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청 여론조사 결과, 자신을 상류층이라 생각하는 국민은 전체의 1.4%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에 중산층 붕괴가 가속화하면서 자신을 하류층이라고 생각하는 국민이 급증, 부동산값 폭등에 따른 빈부 양극화 위기가 심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47%는 "일생동안 노력해도 지위상승이 안될 것"이라고 답하고 10명 중 1명은 경제난 때문에 '자살'을 생각한 것으로 나타나는 등, 체제위기까지 표면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나는 중산층" 53%로 급감, 하류층은 급증
통계청은 지난 7월 전국 3만3천가구의 만 15세 이상 가구원 약 7만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사회통계조사(가족.보건.사회참여.노동) 결과를 분석, 4일 ‘사회통계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조사결과는 지난 수년간 진행된 단군이래 최악의 부동산값 폭등의 결과가 우리 사회에 얼마나 부정적 인식을 낳았는가를 실증적으로 입증해주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우선 주목되는 조사결과는 자신이 과연 '어떤 계층'에 속한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조사결과 소득과 직업, 교육, 재산 등을 고려한 사회경제적 지위에 대해 자신을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가구주는 전체의 53.4%로 조사됐다. 이는 지난 2003년 조사때보다 2.8%포인트 줄어든 수치이다. 이는 IMF사태 발발전 70%에 육박하던 수치와 비교하면 더없이 급락한 수치이기도 하다.
반대로 자신을 '하류층'이라고 답한 가구주는 지난 2003년보다 2.8%포인트 늘어난 45.2%로 조사됐다.
성별로는 남자 가구주의 경우 상류층 1.6%, 중간층 56.7%, 하류층 41.7%로 답한 반면, 여자 가구주는 상류층 0.9%, 중간층 39.6%, 하류층 59.5%로 나타나, 여성 가구주들의 상대적 박탈감이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에 자신을 '상류층'이라 생각하는 가구주는 1.46%로 0.1%포인트 늘어나는 데 그쳐, 3년 전 조사때와 사실상 변함이 없었다.
요컨대 3년 전과 비교할 때 '상류층'은 변함이 없는 반면, '중산층'은 줄고 '하류층'은 늘어났다는 얘기다.
한국 상류층이 모여사는 강남 대치동. 그러나 자신을 상류층이라 생각하는 국민은 1.4%에 불과했다. ⓒ김동현 기자
"한국에선 집 가져야 중산층"
이처럼 중산층 숫자가 급감 추세를 보이는 것은 지난 수년간 광적으로 진행된 아파트값 폭등에 따른 빈부 양극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건설교통부가 발표한 2005년말 현재 자가보유율은 55.6%. 100가구 중 55가구 정도만 제집을 갖고 있다는 얘기다.
주목해야 할 대목은 자신을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53.4%와 '상류층'이라 생각하는 1.4%를 합하면 54.8%라는 숫자가 나오며, 이는 자가보유율 55.6%와 거의 일치한다는 점이다.
"아파트값 폭등의 결과, 한국사회는 이제 집있는 계급(유택계급)과 집없는 계급(무택계급)으로 양분됐다"는 세간의 통설이 통계로 입증되는 셈이다. 상대적으로 연봉이 좋더라도 집이 없으면 '하류층'이라는 박탈감에 사로잡혀 있음을 이번 조사결과는 웅변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계층 상승 기대치' 급감
'계층 상승' 기대치도 급감했다.
현재 생활에 '만족'하는 사람은 전체의 28.9%에 불과했고 '보통' 38.8%, '불만족' 32.3%였다. 2003년 조사시와 비교하면 '만족'과 '불만족' 비율은 각각 8.5%포인트와 4%포인트 증가한 반면 '보통'이라고 답한 사람의 비율은 12.5%포인트 감소했다.
이처럼 현재 생활에 불만족하고 있는 국민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일생동안 노력을 한다면 본인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아질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는 가구주는 전체의 27.5%에 그친 반면, '낮다'는 가구주 비율은 46.7%로 나타나 계층 상승 기대치가 매우 부정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계승 상승 기대치 급감도 아파트값 폭등의 부작용으로 풀이된다. 아무리 성실히 일해도 정상적으로 제집을 장만할 길이 차단되면서 계급적 절망감과 적개감이 심화된 때문이다.
상류층은 자녀들 해외유학 때문에 '기러기 신세'
상대적으로 현 생활에 대한 만족도가 높은 '상위 중류층'과 '상류층'의 삶의 질도 형편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자녀 해외유학 등에 따른 이산 가족 속출이 그 증거다.
월평균 소득이 200만~300만원 가구는 배우자나 미혼자녀가 다른 지역에 사는 비율이 19.4%에 불과했다. 그러나 300만-400만원 20.1%, 400만-600만원 24.2%로 소득이 높아질 수록 점차 높아지더니, 600만원 이상 가구는 26.9%나 됐다.
특히 월평균 소득 600만원 이상 가구는 가족이 해외에 살고 있는 비율이 25.6%로 소득계층중 가장 높았고, 따로 사는 이유도 `학업'이 56.6%에 달해 상류층 상당수 가장이 '기러기 아빠'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0명 중 1명은 "경제난 때문에 자살 충동 느꼈다"
경제난에 따른 자살 문제도 점점 심각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5세 이상 인구 중 지난 1년 사이에 자살 충동을 느낀 경우는 10.1%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중 48.2%는 경제적 어려움을 이유로 들어 경제난이 자살의 주범임을 입증해주었다. 그 다음으로 가정불화(15.4%), 외로움(12%), 질환 장애(8.2%), 직장 문제(6%) 순이었다.
이는 우리나라의 지난 수년간 자살률이 OECD 가입국가가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점과 무관치 않은 조사결과로, 빈부 양극화 심화에 따른 자살 즉 '사회적 타살'이 급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편 청소년이 가장 고민하는 문제는 '공부'가 35%로 1위를 차지한 데 이어 '직업'이 그 다음인 29.6%를 기록, 2002년 6.9%보다 크게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이 또한 청년 실업난 등 한국사회의 쇠락이 미래세대들에게 암울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음을 보여주는 적색 신호등이다.
또한 청년실업의 결과 청소년이 가장 근무하고 싶은 직장으로는 국가기관이 35%로 1위를 차지했고, 대기업 17.1%, 법률회사 등 전문직 기업 15.4%, 공기업 11% 순으로 나타났다. 진취적 기상 대신 '안전' 위주의 직장관이 확산됐음을 보여주는 방증이다.
한 마디로 통계청의 여론 조사 결과는 "빨간 등이 켜진 곳은 없다"는 노무현 대통령 주장과는 달리, 우리 사회 곳곳, 더 심각하게는 체제 자체에 적색 경고등이 켜졌음을 말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