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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인간 아들 조의금 거둬 빚 갚으라니...”

<현장> 빈곤의 굴레ㆍ대물림 이어지는 한 집안 이야기

서울 관악구 봉천동 한(55세, 여)모씨는 오늘도 외출을 못한다. 보증금 2백만원에 월 20만원짜리 반지하 방에서 아들을 지켜보고만 있다. 한 씨의 아들 광호(가명. 26세)씨는 지난 2004년 5월 귀가도중 집 앞 계단을 헛디뎌 뇌출혈 증상을 보인 후 의식을 완전히 잃고 지금까지 소위 식물인간(뇌병변 장애 1급 1호)으로 집안에만 누워있다.

가파른 봉천동 달동네 계단 헛디뎌 뇌사상태

“큰 딸(29)이 광호를 포함한 남동생 두 녀석에게 티셔츠 한 벌씩 사주겠다고 데리고 나갔어요. 쇼핑도 했겠다 3남매가 집 앞에서 간단히 호프 한 잔 했나봐요. 새벽때가 다 돼서 문 소리가 나길래 난 애들이 들어오는 줄 알았죠. 근데 갑자기 꽈당 하는 소리가 들려 급하게 나가보니 그에 사단이 난 거에요. 그 날 이후 우리 광호가...”

한 씨의 집은 봉천동이다. 가파른 계단 굽이굽이 집들이 빼곡히 늘어서있던 소위 봉천동 달동네였다. 사고가 있던 그 날도 광호 씨는 힘겹게 계단을 올라가다 그렇게 사고를 당한 것이다. 그 날 새벽부터 시작한 응급수술은 아침이 다 돼서야 끝났다.

담당의사는 가망이 없다며 가족들을 불러 모았다. 한 씨는 청천벽력같은 의사의 말에 그 자리에 주저앉아 실신했다. 그러나 광호씨는 그 날 이후로 49일간을 중환자실에 있으며 생명의 끈을 놓지 않았다. 식물인간으로 목숨만 붙어있을 뿐이었지만 그렇게 버텨준 광호 씨가 어머니는 무척 고마웠다.

“어떡하든 일어나겠지. 언제가는 눈을 뜰 거야. 그때부터 제 머릿속엔 그 말만 맴돌고 있죠. 지금도 그 희망 하나로 아들을 바라보고 있었요.”

광호(가명)씨의 사고 이후 광호씨의 남은 가족들은 빈곤의 나락으로 빠져들고 있다. ⓒ뷰스앤뉴스


국내 굴지 대기업 채권팀 직원 “은행 없니? 조의금으로 빚 값든가..,” 막말

그러나 한 씨에게는 지울 수 없는 상처가 있다. 광호 씨가 중환자실에서 사경을 헤매고 있던 그 해 6월,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한00씨죠? 여기 L카드인데요. 이번 달 대출납입금이 아직 납입이 안됐네요. 이 달까지 안내면 연체 마감인데 어떡하실거에요?”
“네. 우리 애가 지금 뇌사상태에 빠져 사경을 헤매고 있어 정신이 없어요. 조금만 기다려 주시면 안되겠어요? 부탁드릴께요.”

그 며칠 뒤 다시 2~3통의 독촉 전화가 계속 이어졌다. 중환자실에서 아들만 바라보고 있던 한 씨에게 대출금이다 뭐다 귀에 들릴 리 없었다. 사실 벌써 2차례나 받았던 아들의 뇌수술 비용만해도 감당하기 어려운 게 한 씨의 처지였다. 당장 지불 할 병원비 조차 부족해 아버지는 이 은행, 저 은행 구걸하러 다니다시피 했다.

그러고선 며칠 뒤 또 다시 L카드사에서 전화가 왔다.

“아 뭐하자는 거요? 나 L카드 채권팀인데 이거 정말 안 낼 거야? 능력 없으면 쓰지를 말아야지.”

“저희 집 상태가 지금 그럴 상황이 아니라잖아요. 누가 떼 먹는데요. 애가 지금 오늘 내일해서 영안실을 잡네 마네 그러고 있는데 제가 어디 도망이라도 가겠습니까?”

“그렇다고 돈을 못내? 니네 동네는 은행도 없니? 영안실 잡았니 어쨌니 그러는걸 보니 그럼 조의금 들어오는 걸로 줘라. 내가 (받으러) 갈게.”

“뭐야 야이 XX야. 니가 사람XX냐? 와서 한번 눈으로 봐.”

“몰라 그건 아줌마 사정이고. 빨리 내.”

도저히 믿기지 않는 통화였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이 굴리는 카드사, 그 곳 직원이 이같은 막말을 할 줄이야...'

한 씨는 누워있는 아들보다 그런 세상이 더 원망스러웠다. 한 씨는 둘째 아들 기호(27)씨의 대학 등록금 마련을 위해 지난 2003년 L카드사로부터 학자금을 대출받았다.

L카드사는 장기 저리라고 큰 소리쳤지만 학자금 대출 금리는 연 8~16%대. 거기다 2~3%대의 수수율을 다 합치고나면 족히 20%에 육박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유일한 신분상승 사다리인 교육, 그 교육을 못 받는 서민층을 위해 마련했다는 학자금대출이 고스란히 대기업의 돈 장사로 전락하고 있었다.

부모의 가난, 큰 딸에게 고스란히 대물림... 끊이지 않는 빈곤의 굴레

하지만 그것은 한 씨 집안을 옥죄는 시작에 불과했다. 병원측은 “더 이상 손 쓸 치료가 없다”며 광호 씨가 입원한 지 13개월만인 2005년 6월 퇴원 결정을 내렸다. 13개월동안 광호 씨가 입원해 있으면서 4차례에 걸친 뇌수술과 병원비는 한 씨 형편에는 천문학적인 비용이었다.

총 병원비는 3천만원대. 그나마 입원 도중 장애 1급 판정을 받아 천 만원 가까이 의료보험 적용이 됐지만 그렇게해도 2천만원대의 병원비는 한 씨의 몫이었다. 한 씨는 아들이 입원하기 전부터 차상위 빈곤층이었다. 보증금 5백만원짜리 달동네 월세집이 5인가구의 한 씨 집안 형편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그럼에도 나라에서는 광호 씨의 아버지가 65세 미만의 노동자인 동시에 또 한 달에 82만원이나(?) 받는다는 이유에서, 또 큰 딸이 직장에 다녀 월급 80만원을 받고 있다는 이유에서 기초생활수급대상 가구가 아니라고 설명했다.

아들의 사고직전까지 이미 광호 씨의 부모는 5인 가구를 먹여살리느라 부부 명의로 일반 은행에서는 대출 상한액을 넘어선 지 오래다. 그나마 대기업이 운영하는 카드사들을 통해서 몇 백만원을 융통해 병원비를 조달했지만 턱없이 모자라는 액수였다.

방법은 하나 뿐이었다. 3남매 중 유일하게 직장생활을 하게 된 딸의 이름으로 대출받는 방법 뿐이었다. 큰 딸 혜선(가명. 29)씨는 이제 막 사회에 첫 발을 내디뎠지만 그 일로 금융권의 채무자 명단 한 자리를 꿰차게 됐다. 다니던 직장도 광호 씨의 퇴원 후 어머니와 집에서 광호 씨를 돌보느라 퇴직해야만 했다.

한 씨는 한참을 울었다. 부모들이 진 빚도 모자라 이제 막 사회생활을 한 자식에게까지 남의 돈 빚지고 살게 생겼다며, 그 가난의 굴레를 대물림 한 것이 너무나 미안해 울고 또 울며 자신을 원망했다. 최근 다시 직장을 잡은 혜선 씨는 당장 은행에 갚아야 할 돈만 7백만원대에 이른다.

“서류상으로는 식물인간 혼자 거주? 가족해체ㆍ편법 유도하는 정부 정책”

한 씨는 보증금 5백만원짜리 집을 팔고 보증금 2백만원에 월세 20만원 짜리 반지하(방 두 칸)로 옮겼다. 그 곳에서 다섯 식구가 살고있다. 그러나 주민등본상 한 씨 가족은 전부 흩어져 사는 것으로 나와있다.

광호 씨 앞으로 나오는 장애수당은 고작 20만원이다. 기초생활수급자 신청을 해봤지만 부양가족이 있고 또 부양가족중 일부(아버지ㆍ딸)가 소득(총 1백60만원)이 있다는 이유로 탈락했다.

이를 딱하게 본 동사무소 사회복지사는 한 씨에게 서류상으로만 일단 광호 씨를 단독가구 거주로 신고하라고 귀뜸했다. 그래야만 광호 씨가 기초생활수급액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광호 씨 앞으로 받는 돈이 생활보조금 명목으로 월 7만8천원. 거동도 못하고 의식도 없는 식물인간 광호 씨에게 나라가 지원하는 돈이 바로 월 27만8천원(의료보장제외)인 것이다.

“내가 그깟 8만원돈도 안되는 걸 받으려고 아들을 서류상에서 혼자 사는 것으로 신고했을 때 참 기가막히더라고요. 이렇게라도 살아야 하나 하고...”

어머니 한 씨는 끝내 복받치는 설움에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그 기막힌 짓을 하지 않고서는 그나마 없는 살림이 더 빠듯해진다. 정부의 조잡한 기초생활수급제도가 가족을 해체하고 편법을 유도하게 만드는 건 비단 한 씨 집안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이것도 비급여 대상, 저것도 비급여 대상... 빈곤층 굴레씌우는 정부”

한 씨는 1시간에도 수 회씩 광호 씨를 이리 눕혔다, 저리 눕혔다 분주하게 움직였다. 지난 해 여름 광호 씨가 욕창으로 크게 낭패를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하루종일 누워있는 환자에게 욕창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 그 일로 지금 광호 씨의 엉덩이 한 쪽은 욕창 제거 수술로 완전히 도려져 나갔다.

욕창 제거 수술로 4백만원이 들었는데 의료보험 급여 혜택을 받은 액수는 절반인 2백만원에 그쳤다. 나머지 2백여만원은 본인 부담액이었다. 병원측은 알부민 주사를 비롯한 각종 수술재료비 일부에 있어 비급여 대상이라고 설명했다.

게다가 욕창 제거 수술 후 식물인간인 광호 씨를 치료하기 위해 1주일에 2~3번 한 씨 집을 방문하는 방문 간호사 비용 역시 비급여 대상이라고 했다. 한 씨가 납입해야 하는 방문간호사 비용(1회방문시 1만4천원)에는 치료재료 일부와 간호사의 교통비가 포함돼 있다.

한 씨는 아들의 욕창 제거 수술로 또 다시 대출할 곳을 알아봐야만 했다. 금융권에서는 이제 더 이상 한 씨의 서류를 받아 줄 곳이 없었다. 어느덧 한 씨는 일수 찍는 동네 아줌마의 사채까지 융통해야만 했다.

한 씨 집안의 빈곤의 굴레는 좀처럼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처음 서민층으로 시작했던 한 씨에게 그나마 상대적으로 저리인 시중 은행의 대출은 몇 백만원 선에서 그쳤고, 더 많은 돈이 필요했던 한 씨는 고금리의 대기업들이 운영하는 제2금융권으로 손을 벌려야만 했다.

아들의 사고로 이제는 한 씨의 딸까지 빚을 지게되었고 딸은 또 앞으로 언제가 될 지 모르는 그 날 까지 빚을 갚아 나가야만 한다. 어머니가 L카드사에게 당했던 것처럼 딸도 언제 그런 수모를 당할 지 모르는 불안함을 가지고서 말이다.

그러나 정부는 각종 어렵고 조잡한 기준으로 허울뿐인 사회보장제도만을 내놓고 있고, 급기야 사채까지 끌어다 써야하는 것이 현재의 한 씨의 처지다. 지난 6월 한 사회단체의 주선으로 한 씨 부부는 법원에 파산신청을 냈다.

광호 씨의 아버지는 다음과 같이 판사에게 썼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제가 이제껏 너무 불성실하게 살았나 봅니다. 그래도 최선을 다해보려했는데...(중략) 진술한 내용은 제출한 내용과 같고, 부디 한번만 선처해 주시면 앞으로 성실하게 살겠습니다.”

아버지는 이제까지 아파트 경비일을 하며 3남매를 길러냈다. 그가 성실하게 살지 않았다면 우리 사회에 성실하지 못한 부모는 수백 수천만명에 이를 것이다.
김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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