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조사 마술'에 휘둘리는 대선주자들
[김행의 '여론 속으로']<40> 정운찬 낙마를 보고
여론조사가 정치인들을 미치게 한다. 실제상황이다. A 후보의 지지율이 지난 주 대비 2.7%포인트 올랐다 치자. 캠프 전체가 상승세를 탔다며 희희낙락이다. 반대로 3%포인트 떨어졌다 치자. 거의 초죽음이다. 아니, 캠프의 일부 관계자는 조사가 틀렸다며 당장 해당 조사기관과 발표 언론사의 저의를 의심하기도 한다. 밴댕이 소갈딱지도 이 정돈 아닐 게다.
기자들도 마찬가지다. 이 정도의 등락만으로 지지율이 ‘상승세’니 ‘하락세’니 써 댄다. 요는 기자들의 ‘초 치기’가 통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기자들이 ‘상승세’니 ‘하락세’니 ‘초를 치면’ 실제 여론조사 결과에도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왕왕 있다. 이른바 ‘밴드웨곤 이팩트’다. 나팔수에게 영향 받는다는 얘기다.
허나 여론조사는 이렇게 읽으면 안된다. 통상 1,000샘플 조사를 했을 경우 샘플링 에러가 전무했다는 가정하 (통계적으로 이런 상황은 불가능)에서도 95% 신뢰수준에서 ± 3.1%포인트 표본오차가 있는 것이 여론조사다. 그러니 ±3.1%포인트 내의 지지율 변화는 ‘의미 없다’고 봐야 한다.
허나 어디 현실이 그런가. 언론사에서 지지율 조사가 나오면 정치인들마다 ‘눈터지는 계가싸움’이다. 조사가 맞느니 틀리느니, A언론사 여론조사는 0에게 유리하고 B여론조사는 X에게 유리하다는 식의 ‘막가파’식 비난이 오간다. 심지어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자체 여론조사를 내놓기까지 한다. 참, 보기 민망하다.
그 싸움의 맨 앞에 이명박 전 서울시장,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있다. 이 전 시장은 최근 여론조사가 하락세라고는 하나 여전히 1위 후보다. 물론, 그의 지지율엔 친여권 성향의 지지율이 어느 정도 포함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호남의 높은 지지율이나 지난 대선 때 노무현 후보를 찍었던 유권자들 상당 비율 포함되어 있는 것을 말한다. 때문에 막상 여권후보가 등장할 때, 지지율을 얼마나 지켜낼 수 있을지가 관전 포인트다.
박근혜 전 대표의 지지율은 20%대에서 꿈쩍도 않는다. 도대체 지지율의 확장세가 보이질 않는다. 이 정도론 대권 잡기 힘들다. 그렇지만 어느 정치인보다 지지층의 로열티가 높다. 이는 분명 박 전 대표만이 갖고 있는 장점임을 부인키 어렵다.
이 전 시장은 1위지만 ‘거품’이 있고, 박 전 대표는 2위지만 ‘단단하고’. 이러니 둘 다 양보할 수 없다. 게다가 현재 범여권후보의 지지율은 다 합쳐야 10%가 안된다. 이러니 양 진영에서 두 후보가 본선에서 맞붙어도 ‘자기들 쪽에’ 승산이 있다는 식의 계산이 나오는 것이다. 만약 한나라당이 분당한다면 그 주범 중 하나는 여론조사다.
정운찬 전 서울대총장이 결국 ‘대권 불출마 선언’을 했다. 존경받는 학자가 ‘악마들의 잔치’에 끼어들지 않아 다행이라는 안도감도 있지만, 왠지 뒷맛이 개운치만은 않다. 그의 불출마 선언에는 1%를 오락가락 하는 ‘낮은 지지율’이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앞서 고건 전 국무총리도 지지율이 10%대로 폭락하자 두 손 들고 말았다.
손학규 전 지사가 한나라당을 탈당한 것도 따지고 보면 여론조사의 마술에 걸려서다. 범여권후보 지지율 1위라는 유혹을 떨쳐내기 힘들었을 게다. 한나라당에 남아 ‘용의 꼬리’가 되느니, 뛰쳐나와 ‘닭의 머리’가 되고 싶었던 것이다. 용의 꿈을 꾸면서.
이명박 전 시장, 박근혜 전 대표 때문에 분당의 위기로 치닫는 한나라당, 반전의 기미가 보이자 않자 한나라당을 뛰쳐나온 손학규 전 지사, 지지율의 덫에 걸려 중도하차한 정운찬 전 서울대총장과 고건 전 시장 등등. 이들이 대권도전을 생각했을 때, 펼치고 싶었던 꿈은 과연 무엇이었나? 그들이 그렸던 대한민국의 미래는 어떤 모습이었나? 목표는 오직 ‘대통령 당선’이었나? 묻고 싶다.
차라리 2001년 후보시절의 노무현이 그립다. 그가 막강 이인제 후보를 상대로 경선 출마를 선언했을 때 지지율은 고작 2%였다. 경선과정 중 ‘광주 역전 드라마’를 연출하고 기적같이 후보가 된 후, 그의 지지율은 한 때 40%대를 육박하기도 했었다.
그러다 2002년 대선이 있던 해 여름에는 10% 대까지 추락, 당내 의원들로부터 ‘후보 사퇴 압력’에 시달리기도 했다. 당시 그에겐 세도 없었고 돈도 없었다. 결국 모든 것을 내던지고 올인한 정몽준 후보와의 단일화. 그리고 대통령이 되기까지. 당시 그가 국민에게 선사한 것은 ‘감동’이었다.
그 ‘감동’이 가능했던 것은 ‘노무현’이라는 한 인간이 ‘꼭 내가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는 것보다는 ‘어떤 역경에도 나의 정치철학을 지켜내겠다’는 꿈이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 현재 거론되는 유력주자들에게 ‘감동’이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꿈’을 볼 수 없어서다. 단지, 여론조사 놀음에 놀아나고 있어서다. 아쉽다.
기자들도 마찬가지다. 이 정도의 등락만으로 지지율이 ‘상승세’니 ‘하락세’니 써 댄다. 요는 기자들의 ‘초 치기’가 통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기자들이 ‘상승세’니 ‘하락세’니 ‘초를 치면’ 실제 여론조사 결과에도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왕왕 있다. 이른바 ‘밴드웨곤 이팩트’다. 나팔수에게 영향 받는다는 얘기다.
허나 여론조사는 이렇게 읽으면 안된다. 통상 1,000샘플 조사를 했을 경우 샘플링 에러가 전무했다는 가정하 (통계적으로 이런 상황은 불가능)에서도 95% 신뢰수준에서 ± 3.1%포인트 표본오차가 있는 것이 여론조사다. 그러니 ±3.1%포인트 내의 지지율 변화는 ‘의미 없다’고 봐야 한다.
허나 어디 현실이 그런가. 언론사에서 지지율 조사가 나오면 정치인들마다 ‘눈터지는 계가싸움’이다. 조사가 맞느니 틀리느니, A언론사 여론조사는 0에게 유리하고 B여론조사는 X에게 유리하다는 식의 ‘막가파’식 비난이 오간다. 심지어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자체 여론조사를 내놓기까지 한다. 참, 보기 민망하다.
그 싸움의 맨 앞에 이명박 전 서울시장,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있다. 이 전 시장은 최근 여론조사가 하락세라고는 하나 여전히 1위 후보다. 물론, 그의 지지율엔 친여권 성향의 지지율이 어느 정도 포함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호남의 높은 지지율이나 지난 대선 때 노무현 후보를 찍었던 유권자들 상당 비율 포함되어 있는 것을 말한다. 때문에 막상 여권후보가 등장할 때, 지지율을 얼마나 지켜낼 수 있을지가 관전 포인트다.
박근혜 전 대표의 지지율은 20%대에서 꿈쩍도 않는다. 도대체 지지율의 확장세가 보이질 않는다. 이 정도론 대권 잡기 힘들다. 그렇지만 어느 정치인보다 지지층의 로열티가 높다. 이는 분명 박 전 대표만이 갖고 있는 장점임을 부인키 어렵다.
이 전 시장은 1위지만 ‘거품’이 있고, 박 전 대표는 2위지만 ‘단단하고’. 이러니 둘 다 양보할 수 없다. 게다가 현재 범여권후보의 지지율은 다 합쳐야 10%가 안된다. 이러니 양 진영에서 두 후보가 본선에서 맞붙어도 ‘자기들 쪽에’ 승산이 있다는 식의 계산이 나오는 것이다. 만약 한나라당이 분당한다면 그 주범 중 하나는 여론조사다.
정운찬 전 서울대총장이 결국 ‘대권 불출마 선언’을 했다. 존경받는 학자가 ‘악마들의 잔치’에 끼어들지 않아 다행이라는 안도감도 있지만, 왠지 뒷맛이 개운치만은 않다. 그의 불출마 선언에는 1%를 오락가락 하는 ‘낮은 지지율’이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앞서 고건 전 국무총리도 지지율이 10%대로 폭락하자 두 손 들고 말았다.
손학규 전 지사가 한나라당을 탈당한 것도 따지고 보면 여론조사의 마술에 걸려서다. 범여권후보 지지율 1위라는 유혹을 떨쳐내기 힘들었을 게다. 한나라당에 남아 ‘용의 꼬리’가 되느니, 뛰쳐나와 ‘닭의 머리’가 되고 싶었던 것이다. 용의 꿈을 꾸면서.
이명박 전 시장, 박근혜 전 대표 때문에 분당의 위기로 치닫는 한나라당, 반전의 기미가 보이자 않자 한나라당을 뛰쳐나온 손학규 전 지사, 지지율의 덫에 걸려 중도하차한 정운찬 전 서울대총장과 고건 전 시장 등등. 이들이 대권도전을 생각했을 때, 펼치고 싶었던 꿈은 과연 무엇이었나? 그들이 그렸던 대한민국의 미래는 어떤 모습이었나? 목표는 오직 ‘대통령 당선’이었나? 묻고 싶다.
차라리 2001년 후보시절의 노무현이 그립다. 그가 막강 이인제 후보를 상대로 경선 출마를 선언했을 때 지지율은 고작 2%였다. 경선과정 중 ‘광주 역전 드라마’를 연출하고 기적같이 후보가 된 후, 그의 지지율은 한 때 40%대를 육박하기도 했었다.
그러다 2002년 대선이 있던 해 여름에는 10% 대까지 추락, 당내 의원들로부터 ‘후보 사퇴 압력’에 시달리기도 했다. 당시 그에겐 세도 없었고 돈도 없었다. 결국 모든 것을 내던지고 올인한 정몽준 후보와의 단일화. 그리고 대통령이 되기까지. 당시 그가 국민에게 선사한 것은 ‘감동’이었다.
그 ‘감동’이 가능했던 것은 ‘노무현’이라는 한 인간이 ‘꼭 내가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는 것보다는 ‘어떤 역경에도 나의 정치철학을 지켜내겠다’는 꿈이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 현재 거론되는 유력주자들에게 ‘감동’이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꿈’을 볼 수 없어서다. 단지, 여론조사 놀음에 놀아나고 있어서다.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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