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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중동' 카스피해

[세계를 움직이는 뉴 월드파워]<6> 카스피해 유전파워

지난 8월 유가가 배럴당 80달러선에 육박하자 세계경제계에서는 유가가 배럴당 1백달러가 넘는 ‘슈퍼 스파이크 현상’에 대한 우려감이 커졌다. 다행히 이후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전격 증산에 돌입하고 가격이 하락세로 돌아서면서 각국은 한숨을 돌렸다.

그러나 자원 고갈 우려와 함께 ‘자원의 무기화 현상’을 중심으로 한 자원민족주의 현상이 곳곳에서 나타남에 따라 각국은 석유, 가스 등을 확보하기 위해 치열한 에너지 확보 전쟁을 세계 각 지역에서 펼치고 있다.

에너지 패권전쟁, 중동에서 카스피해 연안으로 이동

에너지 전쟁이 가장 치열하게 펼쳐지고 있는 격전지가 유럽과 아시아가 만나는 카스피해다. 각국이 치열히 에너지 패권 전쟁을 벌이고 있는 카스피해 연안은 과거 비단과 문화를 실어날랐던 ‘실크로드’에 빗대 ‘뉴 오일로드’라는 이름으로 불릴 정도다.

물론 OPEC을 중심으로 한 석유파워는 여전하다. 그러나 중동이 이라크전쟁,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이스라엘과 레바논 및 헤즈볼라 분쟁 등 테러가 일상화되자 세계의 관심은 카스피해로 쏠리고 있는 것이다.

‘세계 에너지대전의 중심’으로 부상한 카스피해는 남북 1천2백㎞, 동서 3백㎞, 총면적 40만㎢에 달하는 세계에서 가장 큰 호수다. 카스피해를 둘러싼 국가는 러시아, 카자흐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아제르바이잔, 이란 등 5개국. 이 지역의 석유 확인 매장량은 기관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1백65억배럴(미국 에너지정보청)~3백94억배럴(석유컨설팅 기관 우드맥킨지). 전세계 매장량의 5% 정도쯤 된다.

그러나 이는 확인된 매장량에 불과하다. 실제로 캐낼 수 있는 가능 매장량은 2천3백억배럴 이상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지역에는 ‘시추공만 뚫으면 석유가 쏟아진다’는 말이 있을 만큼 아직 탐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얼마나 묻혀있는지를 확인하지 못한 상황이다. 한 예로 카자흐스탄의 경우 국내에 2백여개의 유전지대가 있으나 개발 중인 곳은 80여곳에 불과하며, 다른 미개발 유전들의 매장량도 정확하게 추정되지 못한 상황이다.

국가별로는 카자흐스탄의 확인 매장량이 90억배럴로 가장 많으며 아제르바이잔이 70억배럴로 두번째로 많다. 천연가스의 확인 매장량도 2백19조cf(입방피트)에 달하며 가능 매장량은 2백93조cf에 달한다.

현재 카스피해의 석유생산량은 하루 1백63만배럴로 세계 공급량의 2.1% 수준. 그러나 2015년에는 하루 3백80만배럴로 증가할 것으로 분석돼 카스피해의 위상을 갈수록 높아질 전망이다.

러시아, 카자흐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아제르바이잔, 이란 등에 둘러싸인 카스피해 ⓒ 위키피디아


미국-중국-러시아, 카스피해 패권 3파전

카스피해를 주변으로 하는 중앙아시아 지역은 역사적으로 열강들 사이에 주도권 다툼이 치열했었다.

과거 고대 통상로인 실크로드를 통해 중국은 동서 문물을 교역하는 등 수백 년간 이 지역을 지배하며 세계의 중심으로 자처했다. 19세기 말에는 제정 러시아와 대영제국이 인도로 가는 길목인 히말라야, 힌두쿠시, 카라코룸 산맥의 협곡과 구릉지역, 카스피해 일대를 장악하기 위해 경쟁을 벌였다. 영국의 작가 루드야드 키플링은 대영제국과 제정 러시아의 치열한 쟁탈전을 ‘거대한 게임(The Great Game)’이라고 표현했고, <거대한 체스판>의 저자인 브레진스키는 이 지역을 ‘유라시아의 발칸’으로 부르기도 했다.

지금 카스피해에선 ‘두 번째 거대한 게임(The Great GameⅡ)’이 전개되고 있다. 이번 게임의 주체는 미국-중국-러시아.

가장 눈에 띄는 대결은 송유관을 놓고 벌이는 치열한 열강간 경합. 미국은 아제르바이잔의 바쿠에서 그루지야의 트빌리시를 거쳐 터키의 제이한에 이르는 1천7백70km의 BTC라인 송유관 건설을 주도했다. 러시아는 이에 기존의 CPC라인 외에 카자흐스탄의 텡기즈유전에서 러시아의 노보로시스크로 이어지는 1천5백80km의 송유관을 확장, 건설했다. 중국도 카자흐스탄의 아타수와 자국의 두산쯔를 연결하는 1천km의 송유관을 완공하여 카스피해에 직통 으로 연결되는 거점을 확보했다.

여기에다 최근엔 인도까지 가세, 투르크메니스탄에서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을 지나는 1천6백km의 파이프라인 건설에 나섰다. 그야말로 전 세계가 카스피해의 석유와 천연가스를 확보하기 위한 제 3차 세계대전을 방불케 하는 치열한 경쟁 중이다.

에너지강국으로 급부상 중인 카스피 인근 국가들

이같은 열강들의 각축 속에 카스피해 인근 국가들은 새로운 경제강국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제2의 사우디아라비아’로 불리는 카자흐스탄은 유전개발을 통한 석유 수출로 연 1백억 달러 이상을 벌어들이고 있다. 아제르바이잔도 석유 관련 수입만 매년 2백억 달러가 넘어서면서 이제는 국가 개발 계획을 추진할 자금 원동력을 갖게 됐다.

투르크메니스탄은 전 세계의 10퍼센트를 차지하는 천연가스 매장량과 8백80억 배럴의 석유매장량을 통해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던 매머드 경제개발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우즈베키스탄도 에너지 대국의 장점을 살려 그동안 쇠락했던 국력회복에 나서고 있고, 그루지야는 유럽과 중앙아시아를 잇는 가교 역할을 자임하고 있으며, 키르기스스탄은 전략적 요충지로서 중앙아시아의 허브를 지향하고 있다.

'제2의 중동' 블럭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대한석유공사의 석유 시추선 모습 ⓒ 대한석유공사


부활하는 자원민족주의, 그리고 위기의 한국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석유위기를 불러일으키며 국제 에너지시장의 질서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던 자원민족주의는 21세기 들어 다시 강화되고 있다.

스웨덴 웁살라 대학의 교수로서 석유생산정점연구회(ASPO·Association for the Study of Peak Oil)를 이끌고 있는 쉘 알레클렛 의장은 지난 1일 서울에서 행한 ‘석유에 중독된 세계, 어디로 갈 것인가’라는 강연에서 “2008~2010년께 세계 석유생산이 정점에 이를 것”이라며 “인류는 역사상 최대의 파티인 ‘석유 파티’를 즐겨왔다. 그러나 파티는 얼마 후 끝난다. 이로 인해 세계경제는 성장을 위협받을 것이고, 정치·사회적 불안정이 야기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미국이 최대의 석유를 소비하는 등 석유소비를 지속하고 있으며, 최근 개발과 성장이 급격하게 진행중인 중국과 인도, 인도네시아 등의 석유소비가 늘고 있다”며 "중국은 현재 전 세계 석유의 8.5%를 소비하고 있으며, 최근 석유소비 급증 추세가 계속 이어질 경우 석유소비량이 공급량을 감당하지 못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자원 민족주의, 자원 전쟁의 불가피성을 지적한 것이다.

문제는 석유 한방울 안나면서도 세계에서 가장 비효율적 에너지 소비국가인 우리나라다.

세계적 에너지전문가인 페레이던 페샤라키 박사는 지난달 9일 서울서 행한 ‘구조적 변화 맞고 있는 세계석유시장과 한국’이라는 제목의 특강에서 “한국이 지난 80~90년대 원유 가격 상승을 예상하지 못하고 가스 도입가격을 원유 가격과 연동시켜 계약, 현재 대만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높은 가격을 치르고 LNG를 구입하고 있다”고 한국의 낙후된 에너지 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는 이어 카스피해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카스피해 유전이 유럽과 미국, 중국, 러시아 간 열강의 주도권 다툼으로 한국이 틈새시장을 찾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원유와 천연가스를 포함한 에너지 확보에서 중동 지역 공급량을 확고하게 확보하고 카스피해 유전에도 적극적이고 시급하게 나서야만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우리나라의 에너지 공급의 해외 의존도는 97%이고, 특히 석유의 경우 중동 의존도 79%로 지나치게 높다. 우리가 카스피해 유전에 집중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이미 한국석유공사와 SK 등은 카스피해 유전개발에 뛰어든 상태며, 삼성, LG, 현대자동차, 동일하이빌 등도 카스피해에 뛰어든 상태다.

21세기 최고의 격전지인 카스피해 각축전에서 과연 우리가 얼마나 틈새를 파고들 지에 한국경제의 미래가 달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김홍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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