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의 화신' 이후락 전 중정부장 사망
유신독재 개헌, DJ 납치 주도...울산 조선소 유치로 축재도
이 전 부장은 이날 오전 11시45분 지난 5월부터 입원 중이던 동서신의학병원에서 노환으로 숨졌다.
그는 5·16쿠데타 이후 국가재건최고회의 공보실장을 지냈으며 1963년 박정희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을 거쳐 1970년 12월 중앙정보부장으로 취임했으며 1972년 5월 평양에서 김일성 주석과 만나 7.4 남북 공동성명을 이끌어냈다.
그는 이후 1972년 10월 유신 체제 구축에 주도적 역할을 했으며, 1973년 `김대중 납치사건'을 주도하는 등 초법적 공안통치를 주도하며 2인자로 군림해왔다.
그러나 1973년 12월 윤필용 수도경비사령관이 술자리에서 "박정희 대통령의 후계자는 이후락"이라고 말한 `윤필용 사건'으로 박정희 대통령의 분노를 사 중앙정보부장직에서 해임되면서 권부에서 거세됐다.
그는 그후 1979년 제10대 총선에서 자신의 고향인 울산에서 무소속 출마해 당선, 무소속 원내 교섭단체인 `민정회(民政會)' 회장을 지내다가 공화당에 입당했으나 1980년 신군부가 집권하면서 권력형 부정 축재자로 몰려 모든 공직에서 사퇴한 뒤 은둔생활을 해왔다.
그는 나는 새도 떨어트린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던 중정부장 시절, 당시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울산에 조선소를 유치하도록 하면서 천문학적 부를 축적한 것으로도 알려지고 있다. 울산은 그의 고향으로 조선소 유치에 앞서 매입한 엄청난 규모의 땅이 폭등하면서 막대한 반사이익을 거둘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2004년부터 노인성 질환을 앓기 시작해 최근에는 지인들조차 알아보지 못하고 방 밖으로 거동하지 못할 정도로 병세가 악화됐으며, 그가 소유한 경기 하남시 자택과 땅은 보험회사 대출금을 갚지 못해 1999년 8월 경매돼 다른 사람의 명의로 넘어갔고, 앞서 경기 광주에 있던 도자기 요장과 땅도 1994년 매각되는 등 말년은 초라했다.
그러나 재미언론인 안치용 씨는 이날 자신이 운영하는 인터넷사이트 <시크릿 오브 코리아>를 통해 "고 이 전 중장정보부장의 자녀는 한국의 재벌일가가 사는 뉴저지주 알파인에 호화주택을 소유한 것은 물론이고 뉴욕 맨해튼의 대형빌딩, 퀸즈의 빌딩, 최근에는 뉴저지주 엣지워터의 대지와 주택을 구입하는 등 부동산 규모가 3천만~5천만달러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안 씨는 이 전 부장이 애초 3남만을 슬하에 둔 것으로 알려진 것과 달리 외동딸이 있다고 거론한 뒤 "현재 뉴저지 알파인에 사는 외동딸 A씨 부부는 3년 전에 시세가 600만달러가 넘는 집을 구입하는 등 1975년부터 수차례에 걸쳐 뉴저지주, 하와이, 뉴욕 등지에서 주택과 건물을 사고 팔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 전 부장의 큰아들과 작은아들도 미국에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다"며 "계약서 스캔 등이 끝나는 대로 그 내역을 차근차근 밝히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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