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정 통일장관, 유신지지 서명 논란
1972년 박정희 정권 10월 유신 지지 결의문 명단 올라
민주화운동 경력의 이재정 통일부장관이 1972년 유신 지지 결의에 참여했다는 주장이 제기돼 진위 논란이 일고 있다.
강 교수 "이재정 통일장관, 유신 지지 결의문에 참여"
한신대 종교문화학과 강신철 교수는 15일 발간된 <한국의개신교와 반공주의>를 통해 "당시 성공회대 신부였던 이 장관의 이름이 박정희 정권의 10월유신을 지지하는 종교계 결의문 참여자 명단에 올라있다"고 밝혔다.
강 교수에 따르면 이 통일장관이 서명한 문건은 1972년 11월 10일 ‘서울 교회와 경찰 협의회’가 발표한 '10월유신과 평화통일을 위한 우리의 기원'이라는 제목의 10월유신 지지 결의문으로, 강 교수는 "이 장관은 당시 이 단체 중앙위원 신분이었다"고 주장했다.
결의문에는 "우리는 10월유신으로 조국의 통일과업과 번영의 기틀을 확고히 하고 모든 부조리를 자율적으로 시정하는 사회기풍을 함양하여...국민총화체제를 이룩하는 데 총력으로 단결할 것을 기원한다"라는 구절과, "현시국의 중요성과 절박감을 인식하면서 남북 5,000만 겨레에게 복음선교로서 자유민주주의를 더욱 건전하고 알차게, 그리고 능동적으로 발전ㆍ육성시켜 민주국가로, 또는 하나님이 기뻐하는 나라로 이룩되기를 기원한다"는 구절이 적시돼 있다.
이재정 "결의문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
강 교수 주장에 대해 이재정 장관은 "이 결의문을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으며 따라서 참여한 일도 없다"며 "당시 신부로 서품 받은 지 보름밖에 안 된 20대로 교구장 비서 신부를 하고 있던 내가 한경직ㆍ조용기 목사 등 원로 위주인 위원 명단에 들어간 것도 의아스럽다. 동명이인이 있는지는 모르겠다"며 "나는 오히려 유신반대 운동을 벌인 사람"이라고 강력 부인했다.
이 장관은 실제로 1974년부터 김상근 목사, 오충일 목사, 함세웅 신부 등과 함께 10월유신 반대운동을 한 경력이 있다.
이 장관은 그러나 의혹이 계속 일자 "성공회 측에서 나의 의사와 무관하게 명단을 넘겼는 지도 모르겠다"고 명의도용 가능성을 주장하기도 했다.
<동아일보> "당시 이재정 이름 분명히 있었다"
한편 <동아일보>는 16일자 '이재정 통일 1972년 유신지지 서명'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1972년 11월 13일자 본보 7면에 실린 '10월 유신 촉진 다짐’이라는 기사에 따르면 '10월 유신과 평화통일을 위한 우리의 기원'이란 결의문 서명자 가운데 이재정 신부가 나온다"며 "이 장관은 1972년 10월 24일 서품 받은 신참 신부로 당시 이천환 주교의 비서신부로 있었다"고 밝혔다.
강 교수 "이재정 통일장관, 유신 지지 결의문에 참여"
한신대 종교문화학과 강신철 교수는 15일 발간된 <한국의개신교와 반공주의>를 통해 "당시 성공회대 신부였던 이 장관의 이름이 박정희 정권의 10월유신을 지지하는 종교계 결의문 참여자 명단에 올라있다"고 밝혔다.
강 교수에 따르면 이 통일장관이 서명한 문건은 1972년 11월 10일 ‘서울 교회와 경찰 협의회’가 발표한 '10월유신과 평화통일을 위한 우리의 기원'이라는 제목의 10월유신 지지 결의문으로, 강 교수는 "이 장관은 당시 이 단체 중앙위원 신분이었다"고 주장했다.
결의문에는 "우리는 10월유신으로 조국의 통일과업과 번영의 기틀을 확고히 하고 모든 부조리를 자율적으로 시정하는 사회기풍을 함양하여...국민총화체제를 이룩하는 데 총력으로 단결할 것을 기원한다"라는 구절과, "현시국의 중요성과 절박감을 인식하면서 남북 5,000만 겨레에게 복음선교로서 자유민주주의를 더욱 건전하고 알차게, 그리고 능동적으로 발전ㆍ육성시켜 민주국가로, 또는 하나님이 기뻐하는 나라로 이룩되기를 기원한다"는 구절이 적시돼 있다.
이재정 "결의문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
강 교수 주장에 대해 이재정 장관은 "이 결의문을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으며 따라서 참여한 일도 없다"며 "당시 신부로 서품 받은 지 보름밖에 안 된 20대로 교구장 비서 신부를 하고 있던 내가 한경직ㆍ조용기 목사 등 원로 위주인 위원 명단에 들어간 것도 의아스럽다. 동명이인이 있는지는 모르겠다"며 "나는 오히려 유신반대 운동을 벌인 사람"이라고 강력 부인했다.
이 장관은 실제로 1974년부터 김상근 목사, 오충일 목사, 함세웅 신부 등과 함께 10월유신 반대운동을 한 경력이 있다.
이 장관은 그러나 의혹이 계속 일자 "성공회 측에서 나의 의사와 무관하게 명단을 넘겼는 지도 모르겠다"고 명의도용 가능성을 주장하기도 했다.
<동아일보> "당시 이재정 이름 분명히 있었다"
한편 <동아일보>는 16일자 '이재정 통일 1972년 유신지지 서명'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1972년 11월 13일자 본보 7면에 실린 '10월 유신 촉진 다짐’이라는 기사에 따르면 '10월 유신과 평화통일을 위한 우리의 기원'이란 결의문 서명자 가운데 이재정 신부가 나온다"며 "이 장관은 1972년 10월 24일 서품 받은 신참 신부로 당시 이천환 주교의 비서신부로 있었다"고 밝혔다.
<저작권자ⓒ뷰스앤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