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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盧가 있는 한 승선할 외부선장은 없다"

정운찬-박원순-고건과 '노무현 주식회사'는 적대적 상극관계

"노무현 대통령이 선주 행세를 하는 한, 승선할 외부선장은 없을 것이다."

노 대통령이 8.6 청와대 회동에서 '외부 선장론'을 피력한 데 대한 정치권 안팎의 대체적 반응이다.

노 대통령은 열린우리당을 "크고 튼튼한 배"에 비유한 뒤 "당을 잘 지키고 있으면 좋은 선장이 탈 수도 있고, 내부의 사람과 외부의 사람이 공정한 조건에서 경선도 하고 선장을 정하면 좋은 기회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

열린우리당을 "크고 튼튼한 배"에 비유한 것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큰 배"인 것은 사실이나 "튼튼한 배"는 아니기 때문이다. 정당이 튼튼한가 아닌가는 국민의 지지를 받는가 그렇지 못한가에 의해 결정된다.

"당을 잘 지키고 있으면 좋은 선장이 탈 수도 있다"는 말도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의석 1백40석의 정당은 분명 거대함선이다. 타고 싶은 유혹을 느낄만하다. 창업은 그만큼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대통령이 분명 알아야 할 전제조건이 하나 있다. 노 대통령이 '선주' 행사를 하는 한 이 배에 타려 하는 '좋은 선장'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노 대통령의 '외부 선장' 발언후 정치권에서 즉각 후보로 거명된 인물은 세명이다. 정운찬 전 서울대총장, 박원순 희망제작소 이사, 고건 전총리. 문제는 노대통령과 이들의 껄끄러운 관계다.

노무현과 정운찬

정운찬 서울대총장은 2002년 대선때 노무현 후보의 당선을 원했다. 이회창 후보가 고교-대학선배이기는 했으나 노 후보를 밀었다. 세상이 한번 크게 바뀌어야 한다는 판단에서였다.

노 후보도 이 사실을 잘 안다. 그러기에 대통령에 당선된 후 정총장에게 감사함을 표시했고, 초대 경제부총리도 추천해달라고 했다. 정총장은 이에 김종인 전 경제수석을 추천했고, 노대통령은 이를 수용했다. 그러나 인선 발표직전 재계의 거센 반발과 친노그룹의 비토 등이 맞물리면서 김진표로 바뀌었다. 그후 김진표 경제팀은 정총장이 우려했던대로 부동산경기 부양책을 펼쳤고, 아파트값과 땅값이 폭등했다. 그때부터 정총장은 노대통령에 대한 평가를 달리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소원해져간 두사람 관계는 지난해 7월 정총장이 추진하던 통합형논술 도입을 노대통령이 공식석상에서 "내가 들은 가장 나쁜 뉴스"라고 비판하고 이를 신호탄으로 친노세력과 청와대-정부 관계자들이 경쟁력으로 '정운찬 때리기'에 나섬으로써 루비콘강을 건넜다.

당시 정총장은 '짤릴 각오'로 노대통령과 붙었다. "서울대 총장 임면권은 대통령에게 있다"는 말로 비장한 속내를 드러내기도 했다.

이 기간중 정총장이 지난달 퇴임할 때까지 계속됐다. 퇴임 며칠전 노대통령과 대학총장들간 간담회에서 노대통령은 싱가포르 국립대학을 예로 들며 우회적으로 서울대를 비판했고, 정총장은 이를 맞받아 "싱가포르 국립대에 서울대 교수들이 다수 가 있는 걸 아느냐"고 반박했다.

정총장은 퇴임직전 그의 '4년임기 완료'를 축하하는 지인들과 여러 차례 만났다. 그의 퇴임을 앞두고 정치권과 언론은 그의 '다음 행보'에 비상한 관심을 가졌다. 한 지인들은 모임에서 그에게 두가지 당부를 했다. "첫번째 열린우리당에는 절대로 가지 마라. 두번째 국무총리도 하지 마라"였다.

노무현대통령과 정운찬 서울대총장이 논술 부활을 놓고 격돌한 지난해 7월 악수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노무현과 박원순

뉴라이트의 제성호 중앙대 교수는 지난 6월19일 '박원순 변호사의 행보를 주장해야 한다'는 글을 통해 "노 대통령이 차기대선에서 이길 수 있는 히든카드 1위는 박원순 변호사"라고 주장, 정가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그동안 물밑에서 떠돌던 얘기를 공론화했기 때문이다.

이에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는 한달 뒤인 7월18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멀쩡하게 일언반구도 안하는 사람을 불러다가 ‘저쪽 후보다, 그래서 경계해야 된다’ 그런 식의 논법 아닌가"라며 강한 불쾌감을 표시했다.

그러나 '박원순 대망론'의 진원지는 노대통령으로 알려지고 있다. 2004년말 한 사적모임에서 노대통령이 "열린우리당 차기대권주자는 외부인사가 될 수도 있다. 박원순 변호사 같은 분이 그런 후보감이다"라고 말했다는 소문이 정가에 파다했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여야는 모두 박 이사의 일거수일투족을 예의주시해온 게 사실이다.

하지만 박 이사는 노대통령과 분명한 선을 긋고 있다. 그는 노정권을 "실패한 정권"으로 규정했다. 그는 실패원인을 "노정부 실패의 원인은 준비되지 않은 정권이었기 때문"이라고 노 정권의 급소를 찌르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박 이사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하지만 그것은 노 대통령에 결코 한정되는 문제는 아니다. ‘이회창 정권’이 탄생했다 하더라도 마찬가지였다고 본다. 왜냐하면 열린우리당이나 한나라당 양당이 지금 하는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다"고 균형점을 찾고 있다. '대안 부재'는 여야 기성정치권 공통의 문제점이라는 지적이다.

현재로선 박 이사는 현실정치권에 진입할 생각이 전혀 없다. 그러나 한가지 간과해선 안될 대목은 시민사회운동권 분위기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노무현 정권의 붕괴가 곧 시민사회운동권의 동반몰락으로 이어질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그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박 이사는 한미FTA, 재벌사면복권 추진 등으로 대변되는 노무현 정권의 신자유주의화를 절대 용인할 수 없다는 생각이다. 시대의 요구를 따른다 할지라도 노대통령과 손을 잡을 생각은 전무하다는 얘기에 다름아니다.

2001년 7월 박원순 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오른쪽 세번째)와 노무현 당시 민주당 상임고문(오른쪽 두번째)가 한 토론회에서 만나 개혁에 대해 토론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노무현과 고건

고건 전총리는 '노무현과의 차별화'로 오늘날의 유력 대권후보 자리에 오른 대표적 인물이다. 그런만큼 노대통령과의 공존은 '자살골'이란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안다.

그러나 그는 지금 거대한 장애에 직면해있다. '희망연대' 출범이 계속 난항을 겪고 있는 것이다. 그는 5.31지방선거에서의 열린우리당 참패 직후 기습공격을 가했다. 열린우리당을 빨아들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의외로 열린우리당은 움직이지 않았다. 거대함선의 관성 때문이었다. 그렇게 머뭇거리다 7.26 재보선에서 조순형 후보가 당선되면서 민주당에서도 동요가 사라졌다.

고 전총리는 점점 고립무원의 처지로 몰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그는 열린우리당이란 "큰 배"의 유혹을 점점 느낄 수밖에 없어 보인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이 계속 '노무현 주식회사' 형태를 취하고 있는 한, 고 전총리의 운신폭은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노무현 호'에 승선하는 순간, 그는 안팎의 비난공세에 노출되면서 궤멸적 상황에 처할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고건의 진퇴양난의 고민은 여기에 있다.

2004년 5월 노무현 대통령과 고건 총리가 불편한 표정으로 행사장에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전두환식 정권재창출 시나리오가 필요충분조건

정가에서는 이렇게 분석하기도 한다. "노무현의 외부선장 영입론은 외부의 잠룡 제거작업일 수도 있다"고. 외부의 잠재적 경쟁자들을 하나씩 무력화한 뒤, 천정배-강금실-유시민 같은 내부의 히든카드로 반한나라당 전선을 구축해 마지막 승부를 걸려하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다.

그러나 이 구상 또한 결정적 한계를 안고 있다. 노대통령이 선주로 군림하는 한, 반한나라당 전선이 구축되기란 쉽지 않다는 사실이다. 노대통령에 대한 국민적 반감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나를 밟고 가라. 철저히 밟아도 좋다"는 전두환식 정권재창출 시나리오가 전제되지 않는 한, 그 어떤 시나리오도 가시적 성과를 거두긴 힘들 것이라는 게 정가 안팎의 지배적 관측이다.
박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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