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문순 MBC사장, 여기저기 기웃거려"
[이기명 이메일 전문] 이기명, 최문순에 아들 구명 요구도 밝혀
이기명 전 노무현대통령 후원회장이 지난달초 MBC간부 등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성추행으로 MBC 징계위에서 제명된 자신의 아들을 복직시키기 위해 최문순 MBC사장에게 직접 부탁을 했고, 최 사장이 이 부탁을 받아들여 6개월 정직으로 바꾼 사실이 본지의 '이기명 이메일 전문' 입수결과 26일 확인됐다.
이는 그동안 MBC노조와 여성단체 등이 제기해온 '외압 의혹'이 사실이었음을 입증해주는 것이어서, 향후 최문순 사장에 대한 회사 안팎의 비난 및 진상규명 요구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씨는 또 이메일에서 "민주언론을 위해 투쟁을 하다가 해고를 당했던 최 사장. 그에게는 명예가 있었다. 민주화 개혁. 그 명예를 딛고 사장이 되었다. 자기가 무슨 사장을 하느냐고 펄펄 뛰며 겸양하던 최 사장은 믿음직스러웠다. 언론개혁의 표상이었다"고 말해, 우회적으로 자신이 최 사장 선임 과정에 일정 역할을 했음을 시사하기도 했다.
이씨는 이어 "(그러나) 지금 사장직에 집착하는 또 다른 강고한 그의 모습에 찬탄을 금할 수 없다"고 비아냥댄 뒤 "소신 없이 여기저기 기웃거려서는 못 쓴다"고 말해, 사장직 경질을 시사하기도 했다. 사장에 취임한 지 1년 10개월밖에 안된 최문순 사장에 대해 "사장직에 집착하고 있다"는 이씨의 이같은 발언은 최사장과 관련해 언론계 일각에 나돌고 있는 풍문과 일치하는 것이어서 향후 커다란 후폭풍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씨는 이밖에 "자식이 근무하던 방송사에는 자식 놈보다 더한 과오를 범한 인사가 고위직에 근무한다. 형평성이 깨지면 승복을 못한다. 바로 그 인사가 징계위원이었다"고 주장, 또다른 파문을 예고하기도 했다.
이씨의 글은 사실상 최 사장에 대한 공개비판의 성격이 짙으며 언론의 독립성 차원에서도 진상규명 작업이 불가피하다고 판단, 전문을 게재하기로 한다. 최문순 사장의 반론이 있을 경우에도 전문을 게재할 예정이다.
이기명 이메일 전문
존경하는 동료 친지 여러분께 드리는 글
한을 품고 죽으면 시체도 썩지 않는다고 합니다.
제가 이런 글을 쓰는 것은 나름대로 가슴에 맺힌 한을 조금이라도 풀고 싶은 마음과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진실로 해서 한 인간이 무참하게 매장되는 일은 없어야 된다는 생각에서입니다.
먼저 제 자식의 사려 깊지 못한 행동으로 평소 저를 아껴주시던 친지 여러분께 심려와 실망을 드린 점을 깊이 사과드립니다. 제가 글 한 줄 말 한 마디를 해도 자식 교육 하나 제대로 시키지 못한 인간이 무슨 말이 많으냐고 질타를 합니다.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합니다.
천형의 죄를 진 것처럼 몸 둘 바를 모릅니다. 자식 놈이 분명이 잘못은 저질렀습니다. 요즘은 하도 성추행이란 말이 많아서 눈길만 깊이 주어도 추행이고 어깨 한 번 툭 쳐도 천만 원이란 말이 있습니다만, 자식 놈은 분명히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만취한 상태에서 일어난 일이라 자식 놈도 기억을 잘 못합니다. 그러나 취했다고 책임이 면해지는 것도 아니고 회피할 생각도 없습니다. 다만 엄청난 추행이 아니었다는 것은 추행을 했다는 시점에서 거의 한 달이 지나서야 문제가 불거지고 즉시 이 모라는 기자가 대통령 전 후원회장의 아들이라는 점이 부각됐다는 사실입니다.
모 언론사에서는 피해자 가족에게 '왜 문제를 삼지 않느냐' '돈을 얼마 받았느냐' '청와대 압력이 있었느냐' 등의 협박성 강권을 하고 급기야 가족들이 왜들 그러느냐고 항의를 하기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저는 압니다. 저를 미워하는 정도를 넘어 증오하는 매체가 자식 놈 사건을 얼마나 좋은 먹이로 생각했는지를 말입니다.
조선일보에는 '대통령 전 후원회장의 아들 MBC의 이 모 기자 성추행'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습니다. 대통령 후원회장인 제가 부각된 것입니다. 자식 놈이 애비 때문에 죽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이 사건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르던 저는 그냥 당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보도가 되자 회사에서는 당연히 징계문제가 제기됐습니다. 저지른 잘못만큼 처벌을 받는 것은 지극히 옳습니다. 죄 값을 안 치르겠다면 나쁜 놈입니다. 문제는 형평성입니다.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합당한 형량입니다.
과실범을 사형에 처할 수는 없습니다. 직장인에게 해고는 극형입니다. 제 자식놈은 해고란 극형에 처해졌습니다. 형평에 맞지 않습니다. 살인죄를 저질러도 정상참작이라는 게 있습니다.
자식 놈은 '엠네스티 인권보도상'을 탔습니다. 기자라면 무척 가고 싶어하는 해외연수도 딱한 선배를 위해 두 번이나 양보를 했습니다. 그 결과는 '제 놈은 빽이 좋아 언제든지 갈 수 있으니까 인심을 썼다'는 비아냥입니다.
형평에 맞지 않는다고 이의를 제기한 이유는 또 있습니다. 명예를 생각해서 이름을 밝힐 수는 없지만 자식이 근무하던 방송사에는 자식 놈보다 더한 과오를 범한 인사가 고위직에 근무한다는 사실입니다. 형평성이 깨지면 승복을 못합니다. 바로 그 인사가 징계위원이었습니다. 잘못에 대한 처벌이 징계위원회의 권한이라 해도 형평성에 문제가 있고, 그 보다도 더 고약한 불순한 목적이 있다면 이건 정말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고약한 일이란 다음과 같은 것입니다. 회사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인사 한 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답니다.
"이 기자는 대통령 후원회장을 지낸 사람의 아들이다. 그의 부친은 대통령의 측근이고 실세란 소문이다. 요즘 MBC의 기강이 엉망이다. 사장의 개혁성도 장악력도 평가받지 못한다. 차제에 이 기자를 중징계하면 사원들에게 충격일 것이다. 눈치 보지 안고 소신껏 징계하는 것을 보고 회사의 기강도 바로 세워지고 사장의 권위도 올라갈 것이다. 설사 징계취소 재판에서 패소해도 손해 날 것이 없다. 이 기자 중징계는 꽃놀이 패다."
농담이든 진담이든 이 제안은 매우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져 자식 놈은 해고란 처벌을 받았습니다. 보도국의 동기들과 선배들이 탄원서를 냈고 자식 놈은 사내 게시판에 참회의 글을 올렸습니다. 피해자의 가족도 선처를 바라는 탄원서를 냈습니다. 그러나 재심의 결과는 또 해고였습니다. 사장은 최종적으로 6개월 정직으로 결재를 했는데 자식 놈은 사표를 냈습니다.
사람들은 왜 사표를 냈느냐고 합니다. 6개월 정직이 끝난 후 복직해서 열심히 일하면 명예를 회복할 기회도 있는데 왜 사표를 냈느냐고 합니다. 저도 자식 놈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사표를 내지 않을 수 없는 기막힌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저와 MBC 최 사장은 언론 민주화 운동의 오랜 동지 사이라고 주위에서 알고 저도 그렇게 믿습니다. '민언련'에서 언론 민주화 운동을 함께 했고, MBC 노조위원장과 언노련 위원장 시절에도 그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최선을 다 해 도왔습니다.
주위에서는 왜 최 사장에게 구원을 요청하지 않았느냐고 합니다. 사원들에 대한 징계의 최종 결재자는 사장이고 사장에게는 감형권도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장에게는 권한이 있습니다. 왜 제가 자식의 운명이 걸린 징계에 무심하겠습니까. 그러나 저도 상식의 인간입니다. 어떻게 자식이 죄를 졌는데 무죄를 바라겠습니까. 저는 최 사장에게 특별한 은전은 바라지 않았고 다만 상식에 맞는 징계, 형평에 맞는 징계를 해 달라고 했습니다.
자식 놈은 특정 매체에 의해 여론 재판을 받고 있고, 실상도 모르는 단체들이 의례적 성명을 발표하며 자식 놈의 극형을 요구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이니 특전이 아닌 형평에 맞는 징계를 해 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최 사장의 대답은 분명했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제가 다 알아서 처리합니다. 잘못은 있지만 무슨 해고입니까. 너무 야단입니다. 선생님 위상 때문에 그렇습니다. 제가 알아서 잘 처리하겠습니다. 선생님은 가만히 계십시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고맙다는 말이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해고였고, 재심에서도 해고였고 최종 사장 결재에서 6개월 정직이었습니다.
6개월 정직이란 엄청난 징계수위라고 합니다. 자식 놈의 죄는 이렇게 결론이 났습니다. 6개월 동안 참회하고 반성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식 놈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비서실 차장 선배 기자가 찾아왔다는 것입니다. 사표를 내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정직에 대해서 말이 많다. 한나라당에서도 문제를 삼아 회사를 방문한다고 하고 국감에서 아버지를 증인으로 채택할 것이다. 아버지 망신주고 싶냐. 사표를 내지 않으면 다른 건으로 다시 인사위원회에 회부시켜 해고시킬 수 있다."
분명히 협박으로 들었다고 합니다.
"협박입니까?"
"그렇다. 협박이다."
"최 사장 생각입니까."
"이런 문제를 내가 결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불덩어리가 치밀었습니다. 이게 무슨 짓이란 말인가. 정직 결재를 하고 바로 사표를 내라고 협박을 하다니. 감형으로 생색을 내고 뒤로는 칼로 목을 찌르는 사람. 지금껏 가려졌던 한 인간의 진짜 모습을 보는 순간입니다.
한나라당을 들먹인 것은 거짓으로 밝혀졌습니다. 말 그대로 협박이었습니다. 귀찮은 존재를 제거하자는 것입니다. 약속은 헌 신짝이었습니다.
선배들은 자식 놈에게 사표를 내지 말라고 말렸지만 무슨 수로 버틸 수가 있습니까. 사표를 내라고 협박한 사장 밑에서 어떻게 견딜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자식 놈이 사표를 낸 경위입니다.
전화도 없었습니다. 그런 배짱은 없었던 모양입니다. 두어 달이 지난 어느 날. 사장 특보라는 후보와 점심을 했습니다.
"저...선생님. 최 사장이 선생님한테"
말을 막았습니다.
"내 앞에서 그 사람을 거론하지 말게. 내 머리에서 지워버린 사람이네."
"선생님 때문에 차별을 받았습니다."
"내 죄일세."
참여정부가 들어선 후 헤아릴 수 없는 역차별의 수렁 속에서 살았습니다. 방송가에서는 제 이름이 약방에 감초입니다. 방송위원 선출 과정에서 제가 후보를 만났다는 기가 찰 소문이 있음을 나중에 알았습니다. 왜 저를 끌고 들어갑니까.
역차별이야 운명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식물인간이 된 자식의 모습을 보는 애비의 마음은 찢어집니다. 서글픕니다.
자식 놈은 죽었습니다. 살아 있으되 송장이고 숨을 쉬어도 식물입니다. 집안 대소사에 저는 발길을 끊었습니다. 길을 가면 뒤에서 비웃음 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글을 쓰면 욕이 쏟아집니다. 자식 교육 못 시킨 놈이라는 것입니다.
일요일이면 자식들이 저를 보러 옵니다. 웃음이 사라져버린 자식 놈. 애비 방에 들어가 누워 있는 자식을 보면 그건 시체입니다. 그 옆에 또 다른 시체인 애비가 울고 있습니다. 자식 놈은 죽고 집안은 쑥밭이 되고 성 추행범은 세상에 설 곳이 없습니다.
민주언론을 위해 투쟁을 하다가 해고를 당했던 최 사장. 그에게는 명예가 있었습니다. 민주화 개혁. 그 명예를 딛고 사장이 되었습니다. 자기가 무슨 사장을 하느냐고 펄펄 뛰며 겸양하던 최 사장은 믿음직스러웠습니다. 언론개혁의 표상이었습니다. 꿈이었습니다.
지금 사장직에 집착하는 또 다른 강고한 그의 모습에 찬탄을 금할 수 없습니다. 그게 인간의 모습일지 모릅니다. 사장이 되는 과정에서 어떤 일이 있었던 그것은 나약한 인간의 한계지만 그러나 사람은 살아온 것처럼 살아야 합니다.
개혁이 힘들다고 해서 '중요한 것은 개혁이 아니고 사는 것'이라고 하면 안 됩니다. 적어도 최 사장은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됩니다. 소신 없이 여기 저기 기웃거려서는 못 씁니다.
존경하는 친지 동료 여러분.
자식 잘못 둔 탓으로 가정이 완전히 망가졌습니다. 일요일이면 찾아오는 자식과 손녀 딸. 손녀가 자라서 성추행범의 딸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다닐 생각을 하면 정신이 아득합니다. 빨리 죽어 잊어야죠.
시체처럼 말을 잃은 자식 놈을 하루에 몇 시간씩 생각합니다. 눈물이 납니다. 자식 놈 얼굴 위에 최 사장의 얼굴이 겹칩니다. 내가 죽을 때까지 최 사장은 제 가슴 속에서 함께 살 것입니다.
최 사장에 대한 연민이 있습니다. 빨리 잊어야 하는데 안 되는군요.
늙은이의 넋두리를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이는 그동안 MBC노조와 여성단체 등이 제기해온 '외압 의혹'이 사실이었음을 입증해주는 것이어서, 향후 최문순 사장에 대한 회사 안팎의 비난 및 진상규명 요구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씨는 또 이메일에서 "민주언론을 위해 투쟁을 하다가 해고를 당했던 최 사장. 그에게는 명예가 있었다. 민주화 개혁. 그 명예를 딛고 사장이 되었다. 자기가 무슨 사장을 하느냐고 펄펄 뛰며 겸양하던 최 사장은 믿음직스러웠다. 언론개혁의 표상이었다"고 말해, 우회적으로 자신이 최 사장 선임 과정에 일정 역할을 했음을 시사하기도 했다.
이씨는 이어 "(그러나) 지금 사장직에 집착하는 또 다른 강고한 그의 모습에 찬탄을 금할 수 없다"고 비아냥댄 뒤 "소신 없이 여기저기 기웃거려서는 못 쓴다"고 말해, 사장직 경질을 시사하기도 했다. 사장에 취임한 지 1년 10개월밖에 안된 최문순 사장에 대해 "사장직에 집착하고 있다"는 이씨의 이같은 발언은 최사장과 관련해 언론계 일각에 나돌고 있는 풍문과 일치하는 것이어서 향후 커다란 후폭풍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씨는 이밖에 "자식이 근무하던 방송사에는 자식 놈보다 더한 과오를 범한 인사가 고위직에 근무한다. 형평성이 깨지면 승복을 못한다. 바로 그 인사가 징계위원이었다"고 주장, 또다른 파문을 예고하기도 했다.
이씨의 글은 사실상 최 사장에 대한 공개비판의 성격이 짙으며 언론의 독립성 차원에서도 진상규명 작업이 불가피하다고 판단, 전문을 게재하기로 한다. 최문순 사장의 반론이 있을 경우에도 전문을 게재할 예정이다.
이기명 이메일 전문
존경하는 동료 친지 여러분께 드리는 글
한을 품고 죽으면 시체도 썩지 않는다고 합니다.
제가 이런 글을 쓰는 것은 나름대로 가슴에 맺힌 한을 조금이라도 풀고 싶은 마음과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진실로 해서 한 인간이 무참하게 매장되는 일은 없어야 된다는 생각에서입니다.
먼저 제 자식의 사려 깊지 못한 행동으로 평소 저를 아껴주시던 친지 여러분께 심려와 실망을 드린 점을 깊이 사과드립니다. 제가 글 한 줄 말 한 마디를 해도 자식 교육 하나 제대로 시키지 못한 인간이 무슨 말이 많으냐고 질타를 합니다.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합니다.
천형의 죄를 진 것처럼 몸 둘 바를 모릅니다. 자식 놈이 분명이 잘못은 저질렀습니다. 요즘은 하도 성추행이란 말이 많아서 눈길만 깊이 주어도 추행이고 어깨 한 번 툭 쳐도 천만 원이란 말이 있습니다만, 자식 놈은 분명히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만취한 상태에서 일어난 일이라 자식 놈도 기억을 잘 못합니다. 그러나 취했다고 책임이 면해지는 것도 아니고 회피할 생각도 없습니다. 다만 엄청난 추행이 아니었다는 것은 추행을 했다는 시점에서 거의 한 달이 지나서야 문제가 불거지고 즉시 이 모라는 기자가 대통령 전 후원회장의 아들이라는 점이 부각됐다는 사실입니다.
모 언론사에서는 피해자 가족에게 '왜 문제를 삼지 않느냐' '돈을 얼마 받았느냐' '청와대 압력이 있었느냐' 등의 협박성 강권을 하고 급기야 가족들이 왜들 그러느냐고 항의를 하기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저는 압니다. 저를 미워하는 정도를 넘어 증오하는 매체가 자식 놈 사건을 얼마나 좋은 먹이로 생각했는지를 말입니다.
조선일보에는 '대통령 전 후원회장의 아들 MBC의 이 모 기자 성추행'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습니다. 대통령 후원회장인 제가 부각된 것입니다. 자식 놈이 애비 때문에 죽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이 사건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르던 저는 그냥 당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보도가 되자 회사에서는 당연히 징계문제가 제기됐습니다. 저지른 잘못만큼 처벌을 받는 것은 지극히 옳습니다. 죄 값을 안 치르겠다면 나쁜 놈입니다. 문제는 형평성입니다.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합당한 형량입니다.
과실범을 사형에 처할 수는 없습니다. 직장인에게 해고는 극형입니다. 제 자식놈은 해고란 극형에 처해졌습니다. 형평에 맞지 않습니다. 살인죄를 저질러도 정상참작이라는 게 있습니다.
자식 놈은 '엠네스티 인권보도상'을 탔습니다. 기자라면 무척 가고 싶어하는 해외연수도 딱한 선배를 위해 두 번이나 양보를 했습니다. 그 결과는 '제 놈은 빽이 좋아 언제든지 갈 수 있으니까 인심을 썼다'는 비아냥입니다.
형평에 맞지 않는다고 이의를 제기한 이유는 또 있습니다. 명예를 생각해서 이름을 밝힐 수는 없지만 자식이 근무하던 방송사에는 자식 놈보다 더한 과오를 범한 인사가 고위직에 근무한다는 사실입니다. 형평성이 깨지면 승복을 못합니다. 바로 그 인사가 징계위원이었습니다. 잘못에 대한 처벌이 징계위원회의 권한이라 해도 형평성에 문제가 있고, 그 보다도 더 고약한 불순한 목적이 있다면 이건 정말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고약한 일이란 다음과 같은 것입니다. 회사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인사 한 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답니다.
"이 기자는 대통령 후원회장을 지낸 사람의 아들이다. 그의 부친은 대통령의 측근이고 실세란 소문이다. 요즘 MBC의 기강이 엉망이다. 사장의 개혁성도 장악력도 평가받지 못한다. 차제에 이 기자를 중징계하면 사원들에게 충격일 것이다. 눈치 보지 안고 소신껏 징계하는 것을 보고 회사의 기강도 바로 세워지고 사장의 권위도 올라갈 것이다. 설사 징계취소 재판에서 패소해도 손해 날 것이 없다. 이 기자 중징계는 꽃놀이 패다."
농담이든 진담이든 이 제안은 매우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져 자식 놈은 해고란 처벌을 받았습니다. 보도국의 동기들과 선배들이 탄원서를 냈고 자식 놈은 사내 게시판에 참회의 글을 올렸습니다. 피해자의 가족도 선처를 바라는 탄원서를 냈습니다. 그러나 재심의 결과는 또 해고였습니다. 사장은 최종적으로 6개월 정직으로 결재를 했는데 자식 놈은 사표를 냈습니다.
사람들은 왜 사표를 냈느냐고 합니다. 6개월 정직이 끝난 후 복직해서 열심히 일하면 명예를 회복할 기회도 있는데 왜 사표를 냈느냐고 합니다. 저도 자식 놈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사표를 내지 않을 수 없는 기막힌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저와 MBC 최 사장은 언론 민주화 운동의 오랜 동지 사이라고 주위에서 알고 저도 그렇게 믿습니다. '민언련'에서 언론 민주화 운동을 함께 했고, MBC 노조위원장과 언노련 위원장 시절에도 그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최선을 다 해 도왔습니다.
주위에서는 왜 최 사장에게 구원을 요청하지 않았느냐고 합니다. 사원들에 대한 징계의 최종 결재자는 사장이고 사장에게는 감형권도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장에게는 권한이 있습니다. 왜 제가 자식의 운명이 걸린 징계에 무심하겠습니까. 그러나 저도 상식의 인간입니다. 어떻게 자식이 죄를 졌는데 무죄를 바라겠습니까. 저는 최 사장에게 특별한 은전은 바라지 않았고 다만 상식에 맞는 징계, 형평에 맞는 징계를 해 달라고 했습니다.
자식 놈은 특정 매체에 의해 여론 재판을 받고 있고, 실상도 모르는 단체들이 의례적 성명을 발표하며 자식 놈의 극형을 요구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이니 특전이 아닌 형평에 맞는 징계를 해 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최 사장의 대답은 분명했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제가 다 알아서 처리합니다. 잘못은 있지만 무슨 해고입니까. 너무 야단입니다. 선생님 위상 때문에 그렇습니다. 제가 알아서 잘 처리하겠습니다. 선생님은 가만히 계십시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고맙다는 말이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해고였고, 재심에서도 해고였고 최종 사장 결재에서 6개월 정직이었습니다.
6개월 정직이란 엄청난 징계수위라고 합니다. 자식 놈의 죄는 이렇게 결론이 났습니다. 6개월 동안 참회하고 반성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식 놈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비서실 차장 선배 기자가 찾아왔다는 것입니다. 사표를 내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정직에 대해서 말이 많다. 한나라당에서도 문제를 삼아 회사를 방문한다고 하고 국감에서 아버지를 증인으로 채택할 것이다. 아버지 망신주고 싶냐. 사표를 내지 않으면 다른 건으로 다시 인사위원회에 회부시켜 해고시킬 수 있다."
분명히 협박으로 들었다고 합니다.
"협박입니까?"
"그렇다. 협박이다."
"최 사장 생각입니까."
"이런 문제를 내가 결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불덩어리가 치밀었습니다. 이게 무슨 짓이란 말인가. 정직 결재를 하고 바로 사표를 내라고 협박을 하다니. 감형으로 생색을 내고 뒤로는 칼로 목을 찌르는 사람. 지금껏 가려졌던 한 인간의 진짜 모습을 보는 순간입니다.
한나라당을 들먹인 것은 거짓으로 밝혀졌습니다. 말 그대로 협박이었습니다. 귀찮은 존재를 제거하자는 것입니다. 약속은 헌 신짝이었습니다.
선배들은 자식 놈에게 사표를 내지 말라고 말렸지만 무슨 수로 버틸 수가 있습니까. 사표를 내라고 협박한 사장 밑에서 어떻게 견딜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자식 놈이 사표를 낸 경위입니다.
전화도 없었습니다. 그런 배짱은 없었던 모양입니다. 두어 달이 지난 어느 날. 사장 특보라는 후보와 점심을 했습니다.
"저...선생님. 최 사장이 선생님한테"
말을 막았습니다.
"내 앞에서 그 사람을 거론하지 말게. 내 머리에서 지워버린 사람이네."
"선생님 때문에 차별을 받았습니다."
"내 죄일세."
참여정부가 들어선 후 헤아릴 수 없는 역차별의 수렁 속에서 살았습니다. 방송가에서는 제 이름이 약방에 감초입니다. 방송위원 선출 과정에서 제가 후보를 만났다는 기가 찰 소문이 있음을 나중에 알았습니다. 왜 저를 끌고 들어갑니까.
역차별이야 운명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식물인간이 된 자식의 모습을 보는 애비의 마음은 찢어집니다. 서글픕니다.
자식 놈은 죽었습니다. 살아 있으되 송장이고 숨을 쉬어도 식물입니다. 집안 대소사에 저는 발길을 끊었습니다. 길을 가면 뒤에서 비웃음 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글을 쓰면 욕이 쏟아집니다. 자식 교육 못 시킨 놈이라는 것입니다.
일요일이면 자식들이 저를 보러 옵니다. 웃음이 사라져버린 자식 놈. 애비 방에 들어가 누워 있는 자식을 보면 그건 시체입니다. 그 옆에 또 다른 시체인 애비가 울고 있습니다. 자식 놈은 죽고 집안은 쑥밭이 되고 성 추행범은 세상에 설 곳이 없습니다.
민주언론을 위해 투쟁을 하다가 해고를 당했던 최 사장. 그에게는 명예가 있었습니다. 민주화 개혁. 그 명예를 딛고 사장이 되었습니다. 자기가 무슨 사장을 하느냐고 펄펄 뛰며 겸양하던 최 사장은 믿음직스러웠습니다. 언론개혁의 표상이었습니다. 꿈이었습니다.
지금 사장직에 집착하는 또 다른 강고한 그의 모습에 찬탄을 금할 수 없습니다. 그게 인간의 모습일지 모릅니다. 사장이 되는 과정에서 어떤 일이 있었던 그것은 나약한 인간의 한계지만 그러나 사람은 살아온 것처럼 살아야 합니다.
개혁이 힘들다고 해서 '중요한 것은 개혁이 아니고 사는 것'이라고 하면 안 됩니다. 적어도 최 사장은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됩니다. 소신 없이 여기 저기 기웃거려서는 못 씁니다.
존경하는 친지 동료 여러분.
자식 잘못 둔 탓으로 가정이 완전히 망가졌습니다. 일요일이면 찾아오는 자식과 손녀 딸. 손녀가 자라서 성추행범의 딸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다닐 생각을 하면 정신이 아득합니다. 빨리 죽어 잊어야죠.
시체처럼 말을 잃은 자식 놈을 하루에 몇 시간씩 생각합니다. 눈물이 납니다. 자식 놈 얼굴 위에 최 사장의 얼굴이 겹칩니다. 내가 죽을 때까지 최 사장은 제 가슴 속에서 함께 살 것입니다.
최 사장에 대한 연민이 있습니다. 빨리 잊어야 하는데 안 되는군요.
늙은이의 넋두리를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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