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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드효과? 이주노동자에겐 꿈같은 얘기죠"

<현장> 정부-언론의 워드효과 호들갑의 뒤안길

올 봄, 경기도 안산 원일초등학교에 입학한 하영광(본명 비노빈, 7세)은 더 이상 학교에 나가지 못하고 인근 ‘코시안의 집’에서 엄마만 기다리고있다. 지난 5일 영광이의 엄마 야무나(스리랑카, 37세)씨가 서울출입국관리소 불법체류 단속반원들에게 붙들려 갔기 때문이다.

영광이의 아빠 하산타씨는 지난 1997년 4월 산업기술연수생으로 한국에 들어온 이주노동자다. 영광이의 엄마 야무나씨 역시 남편을 따라 지난 1999년 10월 산업연수생 자격으로 입국했다. 이후 두 사람사이에서 지난 2000년 12월에 영광이가 태어났다.

그러나 하산타씨와 야무나씨는 현재 비자가 없는 불법체류자 신세다. 이처럼 불법체류자 신분의 부모 밑에서 태어난 영광이의 경우 교육, 의료 같은 기본적인 복지혜택을 받기가 힘들다. 하지만 경기도 교육청은 불법체류자 자녀라 하더라도 학교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안산시와 시흥시에 특별학급을 시범 운영중에 있다.

영광이는 결코 한국을 떠나기 싫다고 한다. 영광이처럼 한국에서 태어난 이주노동자 자녀들은 자국보다 한국문화에 훨씬 더 익숙하다 ⓒ 뷰스앤뉴스


"엄마를 돌려주세요...한국을 떠나기 싫어요"

야무나씨가 단속원들에게 붙들려 가던 날은 하교하던 영광이를 데리러 가던 오후였다. 영문도 모른 채 영광이는 하념없이 엄마만 기다렸지만 결국 한참이 지나서야 비로소 엄마가 붙들러 간 사실을 알았다. 야무나씨는 현재 서울 목동보호실에서 조사를 받고 있는 상황이다.

아빠 하산타씨는 2005년 6월 손목인대 파열사고로 더 이상 일을 할 수가 없어 엄마만 찾는 아이에게 해 줄 것이 없다.

현재 목동보호실 측에서는 인도적사유에 해당하는 소명자료를 제출하면 야무나씨에 대한 보호조치를 일시해제 해 자진출국기간을 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주노동자 협회 등지에서는 “아무리 일시보호조치 해제가 이루어진다해도 결국 불법체류자니까 나가라는 소리밖에 안된다”고 근복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영광이는 김치 하나만 있으면 밥 한 그릇 뚝딱 해치우는 전형적인 여느 한국 아이들과 마찬가지다. 영광이는 절대 한국을 떠나기 싫다고 한다.

현재 영광이처럼 이주노동자 사이에서 한국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2만명 가량으로 추산되고있다. 이들 대부분은 불법체류자 부모아래서 태어난 아이들로 대부분 무국적자로 분류된다. 따라서 교육, 의료 혜택에 제약이 따른다.

그러나 현재 이주노동자 부모 아래서 태어난 아이들의 정확한 집계는 파악조차 어렵다. 70만명의 이주노동자 중에 불법체류자가 20만명 가량인 상황에서 불법체류자 아래서 태어난 아이들의 정확한 통계를 잡기란 힘들기 때문이다.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의 한 관계자는 “현재 얼마만큼의 이주노동자 자녀들이 있는지 어떻게 알겠나”면서 “그들 대부분이 불법체류자 신분인데 자녀들을 어떻게 출생신고하겠나. 정부 역시 파악할 엄두도 안난다”고 이같은 실태를 뒷받침했다.

더욱이 한국에서 태어나 적어도 초등학교까지 다닌 이주노동자 아이들의 경우, 외형만 외국인일뿐 한국문화에 더 익숙한 한국인 아닌 한국인이다. 부모들이 단속반에 걸려 강제출국 당하면 아이들 역시도 본국으로 귀환되는데 문제는 한번도 가보지 않은 본국이 오히려 한국보다 낯설다는 사실이다.

장기 이주노동자 본국으로 돌아가도 적응안돼...

부모들조차도 본국으로 귀환했을 경우 적응을 못해 애를 먹고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본국으로 귀환한 이주노동자 3백74명과 국내 이주노동자 1천86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2005년)에 따르면 이주노동자의 60.7%가 “장시간 진행된 자국 사회와의 단절로 인해 이주노동자 현지 적응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설문자의 85.2%는 또 다른 이주노동을 계획하는 것으로 나타나는 등 전반적으로 귀환에 따른 자국 적응력이 떨어졌다. 부모인 이주노동자들의 사정이 이 정도인데 하물며 아이들의 자국 부적응은 뻔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한국계 미식축구영웅 하인즈 워드의 귀향으로 소위 ‘워드 효과’가 국내를 강타하고 있다. 여야를 떠나 한목소리로 ‘혼혈인 제도의 개선’을 외치고있다. 정부는 한국인과 사실혼관계에 있는 외국인 아래서 태어난 자녀에 대해 국적ㆍ영주권 부여와 대학 특례입학까지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이주노동자처럼 한쪽이 한국인이 아닌 외국인 부모 아래서 한국에서 태어난 이주노동자들의 아이들에 대해서는 어떤 대책도 내놓지 않고있다. 정치권은 5월 지방선거를 겨냥 ‘워드 효과’를 최대한 띄우기에만 급급한 실정이다.

"법은 논리가 아니라 이벤트로 만드나 봅니다"

김영준 안산외국인노동자센터 전도사는 “요즘 소위 혼혈인 문제에 대한 문의가 너무 많다”면서 “코시안의 집은 지금 기자들의 문의전화로 업무가 마비된 상태”라고 말했다.

그는 워드 효과로 혼혈인 정책에 대한 입법안이 추진되는 것을 보며 “법을 바꾸는 것은 논리가 아니라 이벤트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정부와 언론의 ‘워드 호들갑’에 씁쓸한 심경을 감추지 못했다.

워드 효과로 우리 사회의 이방인에 대한 관심이 증폭됐다지만 한국인의 피가 적어도 절반이상은 포함된 '혼혈인'에만 해당되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인권단체 연석회의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 93년부터 2005년까지 96명의 이주노동자가 사망했다. 이 중에는 지난 2월 27일 불법체류자로 단속돼 수원출입국 관리사무소 6층 보호실에 수감되어있다 투신 한 고(故) 코스쿤 살렘(터키출신)과 같이 불법체류자 강제추방 단속을 피해 자살한 이주노동자 5명도 포함돼 있다.

강제추방 단속에 못이겨 자살하고, 교육.의료와 같은 기본적인 인권조차 보호받지 못하는 이주노동자와 그 자녀들은 정부와 언론의 ‘워드 효과’에 또한번 설움아닌 설움을 느껴고 있다.
김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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