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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장' 없는 난파선의 표류

<현장> 초선-호남 "서두르자" vs 다선-비호남 "천천히"

2일 오전 10시 국회 본관 3층 예산결산위원회 회의장에서 열린 열린우리당 의원총회. 10. 25 재보선 이후 봇물처럼 터진 정계개편과 관련한 논의를 해보자는 것이 취지였으나 전해지는 회의 분위기는 한마디로 '멍석 펴놓으면 못한다'였다.

김근태 의장과 김한길 원내대표의 모두발언만 공개하고 이후 18명의 의원들이 차례로 나서 자신의 의견과 계파의 생각을 피력했으나 "본질적인 문제는회피한 채 언론 등을 통해 이미 밝힌 원론적인 이야기들만 해서 맥 빠진 분위기였다"는 것이 의원들의 공통된 촌평이다.

이광재 의총 20여분만에 자리 떠

이는 정계개편과 관련 '당 사수'를 주장하고 있는 친노직계인 이광재 의원이 의총 시작 20여분만에 회의장을 빠져 나온 것에서도 잘 드러난다. 의원총회를 앞두고 당 사수를 주장하는 친노직계인 '당 사수파'와 민주당까지를 아우르는 통합을 주장하는 '통합신당파'간 격론이 오갈 것이란 관측에 비추어 볼 때 그의 이석은, 회의가 뜨겁지 않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광재 의원 뒤를 이어 회의장을 빠져 나온 이는 김원웅 의원. 이어 5분여 간격으로 지병문, 김동철, 김영주, 서갑원 의원 등이 의총장을 나섰다. 이들은 당내 친노파로 불린다.

2일 열린우리당 의총은 표류 그 자체였다. ⓒ연합뉴스


이날 의총에서 가장 먼저 마이크를 잡은 이는 '당 사수파'인 3선의 신기남(서울 강서갑) 의원이었다. 그는 "열린우리당의 창당이 잘못되었다는 식의 청산주의적 정계개편론은 중단되어야 한다. 민주개혁세력 대통합의 기회는 반드시 오겠지만, 지금은 우리당의 정체성과 리더십을 다시 세워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어 초선인 양형일(광주 동구) 의원이 나섰다. 그는 정기국회가 끝난 뒤 정계개편과 관련한 논의를 하자는 당 지도부의 의견에 대해 "이미 정계개편과 관련한 논의가 시작되었다"며, 정계개편 논의를 본격화할 것을 주장했다.

재선인 유선호(전남 장흥영암)은 "비대위 중심으로 정계개편 논의를 하되 특별기구를 구성해서 당내 여러 의견을 반영, 12월 초까지 단일한 정치일정을 마련하자"고 제안, 양형일 의원의 발언에 무게를 실어주었다. 이와 관련해 당내에서는 민주당과의 통합을 원하는 호남지역 의원들의 속내를 드러낸 것이라고 평했다.

그러나 같은 호남지역 출신 의원이지만 장영달(전북 전주완산갑) 의원의 생각은 달랐다. 4선 의원으로 당 자문위원장을 맡고 있는 그는 "여당의 책무가 있는데 정기국회를 팽개쳐 놓으면 국민들이 비판한다. 정기국회 이후에 정계개편을 논의해도 느지 않다. 민주당만을 대상으로 한 통합을 서두를 필요없다. 분당과 창당이 잘못됐다는 얘기는 맞지 않다"고 말했다.

2선 의원으로 지역구가 서울인 김영춘(서울 광진갑) 의원도 조기 정계개편 논의에 반대했다. 그는 "정계개편 논의 등은 정기국회를 마치고 해도 늦지 않다, 기구를 설치해서 정계개편 논의에 착수한다는 것에 반대한다. 전당대회에서 각자의 정계개편론에 대한 심판을 받으면 된다"고 말했다.

초선 의원 중 제일 먼저 마이크를 잡은 임종인(경기 안산상록을) 의원은 창당에 앞서 자기반성이 있어야 함을 지적했다. 그는 "서민과 중산층을 대변하지 못한 우리의 잘못을 고치는 작업을 먼저 시작하면서 신당 창당이든, 재창당이든 해야 한다. 김한길 원내대표는 일전에 내가 지방세법 개정안 당론에 반대했다고 실명까지 거론했는데, 지방세법 개정안과 같은 정책적 잘못이 누적돼 지지를 잃었다"고 주장했다.

장경수(경기 안산상록갑) 의원은 "우리당은 벼랑 끝에 몰려있다. 비상구가 필요하다, 따라서 정기국회 기간에 핵 문제, 법안, 예산 처리는 열심히 하되 정계개편에 대한 논의도 해야 한다. 결정은 정기국회 이후에 하더라도 논의는 최대한 해야 한다. 우리당 가치를 안고 살아나느냐와 죽느냐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며 속도조절론을 펴고 있는 당 지도부에 대해 강한 불만을 피력했다.

친노직계 모임인 '국민참여1219' 소속 의원인 초선의 정청래(서울 마포을) 의원은 "정계개편을 어떤 방법과 절차를 통해서 할지 논의하는 본질적인 기구를 구성하자"며 당내 특별 기구 설치를 반대하는 참여정치실천연대와 달리 기구 구성에 찬성한 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분당이 비극의 원인이었다'는 말을 했는데 당내에서 이런 분위기에 편승하려는 사람이 있다"며, 열린우리당 창당을 실패로 규정한 정동영 전 의장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초선-호남 논의 '서두르자' vs 다선-비호남 '천천히'j

초선과 호남지역 의원들이 서둘러 통합논의를 하자고 주장하는 것과 달리 3선으로 지역구가 서울인 배기선(경기 부천원미을)은 느긋한 입장을 취했다. 그는 "통합신당은 때가 되면 추진할 것이고 북핵위기로 안보 불안감이 높아진 상황에서 여당이 실질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국민의 위기, 한반도 평화이 위기, 여당의 위기가 있는데 국민과 민족의 위기를 먼저 생각할 때"라고 지적했다.

2선 이종걸(경기 안양만안) 의원은 "기득권을 다 포기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지금부터 정계개편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어느 정도 논의의 내용이 갖춰졌을 때 당내 기구를 만들어서 속도를 붙이자"고 했고, 초선 김재윤(제주 서귀포남제주) 의원은 "정기국회에서 여당의 책무를 다하되 정계개편 논의를 위해 당의 노선과 비전을 만드는 일도 소홀히 해선 안된다. 통합신당을 논의할 특별기구를 만들자"고 주장했다.

초선인 문학진(경기 하남) 의원은 "지금 국민의 심판을 이미 다 받은 거 아니냐. 지금 논의를 정기국회 끝까지 보류하자는 의견은 맞지 않다. 지금은 당이 조용하면 오히려 비정상이다. 대란이 있는 게 오히려 정상이라고 본다"고 주장했고, 같은 초선인 안민석(경기 오산) 의원 또한 "연말까지 논의하지 말자고 했는데 그게 과연 가능하겠느냐. 덮어둔다고 덮어지지 않을 것이다. 최소한의 의사소통 통로를 시스템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특별기구 설치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러나 1백41명 의원 중 1백여명이 참석, 18명의 의원들이 각자의 의견을 밝혔지만 이날 회의는 대부분의 제안이 언론 등을 통해 이미 주장된 것들이고, 상대 계파를 자극하는 공격적인 언사 또한 없었던 탓에 밋밋하게 끝나고 말았다. 당 안팎에서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이 없다'는 촌평을 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분위기가 생각보다 가라앉자 사회를 보던 최용규 의원은 "소회만 얘기하지 말고 대안을 좀 제시해 달라"고 분위기를 띄우기도 했으나, 상대방을 관망하는 분위기는 좀처럼 달라지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의총 막판에 김근태 의장이 정리발언을 통해 통합논의를 위한 당내 특별기구 설치 방안에 대한 의견을 모아보자고 제안했으나 김원기 상임고문이 "성급하게 기구를 만드는 것은 조심해야 한다"며 반대 의견을 펴 이 또한 무산되었다고 한다.

이와 관련해 정계개편 논의를 위한 특별기구 설치를 주장하는 '통합신당파' 한 초선의원은 "김원기 고문이 당의 어른이라서 박수 치고 끝내긴 했는데 뒷맛이 개운치 않았다"고 불만을 토로한 뒤, 정계개편과 관련한 논의는 정기국회 이후에 한다는 의총 결과에 대해 "이미 터진 봇물을 막을 수 있겠느냐"며 의총 결과에 대해 별 의미를 두지 않았다.

그에 반해 친노그룹의 한 초선의원은 "토론이 정말 질서정연하게 정리가 잘 됐다"며 흡족함을 드러냈으나 한 당직자는 "각자의 입장에서 처절하게 얘기한 자리였다"며 "정계개편 논의는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말했다.

열린우리당의 의총 결과를 접한 야당의 한 중진 의원은 "열린우리당 내 과거 김대중 전 대통령이나 김영삼 전 대통령처럼 강력한 카리스마를 지닌 정치적 리더가 없기 때문에 무수한 논의만 하다 결론도 못내고 사라질 것"이라고 냉소했다.
정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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