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시] 김영환 의원 "우리, 김근태를 세습합니다"
"이제 알았습니다.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김근태를 주체적으로 세습합니다
김근태형!
당신을 이 추운 계절에 황망히 보내며
당신의 그 온화한 미소를,
당신의 그 고결한 정신을,
당신의 그 일관된 삶의 자세를
온전히, 온전히 세습합니다
우리는 3대, 4대 대를 이어 세습합니다
우선 세습하고 볼 일입니다
언론을 통해 서울대 병원에 입원하셨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몇 달 전만해도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셨다는데.
그까짓 병마쯤이야 차디찬 취조실을 견딘 형이 아닙니까?
세상을 떠났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고
아직도 마음을 가누지 못해
형에게 달려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나간 일은 모두 그리움.
수배와 투옥, 유치장과 감방,
엄혹한 시절 몸을 숨기던 수배자의 쪽방조차,
감방의 찬식기조차 형과 함께한 그 시절은
모조리 그리움이 되었습니다.
형은 찬바람 모진 바람의 민주화운동 내내
우리들 용기의 샘이었고 진군의 나팔이었습니다
화해의 종결자였습니다
형!
형을 보내고 나니 우선 먼저 드는 생각은
아 우리에게도 죽음이 눈앞에 와있구나
남은 시간이 별로 없구나하는 생각입니다.
너무나 이기적이죠?
형!
지금쯤은 모란 공원 양지녘에
고문도 혈전도 없는 시원한 북한강가에서
훨훨 쉬고 계시지요?
전태일 선배, 문익환 목사님, 조영래 변호사,
김병곤 형, 이범영 동지 함께 계시지요?
조금만 그곳에 쉬고 계십시오.
우리도 결국 그리로 달려가겠습니다
이 땅에 살아 있는 동안
뒤뚱거리는 민주주의 완성하고
특히 형이 부둥켜안고 고심하던 경제민주주의 전진시키고
남북통일 이루고 나서 형이 계신 곳으로 달려갈께요
그때까지 아니 그 이후까지 당신을
우리의 머리통 한가운데 핏덩어리로 세습합니다
우리의 심장 분노의 응어리로 세습합니다
이제 알았습니다.
어떻게 우리가 남은 시간을 쓰고
어디로 가야 하는가를.
지금 우리가 눈물을 거두는 것은
형이 남겨둔 일을 나와 우리가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나무는 꽃을 버리고 열매를 맺고
강물은 강을 버리고 바다를 만난다고 합니다
당신은 나무, 못난 우리가 남아 열매를 맺고
우리가 통일의 바다를 만날께요
당신의 따뜻한 미소를 가슴에 앉고 말입니다
형은 생을 버리고 민주주의를 만들었고
우리들을 남겨 조국통일을 준비했습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우리는 오늘 당장 김근태를 세습합니다
자발적으로, 주체적으로 세습합니다
며칠 지나면 당신은 우리의 문화
아니 이 시대의 문화유산이 될 겁니다
우리는 당신을 영원히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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