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볼] 중국팀 이끄는 '핸드볼 차붐' 강재원 감독
서울올림픽 은메달리스트, 스위스리그 득점왕 2회, 리그 우승 8회
'우생순 신화' 재현을 노리는 한국 여자 핸드볼 대표팀이 오는 19일 저녁 중국 대표팀과 8강전을 갖는다.
객관적 전력은 우리 팀이 한수 위. 그러나 방심은 금물이다. 특히 중국 대표팀을 한국의 강재원 감독이 이끌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강재원 감독은 한국 남자 핸드볼이 배출한 최초의 국제적 스타다. 그는 1984년 LA올림픽에서 득점 3위에 오르며 일약 한국 남자 핸드볼의 간판 스타가 됐고, 1986년 스위스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득점왕에 오르기도 했다.
그는 특히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혼자 47골을 성공시키는 눈부신 활약으로 개인득점 1위를 차지하며 한국 남자 핸드볼이 남자 구기종목 사상 최초로 올림픽에서 메달을 획득하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 특히 동독과의 예선 2차전, 종료 3초를 남기고 날린 결승 스냅슛은 ‘100년에 한 번 나오는 슛’이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서울올림픽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강 감독은 이듬해인 1989년 스위스리그 그라스호퍼에 진출, 그 해와 다음해 잇따라 스위스리그 2년 연속 득점왕에 올랐을 뿐 아니라 12년간의 스위스리그에서 뛰며 소속팀을 8차례나 리그 정상에 올려놓았다. 국제핸드볼연맹(IHF)은 1989년 그를 한국 선수로는 최초로 ‘올해의 선수’로 뽑았다.
스위스 언론은 강재원에게 '마라도나'라는 별명을 붙여주기도 했다. '축구 천재' 디에고 마라도나가 그의 왼발로 절묘한 슈팅과 패스를 자유자재로 구사했던 선수였다면 강재원은 왼손에서 뿜어져 나오는 폭발적인 슈팅이 일품이었기 때문에 붙여진 별명이다.
당시 독일에서 가장 유명했던 한국인이 분데스리가에서 활약하던 축구스타 차범근이었다면, 스위스에서 가장 유명했던 한국인은 단연 강재원이었다. 그야말로 '핸드볼의 차붐'이었던 셈이다.
현역에서 은퇴한 이후 1995년 한국 국가대표 코치로 지도자로서의 첫 발을 뗀 강재원 감독은 2005년 일본 다이도스틸 감독을 맡아 소속팀을 2006-2007 시즌 전관왕으로 이끌어 최우수 감독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현재 한국 대표팀의 맏형 노릇을 하고 있는 백원철도 다이도스틸에서 강 감독의 전관왕 달성에 선봉장 역할을 했다.
IHF의 선수위원을 역임한 강재원 감독은 한때 선수 에이전트로 변신, 한국의 우수한 선수들을 외국 리그에 진출시켜 한국 선수들의 국제 경쟁력 강화에도 일조한 바 있으며, 지난해 4월부터 중국 여자 대표팀을 맡아 현재에 이르고 있다.
한국과 중국의 올림픽 또는 세계선수권대회에서의 상대전적은 2승2무1패로 한국이 우세하며, 아시아권의 국제대회에서의 성적은 17전 16승 1패로 한국의 절대 우세다. 그러나 중국의 홈팀으로서의 어드밴티지를 감안한다면 강재원 감독의 대반격 가능성도 존재해, '우생순'이 긴장을 늦춰선 안될 일이다.
객관적 전력은 우리 팀이 한수 위. 그러나 방심은 금물이다. 특히 중국 대표팀을 한국의 강재원 감독이 이끌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강재원 감독은 한국 남자 핸드볼이 배출한 최초의 국제적 스타다. 그는 1984년 LA올림픽에서 득점 3위에 오르며 일약 한국 남자 핸드볼의 간판 스타가 됐고, 1986년 스위스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득점왕에 오르기도 했다.
그는 특히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혼자 47골을 성공시키는 눈부신 활약으로 개인득점 1위를 차지하며 한국 남자 핸드볼이 남자 구기종목 사상 최초로 올림픽에서 메달을 획득하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 특히 동독과의 예선 2차전, 종료 3초를 남기고 날린 결승 스냅슛은 ‘100년에 한 번 나오는 슛’이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서울올림픽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강 감독은 이듬해인 1989년 스위스리그 그라스호퍼에 진출, 그 해와 다음해 잇따라 스위스리그 2년 연속 득점왕에 올랐을 뿐 아니라 12년간의 스위스리그에서 뛰며 소속팀을 8차례나 리그 정상에 올려놓았다. 국제핸드볼연맹(IHF)은 1989년 그를 한국 선수로는 최초로 ‘올해의 선수’로 뽑았다.
스위스 언론은 강재원에게 '마라도나'라는 별명을 붙여주기도 했다. '축구 천재' 디에고 마라도나가 그의 왼발로 절묘한 슈팅과 패스를 자유자재로 구사했던 선수였다면 강재원은 왼손에서 뿜어져 나오는 폭발적인 슈팅이 일품이었기 때문에 붙여진 별명이다.
당시 독일에서 가장 유명했던 한국인이 분데스리가에서 활약하던 축구스타 차범근이었다면, 스위스에서 가장 유명했던 한국인은 단연 강재원이었다. 그야말로 '핸드볼의 차붐'이었던 셈이다.
현역에서 은퇴한 이후 1995년 한국 국가대표 코치로 지도자로서의 첫 발을 뗀 강재원 감독은 2005년 일본 다이도스틸 감독을 맡아 소속팀을 2006-2007 시즌 전관왕으로 이끌어 최우수 감독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현재 한국 대표팀의 맏형 노릇을 하고 있는 백원철도 다이도스틸에서 강 감독의 전관왕 달성에 선봉장 역할을 했다.
IHF의 선수위원을 역임한 강재원 감독은 한때 선수 에이전트로 변신, 한국의 우수한 선수들을 외국 리그에 진출시켜 한국 선수들의 국제 경쟁력 강화에도 일조한 바 있으며, 지난해 4월부터 중국 여자 대표팀을 맡아 현재에 이르고 있다.
한국과 중국의 올림픽 또는 세계선수권대회에서의 상대전적은 2승2무1패로 한국이 우세하며, 아시아권의 국제대회에서의 성적은 17전 16승 1패로 한국의 절대 우세다. 그러나 중국의 홈팀으로서의 어드밴티지를 감안한다면 강재원 감독의 대반격 가능성도 존재해, '우생순'이 긴장을 늦춰선 안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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