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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위대한 정치가' 폰 바이체커 별세

[고 강원용 목사의 증언] '독일의 양심'이자 '통일의 아버지'

리하르트 폰 바이체커 전 독일 대통령이 31일 별세했다. 향년 94세.

폰 바이체커는 1984년∼1989년 서독 대통령, 1989년∼1994년 통일 독일의 첫 대통령을 지냈다.

그의 별세 소식에 지금 세계는 애도하고 있다. 그는 단순한 독일의 전 대통령이 아니라, '독일의 양심'이자 '독일 통일의 아버지'였고, 그리고 더 나아가 '참 정치가'였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나라와도 인연이 깊어, 박정희 정권시절에 김대중 전 대통령이 사형선고를 받자 김 전 대통령의 구명운동을 위해 국제사회에서 동분서주하는가 하면 지구상 마지막 분단국가인 한국의 통일을 위한 많은 조언을 하기도 했다.

우리 시대의 '큰어른'이었던 고 강원용 목사(2006년 타계)는 생전에 쓴 자서전 <역사의 언덕에서>를 통해 바이체커가 얼마나 큰 거목인가, 특히 한국 정치인들에게 많은 반성을 하게 만드는 '참 정치가'인가를 생생히 증언한 바 있다.

다음은 강 목사가 자서전 중 '바이체커에게 배울 점'이란 글을 통해 증언한 바이체커 전 대통령의 삶이다.

바이체커에게 배울 점

내가 바이체커를 처음 만난 것은 1969년 스웨덴 웁살라에서 모인 WCC 총회때였다. 이후 1975년까지 그와 나는 함께 WCC 실행위원으로 활동하면서 1년에 적어도 두번씩은 만났다. 1975년도에 그가 정치에 전력하기 위해 WCC를 그만 둘 때도 우리는 가급적 계속해서 만날 기회를 만들자고 약속했고, 그후 내가 유럽에 갈 때면 빠짐없이 만났다.

그는 한국에 왔을 때 나의 소개로 김대중을 만났고 그것이 인연이 되어 김대중이 정치탄압을 받고 있을 때 빌리 브란트 당수와 함께 석방을 위해 크게 노력하기도 했다.

정치인으로 그가 걸어온 행적을 지켜보아온 나는 단순한 정치인이 아닌 민족지도자로서 그의 면모에 평소 느끼는 바가 적지 않았다. 그래서 21세기를 맞이하여 새로운 정치적 지도자를 갈망하는 우리 국민들과 특히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꼭 알았으면 좋겠다고 생각되는 점을 중심으로 그에 대한 소개를 하고자 한다.

리하프트 폰 바이체커는 1920년 독일 귀족집안의 후손으로 태어났다. 그의 집안에서는 그뿐만 아니라 형과 동생도 정치활동을 펼쳤는데, 세 형제의 정치노선은 조금씩 다르다.

우선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그의 형 카를은 1957년 서독 핵무장 반대운동을 했으며 '괴팅겐 선언'으로 유명한 사람이다. 이 형은 사회민주당(SPD) 대통령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그의 동생은 자유독일당(FDP)의 지도자, 그리고 리하르트는 기독교민주당동맹(CDU)에 속하며 10년동안 대통령을 지냈다.

바이체커는 괴팅겐 대학에서 법학과 역사학을 공부했고, 옥스퍼드 대학과 그로노블 대학에서도 공부했다. 1969년 연방의회 의원에 당선되기까지 그는 평신도로서 독일 개신교연합회의 의장, 개신도 신도연합회의 의장을 지냈으며, 그 당시 세계교회협의회에서 중앙위원, 실행위원 등으로 활동하면서 나와 가까이 지냈다.

정치계에 본격 진출하면서 연방의회 부의장, 베를린 시장을 거쳐 1984년 7월 대통령에 선출되었고 이후 10년동안 대통령직에 있으면서 독일 통일을 이루어냈다. 그는 대통령 임기가 끝난 뒤에도 유럽공동체 형성에 노력을 기울였고, 유엔의 '미래를 연구하는 모임(IWG)' 공동의장을 지냈다. 그는 지금도 다방면으로 활동을 하며 한시도 사회활동을 멈추지 않고 있다.

내가 이 책에서 외국인 정치가인 바이체커를 특별히 지면을 할애하면서 소개하는 것은, 아직도 통일을 이루지 못한 우리나라 정치지도자들이 그에게서 배울 점이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독일이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을 성취하기까지 지도자로서 그가 지켜오고 실천해온 정치철학과 행동에서 우리는 통일에 도움이 되는 뭔가를 배울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바이체커는 1985년 5월8일 독일 패전 40주년이 되는 날, 정부와 각계 지도층 인사들이 모인 국회에서 '광야 40년'이라는 제목으로 기념연설을 했다. "오늘은 독일의 패전이라는 점에서 우리에게 슬픈 날이지만, 우리 독일민족이 히틀러 정권에서 해방된 날이다"로 시작되는 이 연설은 20여개국에 번역됐을 정도로 유명하다. 이 강연 내용 중에서 특히 나의 가슴을 두드린 구절이 있다.

"우리는 과거 역사를 오늘의 시점에서 되돌아보고 그런 슬픈 역사는 되도록 빨리 잊어버리려고 합니다. 그러나 과거 역사를 덮어두게 되면 우리는 오늘의 역사를 보지 못하는 장님이 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마음이 아프더라도 과거의 쓰라린 역사를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되새겨서 그것이 확실하게 기억되도록 합시다. 그러면 거기서 화해라는 것이 나옵니다. 과거 청산없는 화해란 있을 수 없습니다. 과거 독일과 적대관계를 가졌던 나라들이 있는데, 이들 앞에서 우리는 잘못된 우리의 과거를 마음이 아프더라도 되새기고 청산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그 나라와 화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과거의 뼈아픔은 절대로 피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바이체커는 말만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말을 행동으로 실천하는 사람이었다. 히틀러 정권의 최초의 피해자가 폴란드였는데, 그가 대통령이 되어서 가장 먼저 한 일이 폴란드를 방문한 일이었다. 당연히 폴란드에서는 그를 환영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대접받으려고 간 것이 아니라, 폴란드 국민에게 사과하러 간 것이었기에 폴란드 국민들의 태도를 문제삼지 않았다. 그는 지금도 폴란드를 유럽공동체(EU)에 가입하도록 하는 운동을 하고 있다.

독일 정치인 중 바이체커만 이렇게 한 것이 아니다. 그 반대당인 사민당의 빌리 브란트도 수상이 되자마자 폴란드의 유대인 묘지에 가서 무릎 꿇고 앉아 주먹으로 땅을 치며 눈물을 흘렸다. 그런 브란트나 바이체커의 행동은 결국 지금 독일이 유럽에서 주도적인 위치를 가질 수 있도록 한 원동력이었다. 전후 아시아에서 일본이 취해온 태도와는 너무나 대조적이라고 할 수 있다.

바이체커는 정치인을 두 종류로 나누었다. 하나는 정치가(stateman)이고, 다른 하나는 정략가(politician)이다. 정치가는 민족과 다음 세대에 미칠 영향을 먼저 생각하지만, 정략가는 민족보다 자신의 정치적 이해와 소속정당의 이익부터 챙긴다.

내가 본 바이체커는 진정한 정치가였다. 그것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준 예는 반대당인 빌리 브란트가 수상이 되어서 이른바 '동방정책'이라는 것을 국회에 내놓았을 때였다.

야당인 바이체커가 속한 기독교민주동맹에서는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그것을 반대했다. 그런데 바이체커만이 민족문제를 먼저 생각해서 빌리 브란트를 지지했다. 그 일로 기민당은 바이체커를 협박하기도 하고 달래기도 하며 회유책을 썼지만, 그는 끝까지 빌리 브란트를 지지하여 동방정책이 인준될 수 있도록 했다. 결국 이 동방정책이 독일이 통일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또하나, 그의 정치가의 면모를 보여주는 예가 동서독이 통일되었을 때였다. 같은 정당에 속하면서도 콜 수상과 의견이 달랐던 바이체커는 이런 주장을 했다.

"동서독이 정치적으로 통일되어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흡수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다. 동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열어주고, 동포로서 대하는 것이 행동으로 나타나야 한다. 헌법도 동독사람들이 동의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동독 사람들을 못한다고 무시하고, 급이 낮은 국민으로 대하면 안된다. 동독의 어려운 경제를 돕는 것도 정부가 정치적으로 해결하지 말고, 서독민의 애국심, 동포애로 해결하도록 해야 한다."

바이체커는 정부의 힘으로 모든 것을 하려고 하지 말라는 것, 어디까지나 국민 모두가 함께 나누는 정신으로 살아가는 것 없이는 진정한 통일이 안된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정치가가 있어야 한다. 지금 내가 적은 것은 수많은 일화중 한 예일 뿐이다. 그는 평소 소신대로 자신이나 자기 정당의 이해보다 민족의 이해를 먼저 생각한 정치가였다. 물론 독일에도 이런 사람이 많지는 않지만, 분단국가인 우리나라에 특히 이런 정치가가 나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큰 희망을 가질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이렇게 바이체커를 특별하게 얘기하는 것은, 그의 이런 자세를 받아들여 실천하는 사람이 우리나라에도 나와서 남북문제, 여야문제, 지역문제가 해결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그러나 지금 우리나라에는 진정한 정치가는 찾기 힘들고 정략가들만 많다. 민족의 장래와 다음 세대를 먼저 생각하는 정치가, 그리고 민족을 위한 일이라면 소속 정당의 정략을 거부하고 반대당과 협력할 수도 있는 정치지도자를 만나고 싶다.

지난 2002년 2월2일, KBS1 텔레비전에서 '세계를 움직이는 사람들-큰 정치인 바이체커의 선택'이라는 프로그램이 방영되어 우리나라에서도 그의 정치철학을 심도있게 연구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그의 나이는 올해 여든두 살인데 아직 건강하니, 앞으로도 오래 살아서 우리나라의 통일이나 세계평화를 위해 큰 일을 해주기를 바란다.

바이체커에 대한 소개와 아울러 그의 부인에 대해서도 얘기하고 싶다. 바이체커가 국회의원으로 있을 때, 크리스찬 아카데미 초청으로 서울에 왔었는데 그의 부인이 아파서 예정보다 더 오래 우리 아카데미 하우스에 머물게 되었다. 그때 그 부부와 우리 부부, 이렇게 넷이 저녁 식사를 한 일이 있다.

나의 아내가 식사 도중 바이체커 부인에게 "어느 대학을 졸업했느냐?"고 물었다.

"중학생때 적성검사를 해보니까 가정일과 사회봉사가 적성이라고 나와서 대학에 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여 가지 않았어요."

그 부인은 독일에서 남편 못지않게 국민의 사랑과 존경을 받고 있다. 내가 독일에 갈 때면 거의 예외없이 그 집에 저녁식사 초대를 받는데, 일정이 맞지 않으면 조반을 함께 하기도 한다. 아침에 그 집에 가면 부인은 벌써 봉사활동을 하러 나가고 바이체커가 직접 조반을 준비해서 우리 둘이 함께 먹었다.

들리는 이야기로는 그 부인은 대통령 관저에서 생활할 때도 손수 시장에 가 장을 보곤 하여 경호원들이 당황할 때가 많았다고 한다.

나는 34년간 형식적인 절차를 무시하고 그와 친구로 지내며 우정을 나누어온 점을 다시 한번 감사하게 생각한다.
박태견 기자

댓글이 23 개 있습니다.

  • 4 0
    그런데..

    바이체커는 귀족 집안이고 그 아버지는 나찌시절 외교부 고위관리로 2차대전 후 유대인 학살 전범으로 5년형을 선고받았죠.. 그러한 가족사적 배경과 바이체커의 출세는 분리할 수 없으면서도.. 나름 바이체커는 그러한 자신의 배경을 합리적으로 마주 대하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 0 0
    다까끼쥐길놈

    요지경/ 퍼주자/ 니들같은 개백정을 개백정이라 하는데 무슨 욕이냐? 사실이지.

  • 3 1
    요지경

    다까기 선생/
    아무리 훌륭한 말씀하셔도 욕으로 도배하시면 패배자가 되는 법입니다
    익명성의 보호를 받는다 해도 양심의 문제라 찜찜함은 상당기간 뒤따를 것입니다

  • 3 0
    구경꾼

    작금의 망국에선 꿈같은 얘기다.
    그 나라 인민들의 수준대로...

  • 3 1
    퍼주자

    다까끼쥐길놈---- 너도 3백만 굶겨죽이고 호화요트서 기쁨조랑 떡이랑 쳐라

  • 11 0
    애도합니다

    지구의 양심이
    하늘의 별이 되었습니다.
    애도합니다.

  • 1 3
    다까끼쥐길놈

    ㅋㅋ 나 요지경 같은 개백정색희들이 인간의 크기를 알겠나?

  • 8 0
    맹바기이후나라꼬라쥐

    <지난해 WEF 국가경쟁력 평가에서 정책투명성 133위…최하위권 정치인에 대한 신뢰 97위, 사법부의 독립성 82위…후진국 수준>캄보디아,우간다하고 어떤 부문에선 삐까삐까 한다고..
    이게 다 선거를 아무생각 없이 치룬 결과..지금 이 나라의 1%하고 유일하게 동등해 지는날이 몇년 만에 찾아오는 선거일이다. 선거 계속 하던데로 하그레이~조만간 곡소리가..

  • 22 0
    교훈삼자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의 결정적인 실수는
    그 때 친일유신강패들과 조중동을 싹슬이 안한거다. 친일파,수구골통들과 그 후손들을 살려준거다.
    그 때 청소 안한 거시 큰 실수엿다
    마음이 좋고 약한 것이 결정적 실수였다.

  • 1 10
    요지경

    ㅋㅋ선생, 그러게 말이야
    제 호주머니에서 핵을 꺼내 주는넘이
    어디있어? 사람이여?

  • 1 16
    ㅋㅋ

    안간백정한테 핵퍼주고 지혼자 살겠다고 뉴욕에 빌딩사두는 놈은 위대한 정치가다

  • 10 0
    요지경님/

    맞는 말입니다
    바이체커에 가까운 지도자는 노무현보다는 김대중대통령이죠
    다만..
    김대중과 달리 노무현이 공적을 낼수 없었던 차이는
    지지층의 단결과 분열의 차이였다고 봅니다 (원인이야 있겠죠)
    친노든 비노든 이런 우를 되풀이 하지 맙시다
    10년간 대통령이란 명분 말고 실질적인 권력은
    온전히 김대중 노무현이 가지지 못했다는 생각입니다

  • 2 12
    요지경

    밑 알간/
    두분 따로 분리하여 거두절미하고 "한국의 폰 바이체커는 노무현대통령 이다"
    이렇게 말할수 있어? 이걸 믿는 국민있으리라 생각해? 김대중대통령에 묻혀가길 좋아하는 예의 그 숙주 기생본능
    오늘의친노 현주소다. 도대체 노대통령 공적 한가지만이라도 대봐?

  • 13 0
    통일대박보다~

    친일청산이 먼저야! 심퉁덩어리년아~~~

  • 7 0
    엽전들은 자격없어

    까오리방쯔,쵸센징들아, 일제때 그렇게 당하고도 위안부 사과 하나 제대로 못받는 쪼다 민족, 엽전들. 니들이 성노예인권 외치면 맞는 말인데도 전세계가 속으로 흥~!콧방귀만 뀌는 이유를 모르냐? 니들은 정권내에 염전노예,아프리카노예 주인을 떡 하니 앉혀놓고 삼양그룹 노예 밀어내기 영업 , 오늘도 독극물 양잿물로 소독하는 부산 생탁 막걸리 노예노동,무슨 낯으로

  • 11 0
    시간 끌기

    독일 통일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본 바이체커 같은 인물이 있었기 때문으로 본다. mb는 현 정권 협박 및 경고 용 으로 "자서전"을 발간 한다는데, 자화자찬과 미사여구로 가득찻다고 봅니다. 자승자박 과 자해공갈 로 귀결 될것이 겠지요? 김두우,이동관,전 기자로 김두우는 죄짓고 감옥갓었지요? 현 정권은 MB호위무사, 허수아비집단,사법처리에총력을 경주하시지요.

  • 6 0
    투기범죄자

    이완구 투기 범죄 기사가 없네...2중대 기대할 것 없다....뷰 기자들이 왕구라와 싸워야 할 것이다 겉 모습만 그럴듯한 범죄자와.

  • 27 0
    알간

    한국의 폰체이바커는 바로 (고)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 이시다.
    온 국민은 진정한 리더였던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과 같은 대통령이 나오길
    학수 고대하고 있다.

  • 16 0
    뿔난백성

    '유신 부활'에 뿔난 촛불, 종로에서 청계광장까지 행진
    [현장] 민주수호 원탁회의, 2월 28일 시국대회 열기로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077996&CMPT_CD=A0290

  • 9 0
    좋은기사

    감사합니다.

  • 26 0
    아름다운사람

    폰 바이체커 전 독일 대퐁령님의 서거에 명복을 빕니다. 통일 독일을 위해 헌신하신 노력에 깊은 찬사를 아끼지 않습니다. 부디 영면하소서.

  • 13 0
    3333

    진심 존경하던분인데...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43 0
    애도합니다

    우리에게 저런 지도자란 김구 장준하 김대중정도.
    위대한 정치가는 없고 쥐닭피래미들만 설치니...한심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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