론의 폐지 요구가 거세지면서 완화 및 폐지논의가 끊이지 않았다.

이에 대해 시민단체들은 최근 현대자동차나 삼성 사태에서 드러났듯이 재벌사주 일가가 5%도 안되는 지분으로 계열사간 순환출자 등의 부당내부거래를 통해 경영권을 강화하는 추세에서 출총제 폐지는 시기상조라는 주장을 계속해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