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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하 끝내 '침묵' 속에 타계

재임중, 재임후에도 자물쇠 입, 여야 평가 온도차

최규하 전 대통령이 22일 오전 노환으로 향년 88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10개월간 신군부 전횡에 침묵

최 전 대통령은 1979년 10.26 박정희 사망 직후 당시 국무총리에 있다 대통령 권한 대행직을 수행하게 됐다. 이어 같은 해 12월 27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통일주체 국민회의 대의원들에 의해 제10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그러나 당시는 전두환 등 신군부가 이미 12.12 쿠데타로 실권을 장악한 상태여서 최 전 대통령은 허수아비에 과했다. 특히 신군부는 12.12 쿠데타 직후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연행한 뒤 최 전 대통령에게 재가를 강제하는 등 전횡을 일삼았다.

특히 최 전 대통령은 1980년 신군부가 5.18 민주화 운동 무력진압 당시 아랍을 방문중이었다. 최 전 대통령은 광주 민주화 운동 발발 4개월 뒤인 8월 16일 신군부의 압력으로 대통령직에서 하야했다.

죽을 때까지도 침묵으로 일관

이렇듯 최 전 대통령은 10.26 이후 근 1년여간 계속된 신군부의 권력장악 음모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켜본 산 증인이었다. 그러나 최 전 대통령은 이후 이 날 세상을 떠날 때까지 끝내 침묵을 지켰다.

1995년 전두환-노태우에 대한 재판때도 검찰이 전-노를 구속한 뒤 그해 12월12일 그의 집을 찾아갔을 때도 "전직대통령은 항룡(천상의 용) 위치에 있다. 재직때의 일을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함구했다. 1996년 구인장을 받고 법정에 소환됐을 때도 침묵으로 일관했다.

민주화 이후 법정에 선 전두환, 노태우 등 군사반란의 장본인들도 최 전 대통령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아 공식적으로는 최 전 대통령의 하야 결정 과정과 신군부와의 관계 등이 구체적으로 알려지고 있지 않다. 그러나 최 전 대통령이 신군부에 의해 반강제적으로 대통령직에서 물러났다는 것이 대다수의 평가다.

정치권, 엇갈린 평가

정치권은 이같은 최 전 대통령의 영욕의 일생에 대해 미묘한 입장차를 나타냈다.

열린우리당 우상호 대변인은 22일 논평을 통해 “최규하 전 대통령은 오랜 공직생활을 통해 국가에 봉사해 온 분으로, 1980년대 격동의 세월에 군부의 정치개입 과정에서 굴절된 영욕을 함께했던 분으로 기억되고 있다”며 “불행한 역사가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아야 한다는 교훈을 되새기며 다시 한 번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밝혔다.

한나라당 유기준 대변인은 “어려운 격동기에 국가를 위해 헌신하셨고 평소 청렴하고 검소한 생활로 국민들에게 모범이 되신 분이셨는데 안타깝다”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기원한다”고 고인의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최규하 전 대통령이 신군부의 광주민주화 운동 진압을 증언하지 못한 책임을 들어 아쉬움을 나타냈다. 민주당 김재두 부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최 전 대통령이 5.18 광주민주화 운동의 진상 규명과 명예 회복 과정에서 끝내 말문을 열지 않아 책임자 규명도 못하고 숱한 의혹도 밝히지 못했다”며 “5.18 광주민주화 운동이 미완으로 평가받고 있어 못내 아쉽다. 최 전 대통령의 재임기간 공과는 역사 속에서 평가 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노동당 박용진 대변인은 “그가 대통령 재임 기간에 신군부의 12.12 쿠데타를 막지 못한 점이나 민주화 조치를 과감하게 취하지 않았던 점, 5월 광주항쟁에 대한 학살을 사실상 방조한 점 등에 대한 엄중한 책임을 되새기지 않을 수 없다”며 고인의 책임론을 거명했다. 그는 “개인 최규하의 영전 앞에는 명복을 빌지만, 대통령 최규하의 영전 앞에는 역사의 준엄한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적 입장을 밝혔다.
김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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